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여행

|함수연| 만남 2013. 7. 23. 17:15

 

국수가 먹고 싶다

 

이상국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서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음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 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한 모금의 따뜻한 국물 같은 시다.

하루하루 일상을 살다보면 불현듯 끈끈한 무언가를 그리워하게 되는데

이 시에서처럼 마음이 허할 때나 삶이 허기질 때,

나도 문득문득 국수가 생각난다.

 

요즘 같은 장마철에는 국수가 더욱 땡긴다.

우리 집 식구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매콤달콤한 비빔국수인데

여름에는 콩국수도 자주 해먹는다.

예전에는 콩을 삶아 믹서기에 갈고 체에 내리는 일이 여간 번거롭지 않았는데

지금은 여러 곳에서 콩 국물을 만들어서 파니까 언제라도 손쉽게 해 먹을 수가 있다.

 

올 봄 남편과 둘이 3박4일 일정으로 남도 기행을 떠났었다.

사실 처음부터 국수만 먹겠다고 작정한 것은 아니었는데

어찌하다보니 진짜 국수여행이 되고 말았다.

 

맨 처음 들른 곳은 오천 항에 있는 바지락 칼국수 집.

세트 메뉴를 시키니 6000원에 바지락 칼국수와 비빔칼국수가 나란히 등장하는데

양이 꽤나 푸짐했다.

가격 대비 맛도 괜찮았다.

게다가 무한리필을 해준다니 식당 안은 그야말로 문전성시!

종업원들은 뛰다시피 하며 음식을 날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호로록 호로록 얼른 먹고

기다리는 다음 손님들을 위해 우리는 재빨리 일어섰다.

 

식사를 마쳤으면 얼른 일어나 가주는 것,

프로페셔널한 손님의 기본 아니겠는가.

들어갈 때 입구에 신발이 마구 뒤엉켜 있어서 혹시나 신발이 바뀌지는 않을까

은근 걱정을 했으나 다행히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날은 전남 담양의 메타세콰이어 숲길을 걷고 나서

그 유명한 ‘담양 국수거리’로 갔다.

50년 전 죽세공품 시장에서 국수를 팔던 진우네 집을 시작으로

관방제림을 따라 열 곳이 넘는 국숫집이 모여 있었다.

이곳 역시 원조 격인 진우네 집만 줄을 서서 기다릴 만큼 북적거렸고

다른 집들은 매우 한산했다.

 

진우 엄마인지 할머니인지는 모르겠으나 주인아주머니가

줄서기를 잘 하라며 손님들에게 엄포를 놓는다.

그 자신만만함이 약간 거북스럽기도 했지만 우리 역시 군소리 없이 차례를 기다렸다.

 

이것도 원조 프리미엄인가?

명성에 비해서 맛은 그저 그랬다.

특이한 건 잔치국수를 소면이 아닌 중면으로 삶아서 양은그릇에 담아주었다.

멸치 국수에 삶은 달걀을 곁들여서 먹는 게 특이했다.

삶은 달걀은 천원에 3개, 국수 값까지 합쳐도 한 사람 당 오천 원이면 충분했다.

 

며칠 전 KBS의 인기프로 ‘한국인의 밥상’에서 전국의 소문난 국숫집을 찾아다녔는데

이 담양 국수거리도 소개가 되었다.

최불암 씨가 우리가 갔던 바로 그 진우네 식당에서

손님들과 어울려 국수를 먹는 장면이 나왔다.

 

어찌나 반가운지... 국수는 잘난 음식이 아니라 가난하고 소박하다.

각자 양푼 하나씩 들고 가게 앞 평상에 둘러앉아

국수를 먹으니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금세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었다.

그러니 주머니 가난한 사람들에게 국수는 위안의 음식이자 교감의 음식이다.

 

어쩌면 국수 국물의 멸치 냄새는 어린 시절 고향의 냄새와도 같다.

따라서 국수를 먹는 것은 고향에 가는 것,

 옛 고향집에서 어머니의 손맛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국수로 점심을 해결했으니 저녁은 조금 거하게 먹고 싶었다.

담양의 명물인 떡갈비를 먹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네비게이션이 길을 잘못 안내하는 바람에 전혀 다른 곳을 찾아갔다.

 

차를 돌려 다시 시도했지만 어디 숨었는지

우리가 가려는 식당은 좀체 안 나타났다.

나는 그냥 아무거나 먹자 했지만 남편은 기필코 떡갈비를 먹겠단다.

왔다갔다 그러기를 몇 차례, 이렇게 거리에서 헤매다보니 벌써 날이 어두워졌다.

 

봄이라고는 해도 아직 코끝이 매운 날씨였다.

그 무엇이라도 따뜻한 음식이 먹고 싶었다.

일단 숙소로 차를 돌렸다.

모텔 주차장으로 들어서는데 바로 앞에 ‘봉순 네 팥칼국수집’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날은 어둡고 배는 고프고, 빨리 허기를 해결해야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입구에는 <100% 국산 팥이 아니면 바로 환불해드리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써져 있었다.

국산 팥으로 만들었다니 왠지 믿음이 갔다.

먹어보니 새알이 듬뿍 들어간 게 팥 국물이 아주 진했다.

내 친구 이름과 같은 봉순이라는 상호도 정겨웠다.

 

서울로 돌아오는 마지막 날은 전북 임실에 있는 ‘행운집’을 찾았다.

이 집은 이번 여행에서 꼭 들르기로 마음먹었던 유일한 곳이었다.

강진읍에서도 18km 떨어진 강진 시장 내에 위치한 허름한 국숫집.

조선일보 오태진 기자가 쓴 칼럼을 보면

행운집에서 국수를 시키면 머리고기 한 접시를 덤으로 준다고 했다.

국수만 파는 집에서 웬 머리 고기?

나는 그 사연이 궁금해서 꼭 가보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가 신문 보고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예순아홉의 주인할머니는 친절하게 맞아 주었다.

끼니때가 지나서인지 손님은 하나도 없었다.

예전에 술 찾는 장사꾼이 많아서 공짜 술안주로 돼지 머리고기를 냈던 것이데,

국수 손님들이 우리는 왜 안주냐고 해서 국수 찬이 돼버렸다고 한다.

 

4000원짜리 국수 두 그릇을 주문한 우리에게도

역시 삶은 머리고기가 제공 되었으나 기름기가 너무 많아서 먹기가 거북했다.

여러 점을 남겼다.

할머니는 이 아까운 것을 왜 남겼냐며 당신이 맛있게 다 드셨다.

약간 미안했다.

 

곧 이어 김치를 송송 썰어 고명으로 얹은 멸치국수가 양은그릇에 담겨 나왔다.

국물 빛이 보기에는 맹탕 같았는데 한 술 떠보니 뜻밖에도 진국이었다.

면발은 굵으면서도 부드럽고 탱탱한 탄력이 느껴졌다.

 

우리 외에는 손님이 없던 터라 할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자기네 국수는 백양국수라는 읍내 가내공장에서 받아다 쓰는

자연 건조 국수여서 다른 국숫집과는 면발부터 다르단다.

그리고 김치를 비롯한 채소들도 직접 밭을 일궈 키운 것들로

손님상에 낸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30년 국수 할머니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증명이라도 하듯 이 행운집 사연이 소개된 조선일보 기사가

유리 액자에 담겨져 한쪽 벽에 얌전히 걸려 있었다.

내가 스크랩해서 가져 간 바로 그 신문기사였다.

 

덜거덕거리는 기계에서 뽑아낸 면을 천 말리듯

 대나무에 죽 걸어놓은 하얀 국수들.

우리 어렸을 적 동네에서 흔히 보던 국수 가게 풍경이었다.

공장 국수가 아닌 옛날 수제국수를 삶아서 주는 이 행운집 국수는

추억의 국수로 냄새, 빛깔, 연륜, 기대, 인생관, 기타 등등 수많은 함수를

직감적으로 풀어낸 맛의 결정체였다.

 

 

 

 

할머니에게 물었다.

혹시 마른 국수 한 다발 팔 수 없냐고,

원래는 안 파는데 7000원 주고 하나 가져가란다.

야호, 행운이다!

 

삼일 간의 여정에서 국수만 네 끼,

목포 항 편의점에서 사다먹은 라면까지 합치면 도합 다섯 끼다.

하여 이번 남도 기행이 어쩌다가 국수 여행이 되어버렸지만

아무래도 국수의 본고장은 강원도가 아니겠는가.

춘천 막국수를 비롯해서 횡계의 초계국수, 정선의 콧등치기국수,

원통의 올갱이국수 속초의 물회국수까지.

 

그러고 보니 내가 진짜 국수 광(狂)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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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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