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산의 빗물을 활용한 재미난 아이디어가 담긴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실용성을 떠나 아이디어 담긴 따뜻한 시선 때문입니다. 옛날 옛날까지는 아니어도, 우리들의 할머니와 어머니들은 물 한 방울도 참 아껴쓰셨지요. 물도 몇 번을 재사용했지요. 쉽게 버리지 않았습니다. 겨울철 목욕한 물도 바로 버리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뜨거운 물에 작은 생물이 죽을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었지요. 요즘은 우리 사는 풍경은 어떤가요? 너무 많고 너무 많이 쉽게 버리지요.




*이미지출처:  ‘Green Trace’ project by Junjie Zhang.


집이나 회사에, 이런 화분 하나 만들어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마음이 유쾌해 질 것 같습니다. 살아있는 교육이지요. 한 외국 디자이너가 생각해 낸 아이디어 작품을 보면서 <유쾌한 구두쇠들>이라는 책이 떠올랐습니다.


유쾌한 구두쇠들 -절약이 부자를 만들고 절제가  사람을 만든다-
공병우와 열여섯 사람, 석필 1994.

 생선가게 생선을 손으로 주무르고는 집으로 돌아와 그 손을 씻은 물로 찌개를 끓인 며느리. 이를 본 시아버지는 ‘그 손을 물독에 씻었으면 두고두고 먹었을 것’을 하며 며느리를 탓한다. 밥 한 술 떠먹고 반찬 삼아 매달아 놓은 굴비 한 번 쳐다보는 자린고비 이야기의 또 다른 일화다.


자린고비는 풍족하지 못했던 옛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그 전통은 50년대에서 70년대에 걸쳐 힘든 시절을 살아온 어머니 아버지들의 삶의 버팀목이 되었다. <유쾌한 구두쇠들>은 먹고 살기 힘든 어려운 시절을 거뜬히 이겨낸 그 시절 구두쇠들의 이야기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열일곱 사람의 구두쇠들은 저자를 포함해 저자들의 아버지와 스승, 어머니들이다.


아내와 외식할 때 1인분만 시켜 나눠 먹는다는 김집 청소년연맹 총재, 개천에 밥풀 떨어진 게 보이면 그 밥을 주워다 먹게 했다는 위당 정인보 선생, 수박을 다 먹고 나면 허연 껍질을 체를 치고 양념을 해서 나물로 만들어주신 코미디언 서세원씨의 어머니, 엿이 먹고 싶어 참을 수가 없어 얼결에 엿을 하나 사 먹고 난 후 한 달 내내 소금 반찬으로만 밥을 먹었다는 신경정신과 이나미 선생의 아버지.


치장하는 데는 돈을 아껴도 먹는 것만큼은 후해야 한다는 생각이 요즘 알뜰한 젊은 댁들의 일반적인 생각인데 어머니 아버지 시대 어른들은 어느 것 하나도 허튼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먹지 못할 밥을 미리 덜어놓지 않고 반찬을 묻혀 놓으면 불호령이 내려지고(이종대 유한킴벌리 사장의 아버지),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오는 음식상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짠 것 하나 싱거운 것 하나 놓고 김치와 간장 놓으면 그만 족하다고 했다 (위당 정인보 선생).


먹는 음식의 절제는 생명 순환의 원리를 몸소 실천하는 데로 이어진다. “쌀뜨물, 개숫물, 청소하고 나면 나오는 물, 무슨 물이든지 먹을 만하면 돼지를 주는 것은 물론이고 돼지가 안 먹게 생겼더라도 마당에 찍 끼얹는 법이란 없다”며 꼭 거름장에 붓는 (최래옥 한양대교수의 아버지) 일은 평생을 농사지으며 살아온 옛 어른들의 물자조달방법이다. 남의 집에 가서 오줌똥을 못 누게 할 뿐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이 변을 보라고 대문간 옆에다 공동 화장실까지 만들어놓는다. 그것이 집에 거름 주고 가는 것이니까.


입는 것에 대한 절약 정신은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다른 세상 이야기로 들릴지 모른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하루에 한 번씩 옷을 갈아입는 법이 없다. ‘멋 내는 사람은 열흘, 보통사람은 보름, 아주 어려운 사람은 한 달’(‘정참판댁 오첩반상’중에서)을 입었다. 옷을 한 번 빨려면 다 뜯어서 빨았다가 다시 바느질을 해야 하는 처지였으니 당연했으리라. ‘해지면 기워서 입고 덧대서 입고, 소맷부리가 닳으면 조금씩 올려 입어 예복 한 벌로 평생을 지낸’어른도 (프란체스카 리 여사) 있다.


“북에서 피난 내려올 때 돈 대신 짊어지고 내려왔다는 명주 몇 필은 어머니 한복이 되었다가, 우리들의 원피스가 되었다가, 블라우스가 되었다가 마침내는 이불잇이 되곤 했다.”는 오숙희 선생의 회고에서 우리 어머니들의 위대한 살림솜씨와 알뜰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생활용품을 아껴 쓰는 일은 ‘새것’만 찾는 요즘 사람들에겐 좋은 본보기다. ‘성냥 한 개비를 칼로 길게 잘라 두 개비로 나누어 쓴’(김집 청소년연맹 총재) 것에서 나아가 ‘세수한 물로 머리 감고, 머리 감은 물로 세탁하고, 세탁한 물로 걸레 빨고, 걸레 빤 물은 화단에 뿌리는’프란체스카 리 여사 예는 물을 틀어놓고 이 닦고 목욕하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물자절약의 백미는 최현배 선생의 종이절약이다. “누런 색깔의 공책에 처음에는 연필로 수학문제를 풀고, 그 다음에는 잉크 펜으로 글씨 쓰고, 그 위에 붓으로 쓰고야 그 종이를 버렸다.”(여덟달 만에 건네주신 보약 중에서)‘유쾌한 구두쇠들’의 절약·절제주의가 20세기 어려운 시절을 견뎌온 어른들의 생활철학이라면, 21세기는 물자와 쓰레기가 넘쳐나서 벌어지는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무한 소비주의가 빚어낸 에너지 고갈 문제를 풀어내는 신 구두쇠 철학이 등장한다. ‘스위치 자린고비’, ‘에너지 구두쇠’라는 신조어도 나타났다. 신 구두쇠의 기본은 절전이다. 가전제품을 멀티 탭에 연결하는 것은 기본이고, 열소비가 많은 백열등을 고효율 삼파장 전등으로 교체한다. 휴대전화 충전기는 초록불이 들어오면 전원을 끄고, 전기밥솥은 먹을 만큼만 밥을 지어 보온기능을 아예 쓰지 않는다. 작은 분량의 빨래는 그냥 손빨래로 처리한다. 이렇게만 해도 전기요금이 절반으로 준다. 3, 4년 전부터 시작된 내복 입기 운동은 에너지 절약운동의 대표적인 예다. 겨울에 내복을 입으면 체온을 3도 이상 올릴 수 있는 에너지 절감효과는 생각보다 대단하다. 한 사람이 1도 올리는 데 필요한 에너지 소비량만 줄여도 전국에서 4천 6백억원을 절약할 수 있다.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못 쓰게 될 때, 새로 사야 해”하는 엄마의 말을 이해 못 하는 아이들. “춥게 지내면 골병들어”하며 한 겨울 조금 넉넉히 불을 때는 게 별 일 아니라는 사람들. 넘쳐나는 종이에 새 종이 쓰는 것에 별 거리낌이 없는 젊은이들이 있다.


승용차 대신 택시나 버스를 타고, 유행 지난 오래된 옷을 입고, 외식대신 집에서 밥해먹는 사람들을 존경하기보다는 “있는 사람이 더 지독해”하며 빈정거리거나, “저렇게 궁색하게 굴면 맨날 저 모양 저 꼴로 산다던데”하며 혀를 차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밥 지을 때 쌀 한 줌 덜어놓던 ‘좀도리 쌀’ 정신은 예나 지금이나 최고의 세상사는 지혜고 재산불리기 전략이다. 언젠가 다시 닥칠지도 모르는 어려운 시기를 대비해 무엇이든 갈무리를 해두어야 안심이 되는 어머니의 증세를 여성학자 오숙희 선생은 ‘피난열차 신드롬’이라 부른다 (‘천하무적 면바지의 추억’ 중에서). 하지만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을 대신해 시조창 인간문화제 김월하 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어려운 시절을 겪은 사람들이 고생고생 그 생고생한 시절을 되뇌며 ‘낱알 귀한 줄 알아라, 돈 귀한 줄 알아라’하고 수백 번 이야기해도 그 일을 겪지 않은 사람들은 그 아픔을 잘 모를 터이다.”

 



새해에는 빗물 한 방울도 의미있게 쓰는 유쾌판 구두쇠가 되어보면 어떨까요? 거창한 구호보다 생활 속 실천이 참 중요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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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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