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수연| 만남'에 해당되는 글 33건

  1. 2015.03.16 옛날이야기가 좋아요
  2. 2015.02.16 손녀와 샌드위치
  3. 2014.12.29 서귀포의 깊고 푸른 밤
  4. 2014.10.29 너희들은 각각의 아름다운 꽃이란다
  5. 2014.10.23 손녀사랑
  6. 2014.08.18 피서유감
  7. 2014.06.30 꽃들은 어디로 갔나
  8. 2014.05.22 꿈, 꿈, 꿈
  9. 2014.04.28 4시간의 행복
  10. 2014.03.19 매몰 비용

지우는 엄마가 동생을 낳고 조리원에 가 있는 동안 3주에 걸쳐 주말마다 우리 집에 왔다. 3주 차 외가에서 맞는 일박이일, 낮에는 그런대로 잘 먹고 잘 노는데 항상 밤이 문제였다. 오늘은 낮에 할아버지와 손잡고 마트에도 다녀오고 옥상에서 술래잡기도 하면서 바깥놀이를 많이 하여 낮잠도 건너뛰게 되었다. 그래, 몸이 피곤하니까 밤에는 틀림없이 잘 잘 거야... 회심의 미소를 날리며 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아이를 데리고 침대에 누웠다.

 

 

그러나 내 기대와는 달리 아이는 여러 차례 거실로 뛰쳐나갔다. 목이 마르다느니, 배가 고프다느니 하면서 말이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할아버지와 합세하여 겨우겨우 재웠는데, 깊은 잠을 못 이루고 새벽 두시쯤 깨서는 엄마가 보고 싶다며 징징댄다. 처음에는 숨죽여 훌쩍이다가 나중에는 소리 높여 서럽게 운다. 참으로 난감하다. 지금은 깜깜해서 안 되고 날이 밝으면 데려다 준다고 타일러도 한번 터진 울음은 그칠 줄 몰랐다.

 

 

쉽게 잠자기는 글렀고 그렇다고 한밤중에 딱히 할 게 없어 우는 아이를 꼭 끌어안고 옛날이야기를 들려줬다. 예전에 우리 두 딸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들, <호랑이와 곶감> <선녀와 나무꾼> <할머니 손은 약손> 두 세대가 흐르는 동안 꽁꽁 묶어두었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헤쳤다. 내 가슴 속에 안긴 아이는 조금씩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더니 울음을 그쳤다. 자꾸자꾸 해달란다. 귀를 쫑긋 세워 진지하게 들어주는 아이가 귀엽고 대견해서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30년 만에 되살아나는 옛이야기에 우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둘 다 이야기 삼매경에 빠졌다.

 

 

“지우는 책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옛날이야기도 좋아하는구나?”

“응!”

“그런데 지우야, 할머니가 너무 졸립다. 내일 또 해주면 안 될까?”

“알았어. 나도 잘 거야!”

 

 

어라, 이렇게 쿨할 수가? 옛날이야기가 수면제 역할을 톡톡히 했네. 어찌 보면 옛날이야기는 모녀간이 아닌 조손간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옛날 옛적에로 시작해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옛날이야기는, 사람은 물론 동물 식물 심지어 똥바가지까지도 주인공이 되는 늘 경이롭고 아름다운 세계였다.

어렸을 적, 지금처럼 책이 흔하지 않던 시절에 우리는 할머니 무릎에 앉아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민초들의 삶을 입과 입으로 계승 시킨 이른바 구전(口傳)문학. 신비로운 판타지 세상을 꿈꾸며 듣기 능력은 물론 풍부한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참으로 귀한 시간이었다. 안정적 애착형성은 평생을 살아가는 힘이라던데 어쩌면 나이 먹은 사람들의 안정된 정서는 그 옛날 할머니의 무릎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그나저나 내일은 지우에게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준담? 민담책이라도 꺼내서 읽어봐야겠다. 이렇듯 아이는 나에게 늘 거룩한 숙제(?)를 안겨준다.

 

 

요즘 지우가 즐겨 쓰는 말이 있다.

“나, 지금 바뻐! 피곤해!”

“배 고프다메? 아프다메?”

 

 

워킹맘인 제 엄마의 말투를 흉내 내며 배운 것 같다. 원래 말이란 주인이 없이 모방하고, 공유되기 마련이어서 어른이 즐겨 쓰는 어휘나 말투를 아이들은 그대로 따라 하기 마련이다. 어느 날은 느닷없이 “할머니, 왜 갑자기 슬픈 얼굴을 하고 그래?” 하면서 자못 걱정스런 표정으로 묻는다. 나는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은데 내 얼굴에서 무슨 낌새를 알아 차렸는지, 아이는 상대의 표정이나 감정까지도 읽어낸 것이다.

 

 

가끔씩 아이가 하는 말을 듣노라면 꼭 무엇에 홀린 듯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아이의 어록(語錄)이라도 만들어 두고 싶다. 어차피, 절대로, 도대체 같은 부사어는 물론 그런데, 그래서, 왜냐하면, 같은 접속사도 적재적소에 잘 쓴다. 도대체 그 많은 말들을 하고 싶어서 얼마나 참았을까... 공수표도 자주 남발한다.

 

“할머니, 문제없어! 지우가 다 해줄게.”

애교가 넘치고 재치 만점인 이런 말은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다. 그게 비록 공수표일지라도 그런 수표라면 언제든지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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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할머니, 지우아빠 없으니까 우리 집에 놀러 와요.

 지우가 맛있는 샌드위치 만들어 줄게요.”

 

나른한 일요일 오후, 손녀가 전화를 했다.

“지우가 엄마하고 할머니 집으로 오면 안 될까?”

“우린 차도 없어요.”

 

아빠가 차를 갖고 나가서 올 수가 없다며 난데없이 차 타령을 한다.

오늘도 모녀가 짝짜궁이 되어 그럴싸한 콩트 한 편 엮어서 나를 오라고 유혹한다.

모처럼 맞는 나만의 달콤한 휴식을 반납해야 되나? 잠시 고민했다.

아이는 전화 통화할 때마다 할머니가 보고 싶다며 울먹인다.

 

영상 통화하며 눈물 그렁그렁한 얼굴을 보면

그 애처러움에 나도 목이 메곤 한다.

그러면 만사 제쳐놓고 달려갈 수밖에 없다.

이날은 눈물 대신 샌드위치로 나를 꼬드겼다.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나서니 남편도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따라 나선다.

딸네 집까지는 불과 20분 남짓, 애인 만나러 가는 길만큼 마음이 설렌다.

도착하니 식탁에는 샌드위치 재료가 한가득.

감자와 달걀은 미리 삶아 놓았고,

오이와 당근은 깨끗이 씻겨져 도마 위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아이와 함께 썰었다.

단단한 당근은 내가 썰고 아이는 케잌 자르는 칼로 오이를 썰었다.

이어 삶은 달걀과 감자를 으깨고 얇게 썬 오이와 당근을 넣어 마요네즈에 버무렸다.

마지막으로 모닝빵에 버무린 재료를 집어넣으니 미니 샌드위치 완성!

이 모든 과정에 아이의 고사리 손이 보태졌다.

 

완성된 빵을 지우가 차례차례 돌린다.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으흠, 맛있다! 지우가 만든 거 겁나게 맛있다.”

“김지우 표 샌드위치가 짱이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칭찬을 하자 아이는 신바람이 났다.

이른 바 ‘헐리우드 액션’까지 동원해가며 기분을 맞춰주니 더없이 행복해한다.

의기양양한 저 표정!

 

“지우가 만든 샌드위치 진짜 맛있지요?”

네 살배기 손녀의 말 한 마디에 웃음꽃이 만발한다.

어쩌면 이런 오붓한 시간은 내가 꿈꾸어오던 안온한 노년의 한 장면이 아니던가,

그런데 저 작은 머릿속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어서 이 할미를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드는지...

손녀와 함께 하는 시간, 이 작고 조용한 평화를 오래도록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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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두 번째 주말, 제주도 강의를 끝내고 서귀포에 사는 친구 집을 찾았다.

처음 제주육아종합보육센터에서 강의 의뢰가 왔을 때 나는 무조건 OK를 외쳤다.

대상이 누구인지, 강의 주제가 뭔지, 강사료가 얼마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오로지 친구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말하자면 염불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이 컸던 것이다.

 

 

그러나 제주 가는 길은 녹록치 않았다.

처음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김포공항으로 가는 도중에 받은 문자 한 통이 모든 걸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다.

‘항공기 연결로 제주 출발 시간이 20분 지연되었습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전날도 아시아나 항공에서 같은 내용의 문자를 받아 비행시간이 이미 25분이나 늦춰졌는데

또 다시 20분 지연이라니, 그것도 탑승 두어 시간 전에

문자 메시지 하나 달랑 보내면 어쩌란 말인지 몹시 당황스러웠다.

 

 

강의는 오후시간이지만 이렇게 되면 점심도 굶어야 하고 친구와의 시간 약속도 미뤄야 하고,

난관이 많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제주공항에서 나를 픽업하기로 한 사람과 연락이 안 되는 것이었다.

애가 탔다.

도대체 항공사들이 왜 이 모양인지, 혹시 며칠 전에 벌어진 ‘땅콩 회항’ 사건 여파 때문은 아닐까...

 

 

여러 사람을 거쳐 보육센터 대표와 뒤늦게 연락은 닿았지만

비행기는 애초 연기한 시간보다도 15분을 더 늦게 착륙했다.

공항에서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던 그분은 미처 인사할 겨를도 없이

싸늘하게 식은 레몬차 한 잔을 내 손에 쥐어주고는 강의 장소로 황급히 차를 몰았다.

 

 

내 잘못은 아니지만 행사 주관자로서 그 역시 마음 졸였을 생각을 하니 너무나 미안했다.

다행히 강의 10분 전에 도착.

담당자는 날보고 샌드위치라도 먹고 시작하라고 했지만 도저히 먹을 기분이 아니었다.

차라리 배고픈 게 낫지 그러다 체하기라도 하면 더 큰일이다.

 

 

물 한 잔을 마시고 넓디넓은 제주 박물관 강의실에 들어서니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이를 어찌 극복할 수 있을까?’ 마라토너들이 경험한다는 극치감,

러너즈 하이(runner's high)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조금 두려웠다.

 

 

참가자들은 예비부모 및 영유아 자녀를 둔 젊은 부부들이라고 들었는데 둘러보니

그들이 데리고 온 아기들도 제법 많았다.

혹시 아기들이 중간에 울기라도 어쩌지,

또 괜한 걱정이 앞섰으나 중간에 딱 한 사람만이 우는 아기를 안고 나갔을 뿐

두 시간의 강의는 큰 혼란 없이 진행되었다.

그래도 그동안에 쌓은 강의 경험이 헛되진 않았나 보다.

 

 

처음의 걱정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모든 과정을 끝마쳤을 때에는

시원함과 동시에 마약 같은 아드레날린이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고마우면서도 마음이 짠했다.

 

 

밥벌이와 자아실현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늘 고군분투하는 삶.

이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 피드백 따위는 깨끗이 잊어버리자.

어차피 만인을 만족 시킬 수 없다는 게 강사의 숙명인데

어찌 매순간 희열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나만의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찰나도 가끔씩은 있었으리라.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갑자기 배고픔이 밀려왔다.

아침 9시에 집을 나서서 오후 4시까지 먹은 거라곤 기내에서 준 토마토 주스 한잔과 강의실에서 마신 생수가 전부였다. 강의 후 주최 측에서 대접해준 흑돼지 삼겹살을 맛있게 먹고 서둘러 친구네 집으로 달려갔다.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 바로 옆집,

친구네 집 대문을 나서니 미술관 앞뜰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고

공원은 한겨울인데도 동백꽃을 비롯한 곱고 붉은 꽃들이 저마다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서울은 한파주의보까지 내려졌는데 서귀포는 완전 봄날,

친구네 정원에도 상추와 배추, 대파 같은 채소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지은 지 40년이 넘었다는 친구네 집은 고풍스러우면서도 깔끔했는데

동네에서는 워낙 유명한 집이어서 집주인이 바뀐 뒤에도 여전히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대지 200평의 너른 집은, 베란다에 서면 푸른 바다가 보이고

집 위아래 층이 전부 튼튼한 목재로 되어있어서 자연친화적 요소들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요양 목적으로 내려간 친구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집이었다.

 

 

뜻밖에 찾아온 병마, 남부러울 것 없이 잘 살아오던 친구에게 그것은 불현듯 닥친 인생의 칼바람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친구 부부는 지금 행운을 얻었다. 건강을 되찾고 바닷가 근처에 아름다운 집을 소유하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영접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뒤늦게 인생의 보너스를 얻은 것 같았다.

하지만 세상에 준비되지 않은 행운은 없다고 했다.

 

 

길바닥의 동전도 걷지 않으면 주울 수 없듯이 부부는 오늘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그동안 선하게 살았기에 뜻하지 않은 행운을 만났다고 나는 생각한다.

남편과 둘이서 최소한의 살림만으로 단순하게 꾸려가는 삶!

하룻밤 자면서 그의 집이 숲 같다는 생각을 했다.

 

 

 

 

 

따뜻하고 상쾌하고 고요한...

 마당에는 열대림 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거실에는 하루 종일 햇살이 가득하여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리쬐니 보일러 안 켜도 되고, 치유의 공간으로는 최적이었다.

거실에 앉아보니 어느 시인의 말처럼 하늘에서 해가 내려 알을 슬어 놓은 듯 햇빛 알갱이가 다 보였다.

서귀포로 이사한지 일 년 남짓, 이제 몸도 회복되고 고향만큼 정이 깊어져서

그대로 눌러앉고 싶다는 걸 보니 친구는 그새 제주 사랑에 흠뻑 빠진 듯했다.

몸 아픈 아내를 대신하여 온전히 주부가 되기로 작정한 남편도 당연히 찬성이란다.

 

 

이틀 동안 친구 남편이 해준 밥을 먹으며 황송했다.

밥 짓는 솜씨가 프로급이라고 말했더니 쌀이 좋아서 그런 거라며 겸손해했지만

정말로 그가 차려준 밥상은 매 끼니마다 맛과 영양 모두 흡족한 만찬이었다.

정리정돈이 완벽한 남편의 살림솜씨는 주방뿐만 아니라 집안 곳곳에서도 빛이 났다.

사업가였던 그는 아마 전생에 주부로 태어나지 않았나 싶었다.

 

 

아내의 병이 다 나아도 자기는 평생 머슴으로 살 거라며 호탕하게 웃어보이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친구 부부는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재미있게 만들어가며 신혼처럼 살고 있었다.

밤늦도록 식탁에서 주고받던 우리들의 수다는

이층 방으로 옮겨져 새벽 4시까지 이어졌고 눈물겹도록 정 깊은 서귀포의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쌓인 회포를 풀기에 하룻밤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친구는 사나흘 더 머물다 가라고 했지만

나는 다음 일정이 잡혀 있어서 하룻밤 만리장성 쌓는 것으로 끝내야만 했다.

 

 

 

 

이튿날 아침 친구가 다니는 교회에 가서 주일 예배를 보고

새롭게 조성된 이중섭 문화의 거리 탐방에 나섰다.

크고 작은 공방들이 즐비한 게 서울의 인사동을 연상케 했다.

또한 크로아티아 여행길에서 만난 아기자기한 골목길 가게들과도 많이 닮아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문화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으면 어느 나라나 다 분위기가 비슷비슷했다.

 

 

그런데 우리가 들른 첫 번째 가게에서 뜻밖의 인물을 만났다.

‘무달구릇’이라는 필명을 가진 50대 남자는 시인이면서 캘리그라피(손글씨)작가였다.

강동구 명일동에서 살다가 제주 섬에 상륙한지 1년 되었다는데

한 눈에도 그는 서울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현재 강동구에 살고 있고, 친구도 강동구 성내동에서 오래 살았다고 하니

그는 헤어졌던 벗이라도 만난 듯 아주 반가워했다.

우리에게 커피를 타주며 저녁에 만나 막걸리라도 한 잔 하자며 살갑게 군다.

서울 생활 30년 동안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일방통행에 염증을 느껴

무식하고 멍하게 살기 위해 제주살이를 택했다던가.

앞으로의 꿈은 김영갑 사진작가처럼 제주에서 자기 갤러리를 운영하는 거라는 말을 듣고

나는 친구에게 ‘앞으로 이 사람을 잘 사귀어 놓으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여행 중 여러 부류의 사람을 만나며 세상에는 다양한 방식의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난 진작에 알았다.

인생은 결코 자기계발서 한 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런데도 과거의 관습이나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용기 부족일까,

아님 결단력이 없어서 일까,

나는 늘 생각으로만 그치고 말았는데 제주에서 제 2의 인생을 놀멍 쉬멍 빈둥거리면서(?) 살고 있는

친구와 시인이 몹시 부러웠다.

 

 

 거기서는 몸도 마음도, 얽히고설킨 시름까지도 다 내려놓고 살 수 있을 것 같았기에.

글쎄, 결심하기까지가 어렵지 마음 하나만 바꾸면 생활 터전을 옮기는 것도 그리 힘든 일은 아닐 것 같은데.

나는 아직도 집착에서 못 벗어난 탓일까?

 

 

오후에 서귀포 5일장 구경을 끝으로 아쉬운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빠듯한 일정에 맞춰 쏘다니긴 했어도 휴식의 참맛을 느낀 무척 알찬 시간이었다.

떠나올 때 친구가 나를 껴안으며 속삭였다.

“숙식 제공은 무한 책임질 테니 아무런 약속 없이 오고 싶을 땐 언제든지 와. 기다리고 있을게!”

그래 고맙다 친구야,

그리움이 쌓이고 에너지가 딸리면 첫눈처럼 소리 없이 찾아가마...

 

 

 

 

공항으로 돌아오는 길엔 차가운 겨울비가 한 차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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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 세 명을 데리고 일박이일 워크숍을 다녀왔다.

초등학교 때 내게 논술수업을 받은 학생들이다.

 한때 글쓰기 제자였던 아이들을 5년 만에 다시 보니 너무 많이 변해서 하마터면 몰라볼 뻔 했다.

 체격은 말할 것도 없고 얼굴도 완전 딴 판.

오동통하고 귀엽던 얼굴은 사라지고 다들 대학생 같은 포스를 풍겼다.

 

 

 

 출처: 네이버 쉽

 

 

우리가 간 곳은 경기도 남양주의 한 농원이었는데,

만오천 평 너른 땅 중심에 배밭이 있었고 캠핑장과 원두막까지 잘 갖추어져 있어서

소규모 워크숍 장소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아이들은 농장에 들어서자마자 함성을 질렀다.

 

 

꺅

 

 

“와, 선생님! 여기 되게 멋지네요?”

“근데 선생님은 여길 어떻게 아셨어요?”

“도대체 여긴 없는 게 없잖아?”

내가 미처 대답할 겨를도 없이 매우 원초적인 질문들을 속사포처럼 쏘아댄다.

농원에 오는 차 안에서는 각자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며

과묵했던 녀석들의 얼굴에 갑자기 생기가 돈다.

날씨마저 참 좋다.

너무 좋아 탈이다.

 

 

안채에 짐을 풀고 나서 본격적인 농원 산책에 나섰다.

하늘은 높푸르고 주위는 고요했다.

지천으로 핀 쑥부쟁이와 채마밭 가득 푸른 채소가 싱그러웠다.

어디선가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건조하게 들렸던 그 울음소리조차도 평화롭고 유쾌했다.

산책로에서 웃고 떠들며 종달새마냥 가벼워진 아이들의 표정을 보니

초롱초롱 빛났던 초등학교 때의 눈빛이 떠올랐다.

 

 

신나2

 

 

야외로 데리고 나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입시공부에 찌들려 잔뜩 웅크렸던 열일곱 살의 아이들과

환갑을 넘겨 반백인 나 사이에는 반세기나 되는 시간의 벽이 가로막혀 있었지만

이날만큼은 세대차이 따위는 전혀 없었다.

우린 수학여행 온 학생들처럼 함께 들떠있었다.

마치 코바늘로 뜨개질하듯 추억의 앨범을 다시 만들기로 하고 그냥 즐기기로 했다.

 

 

한가한 오후 시간, 주인 없는 농원을 거닐며

너희들이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어냐고 물었다.

듣고 보니 초등학교 때의 장래희망이 다들 바뀌었다.

 

 

 


시 암송이 취미였고 국어교사가 꿈이라던 효진이는

광고 카피라이터로 진로를 정했다고 했다.

그래서 대학도 언론홍보학과를 갈 것이며

졸업 후 제일기획에 입사하여 유능한 카피라이터가 되는 게 장기 목표란다.

꽤 구체적이다.

1학기말 고사에서 문과 전교 3등을 했는데

2학기 때는 문과 1등을 하는 게 단기 목표라며

두 남학생들이 못 듣게 내게만 살짝 알려주었다.

 

 

순간 긴 머리를 쓸어 넘기며 수줍게 자신의 꿈 이야기를 펼치는 효진이가

어찌나 듬직한지 와락 껴안고 뽀뽀라도 해주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보아온 효진이는 자기주도 학습이 잘 되는 아이였다.

또래 아이들이 학원이나 과외에 치어 힘들어 할 때,

아이는 스스로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매우 즐겼다.

그래서 본인이 기쁜 일이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스승의 날 같은 때에 내게 자주 편지를 보내며 자기표현을 하곤 했다.

 

 

 


밥 먹는 것보다 축구를 더 좋아했던 성원이는

일찌감치 축구선수가 되겠다고 축구부가 있는 강남의 한 중학교로 진학을 했다.

그런데 중학교 3년, 고등학교 1학년까지 만 4년간 학교 대표선수로 뛰던 그 아이가

올봄에 돌연 축구를 포기하고 집 앞 인문계고등학교로 전학을 했다.

 

 

축구를 너무나 사랑했고,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서

일반학교와 축구부가 있는 학교를 사이에 두고

부모님과 갈등을 빚었던 사건을 익히 알고 있기에

성원이의 전학 소식을 듣고 나는 마음이 몹시 아팠다.

 

 

얼마나 어렵게 선택한 길인데 축구를 접었다니?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축구는 이제 끝,

중학교 가서는 공부에만 전념하라는 부모님의 통고를 받고

아이는 일주일 간 식음을 전폐하고 울기만 했다.

 

 

 그때, 축구를 그만 시키겠다는 성원이부모님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성원이에게 축구를 못하게 하는 건

그 아이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는 거나 마찬가지다.

길이 아니라면 언제라도 중단하게 될 터이니

제발 물리적으로 끊지는 말아달라고 간청했다.

 

 

이번 워크숍을 기획한 것도 내가 아끼는 제자들과

오랜만에 만나 추억의 시간을 갖겠다는 욕구도 있었지만

실은 성원이를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토록 좋아하던 축구를 못하게 되었으니 녀석의 상심이 얼마나 클까?’

 

 

하지만 기우였다.

만나보니 아이는 생각보다 밝고 명랑했다.

앞으로 축구는 취미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고,

꼭 축구만이 아닌 또 다른 길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노라고.

우선 체육교육과에 진학해서 체육선생님이 되겠단다.

그동안 운동하느라고 소홀했던 공부가 다소 부담스럽긴 하지만

남은 일 년 반 열심히 해서 꼭 해내겠으니 선생님도 응원해달라고 했다.

 ‘아무렴! 너의 그 승부근성이 어디 가겠니. 넌 틀림없이 해 낼 거야!’

나는 성원이 곁으로 다가가서 말없이 등을 토닥여주었다.

 

 

 


세 아이들 중에 가장 많이 달라진 지호는 정말로 몰라볼 뻔했다.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동글동글 귀엽던 얼굴은 살이 빠져 완전 갸름형으로 바뀌었고

187센티나 되는 키에 남다른 패션 감각까지,

소위 말하는 훈남으로 변신해 있었다.

남성 모델 같았다.

학교에서는 친구들이 소지섭이라고 부른단다.

내가 보기에는 탤런트 소지섭보다 지호가 훨씬 더 잘 생겼다.

쉬는 시간이면 여학생들이 그를 보러 몰려온다니

공부가 제대로 될 리가 없을 것 같다.

우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머리와 얼굴에 끊임없이 손이 갔다.

 

 

지호는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못했단다.

초등학교 때는 장래희망이 컴퓨터 프로그래머라고 했든가.

일전에 지호어머니를 만났을 때,

나는 아이가 남다른 체격과 외모를 가졌으니 탤런트나 모델을 시키면 어떠냐고 말했다.

아마 나 말고도 여러 사람이 그런 권유를 하였나 보다.

 

 

왜 아니냐며 고등학교 2학년인데도

여전히 공부보다는 외모에 신경을 쓰고 있으니

고심 끝에 그쪽 방면의 학원이라도 보내주려고 했단다.

그러나 본인은 끝까지 공부해서 대학을 가겠다고 하면서도

공부는 뒷전이니 부모님이 심히 답답할 수밖에.

지호는 초등학교 때부터 호감 가는 외모에 공부도 잘해

줄곧 임원을 했고 예의도 바른 아이였다.

누가 봐도 인기 만점이었는데 외모가 워낙 출중하다보니

아무래도 공부는 우선순위에서 밀렸나보다.

 

 

이날, 걱정 많은 지호어머니를 대신하여

나는 지호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지호야, 너는 공부를 왜 한다고 생각하니?”

그런데 지호가 아닌 성원이가 잽싸게 말했다.

 “공부를 잘하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선택의 기회가 많아지는 것 같아요.”

선택의 기회가 많아진다는 것은?

내가 또 물었다.

“세상을 더 넓게 볼 수 있고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문제해결을 잘 할 수 있거든요.”

성원이가 재차 답했다.

“그래 맞다. 그게 정답이야!” 쓸쓸히 미소만 짓고 있는 지호, 마음이 짠했다.

괜히 물어본 것 같았다. “그렇지만 꼭 공부가 전부는 아니야.

공부가 아니라도 특정분야에 잠재력이 있다면 그걸 계발해서 집중하면 되지.

그게 바로 행복의 조건이 되는 거란다.“

 

지호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얘기지만

그건 진심이었고부모교육강사로서의 소신이기도 했다.

 

 

  토닥토닥

 


부모들은 모두가 공부 잘하는 효진이 같은 아이를 원한다.

그러나 세상은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크나 큰 마당이기에

공부 잘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운동을 잘하는 아이도 있고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 악기를 잘 다루는 아이도 있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누구나 노력만 하면 다 1등을 할 수 있다고 아이들을 닦달한다.

사실 공부도 다중지능 중에 하나일 뿐이다.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라는 책을 쓴 장승수 같은 공부 선수는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되고 나머지는 저마다의 소질과 능력에 따라 행복하게

사는 길을 택하면 된다.

꼭 공부가 아니어도 행복은 얼마든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원이가 말한 것처럼 공부를 해서 아는 것이 많으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넓고, 문제해결력이 높으니까 어느 분야에서건

요긴하게 써먹을 수는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아이들이 각기 다른 분야에서 고유의 색으로 아름답게 살기를 바란다.

이 세상에 한 가지 색깔의 꽃만 있다면 얼마나 밋밋하고 재미없겠는가...

 

 

거의 한 시간에 걸쳐 산책과 토론(?)을 동시에 마쳤다. 처음엔 단순한 질문으로 시작했는데 제법 진지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들 초등학교 때 배운 토론의 본능이 아직도 살아있네! 그 사이에도 아이들은 이곳저곳 사진을 찍어 엄마에게 전송하기 바빴다.

 

 

저녁에는 바비큐 파티를 했다.

농장 주인이자 체험학습 강사이신 김 선생님이

고기와 와인을 준비해주셨고

곁들일 채소는 아이들이 밭에서 직접 따오게 했다.

 

 

감자, 고추, 상추, 오이, 가지 등등 신선한 채소를 한 소쿠리 가득 담아왔다.

이번에도 먹기 전에 인증 샷! 먹다 남은 건 각자 집으로 싸가라고 하니 더 좋아했다.

건강한 아이들의 수다와 웃음이 고기 맛을 한층 드높였다.

게다가 모기를 쫓으려고 피운 화로 안에 은은한 쑥 향기까지 조화를 이루니

행복감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홧팅2

 

 

이튿날 아침에는 마석의 5일장 구경에 나섰다.

장터에는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환희가 넘쳐났다.

살아있는 닭과 오리, 강아지, 토끼들을 구경하며

마냥 신기해하는 아이들 감성이 어린이집 다니는 우리 손녀와 다를 바 없었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나왔는데도 녀석들은 팥빙수에 떡볶이에 튀김을 사먹고

뒤이어 옥수수도 한 자루씩 뚝딱 해치웠다.

그야말로 폭풍흡입! 하긴 그 나이에 무엇인들 맛이 없겠는가.

길게 내리쬐는 맑고 풍성한 햇빛조차도 시럽처럼 달콤했다.

흥정하는 시골 아낙네들 틈에서 나도 오천 원짜리 몸빼 바지 하나 샀다.

 

 

문득 삶은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나 함께 책 읽고 토론하고 일기 쓰고 하면서

정들었던 아이들, 어린 시절의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그걸 다시 꺼내어 나눌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충만한 기쁨인지,

나는 아이들에게 일박이일 동안 그런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너희들 뒤에는 항상 기도하고 응원하는 선생님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라!”

돌아오면서 내가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말이었고

우리는 연말에 학기말 고사 끝나고 다시 만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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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사랑

|함수연| 만남 2014.10.23 11:02

작년 9월25일, 우리 곁을 떠난 소설가 고(故) 최인호 씨가

병마와 싸우면서도 마지막까지 기쁨으로 써 내려간 글은

손녀 사랑에 관한 글이었다.

 

그는 작고하기 4년 전부터 책의 제목<나의 딸의 딸>을 미리 지어놓고

딸과 손녀에 대한 애틋한 사랑의 글을 꾸준히 써나갔다.

 

 

 

 

 하지만 책이 미처 세상에 나오기 전에 그는 눈을 감았으니

얼마나 애달팠을까...

결국 <나의 딸의 딸>은 작가의 1주기 맞아 내놓은

유고집이 되고 말았다.

 

 

 

 

 

책에는 격하게 손녀 사랑을 털어놓은 대목이 유독 많았는데,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고인의 글씨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그는 악필로 유명한 작가였다.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문학적 영감을

손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

악필이 될 수밖에 없었노라고 했던가.

그러나 외손녀에게 쓴 손 편지 글씨는

참말로 온순하고 정갈했다.

 

 

육필 편지에서 만난 동글동글한 그의 필체를 보고서,

손녀 앞에서는 작가가 아닌 보통의 할아버지와 다름없는

인간적인 그를 발견하게 된다. ‘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 ‘눈에 밟힌다’는 표현이

너무나 예리하다는 것을 손녀 키우면서

나도 새삼스럽게 느꼈던 터라 그의 손녀사랑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으로 책을 읽었다.

 

 

그러면서도 항암 치료를 받아 빠져버린 손톱에 고무를 끼우고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을 쓰기 위해 무지 애썼을

작가의 투혼이 떠올라 읽는 내내 가슴이 아렸다.

 

 

책 속에는 신혼여행을 떠난 딸의 빈 방에 앉아

눈물짓는 아버지 최인호가 있었고,

손녀 앞에서 동요를 부르며 춤을 추는 ‘할아버지 최인호’도 있었다.

그런가하면 손녀에게 들려줄 이야깃거리를 만드느라

머리를 쥐어짜고 절대 사탕이나 초콜릿을 손녀에게 주면 안 된다는

딸의 엄명을 어기고서 딸에게 호되게 야단맞는(?) 장면도 있었다.

 

 

"아빠, 정원이한테 사탕 줬지?”

“아니!”

“아니긴 뭐가 아냐. 입에서 사탕 냄새가 나는데...”

“반 개 줬다. 딱 반 개만 줬다고!”

“반 개 건 한 개 건 내가 주지 말랬잖아. 이빨 썪으면 아빠가 책임질 거야?”

“그래, 알았다 알았어!”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 부정한 뒷거래는 그리 오래 가질 못한다.

딸이 주지 말라는 사탕을 주면서 손녀와 할아버지는 공범자가 되어

기분이 짜릿짜릿해지고 그러면서 이 세상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잘난 체하는 딸에게 복수하는 느낌까지 들어 짜릿한 스릴감마저 맛본다고 작가는 고백했다.

흐흐, 나도 비슷한 경험이 여러 번 있어 웃음이 절로 나왔다.

 

 

우하하

 

 

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울 때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손주를 키울 때의 사랑법은 확실히 달랐다.

그저 뭐든지 다해주고 싶다.

가지고 싶은 것 다 가지게 해주고 싶고 떼를 써도 다 받아주고 싶은 게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이고, 그게 손주사랑이다.

 

 

아이가 떼를 쓰며 울어도 모른 체 하는 것이

아이를 교육시키는 참 방법인 줄 알면서도

막상 애가 울면 나도 아이 입에 사탕이나 초콜릿을 물려준다.

 “쉿, 엄마한테는 비밀이야!” 하면서 손녀와 유치하게 약속을 건다.

 

 

 그렇다, 우리들의 인생은 유치한 것이다.

아이들 앞에선 더욱 유치찬란하다.

유치한 만큼 아름답고 달콤한데 어쩌란 말인가...

 

 

아이들은 자기를 사랑하는지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아이와 놀 때는 건성으로가 아니라 혼신의 힘을 다해야함을,

사랑한다는 것은 혼신의 힘을 다하는 행위라고 말한 작가의 말에 나는 백 프로 공감한다.

 

 

하트3

 

 

“세상에서 외할머니가 제일 좋아!”

나는 우리 손녀 지우에게서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격하게 감동한다.

이제 겨우 네 살배기 아이가 듣기 좋은 말을 일부러 했을 리는 없다.

느낀 그대로, 마음 속 사랑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고 본다.

정말이지 이 아이야말로 하느님이 두레박으로 세상에 내려주신 선물임을 깨닫는다.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는 <레미제라블>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 아버지들도 있다.

그러나 손자를 익애(溺愛)하지 않는 할 아버지는 없다.”

 

 

그렇다. 빅토르 위고의 말은 맞다.

최인호도 외손녀를 익애했다.

아니 세상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들의 아들과 딸이 낳은 아이를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날마다 손주 사랑에 텀벙 빠져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 맹목적 사랑에 빠진 나를 주책바가지 할머니라고 불러도 좋다.

 

 

생전에 작가는, 침샘암 투병 중에

아이 주먹만 한 조약돌을 늘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거기에는 수줍게 웃는 눈과 코와 입이 그려져 있었는데,

아직 초등학생이던 손녀가 그려준 조약돌의 미소를 떠올리며

참을 수 없는 아픔을 달랬다고 하니

그 어떤 유명 화가의 그림에 비할 수 있을까.

 

 

 

또 그는 손녀 방에 작은 쪽지들을 자주 숨겨놨다고 한다.

마치 보물찾기처럼.

그 쪽지에는 “사랑해‘ ’보고 싶어‘와 같은 말들이 적혀 있었고

그걸 찾아내면 선물로 보상을 해주었다고 하니

그의 손녀사랑은 가이없었다.

 

 

사랑해

 

 

사람은 두 번 죽는다고 했다.

세상을 떠난 바로 그때,

그리고 남은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잊었을 때다.

작가를 68세라는 나이에 떠나보내기에는 너무 이르다.

최인호 씨와 띠동갑이라는 이어령 선생은 1주기 전 책자 앞면에

 

 

 “인호가 세상을 떠났다. 나쁜 녀석! 영정 앞에 향불을 피우며 욕을 했다.

내 가슴에 그렇게 큰 구멍을 하나 뚫어놓고 먼저 가버리다니 (중략)

보고 싶다 인호야!”

라며 고인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이어령 선생 말씀대로

그가 하늘나라에서도 여전히 소년처럼 유쾌하길 바라며,

이번 주말에는 최인호의 1주기 추모전이 열리고 있는

평창동 ‘영인문학관’에라도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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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유감

|함수연| 만남 2014.08.18 11:37

말복과 입추가 지나고 전국의 학원이나 어린이집 방학도 거의 끝났다.

지칠 줄 모르고 자지러대던 매미울음도 한결 잦아든 걸 보면

그동안 만원사례였던 전국의 피서지도 한산해지리라.

올해는 장마가 실종되고 연이은 폭염주의보에다 태풍예보까지 겹치니 다른 해보다

유독 여름이 길게 느껴진다.

 

 

 

 

온몸을 덜덜 떨며 하루에도 몇 번씩 찬물을 뒤집어쓰고 나오지만

 그때 뿐, 자리에 앉자마자 등 고랑엔 어느새 뱀처럼 굵은 땀줄기가 스멀스멀 흘러내린다.

나는 원래 땀을 잘 안 흘리는 체질인데 농사일하면서부터 땀구멍이 열렸는지

아니면 갱년기 증상이 뒤늦게 찾아온 건지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줄줄 땀이 난다.

더구나 이번 여름에는 완성해야 할 원고가 잔뜩 밀려 있어

진도도 안 나가는 글을 붙들고 있노라니 ‘죽을 맛’이란 게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은 아이들이 어렸을 적부터 항시 TV 속 피서 행렬을 피하여

남들이 다 다녀온 후에나 떠나는 한적한 여행을 택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사정상 식구들이 다 뿔뿔이 흩어져 각자 휴가계획을 잡게 되었다.

나는 싱가포르 사는 여동생이 9월 초에 한국에 와서 삼 주 간 머무른다고 하여

그때쯤 네 자매가 함께 철지난 바닷가로 떠나볼까, 생각중이다.

 

 

식구들이 함께 휴가를 못간 더 큰 이유는

미국 사는 조카가 국내에 인턴사원으로 근무하게 되어 7월 한 달간 우리 집에서 출근을 했기 때문이다. 며칠에 한 번씩 하던 빨래와 와이셔츠 다림질을 매일 해야 했고 입이 짧은 아이를 위해 마트도 더 자주 드나들 수밖에 없었으니, 여름 손님은 호랑이보다도 무섭다는 말을 톡톡히 실감했다. 거기에다 먼데서 손님이 두어 차례 다녀갔으며 주말에는 그 알량한 농사짓는다고 농장에 틀어박혀 있으니 남는 시간이라야 밤 시간뿐이었다. 그래서 더위도 더위지만 그보다는 할 일을 못한데서 오는 압박감이 나를 더 숨 막히게 했던 것 같다.

 

 

하루 종일 찬 음식을 찾고 선풍기는 아예 끼고 살았는데

그럴수록 짜증만 더해져, 결국 나중에는 다 포기하고 그냥 더위를 즐기기로 했다.

조카가 인턴 근무를 마치고 돌아간 후 나는 집에서 한 발자국도 안 나갔다.

약속은 물론 동네 마트에도 안 갔다. 필요한 건 남편과 딸에게 전화로 부탁했다.

막상 일주일을 꼼짝 않고 그렇게 지내다 보니,

더워죽겠다고 모두들 비명을 질러대도 34도의 폭염이

그다지 못 견딜만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에어컨은 물론 선풍기도 틀지 않은 채, 책상에 앉아 자판기를 두드리면서

등줄기가 땀으로 얼룩지는 것을 참고 있노라면 일종의 자학적인 쾌감마저 느껴졌다.

아예 천둥벌거숭이가 되기를 작정하고 한 가지 일에 힘을 쏟으니 오히려 몸과 정신이 가벼워지면서 마치 집에서 극기 훈련하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마음먹으면 간단히 해결될 것을, 더위를 피하려고 전전긍긍했던 일들이 너무나 바보짓 같았다. 어쨌든 두문불출한 덕에 새로운 글 두 편이 탄생되었으니 앞으로 얼마동안 더 이 상태로 지내도 좋을 듯싶었고 나름 성취감도 컸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부채 하나만으로도 거뜬히 났던 여름 날씨를 지금에 와서

더 못견뎌하는 이유가 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과학적으로는 지구온난화현상 때문이라고 말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아무래도 사람들의 참을성 부족에서 오는 현상 같았다.

 

 

길을 나서면 냉방이 잘된 버스와 전철이 있고

집에서도 에어컨이며 선풍기며 다들 갖추고 있으니 더위를 느낄 겨를이 없어

참을성도 그만큼 적어진 탓이 아닐까.

 

 

또한 여름을 건강하게 나기 위해서는 충전이 필요하며

그래서 휴가 여행은 필수라고 ‘여행을 떠나요!’를 외치며

한꺼번에 떠나는 풍토, 그것도 될 수 있으면 되도록 멀리, 해외여행이면 더 좋고...

 

 

휴가라고 해서 소비를 하고 비행기를 타야만 충전이 되는 것은 아닐진대,

언제부터인가 우리네 여름 인사는 “휴가 잘 다녀오셨습니까?”로 변하고 말았다.

피서철 한꺼번에 요란하게 나서서 교통체증에다 관광지의 바가지요금 등 길 위에다

많은 돈과 시간을 뿌리고 와서도 여행만 다녀오면 정말로 충전이 되고 행복해지는 걸까?

 

 

사실 여름의 맛은 더운데 있는 게 아닌가, 누가 그랬다.

여름은 견디는 계절이라고.

일단 무조건 견뎌야지 아니면 하늘의 더위와 내 속의 더위가

스파크를 일으켜 불상사가 날지도 모른다고...

내가 겪어보니 지금의 이 더위를 지그시 견디며 물러나 주기를 기다리는 것도

괜찮은 여름나기의 한 방법이리라.

제 아무리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머지않아 서늘한 가을바람에 자리를 내주게 되니까 말이다.

 

 

지나고 보면 모든 인간관계가 그러하듯

계절의 변화 또한 영원히 지속되지 못한다는 자각만으로도

 이 여름이 소중하게 느껴질 터.

하긴 유한성(有限性) 앞에서 소중하지 않은 게 어디 있으랴,

마음이 하늘을 만들고 축생도 만들고 지옥도 만든다고 하니

더위를 이기는 것 역시 마음먹기 나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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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30세 연상 김동리와 결혼한 여인, 서영은의 ‘살아낸 사랑’ <꽃들은 어디로 갔나>라는 책은

올봄에 나온 서영은 씨의 자전적 소설이다.

그녀는 소설가이면서 우리나라 문학의 거장인 김동리 선생의 세 번째 부인이기도 하다.

당시 김동리의 연애사와 결혼생활은 파란만장했고 그의 작품만큼이나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신랑 나이 74세, 신부 나이 44세로 시작한 그들의 상처투성이 결혼 생활은

당시 매스컴을 통해서 비교적 소상히 알려졌다. 한마디로 충격적이었다.

사실 1987년에 결혼해서 1990년에 김동리 선생이 쓰러졌으니 결혼생활이 길지는 않았다.

이 책은 고작 3년 남짓한 시간에 벌어진 일들을 쓴 글인데,

서영은 씨 나이 칠십이 넘어서야 비로소 그녀는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객관화 시킨 것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서영은의 열혈 독자이다.

작품은 물론 인간 서영은도 좋아한다.

우선 내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 박완서를 닮은 겸손한 외모가 맘에 든다.

요즘 가볍고 경박한 글이 넘치는 마당에 고뇌하는 작가로서의

치열성과 진정성이 강하게 녹아있는 그의 글은

그래서 더욱 돋보이고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머리가 아닌 경험과 끝없는 자기성찰에서 불러오는 글,

그녀의 구도자 같은 삶과 거의 일치한다.

아마도 작가의 치열함으로 따지자면 <혼불>의 작가 최명희 씨에 버금가리라 본다.

 

 

한편 ‘왜 그녀는 서른 살 차이나 나는 김동리 선생과 결혼을 했을까?’

‘전처 자식들과의 재산분쟁은 어떻게 끝이 났을까? 등등

평소 작가에 대한 나의 저급한 호기심도 많았는데

책에서 작가의 사생활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그 은밀함을 나는 야금야금 즐길 수 있었다.

더하여 서영은의 장편으로는 14년 만에 나왔다고 하니 이번 <꽃들은 어디로 갔나>는

이래저래 반가운 책이었다.

 

 

문단에 데뷔하기 위해 글을 들고 찾아간 이십대 초반에 김동리 선생을 만나고

그의 사랑의 포로가 되어 너무도 험난한 삶을 살았던 서영은,

그는 30대에 혜성 같이 나타나 1983년 <먼 그대>라는 작품으로

이상 문학상을 받은 화제의 여성작가였다.

그런 그녀에게 김동리 선생과의 만남은 생의 가시밭길에 제 발로 뛰어든 형국이었다.

 

 

책에는 작가의 인고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는데

본인 스스로도 나이 칠십에 쓴 이 작품은 가장 아프게,

가장 나중까지 울면서 쓴 마음자세의 결과라고 고백했다.

 

 

김동리의 두 번째 아내 역시 소설가였다.

손소희 여사로 그녀는 서영은과 모녀 같은 신분을 유지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서른 살 아래의 젊은 작가와 사랑에 빠진 것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암환자로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손 씨는 그들의 관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김 선생은 가엾고 불쌍한 사람이니 네가 잘 돌봐드려야 한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1987년 손소희 씨는 세상을 떴다.

서영은 씨는 이때부터 수많은 고통과 아픔을 온몸으로 견디며 아슬아슬한 결혼생활에 돌입한다.

 

 

오랜 연애기간을 청산하고 두 사람은 서울 정릉에 있는

봉국사에서 조용히 결혼식을 올렸다.

절 마당은 소리마저 쓸어낸 듯 적막했고 하객이라곤 서영은의 노모와 이모,

그리고 운전기사가 전부였다.

 

 

신랑과 신부는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아니라 이미 살아온 날들에 대해

스님이 하시는 주례사를 엄숙하게 듣고 있었다.

아마도 이날 74세의 신랑은 팔순의 장모에게 떳떳치는 못했으리라.

누구에게 축복 받는 결혼식도 아니고,

죽은 아내의 무덤의 떼가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서둘러 한 혼인이기에

만일 새 아내를 맞은 것이 세상에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축복은커녕 손가락질 받을 일이었다.

 

 

더구나 그에게는 전처 자식이 다섯이나 있지 않은가. 그것도 아들만 다섯.

그래도 노모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이제 한시름 놓았다’는 말을 남기고 결혼식 이틀 만에

아들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떠났다.

그도 그럴 것이 딸이 이십 대에 만나 사십을 훌쩍 넘긴 마당이니

두 사람이 냉수라도 떠놓고 어서 식을 올리라고 성화를 해대던 어머니였다.

노모의 그런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그들의 빛나던 사랑은 결혼이라는 현실 생활 안에서 점점 비참해졌다.

막상 결혼하여 한집에 살다보니 가슴 떨리게 하던 연인은 온데간데없고

의심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노인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연인과 남편 사이에는 너무나 큰 격차가 있었다.

남편은 잔소리꾼에다가 인색하기 짝이 없었다.

생활비도 잘 주지 않았고 집에서 일하는 아줌마의 월급까지 깎아내리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그녀는 날이 갈수록 구차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삶이 참 두렵구나!’ 불쑥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고 홀로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혼자 살 때가 훨씬 행복했다.

그런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반야심경’을 따라 읽는 것.

 

 

작가는 나중에 자신의 사랑을 ‘살아낸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사랑이 주는 아름다움과 설렘 뿐 아니라

스러지는 고통과 슬픔까지도 함께 끌어안고 가야하는 사랑이었기에...

언젠가 4박5일의 잠적 여행 끝에 돌아온 사람에게 김동리 선생은 손찌검까지 했다.

 

 

헤어지고 싶었다는 여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날아든 주먹세례.

코에서는 피가 흘렀고 말을 하면 할수록 더 때렸다.

하지만 그녀는 매를 피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기뻤다고 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운명의 확인이었다.

‘그래, 견디어 내리라, 무슨 일이 있어도 견디어 내리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며

그녀의 운명을 재차 확인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과연 학창시절에 <무녀도> <등신불> <사반의 십자가> 같은

주옥같은 작품으로 만났던 김동리라는 소설가가 고작 이런 인간이었단 말인가,

라는 탄식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그 자신의 개인사가 한국 문학사와 궤를 같이 하고,

여러 예술 단체의 굵직굵직한 장도 많이 맡았던 그가 과연 한국의 대작가이며

그토록 사회적 경륜이 화려한 인물이 맞는지, 매우 혼란스러웠다.

 

 

일상생활에서 남편의 행동, 남편의 말에 적이 실망할 때마다

작가는 전처인 손소희 여사를 떠올렸다.

그는 어떻게 이 수모를 견디고 살았을까,

또한 이 세상에서 아내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다른 많은 여성들도 떠올렸다.

지금도 많은 부부들이 떫은 감정과 슬픔은 속으로 다 감추고 겉보기만

금슬 좋은 부부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김동리 씨는 말년에 상다리가 휘어지게 술상을 차려놓고

그를 찾아오는 손님들과 술자리를 갖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잔이 몇 순배 돌고나면 항상 그가 하는 말이 있다.

“나는 다 가진 사람이오. 첫째 아내는 자식을 줬고, 둘째 아내는 재산을 줬고, 셋째 아내는 사랑을 줬어요.”

이렇듯 그는 나이로 인해 세상일로부터는 ‘귀거래’했으나 그의 여생은 도연명보다 더 풍성한 듯했다.

 

 

본인 말대로 아무 부족함 없어 보이던 그가 갑자기 의식의 절벽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어느 여름날 뇌졸중으로 쓰러져 길고 긴 병원생활로 가게 된 것.

이로써 서영은 씨는 한순간에 모든 걸 잃게 되었다.

부인을 제쳐두고 평소 왕래가 없었던 전처 자식들이 나타나 온갖 참견과 결정을 다해버린다.

 

 

병원을, 의사를, 수술을, 간병인을 그들이 다 정하고 새어머니는 얼씬도 못하게 한다.

그녀가 남편과 살았던 집마저 빼앗는다.

그리고 이어진 끝없는 재산분쟁.

그 과정은 당시 신문에도 여러 번 났었다.

 

 

사실 1987년에 결혼해서 1990년에 김동리 선생이 쓰러졌으니 결혼생활이 길지는 않았다.

고작 3년 남짓한 시간에 벌어진 일들인데,

서영은 씨 나이 칠십이 넘어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객관화 시킨 것이다.

그러니까 그 담담함에 이르기까지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다.

 

 

비슷한 연배로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30년의 나이 차 때문에 공감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고.

나는 공감했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큰 불행의 단서였을 거라고.

 또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던 서른 살 나이 차의 유부남과의 사랑도 작가에게는

평생 엄청난 부담이 되었을 것 같다.

 

 

작년 2013년은 김동리 선생이 탄생 100년이 되는 해였기에

자연스럽게 지면에서 그의 삶과 문학을 재조명해 볼 수 있었다.
김동리 선생과 서영은 씨가 맺은 인연의 시작은 ‘불쌍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인연을 통해 선생이 불쌍하다는 것을 알아가면서

그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운명적 사랑!

어쩌면 이 측은지심은 마음결 고운 작가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 같기도 했다.

 

 

김동리 선생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휠체어에 앉은 이후 이야기는

앞으로 2,3편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나는 몹시 기다려지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스럽다.

작가의 불행이 계속 가슴 아프게 이어지면 어쩌나 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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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사롭던 작년 가을 어느 날,

조간신문을 펴놓고 나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휴대폰 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나는 무심코 “여보세요!” 하고 받았는데

저쪽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

남편이 지금 119구급차를 타고 아산병원 응급실로 가는 중이란다.

순간 세상이 멈춘 듯했다.

무슨 말이 더 이어졌지만 심장소리가 너무 커서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 불현 듯 간밤의 꿈이 생각났다.

꿈에서 남편은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넓은 잔디밭을 빠져나올 수 없다고 울부짖고 있었다.

사방이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있었고,

손에 든 지팡이 역시 뾰족한 가시철망으로 칭칭 매어져 있었다.

 

 

그런 남편 곁에서 나도 울다가 잠이 깼는데 기분이 영 안 좋았다.

가슴을 옥죄는 불길한 예감!

집을 나서는 남편에게 조심하라는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만 두었다.

사실 나도 그날 언니와 점심약속이 있었는데

뒤숭숭한 꿈자리 때문에 약속을 취소한 터였다.

 

 

나는 비교적 숙면을 취하는 지라 꿈을 잘 꾸지는 않지만

무슨 걱정거리가 있다거나 집안에 중요한 일이 있으면

신기하게도 꼭 꿈을 꾼다.

그리고 그 꿈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고 내지는 점지 역할을 하면서

신통방통하게도 현실세계와 잘 맞아 떨어졌다.

이런 나를 두고 아이들은

“우리 엄마는 아무래도 신기(神氣)가 있는 것 같애!” 라는 말을 자주 했다.

 

 

딸의 회사에서 승진발표가 있던 날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전날 꿈에서 깊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딸의 손을 잡고

나는 홀로 안간힘을 썼으나 종내는 딸의 손목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오후 힘없는 딸의 전화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나 떨어졌어!”

“그래, 그까짓 승진 일 년 늦게 하면 어때.

 저녁에 집에 와서 술이나 한 잔 하게 일찍 들어오렴.”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끊었지만

솔직히 이때도 딸의 승진 누락이 꼭 내 꿈 탓인 양 괴롭고 미안했다.

 

 

석 달 전 작은 딸의 태몽도 내가 꾸었다.

소치 동계올림픽이 한창일 때 나는 손녀 지우와 함께

김연아 선수가 출전하는 피겨스케이트장을 찾았다.

매혹적인 연아의 경기가 끝난 후, 그녀는 관중석을 향해 야구공을 던져주었는데

그 중 한 개를 내가 받은 것이다.

공을 재빨리 손녀 손에 쥐어주고는 둘이서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깬 꿈 속 장면이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았다.

 

 

태몽 같았다. 일어나자마자 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너, 혹시 무슨 좋은 소식 없니?’ 내 물음의 요지를 간파한 딸은 즉각 답을 보내왔다.

‘생리 끝난 지도 얼마 안 됐는데 무슨 좋은 소식?’

근데 내 예감이 적중했다.

2주일 쯤 지났을까, 산부인과에서 임신 판정을 받았단다.

기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식구들이 또 한번 놀랐다.

 

 

“역시 엄마 꿈은 영험해! 이 기회에 아예 자리 깔고 나서면 어떨까?”

기실 이번에는 나도 놀랐다.

그런데 꿈의 빈도로 볼 때 태몽 같이 좋은 쪽 보다는

뭔가 걱정스럽고 불길한 꿈자리가 훨씬 더 잘 맞는 것 같다.

 

 

한편 아산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던 남편은 머리와 이마, 귀 등을

60여 바늘이나 꿰매고 닷새 동안 입원했다

퇴원했는데 걱정했던 뇌진탕 증세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는 집에 갔다가 2층집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다는데

이처럼 인생 갈피갈피에 느닷없고 예상할 수 없는 복병이 숨어 있다가

나타날 때는 그야말로 속수무책!

 

 

병원 문을 나서면서 남편이 말했다.

“이만하길 천만다행이지?”

“그 말은 당신이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게 맞지...”

 

 

내 말에 남편은 착한 소년처럼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고 이후 시름이 깊게 고여 있던 얼굴만 보다가

오랜만에 그의 웃는 얼굴을 보니 안도감과 고단함이 나른한 잠처럼 밀려왔다.

 치료는 남편이 했지만 나는 마음이 흠씬 얻어맞은 것처럼 지난 일주일 간 몹시 지쳐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그것은 고마움의 눈물이다.

아마 이 눈물의 의미를, 이 감사의 깊이를 아무도 모를 것이다.

 

 

7년 전의 지옥 같던 병원 생활에 비하면 이날의 사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조금 과장하여 말하자면 로빈손 크루소가 무인도에서 벗어나

런던의 일상생활로 돌아온 것이라고나 할까.

 

 

다시 집으로의 귀환(?)이 정말 감사했다.

삶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아주 먼 길을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반면에 간혹 지나간 삶에서의 가혹한 고통을 반추하는 일은

새로운 고통을 이기게 해주는 힘이 된다는 사실도 뒤늦게 깨달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모든 일들이 홀로 꿈을 꾼 것만 같았다.

마치 아는 사람 병문안 다녀온 것처럼

지금까지도 아슴프레한 게 비몽사몽이 이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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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31개월이 된 손녀는 작년부터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곳은 딸의 회사 내에 있는 직장 어린이집이라서

아침에는 딸이 출근할 때 태워서 가고

오후 네 시가 되면 친할머니가 데리러 간다.

 

외할머니인 나는 매주 수요일만 담당,

만일 양쪽 할머니 둘 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종일반에 있다가

딸이 퇴근하면서 데리고 오기도 한다.

 

수요일 오후 4시, ‘이 녀석이 오늘은 어떤 모습으로 나를 반길까?’

일주일에 한번씩 늘 되풀이되는 일인데도

아이를 만나러 갈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설레고 출렁거린다.

 

어린이집에 들어서니 친구들과 풍선 날리기를 하고 있던 지우는

나를 보자마자 단숨에 달려와 안긴다.

오늘은 외할머니가 지우 데리러 오는 날이라고

아침부터 선생님한테 자랑을 했단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서인지 밥도 잘 먹고

야외활동도 잘 했다고 선생님이 전해준다.

 

집으로 오는 길, 차를 타고 오는 내내 지우는

갓 깬 물총새처럼 쉴 새 없이 조잘거린다.

오늘 간식은 뭘 먹었는지,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응가를 몇 번 했는지...

특히 선생님 흉내를 내는 말투는 몇 번이나 폭소를 터트리게 했다.

“우리 친구들 재밌었나요?”

“할머니는 참 멋진 친구 같애!”

“아니, 할머니보다 지우가 더 멋진 친구지?”

“맞아, 할머니랑 지우랑 똑같이 멋진 친구야!”

 

세 돌이 채 안 된 아이는 이제

그 누구와 대화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많은 어휘를 익혔다.

냠냠 밥을 먹고, 쿨쿨 잠을 자고,

살금살금 걸어간다는 표현은 어디서 배웠는지

의성어 의태어도 제법 쓸 줄 안다.

집에 오자마자 주방놀이 세트를 가져와서는

할머니에게 커피를 타주고 장난감 냉장고에서 빼빼로 과자도 하나 꺼내 주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 “쉿! 아빠한테는 비밀이야”

고사리 같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며 제법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왜 비밀이냐고 물었다.

아빠가 빼빼로 많이 먹으면 이빨에 개미가 생긴다고 했단다.

아이고, 웃겨라... 이렇게 지우와 대화를 나누다보면

아기자기한 즐거움이 곳곳에 별사탕처럼 숨어있다.

 

저물녘의 해 그림자가 넓게 퍼진 거실에서

이번에는 지우가 퍼즐 삼매경에 빠졌다.

42피스짜리 뽀로로 퍼즐을 엎었다가 다시 맞추고 반복하기를 세 차례,

놀라운 집중력이다. 지겹지도 않나 보다.

“할머니는 하나도 못 맞추는데 김지우는 진짜 잘 한다!”

과도하게 칭찬을 해주니 아이의 표정이 금세 환한 봄날이 된다.

마치 지금까지 한 번도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그런 아이의 충만감이 내 몸에도 고스란히 스며드는 느낌,

실내의 따뜻함과 평화가 더해져 더욱 행복한 시간이다.

 

나는 아이의 움직임으로 시간을 잰다.

태어나 앉고, 서고, 걷고, 뛰고, 말하고, 노래하고, 책을 읽고,

이 모두가 지우가 태어난 후 31개월 동안 나타난 일들이고 시간의 잣대가 된다.

갑자기 <first of May>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어릴 적 나는 크리스마스트리보다 작았어요.

 그런데 문득 나무보다 내가 훌쩍 커버렸어요’ 하는 내용의 노래이다.

 

지금 아이 방에는 기린 모양의 키 재기 그림이 붙어있다.

딸은 수시로 아이를 거기 서게 하고 연필로 빽빽하게 점찍어 두었다.

연필 자국이 조금씩 올라가면서 시간도 조금씩 흘러 어느덧 천 일,

천 일 동안 지우는 참 많이 컸다.

몸만 큰 게 아니라 마음도 배움도 자랐다.

 

 선생님과 친구를 알게 되었고 질서와 규율도 배웠다.

거실에는 첫돌, 두 돌 때 찍은 가족사진도 붙어있다.

앞으로 6개월 후에는 세 번째 가족사진이 붙게 되고

갓 태어난 지우 동생 사진도 나란히 걸리게 될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뿌듯하다.

 

저녁에 딸이 퇴근해서 오면 지우와 헤어질 시간이다.

만나러 오기는 쉽지만 떠나기는 쉽지가 않아 헤어짐에 다소 복잡한 과정이 따른다.

 “할머니, 가지마! 지우 집에서 자고 가.”

울먹이며 말하는 아이에게 나는 짐짓 더 명랑한 소리로 화답한다.

“할머니, 두 밤 자고 또 올 테니까 오늘은 엄마하고 코 자라.

 리 지우 착하지?” "“지우야, 우리 어린이집 안 가는 날

 엄마랑 아빠랑 다 같이 할머니 집에 가자아~” 제 엄마도 거든다.

나는 아이를 살포시 껴안고 이마에 눈에 빰에 뽀뽀를 해준다.

 

“지우 잘 자!”

아이는 안심한 듯 얼굴에 다시 평온이 깃들며 힘차게 손을 흔든다.

“할머니, 안녕!”

이렇게 손녀와 함께 한 시간은 하루도 아니고 불과 네 시간 남짓이다.

이 짧은 시간이 그토록 복잡한 일상의 시간을 다 태워버리고

또 만날 날을 그리워하게 만드니

나는 딸 바보가 아니라 손녀 바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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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딸이 코스트코에서 한우사골을 사 왔다.

그것도 한 박스씩이나.

육수를 만들었더니 양이 제법 많아서

며칠 동안 반찬 걱정 안 해도 될 듯싶었다.

뿌듯한 기분에 기왕 사골 국을 끓여놨으니

이참에 혼자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하는 앙큼한 생각까지 해봤다.

 

 

 

 

육수는 여러 개의 패트병에 담아 냉장 보관했고

당장 먹을 것은 들통 째 베란다에 놔두었다.

헌데 사흘이 지나도록 그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이를 어째? 혹시나 싶었는데,

데워서 먹으려고 보니 맛이 조금 이상했다.

사실 많이 상했으면 곧바로 버렸을 텐데

아주 약간이라 냉장고 안에 있던 육수를 섞어서 다시 한 번 끓여주면

시큼한 맛이 사라질 것 같았다.

 

 

그런데 웬걸! 나와 남편은 그냥 먹을 만하다고 했지만

딸이 한 숟갈을 떠먹더니 국물에서 냄새 난다고 생난리다.

미련 갖지 말고 빨리 버리라고 했다.

 

 

그 많은 양을 몽땅 버리려니 진짜 아까웠다.

게다가 육수로 만들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을 생각하니 머리가 띵했다.

핏물 빼고, 헹구고, 가스 불 옆에 지키고 서서

거의 하루를 다 투자해서 만든 건데 한번 먹어보지도 못한 채

음식쓰레기로 전략해 버렸다니 딸에게 너무 미안했다.

아빠 엄마 몸보신 하라고 모처럼 선심을 쓴 건데...

 

 

잘못됐다는 걸 알았을 때 과감히 버리고

 냉장고에 있던 것만 먹었으면 될 걸

아깝다고 멀쩡한 국물과 섞어버려서 결국 아무 것도 못 먹게 되었다.

이런 바보 같은 걸 경제학 용어로 ‘sunk cost(매몰비용)'이라고 했던가.

잘못된 투자인 줄 알면서도 그만둘 생각 않고

쓴 돈 아깝다고 계속 쏟아 붓는 것.

이처럼 무모한 일은 전에도 있었다.

 

 

몇 년 전 만기된 적금으로 펀드를 들었다.

적립식이 아닌 거치식이었다.

가입하고 나서 10개월 정도는 수익성이 좋아서

예정대로 3년 만기가 되면 대박이 터질 줄 알았다.

헌데 대박은커녕 계속 마이너스 현상이 이어졌다.

 

 

그런데도 쉽게 환매를 못하고 ‘어떻게 되겠지’ 하는 기적을 바라면서

2년 넘게 끌고 있다가 10%가 넘는 손해를 감수하고서 해지시켜 버렸다.

그것도 은행 직원의 끈질긴 권유 때문이었는데

잘못된 투자는 빨리 잊고 다시 시작하는 게 상책이라는 걸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이런 경제공부 덕분에 이제는 펀드보다는

이율이 낮더라도 정기 예금을 선호한다.

문득 어느 증권회사 광고에 탤런트 김혜자가 나와서

 “안전이 제일이에요, 제일!”이라고 외치던 장면이 떠오른다.

 

 

인간은 무모할 때가 참 많다. 과거에 들인 돈 때문에,

과거에 한 말 때문에 고집을 부리다가 더 큰 낭패를 보게 되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4대강 사업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도 걱정이 된다.

4대강 사업은 들인 돈이 워낙 크니 매몰비용이 될까 겁나고,

원칙과 약속을 중시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이 무리하게 대선 공약을 감행하여

국민들에게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떠넘길까봐 또 겁이 난다.

 

 

현재 우리나라 복지예산 증가는 OECD국가 중 1위라고 한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무주택 서민을 위한 행복주택이나

보금자리주택을 왕창 짓겠다던 주택 공약은 축소되었으며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하겠다던 기초연금 지급은

대상자를 선별하여 차등 지급하는 것으로 후퇴, 또한 반값등록금 공약은

사실상 백지화 된 상태라고 한다.

 

 

대선공약이라는 게 어차피 포플리즘 성격이 강하고

이후 상황 변화를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절대로 무리하게 감행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매몰비용이 크면 클수록 국민들의 부담이 늘어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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