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크리스마스. 나뿐만 아니라 주위의 이웃과 함께 나누는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나눔’ 이라는 키워드를 인터넷 포털 검색창에 입력해 봅니다. 잊혀졌던 ‘셋 나눔의 희망’이라는 희망을 찾았지요. 그리고 기억의 서랍 속에 담겨 있었던 한 명의 아름다운 농부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4년째 계속 추수가 끝날 때쯤이면 쌀 한 포대씩을 ‘수확 1 퍼센트라는 이름으로 한 자선단체에 기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농사를 좀 짓는데 쌀도 기부할 수 있습니까? 추수가 끝나면 보내 주리라” 이렇게 한 농부의 기부는 시작되었습니다. 추수 전에 이미 자신의 살 한 포대를 나눔을 위해 마련하기로 한 약속을 지금도 묵묵히 지키고 계시지요.

 
아파트 관리원으로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날에 그는 농사일을 합니다. 일 년 수확량은 40킬로그램 기준으로 70~80포대 정도. 매년 한 포대씩을 보내니 수확량의 1퍼센트가 넘는 셈이지요. 그가 나눈 쌀은 노숙자에게 따뜻한 밥으로 제공됩니다. 그는 쌀은 누구나 먹으니 노인이건 굶는 사람이건 누구에게나 보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답니다. 한때 실직자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생활했던 그는 그 누구보다 밥 한 그릇 나누는 소중함을 잊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지만 어려울 때 돕는 게 진정한 도움 아닙니까. 이웃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이 기쁩니다. 나도 잘못되면 실업자가 되고 노숙자가 되는 것이니. ‘남’이라는 생각이 안 듭니다. 그래서 작은 것이나마 함께 나누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이지요”

 
고단한 삶의 흔적인 듯 그의 머리에는 벌써 나이보다 많은 백발이 돋아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웠던 사람이 어려운 사람의 처지를 더 안다”는 그는 어렵게 살아가는 이웃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합니다. “노숙자들에게 직접 땀 흘려 농사지은 쌀로 따뜻한 밥을 꼬박꼬박 먹이고 싶다.” 그가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콩 세 알의 삶, 옛것 속에 담긴 나눔의 행동과 정신을 요즘 세상에 다시 살려내는 것. 그것이 오염되고 병든 이 시대를 이겨내게 하는 힘이 될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어떤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지요. 나눔은 꼭 큰 돈을 기부하는 것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이슬람 교리에 나와있는 무재칠시의 글귀가 떠오릅니다. "나뭇가지마다 찾아드는 햇빛의 자선이 있으며 사람들 사이를 공평하게 해 주는 것 또한 자선입니다. 나뭇가지마다 매일 거기에는 자선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그의 가축을 타도록 돕는 것도 자선이고 또 좋은 말씨도 자선이며 예배하러 가는 한 걸음 한 걸믐도 자선입니다. 길을 안내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콩 세 알의 삶(박노해)

생명농사 지으시는 농부 김영원님은
콩을 심을 때
한 알은 하늘의 새를 위해
또 한 알은 땅속의 벌레들을 위해
나머지 한 알은 사람이 먹기 위해
심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도 만주 들판에는 삼전이 전해오는데
일제 때 쫓겨 들어간 우리 조상님들이
눈보라 속에서 맨손으로 일궈낸 논을 3등분해
하나는 독립운동하는데 바치는 군전으로
또 하나는 아이들 학교 세우는 데 학전으로
나머지 하나는 굶주림을 이겨내는 생전으로
단호히 살아내신 터전이 바로 삼전인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오늘
내가 번 돈
나의 시간
나의 관심
나의 능력
어디에 나눠 쓰며 살고 있는가요

 
지금 나는 콩 세알의 삶인가요
삼전의 뜨거움, 삼전의 푸르름.
셋 나눔의 희망을 살고 있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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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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