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천양희 

 

"세 번 생각하고 한 번 말하면 실수가 없다는데, 나는 열 번을 생각하고 한 번쯤 말하는데도 실수가 많으니 나는 아직도 철들지 않은, 철들고 싶지 않은 시인인가보다. 영원히 철들지 않고 가볍게 살고 싶지만 그건 아예 그른 것 같다. 영혼을 가진다는 것은 비밀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니 결코 가벼워질 수는 없을 것이다."

 

 

 

 

 

 

봄이라는 계절 한 가운데에서 생각나는 시인이 있습니다.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해 올 해 시인 50주년을 맞는 천양희 시인인데요,

위에 글은 산문집 「첫 물음」에 실린 '가벼운 것에 대한 생각'의 일부분입니다.

50년이 넘는 시간동안 글과 함께 살아오신 분이신데도, 실수와 가벼움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계신 모습이 참 인간적으로 다가옵니다. 추억과 경험을 녹여 지은 시는 여성적인 문체로 더 따듯하게 느껴지는데요.

 

봄 나들이를 더 풍요롭게 할 책을 소개합니다.

 

 

 

 

 

 

너무 많은 입(2005, 창비)

 

 

작가수업(2015, 다산책방)


 

 

 

 

 

최근 「식샤를 합시다」라는 드라마 마지막편에서 천양희님의 시가 등장했었는데요,

그래서인지 천양희 시인의 시가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 같네요.

 

 

 

 

식샤를 합시다 시즌1 


 

 

 

 

 

밥 / 천양희

 

외로워서 밥을 많이 먹는다던 너에게

권태로워 잠을 많이 잔다던 너에게

슬퍼서 많이 운다던 너에게

나는 쓴다

 

궁지에 몰린 마음을 밥처럼 씹어라

어차피 삶은 너가 소화해야 할 것이니까 

 

 

 

(↑ 드라마 속에 등장한 천양희 시인의 시)

 

 

 

 

 

 

 

 

 

 

시인은 "내가 운명의 고비에 처했을 때, 그때마다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시를 쓰는 일이었다. 시를 쓰는 동안만은 나는 내가 아닐 수 있었고 나를 잊을 수 있었다" 고 말합니다.

또,  "시인이 되려면 일 킬로그램의 꿀을 찾기 위해 오백육십만송이의 꽃을 찾아가는 벌갈이, 성충이 되려고 천 일을 물속에서 견디며 스물다섯 번 하물을 벗는 하루살이같이, 얼음구멍을 찾는 돌고래같이, 하루에 칠십만 번씩 철썩이는 파도같이 제 스스로를 부르며 울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매일경제 김슬기 기자와의 인터뷰 중에서

 

 

 

우리 모두 시인은 아니지만

저마다의 벌갈이, 돌고래, 파도같은 경험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요?

봄날의 시로 우리의 지난 날을 꽃피워 보는 것 어떨까요?

 

 

 

 

 

 

 

 

마지막으로,

함께 느껴보면 좋을 시를 소개합니다.

 

 

 


 

 

 

뒷길 / 천양희

 

 뒷길은 뒤에 가기로 하고 앞길을 먼저 따라갔습니다 샛길을 끼고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갔습니다 길은 몇 갈래 가다가 멈춘 길도 있었습니다 다른 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먼저 지평선 하날 당겨 먼 세계를 적었습니다 직선과 직진이 다르지 않았으나 나아가는 것만이 가장 빠른 길은 아니었습니다 나아가려면 우선 물러서라는 말이 진과 퇴의 처세법임을 그때서야 겨우 알았습니다 곧은 것은 쉽게 부러지나 굽은 것은 휘어진다고 말들 하지만 구부러지면 온전하다는 저 곡선의 유연함 저 내밀함... 놀라운 것은 감추면서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길 없어도 세상은 새 길을 만들고 사람들은 바쁘게 날 앞질러 갔습니다 옛 길이 언제 새 길을 내려놓았겠습니까 가파른 길 내 길 처럼 걸어갈 때 나도 그랬을 것입니다 멀리 가야 많이 본다는 ...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었습니다 모든 생은 자기에 이르는 길이었습니다 길의 모든 것은 걷고 싶지 않아도 걷게 되는 것입니다 들판 너머 길 하나 산 너머 길 바라다 봅니다 길의 끝은 멀고 그리고 가파릅니다 고갯길은 힘든 그 어떤 것도 넘겨주질 않습니다 나는 몇 번이나 그 길 넘었습니다 고갯길은 벗어나도 벗지 못하는 업도 있습니다 눈부신 햇살도 모든 어두움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누구든 다시 쓰고 싶은 생이 있겠습니까 앞길밖에 없겠습니까 가다보면 길이 되는 거 그것이 오래 기다린 뒷길일 것입니다

 

<너무 많은 입> 창비 2005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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