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두 번째 주말, 제주도 강의를 끝내고 서귀포에 사는 친구 집을 찾았다.

처음 제주육아종합보육센터에서 강의 의뢰가 왔을 때 나는 무조건 OK를 외쳤다.

대상이 누구인지, 강의 주제가 뭔지, 강사료가 얼마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오로지 친구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말하자면 염불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이 컸던 것이다.

 

 

그러나 제주 가는 길은 녹록치 않았다.

처음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김포공항으로 가는 도중에 받은 문자 한 통이 모든 걸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다.

‘항공기 연결로 제주 출발 시간이 20분 지연되었습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전날도 아시아나 항공에서 같은 내용의 문자를 받아 비행시간이 이미 25분이나 늦춰졌는데

또 다시 20분 지연이라니, 그것도 탑승 두어 시간 전에

문자 메시지 하나 달랑 보내면 어쩌란 말인지 몹시 당황스러웠다.

 

 

강의는 오후시간이지만 이렇게 되면 점심도 굶어야 하고 친구와의 시간 약속도 미뤄야 하고,

난관이 많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제주공항에서 나를 픽업하기로 한 사람과 연락이 안 되는 것이었다.

애가 탔다.

도대체 항공사들이 왜 이 모양인지, 혹시 며칠 전에 벌어진 ‘땅콩 회항’ 사건 여파 때문은 아닐까...

 

 

여러 사람을 거쳐 보육센터 대표와 뒤늦게 연락은 닿았지만

비행기는 애초 연기한 시간보다도 15분을 더 늦게 착륙했다.

공항에서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던 그분은 미처 인사할 겨를도 없이

싸늘하게 식은 레몬차 한 잔을 내 손에 쥐어주고는 강의 장소로 황급히 차를 몰았다.

 

 

내 잘못은 아니지만 행사 주관자로서 그 역시 마음 졸였을 생각을 하니 너무나 미안했다.

다행히 강의 10분 전에 도착.

담당자는 날보고 샌드위치라도 먹고 시작하라고 했지만 도저히 먹을 기분이 아니었다.

차라리 배고픈 게 낫지 그러다 체하기라도 하면 더 큰일이다.

 

 

물 한 잔을 마시고 넓디넓은 제주 박물관 강의실에 들어서니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이를 어찌 극복할 수 있을까?’ 마라토너들이 경험한다는 극치감,

러너즈 하이(runner's high)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조금 두려웠다.

 

 

참가자들은 예비부모 및 영유아 자녀를 둔 젊은 부부들이라고 들었는데 둘러보니

그들이 데리고 온 아기들도 제법 많았다.

혹시 아기들이 중간에 울기라도 어쩌지,

또 괜한 걱정이 앞섰으나 중간에 딱 한 사람만이 우는 아기를 안고 나갔을 뿐

두 시간의 강의는 큰 혼란 없이 진행되었다.

그래도 그동안에 쌓은 강의 경험이 헛되진 않았나 보다.

 

 

처음의 걱정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모든 과정을 끝마쳤을 때에는

시원함과 동시에 마약 같은 아드레날린이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고마우면서도 마음이 짠했다.

 

 

밥벌이와 자아실현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늘 고군분투하는 삶.

이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 피드백 따위는 깨끗이 잊어버리자.

어차피 만인을 만족 시킬 수 없다는 게 강사의 숙명인데

어찌 매순간 희열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나만의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찰나도 가끔씩은 있었으리라.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갑자기 배고픔이 밀려왔다.

아침 9시에 집을 나서서 오후 4시까지 먹은 거라곤 기내에서 준 토마토 주스 한잔과 강의실에서 마신 생수가 전부였다. 강의 후 주최 측에서 대접해준 흑돼지 삼겹살을 맛있게 먹고 서둘러 친구네 집으로 달려갔다.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 바로 옆집,

친구네 집 대문을 나서니 미술관 앞뜰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고

공원은 한겨울인데도 동백꽃을 비롯한 곱고 붉은 꽃들이 저마다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서울은 한파주의보까지 내려졌는데 서귀포는 완전 봄날,

친구네 정원에도 상추와 배추, 대파 같은 채소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지은 지 40년이 넘었다는 친구네 집은 고풍스러우면서도 깔끔했는데

동네에서는 워낙 유명한 집이어서 집주인이 바뀐 뒤에도 여전히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대지 200평의 너른 집은, 베란다에 서면 푸른 바다가 보이고

집 위아래 층이 전부 튼튼한 목재로 되어있어서 자연친화적 요소들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요양 목적으로 내려간 친구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집이었다.

 

 

뜻밖에 찾아온 병마, 남부러울 것 없이 잘 살아오던 친구에게 그것은 불현듯 닥친 인생의 칼바람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친구 부부는 지금 행운을 얻었다. 건강을 되찾고 바닷가 근처에 아름다운 집을 소유하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영접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뒤늦게 인생의 보너스를 얻은 것 같았다.

하지만 세상에 준비되지 않은 행운은 없다고 했다.

 

 

길바닥의 동전도 걷지 않으면 주울 수 없듯이 부부는 오늘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그동안 선하게 살았기에 뜻하지 않은 행운을 만났다고 나는 생각한다.

남편과 둘이서 최소한의 살림만으로 단순하게 꾸려가는 삶!

하룻밤 자면서 그의 집이 숲 같다는 생각을 했다.

 

 

 

 

 

따뜻하고 상쾌하고 고요한...

 마당에는 열대림 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거실에는 하루 종일 햇살이 가득하여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리쬐니 보일러 안 켜도 되고, 치유의 공간으로는 최적이었다.

거실에 앉아보니 어느 시인의 말처럼 하늘에서 해가 내려 알을 슬어 놓은 듯 햇빛 알갱이가 다 보였다.

서귀포로 이사한지 일 년 남짓, 이제 몸도 회복되고 고향만큼 정이 깊어져서

그대로 눌러앉고 싶다는 걸 보니 친구는 그새 제주 사랑에 흠뻑 빠진 듯했다.

몸 아픈 아내를 대신하여 온전히 주부가 되기로 작정한 남편도 당연히 찬성이란다.

 

 

이틀 동안 친구 남편이 해준 밥을 먹으며 황송했다.

밥 짓는 솜씨가 프로급이라고 말했더니 쌀이 좋아서 그런 거라며 겸손해했지만

정말로 그가 차려준 밥상은 매 끼니마다 맛과 영양 모두 흡족한 만찬이었다.

정리정돈이 완벽한 남편의 살림솜씨는 주방뿐만 아니라 집안 곳곳에서도 빛이 났다.

사업가였던 그는 아마 전생에 주부로 태어나지 않았나 싶었다.

 

 

아내의 병이 다 나아도 자기는 평생 머슴으로 살 거라며 호탕하게 웃어보이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친구 부부는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재미있게 만들어가며 신혼처럼 살고 있었다.

밤늦도록 식탁에서 주고받던 우리들의 수다는

이층 방으로 옮겨져 새벽 4시까지 이어졌고 눈물겹도록 정 깊은 서귀포의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쌓인 회포를 풀기에 하룻밤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친구는 사나흘 더 머물다 가라고 했지만

나는 다음 일정이 잡혀 있어서 하룻밤 만리장성 쌓는 것으로 끝내야만 했다.

 

 

 

 

이튿날 아침 친구가 다니는 교회에 가서 주일 예배를 보고

새롭게 조성된 이중섭 문화의 거리 탐방에 나섰다.

크고 작은 공방들이 즐비한 게 서울의 인사동을 연상케 했다.

또한 크로아티아 여행길에서 만난 아기자기한 골목길 가게들과도 많이 닮아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문화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으면 어느 나라나 다 분위기가 비슷비슷했다.

 

 

그런데 우리가 들른 첫 번째 가게에서 뜻밖의 인물을 만났다.

‘무달구릇’이라는 필명을 가진 50대 남자는 시인이면서 캘리그라피(손글씨)작가였다.

강동구 명일동에서 살다가 제주 섬에 상륙한지 1년 되었다는데

한 눈에도 그는 서울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현재 강동구에 살고 있고, 친구도 강동구 성내동에서 오래 살았다고 하니

그는 헤어졌던 벗이라도 만난 듯 아주 반가워했다.

우리에게 커피를 타주며 저녁에 만나 막걸리라도 한 잔 하자며 살갑게 군다.

서울 생활 30년 동안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일방통행에 염증을 느껴

무식하고 멍하게 살기 위해 제주살이를 택했다던가.

앞으로의 꿈은 김영갑 사진작가처럼 제주에서 자기 갤러리를 운영하는 거라는 말을 듣고

나는 친구에게 ‘앞으로 이 사람을 잘 사귀어 놓으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여행 중 여러 부류의 사람을 만나며 세상에는 다양한 방식의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난 진작에 알았다.

인생은 결코 자기계발서 한 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런데도 과거의 관습이나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용기 부족일까,

아님 결단력이 없어서 일까,

나는 늘 생각으로만 그치고 말았는데 제주에서 제 2의 인생을 놀멍 쉬멍 빈둥거리면서(?) 살고 있는

친구와 시인이 몹시 부러웠다.

 

 

 거기서는 몸도 마음도, 얽히고설킨 시름까지도 다 내려놓고 살 수 있을 것 같았기에.

글쎄, 결심하기까지가 어렵지 마음 하나만 바꾸면 생활 터전을 옮기는 것도 그리 힘든 일은 아닐 것 같은데.

나는 아직도 집착에서 못 벗어난 탓일까?

 

 

오후에 서귀포 5일장 구경을 끝으로 아쉬운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빠듯한 일정에 맞춰 쏘다니긴 했어도 휴식의 참맛을 느낀 무척 알찬 시간이었다.

떠나올 때 친구가 나를 껴안으며 속삭였다.

“숙식 제공은 무한 책임질 테니 아무런 약속 없이 오고 싶을 땐 언제든지 와. 기다리고 있을게!”

그래 고맙다 친구야,

그리움이 쌓이고 에너지가 딸리면 첫눈처럼 소리 없이 찾아가마...

 

 

 

 

공항으로 돌아오는 길엔 차가운 겨울비가 한 차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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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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