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네요. 집에 대해서 공동체 식구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글로 적어 보라는 소식을 받았을 때 제 가족은 이사 준비를 하고 있었거든요. 한국에서 이사 와 1년 반 넘게 살던 너도밤나무 마을을 떠나 같은 공동체 마을이면서 영국 남부, 런던 아래에 있는 다벨로 이사를 하게 됐어요. 그곳으로부터 초청을 받은 건 목요일, 그리고 이사는 그 다음 주 화요일에 가야 합니다. 단 며칠 만에! 하지만, 공동체가 원하는 곳은 어디든지 가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기쁘게 “알았어요.”라고 대답했죠.


이사라고 하지만 집을 새로 장만해서 모든 살림살이를 옮기는 그런 건 아니에요. 옷가지를 기본으로 해서 개인물품만 싸서 여행을 떠나듯 가요. 침대, 장롱, 식탁, 의자, 그릇 같은 건 다 두고요. 냉장고 같은 부엌 용품도 곁에서 함께 살 이웃 가족들이 나눠 쓸 거니까 그냥 두고 가면 되고요. 옛날에 자취할 때부터 냉장고 같은 걸 옮길 때마다 조마조마했었는데 이제 그런 걱정으로부터는 자유입니다.
 

아내가 짐 정리를 하는 동안 저는 종이로 된 바나나 상자들을 구해왔어요. 그리고 꼭 가지고 갈 옷가지와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지요. 처음 몇 상자를 채울 때까지는 괜찮은데 마무리를 지으려고 하니까 점점 골치가 아파지더라고요. 늘 간단히 살자고 했는데도 물건은 금세 늘어나고 필요 없는 것도 얼마나 많은지…. 이사 가는 준비 잘 되냐고 물으시는 한 할머니는 “얼마나 빨리 필요 없는 짐이 느는지 몰라. 아주 놀란다니까. 중요한 건 아이들을 까먹지 않고 데리고 가는 거야.”라며 웃으시더군요. 맞아요. 그게 사람 사는 모양이지요. 아무튼 필요 없는 옷가지와 책은 마을의 옷방과 도서관으로 보내고, 초콜릿이나 음료수 그리고 한국 음식 재료는 이웃들에게 나눠 드리거나 저녁에 함께 모여 나눠 먹었어요. 그리고 마을 식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다 보니 이사 가기로 한 화요일이 금방 찾아왔죠.
 

화요일 아침, 하얀 승합차 뒤에 바나나 상자들과 장구를 싣고, 두 아들을 자리에 앉혀주고 다벨을 향해 떠났어요. 아무리 짐을 줄이더라도 한국에서 올 때 가지고 온 장구는 영국에서 옮겨 다니는 동안은 계속 갖고 다니기로 했어요. 흥이 있어야 함께 사는 것도 재미가 있고, 힘도 나잖아요.
 

우리가 탄 차는 밀이 누렇게 익은 켄트 군의 시골 길을 지나 달렸습니다. 영국 동남부의 밀은 키가 작지만 한 뿌리에서 여러 줄기가 올라와서 늦은 봄이면 빽빽하게 자라나 튼튼하고 실한 이삭이 패기 시작해요. 아내와 함께 짙은 초록색으로 물결치는 밀밭을 걸으며 마음 시원하게 느낀 적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익어서 누렇게 됐네요. 높은 산이 없고, 언덕도 드문, 하지만, 땅이 기름져서 밀, 보리, 콩, 감자가 야무지게 자라있는 시골 길을 한 시간 반쯤 달려 다벨에 도착했어요. 차가 도착하니까 어린이 가구 만드는 작업장에서 일하던 식구들이 일손을 놓고 나와 반갑게 맞아줬어요. 따뜻한 얼굴들을 보니까 집에 온 것같이 마음이 편합니다.
 

마침 12시 모임 시간이 돼 마을 식구 대부분을 한 자리에서 만나고 청년들의 도움을 받아 상자들을 손수레에 싣고 집으로 향했어요. 집은 옛날에 1층을 고등학교로 쓰던 건물이고, 저희들이 쓸 곳은 고등학교 교실을 나무 칸막이로 막아 방 3개를 만든 곳이래요. 집안에 들어가니까 우리 가족을 환영하는 마을 사람들이 갖다 놓은 카드와 꽃 그리고 구운 과자 접시가 눈에 들어왔어요. 갑자기 이사 오는 저희들을 맞느라고 이곳 식구들도 바빴대요. 구석구석 청소를 하고, 막내를 위해 아기 침대를 놓고, 그릇도 식구에 맞게 갖추고 찬장과 냉장고에 먹을거리도 채워놓느라고요. 집안 구석구석에서 공동체 식구들의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반나절 동안 짐을 풀고 식구들을 만나러 일하는 곳으로 나갔어요.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경험들, 이제 우리 작은 네 식구에게도 새로운 시작이네요.
 

집에 대한 공동체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 물으셨는데 특별히 거창한 철학은 없어요. 그래도 함께 하는 생각이 있다면 공동체의 삶을 선택할 때 자발적인 가난을 선택했으니 집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가지려고 해요. 그리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내 집이 아니고 잠시 얻어 살고 있는 거니까 잘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전에 살던 너도밤나무 마을 사람들은 식구들이 늘어나기 때문에 집을 한 채 새로 짓고 있어요. 집 설계를 맡은 분에게 물어 봤더니 설계를 할 때 제일 염두에 두는 점은 가족, 그러니까 아이들, 어르신들, 그리고 손님들이 함께 편하게 지내고, 필요할 때 서로 도울 수 있고, 함께 모여 기쁨을 나눌 수 있게 하는 거래요. 집 겉모습은 단순해요. 직사각형의 집 안 네 귀퉁이에 가족들이 머물 수 있는 곳을 마련하고 중간 중간에 혼자 사는 분들의 방을 놓고 함께 쓰는 부엌, 화장실, 목욕실을 만들어요.
 

방 중에서 가장 넓은 곳은 함께 모이는 거실이고요. 거실은 모든 사람들을 환영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하고 사람들이 대부분 잠을 자러 가는 저녁 10시까지는 누구라도 환영이에요. 미리 약속을 할 필요 없이 그냥 “휙”하고 들어오면 돼요. 저도 총각일 때 심심하고, 때로 울적할 때는 마음이 향하는 가족의 집 거실에 들어갔죠. 그때마다 그 집 식구들은 “어서 오세요! 들어와요, 들어와!(Welcome! Come in, come in!)라며 반갑게 맞아줬어요. 그러고는 가장 좋은 자리에 앉으라고 하고 초콜릿이나 차를 내주며 잘 지내는지, 어려움은 없는지 다정하게 물어보죠. 작은 일이지만 아주 큰 힘이 됐어요.
 

아까 이곳으로 이사를 가라는 제안을 들었을 때 시원하게 “예!”라고 답했다고 했지만 언제나 모두 그러는 건 아니에요. 사실 갑자기 집을 옮기는 건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지요. 이건 제 아내에게 들은, 지금은 돌아가신 어떤 할머니 얘기예요. 그 할머니가 95세 되던 해에 공동체에서는 다른 공동체로 옮길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이 할머니는 아주 분명하게 “아니오.”라고 대답했대요. 이유는 아주 간단했어요. “오래 된 나무의 뿌리를 뽑을 수 없다.”는 거지요. 그래서 공동체 식구들은 그러면 어쩔 수 없지만 생각은 다시 해보시라고 했죠. 그러고 얼마 뒤 공동체 청년들이 노래를 하나 불렀는데 그 노래가 할머니의 마음을 움직였대요. 브람스의 노래였는데 노래 말 중에 “이 땅 어디에도 우리가 계속 영원히 살 수 있는 곳은 없다.”는 가사를 듣고 뭔가를 느끼신 거죠. 그래서 할머니는 공동체 식구들에게 미안하다고 말씀하시고 다른 공동체마을로 옮겨 가셨다는 거예요.
 

이 편지를 쓰면서 아내와 얘기를 나눠봤어요. 우리 삶에 집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서로에게 물었죠. 아내는 하우스(house)가 아니라 홈(home)이라고 하는 게 좋겠대요. 둘 다 한국말로는 집이지만 하우스는 건물을 뜻하고, 홈은 사람의 마음이 머무는 곳이래요. 아내는 아무리 좋은 건물 안에 살더라도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싸우고, 마음에 평화가 없다면 마음은 그곳에서 떠나 있는 게 아니냐고 하더군요. 하지만, 집이 사람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분위기를 품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평화와 기쁨을 나누고, 마음의 짐까지 나눌 수 있다면 그게 진짜 집이라는 게 아내의 생각이에요. 그래서 집의 모양이 어떤지는 신경 쓰지 않고 단순하게 살려고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대요.
 

지난 토요일에는 마을의 한 할아버지가 86세 생일을 맞았기 때문에 200명이 넘는 식구들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하며 함께 기쁨을 나눴어요. 이 분이 독일인이기 때문에 식탁에는 집에서 만든 소시지, 감자 샐러드, 그리고 씹는 맛이 일품인 특별한 빵이 나왔지요. 식사를 즐기는 동안 초등학교 악단이 독일 음악을 연주했고, 어떤 형제들은 독일 노래를 부르며 생일 케이크를 할아버지께 가지고 왔어요. 그리고 96세가 되신 조지 할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혼자 나오셔서 노래를 부르셨어요. 피아노 반주를 배경으로 자유로운 음조로 부르시는데 사람들이 아주 좋아해요. 상상해 보세요. 96세 할아버지가 수많은 청중 앞에 꼿꼿이 서서 웃긴 노래를 웃지도 않고 진지하게 노래하는 모습을요. 할아버지가 부른 집에 대한 노래를 전해 드릴게요.

 

내게는 오래된 집이 있네.
함석과 나무로 만든 오래된 집.
지붕이 기울어 땅에 닿을 지경이지만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집.
집에는 흰 머리 위에 은 왕관을 쓴 왕비가 기다리고 있지.
지붕이 기울어 땅에 닿을 지경이지만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집.

 

저도 그런 집에서 사람들과 재미나게 살고 싶어요.

 

영국 로버츠브리지에서 원충연 드림.

↘글을 쓴 원충연 님은 우리나라에 ‘부르더호프 공동체’로 알려져 있는 공동체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시작해 미국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에 흩어져 있는 이들은 예수의 산상 수훈을 삶으로 실천해보려고 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새로 옮겨간 마을 로버츠브리지에서 아내 아일린, 아들 동경이, 이제 막 세상에 나온 둘째 산하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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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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