매몰 비용

|함수연| 만남 2014. 3. 19. 10:16

큰 딸이 코스트코에서 한우사골을 사 왔다.

그것도 한 박스씩이나.

육수를 만들었더니 양이 제법 많아서

며칠 동안 반찬 걱정 안 해도 될 듯싶었다.

뿌듯한 기분에 기왕 사골 국을 끓여놨으니

이참에 혼자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하는 앙큼한 생각까지 해봤다.

 

 

 

 

육수는 여러 개의 패트병에 담아 냉장 보관했고

당장 먹을 것은 들통 째 베란다에 놔두었다.

헌데 사흘이 지나도록 그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이를 어째? 혹시나 싶었는데,

데워서 먹으려고 보니 맛이 조금 이상했다.

사실 많이 상했으면 곧바로 버렸을 텐데

아주 약간이라 냉장고 안에 있던 육수를 섞어서 다시 한 번 끓여주면

시큼한 맛이 사라질 것 같았다.

 

 

그런데 웬걸! 나와 남편은 그냥 먹을 만하다고 했지만

딸이 한 숟갈을 떠먹더니 국물에서 냄새 난다고 생난리다.

미련 갖지 말고 빨리 버리라고 했다.

 

 

그 많은 양을 몽땅 버리려니 진짜 아까웠다.

게다가 육수로 만들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을 생각하니 머리가 띵했다.

핏물 빼고, 헹구고, 가스 불 옆에 지키고 서서

거의 하루를 다 투자해서 만든 건데 한번 먹어보지도 못한 채

음식쓰레기로 전략해 버렸다니 딸에게 너무 미안했다.

아빠 엄마 몸보신 하라고 모처럼 선심을 쓴 건데...

 

 

잘못됐다는 걸 알았을 때 과감히 버리고

 냉장고에 있던 것만 먹었으면 될 걸

아깝다고 멀쩡한 국물과 섞어버려서 결국 아무 것도 못 먹게 되었다.

이런 바보 같은 걸 경제학 용어로 ‘sunk cost(매몰비용)'이라고 했던가.

잘못된 투자인 줄 알면서도 그만둘 생각 않고

쓴 돈 아깝다고 계속 쏟아 붓는 것.

이처럼 무모한 일은 전에도 있었다.

 

 

몇 년 전 만기된 적금으로 펀드를 들었다.

적립식이 아닌 거치식이었다.

가입하고 나서 10개월 정도는 수익성이 좋아서

예정대로 3년 만기가 되면 대박이 터질 줄 알았다.

헌데 대박은커녕 계속 마이너스 현상이 이어졌다.

 

 

그런데도 쉽게 환매를 못하고 ‘어떻게 되겠지’ 하는 기적을 바라면서

2년 넘게 끌고 있다가 10%가 넘는 손해를 감수하고서 해지시켜 버렸다.

그것도 은행 직원의 끈질긴 권유 때문이었는데

잘못된 투자는 빨리 잊고 다시 시작하는 게 상책이라는 걸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이런 경제공부 덕분에 이제는 펀드보다는

이율이 낮더라도 정기 예금을 선호한다.

문득 어느 증권회사 광고에 탤런트 김혜자가 나와서

 “안전이 제일이에요, 제일!”이라고 외치던 장면이 떠오른다.

 

 

인간은 무모할 때가 참 많다. 과거에 들인 돈 때문에,

과거에 한 말 때문에 고집을 부리다가 더 큰 낭패를 보게 되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4대강 사업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도 걱정이 된다.

4대강 사업은 들인 돈이 워낙 크니 매몰비용이 될까 겁나고,

원칙과 약속을 중시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이 무리하게 대선 공약을 감행하여

국민들에게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떠넘길까봐 또 겁이 난다.

 

 

현재 우리나라 복지예산 증가는 OECD국가 중 1위라고 한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무주택 서민을 위한 행복주택이나

보금자리주택을 왕창 짓겠다던 주택 공약은 축소되었으며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하겠다던 기초연금 지급은

대상자를 선별하여 차등 지급하는 것으로 후퇴, 또한 반값등록금 공약은

사실상 백지화 된 상태라고 한다.

 

 

대선공약이라는 게 어차피 포플리즘 성격이 강하고

이후 상황 변화를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절대로 무리하게 감행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매몰비용이 크면 클수록 국민들의 부담이 늘어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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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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