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면서 나아가고() 물러남(退), 나타나고() 숨는() 것은 중요한 선택이다. 진퇴(進退)와 현은(見隱)의 선택을 잘못하면 패가망신(敗家亡身)을 할 수도 있고, 인생에 오점을 남길 수도 있다. 세상에 도()가 있으면 나아가 나의 꿈과 능력을 발휘하지만 세상이 혼란하여 도()가 없는 때라면 조용히 뒤로 물러나 때를 기다리는 것도 세상의 변화를 읽어내는 군자들의 처신이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나아가 능력을 발휘하고(天下有道則見), 천하에 도가 없으면 조용히 물러나 수신에 힘써야 한다(無道則隱).’ 군자는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정확히 알아서 처신해야 한다는 <논어>의 구절이다.

 

능력과 덕성을 겸비한 사람은 늘 여러 곳에서 유혹이 있기 마련이다. 정치권에 영입을 권유받기도 하고 높은 자리를 비워두고 초빙받기도 한다. 그런데 아무리 높고 귀한 자리라도 그곳에 어떤 곳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발을 들여놓는다면 인생이 구차해 지고 지금까지 쌓아 온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가 있다. 또한 내가 있는 자리가 아무리 탐나더라도 있어서는 안 될 자리라면 한시라도 빨리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지혜로운 처신이다.

 

<논어>에 위태로운 곳에는 들어가지 말라는 말이 있다. ‘위방불입(危邦不入)’ 위태로운 나라에는 애초부터 들어가지 말라는 권고다. 위기를 겪고 있는 판에 잘못 발을 디디면 그 위기의 중심에 설 수 있기 때문에 섣불리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요즘 대기업의 자금위기에 개인투자자들의 투자금 손실이 우려된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위기에 빠진 나라에는 들어가서 안 된다는 원칙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투자라는 것이 수익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 위험이 높을수록 고수익이 예상되기는 하지만 수익 이전에 손실을 고민한다면 위태로운 판에는 처음부터 안 끼는 것이 좋다. 정치판이나 조직도 들어가서는 안 될 판이 있다. 그런 곳에 아예 발을 들여놓지 않아야 일신이 평안할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위기가 예상되는 판이라면 일찌감치 발을 빼는 것이 좋다. ‘난방불거(亂邦不居)’ 혼란한 판에는 머물지 말고 발을 빼라는 것이다. 아직 위기가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다가올 위기가 예상된다면 모든 것을 버리고 그곳에서 빠져 나오는 것도 지혜로운 자들의 인생철학이다. 이미 내가 몸담고 있는 곳에 위기가 다가왔다면 내 몸과 목숨을 바쳐 위기를 돌파해야 하지만 아직 위기가 다가오지 않았다면 시간 있을 때 조용히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좋다. 물론 내 자리를 포기하고 나온다는 결정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겪을 후환을 생각하면 한시라도 발을 빼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다. 내가 투자한 곳이 혼란해 위기가 예상된다면 비록 손해가 나더라도 빠질 줄 아는 결단이 필요하다.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시간을 놓친다면 혼란은 위기로 변해 발을 빼기가 쉽지 않은 상황으로 발전할 수 있다.

 

<손자병법>에는 나아가고 물러나는 진퇴(進退)에 대한 기준이 있다. ‘진불구명(進不求名)!’ 앞으로 진격함에 명예를 구하지 마라! ‘퇴불피죄(退不避罪)!’ 후퇴를 결정함에 죄를 피하려고 하지 마라! ‘유인시보(惟人是保)!’ 오직 사람의 목숨을 보존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모든 진퇴의 판단 기준은 남의 칭찬과 비난에 의해 결정해서는 안 되고 오로지 생존을 기준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난세다. 어제까지만 해도 설마 무너지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기업이 하루아침에 몰락의 길을 겪고, 그토록 강했던 조직의 기강이 흔들리고, 혼란의 중심에 서는 것을 보면 나아가고 물러나는 진퇴(進退)와 나타나고 숨는 현은(見隱)의 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가슴속 깊이 새기게 된다. 위태로운 판에는 아예 끼지 마라! 혼란한 곳에서는 미련 없이 자리를 내놓고 신속히 빠져나와라! 비록 세상을 살아가는 군자들의 인생철학이지만 하루하루 불확실성 속에 사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진퇴(進退)란 무엇인지를 들려주는 고전의 지혜다.

  

박재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조부에게 한학을 배우고 성균관대에서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수학했다. 고전의 재해석을 통한 새로운 미래사회 가치를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지내고 현재 포스코 전략대학 석좌교수,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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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인사 스타일이 변하고 있다. 출신과 학벌에 연연하지 않고 그 사람의 현재 모습을 충실하게 보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스펙이나 경험도 중요하지만 오로지 과거의 모습만 갖고 판단한다면 그 사람의 변화된 모습이나 발전된 역량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공자는 사람을 평가할 때 지금의 모습을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삼았다. 과거에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도 중요하지만 지금의 모습이 더욱 중요한 평가 기준이라는 것이다. 일명불보기왕(不保其往)’의 사람 평가 원칙이다. ‘지나간 과거()의 모습을 가슴에 담지() 않고 사람을 평가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느 날 공자를 찾아온 젊은이가 있었다. 호향(互鄕) 지역 출신의 이 젊은이는 공자를 만나보기 열망했고 제자들은 적극적으로 공자와의 만남을 말렸다. 호향(互鄕)은 당시 가장 소문이 안 좋은 동네였다. 범법자들이 많고 악한 사람들이 산다는 호향 출신 젊은이를 공자가 만난다는 것은 제자들의 입장에서 그들 집단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공자는 그 젊은이를 만났고 불만을 품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이든 깨끗한 자세로 나를 만나러 온다면 지금 그 모습을 나는 인정하겠다(人潔己以進 與其潔也). 그 사람의 지난날 모습에 연연하여 가슴에 담지 않겠다(不保其往).”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 있는 그 모습으로 사람을 대했던 공자의 생각이 잘 나타나 있는 <논어>의 문장이다.

 

‘지난날 과거를 묻지 마라!’ ‘그 사람의 현재에 주목하라!’ 공자가 외쳤던 사람 평가 원칙이었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과거를 자꾸 들추어내려고 한다. 학벌과 출신, 소문과 풍문 등에 연연해 직접 눈으로 보려하지 않고 다른 외적인 조건으로 사람을 판단하려는 습관에 젖어 있다.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하여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成事不說).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하여는 간섭하지 않겠다(遂事不諫). 지나간 과거에 대하여는 문제 삼지 않겠다(旣往不咎).’ 지난 과거를 묻지 않겠다는 공자의 의지가 담겨 있는 <논어>의 구절이다. 이런 공자의 사람평가 기준 덕분에 공자의 주변에는 다양한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춘추시대 말기, 가문과 혈통을 중요시 여기던 시대 상황 속에서제자를 모아 가르치는 일에 어떤 차별도 있을 수 없다유교무류(有敎無類)’의 정신은 공자 집단(Confucius Group)을 새로운 시대의 변혁주체로 변모시켰다. 빈민가 출신 안회(顔回), 시장상인 출신 자공(子貢), 조폭출신 자로(子路), 범법자의 아들로서 능력을 발휘한 중궁(仲弓), 장애가 있었던 민자건(閔子騫) 등 다양한 제자들은 공자의 가치를 오히려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됐다. 그들은 과거의 모습에 연연하지 않았고 새로운 시대를 읽어내어 그 시대에 부합하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른바유교(儒敎)’ 집단의 기반은 과거의 아픔을 가진 사람들의 인생역전 노력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맹자>생어우환(生於憂患), 사어안락(死於安樂)’이라는 말이 있다. 과거의 아픔과 근심이 미래의 생존을 가능케 할 것이고 과거의 안락과 즐거움은 미래를 죽음으로 이끌 것이란 뜻이다. 비록 지난날 어렵고 힘든 과거였지만 그 과거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면 오히려 새로운 생존의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불보기왕(不保其往)’, 지난날 과거의 모습에 연연하지 마라! 선비는 삼 일을 안 보면 눈을 비비고 봐야 한다는 괄목상대(刮目相對)의 뜻은 사람은 짧은 기간에도 얼마든지 새로운 모습으로 일신할 수 있는 위대한 존재라는 뜻이 담겨 있다. 과거 모습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의 모습을 더욱 중요시 여기는 풍토야말로 인본주의의 핵심철학이라 할 것이다.

 

 

 

박재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조부에게 한학을 배우고 성균관대에서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수학했다. 고전의 재해석을 통한 새로운 미래사회 가치를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지내고 현재 포스코 전략대학 석좌교수,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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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知之者不如好之者),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好之者不如樂之者)!” <논어>에 나오는 몰입의 위대한 기쁨이다. 안다()는 것은 그저 멀리서 지켜보며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좋아한다()는 것은 가까이 다가가 있지만 여전히 완전한 몰입은 아니다. 즐기는() 것은 몰입돼 빠진 것이다. 지금 내가 하는 일과 내가 하나가 됐을 때 느끼는 위대한 감동이다. 음악을 귀로 듣는 것과 가슴으로 듣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귀로 듣는 음악은 멜로디와 악조를 듣는 것이고 가슴으로 듣는 음악은 감동과 충만함으로 음악과 만나는 것이다. 몰입하고, 감동하고, 극치에 도달하면 모든 근심은 거품처럼 사라지고 내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심지어 밥을 먹는 생리적인 욕구도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 몰입의 위대함이다.

 

공자는 이런 몰입의 위대함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있다. 공자가 제()나라에 있을 때 일이다. 당시 가장 화려했던 제나라 어느 도시에서 공자는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음악에 몰입되는 경험을 한다. () 임금을 주제로 한 음악인 소() 음악을 듣고 3개월 동안 그 음악에 빠진다. 얼마나 음악에 몰입해 빠졌던지 고기 맛을 알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부지육미(不知肉味)’ 고기가 귀했던 시절,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공자의 몰입에 방해가 될 수는 없었던가 보다.

 

당시 섭공(葉公)이라는 귀족이 공자의 제자였던 자로(子路)에게 공자의 사람 됨됨이를 물었다. 자로는 자신의 스승에 대해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기분이 나빴는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돌아왔다. 공자는 그런 자로에게 자신에 대해 왜 이렇게 말하지 않았느냐고 소리쳤다. ‘공자는 한번 무엇인가를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그 일에 몰입하는 사람이다(發憤忘食). 그는 한번 일에 몰입하면 세상의 모든 근심을 잊고 그 일에 빠지는 사람이다(樂以忘憂). 그는 이런 상태가 되면 자신이 얼마나 나이가 먹었는지조차 잊고 몰입하는 사람이다(不知老之將至).’ 공자가 자신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는 글을 읽으면 감동이 느껴진다. 나이도 잊어버리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몰입할 수 있는 공자의 예술적 삶에 진한 공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나이가 많아서 노인이 아니고 나이가 적다고 청년이 아니라고 한다. 나이란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을 평균적으로 수치화한 것이지 그 사람의 정신적 태도와 삶에 대한 열정을 수치로 나타내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은 서 있다는 것이다(人之生也直).’ 역시 <논어>에 나오는 글귀다. ()은 앉은 것()도 아니고 누운 것()도 아니다. 무엇인가를 지향하며 곧게 서 있는 모습이다. 가을 하늘을 향해 가녀린 줄기로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코스모스를 보면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감동처럼 느끼게 해 준다. 나이와 처지를 잊고 자신이 꿈꾸는 곳을 향해 몰입하고 빠져 있는 모습은 살아 있음의 확실한 증거다. 앉고 누우면 편안하련만 고통 속에 서 있는 자들의 몰입과 열정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 알려하지 말고 좋아하라()! 좋아하려 하지 말고 즐겨라()! 모든 근심을 잊어버리고(忘憂), 밥 먹는 것도 잊은 채(忘食), 내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무소의 뿔처럼 전진하라! 그것만이 사람()이 살아 있다()는 확실함이다!

 

 박재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조부에게 한학을 배우고 성균관대에서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수학했다. 고전의 재해석을 통한 새로운 미래사회 가치를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지내고 현재 포스코 전략대학 석좌교수,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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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이라는 말이 있다. 군자는 큰길로 다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비록 샛길로 다니는 것이 빠르고 이익이 될지라도 군자는 자신을 속이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바른 길로 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이 구절과 정확히 일치하는 원전을 찾기란 쉽지 않다. 특별히 어떤 특정한 고전의 원문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구절과 가장 유사한 내용이 <논어(論語)> 옹야(雍也) 편에 나온다. 공자의 제자였던 자유(子游)가 무성(武城)이라는 지역의 행정 책임자로 발령받았다. 공자는 자유에게 훌륭한 인재를 얻었냐고 질문했고, 자유는 담대멸명(澹臺滅明)이라는 사람을 자신이 만난 최고의 인재라고 대답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그는 지름길로 가지 않는 사람이다(行不由徑). 비록 아무리 빨리 가는 방법이 있더라도 원칙을 무시하고 잘못된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공적인 일이 아니면 사적으로 한번도 자신의 집무실에 찾아온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非公事 未嘗至偃之室也). 자유는 이 두 가지를 들어 담대멸명을 자신이 만난 최고의 인재라고 대답했다. 이 구절 중에행불유경(行不由徑, 길을 갈() 때 지름길()로 가지 않는 것)’군자대로행과 가장 근접한 내용이다.

 

길을 갈 때 지름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은 편법보다는 원칙으로 공직에 임하고, 사적인 일을 공직의 자리를 이용해 처리하지 않는다는 자세를 천명한 것이다. 공직자가 가서는 안 될 길을 선택하게 되면 그 재앙이 일반인들과 비교할 것이 아니다. 뇌물을 받고 원전 부품 비리를 눈감아주는 샛길을 선택한 어느 공공기관 직원의 행동은 국민들에게 엄청난 고통과 불편을 안겨 주었다. 자신의 임무를 망각한 채 남의 업무에 기웃거리고 사적인 용도에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사용한 결과는 나라를 요동치고 갈등의 불씨를 지폈다. 기업인이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자금을 모으고 회계장부를 조작한 결과는 투자자와 국민 모두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모두가 가서는 안 될 길()을 선택한 결과인 것이다. 지름길로 가는 것이 훨씬 빠르고 이익인 것 같지만 큰길로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길이다. 맹자는 이 길을 인간이 가야할 가장 편안한 길, 안로(安路)라고 한다. 그것이 의()로운 길이고 인간이 걸어가야 할 마땅한 길(當行之路)이다.

 

원칙을 벗어나 편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반드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말이 <논어>에 있다. ‘욕속부달(欲速不達)’ 원칙을 어기고 빨리빨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그만 이익(小利)에 눈이 멀면 큰일(大事)은 절대 이뤄질 수 없다(不成).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가고, 원칙과 기본을 지키고, 조그만 이익에 눈이 멀지 않아야 비로소 먼 길을 제대로 갈 수 있는 것이다. 조그만 탐욕에 큰 것을 놓치는 결과(小貪大失)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조익(趙翼) 선생의 문집인 <포저집(浦渚集)> 자송록(自訟錄)에 보면 이런 글이 실려 있다. ‘가져도 될 것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지언정(寧有義當得而不得) 가져서는 안 될 것을 취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不可有義不當得而得).’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을 포기할지언정 가져서는 안 될 것에 욕심을 내지 말라는 것이다. 부귀와 빈천, 성공과 실패, 출세와 좌절, 인간이라면 누구나 갈등하는 것들이지만 비록 성공과 부귀를 포기할지언정 의롭지 못한 부당한 선택은 하지 않고 살겠다는 조익 선생의 자세가 잘 담겨 있다.

 

지름길은 당장 이익이 되고 성과가 있는 것 같지만 그 끝은 안 좋은 경우가 많다. 비록 정도(正道)와 대로(大路)로 가는 것이 어렵고 힘든 길이라도 묵묵히 그 길을 가는 사람은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알아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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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는 말이 있다. 갑작스럽게 떨어지는 것은 도무지 손 쓸 틈도 없고 제어장치도 들지 않아 수직 낙하한다는 뜻으로 증권가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잘나가던 회사의 주식이 어느 날 암초를 만나 끝도 없이 떨어질 때 사용하는 이 말이 어디 증권가에서만 쓰이는 말이겠는가? 잘나가던 정치인의 지지율 추락, 탄탄했던 기업의 예상치 못한 위기와 파산, 권력의 중심에 섰던 사람의 갑작스런 몰락을 보면 정말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장자(莊子)>에는 이렇게 갑작스럽게 몰락하는 것을악성불급개(惡成不及改)’라고 정의한다. 나쁜() 일이 벌어지는() 것은 손 쓸 틈도 없이 벌어진다는 뜻이다. 물론 그 나쁜 상황이 오기까지 많은 작은 잘못들이 누적돼 왔겠지만 무너질 때는 손 쓸 틈도 없이 한번에 무너진다는 것이다. <주역(周易)>에도 얼음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서리가 내리고 그 서리가 수없는 사람의 발에 밟히고 나서야 비로소 얼음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리상견빙지(履霜堅氷至).’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이 만들어진다() <주역(周易)> ()괘에 나오는 말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고 한 겹 두 겹 쌓이고 사람들의 발에 밟혀 비로소 얼음이 만들어지듯이 세상의 나쁜 일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두고 누적돼 왔던 것들이 터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일이 발생했을 때는 고칠() 여력도 없이(不及) 순식간에 추락하게 된다는 논리다.

 

반면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은 많은 시간이 걸린다. ‘미성재구(美成在久).’ 좋은() 일이 이뤄()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목표가 이뤄지고 성공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가진 모든 힘을 총동원해서 오랜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최고의 완성을 볼 수 있다. <대학장구(大學章句)>에는 이것을용력지구(用力之久)’라고 한다. ()을 사용()하는 것이 오래()돼야 완성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활연관통(豁然貫通)의 위대한 목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과정이다. 살을 빼려는 사람이 운동하는 만큼 살이 빠진다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은 원하는 몸무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몸매는 오랜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이뤄진다. 성공에는 인내와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주역(周易)>은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 자강불식(自强不息)하라고 강조한다. 스스로() ()해져야 하는데 쉬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중용>에서는 지성무식(至誠無息)이라고 한다. 쉬지 않는 정성이 모여져서 고명(高明)한 하늘이 만들어지고, 박후(博厚)한 땅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우주는 쉬지 않는 오랜 노력과 정성이 모여져서 이룬 위대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미성재구(美成在久) 악성불급개(惡成不及改).’ 완성은 시간이 걸리나 파괴는 한순간에 이뤄진다는 <장자>의 일갈(一喝)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즘 오랜 시간과 노력을 거쳐서 만들어진 기업들과 사람들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추락하는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 몇 대에 걸쳐서 조상의 공덕으로 쌓아온 기업이 어느 날 뿌리째 흔들리는 위기를 겪는 것을 보면 망하는 것은 정말 한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하는 사람도 한순간 가서는 안 될 길을 가게 되면 날개도 없이 추락하게 된다. 이루기보다는 지키기가 더욱 어렵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박재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조부에게 한학을 배우고 성균관대에서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수학했다. 고전의 재해석을 통한 새로운 미래사회 가치를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지내고 현재 포스코 전략대학 석좌교수,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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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면서 중요한 일 중에 하나가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는가를 고민해 보는 것이다. 지금 내가 앉은 자리에 걸맞은 능력과 도덕성을 갖췄는지, 주변의 평판은 어떤지를 고민해 보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자리를 사양하고 반납해야 한다. 도저히 자리를 사양할 수 없다면 부족함을 메우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능력도 못 갖추고 무리하게 자리에 욕심을 낸다거나 인격도 안 되는 사람이 높은 자리에 마음을 두면 비록 당장 그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끝이 안 좋은 경우가 많다. 자리는 차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자리에 합당한지를 먼저 고민해봐야 한다.

 

<주역(周易)>에 보면 자신의 인격과 능력을 정확히 알고 높은 자리에 욕심을 내라는 구절이 있다. ‘德微而位尊 智小而謀大 無禍者鮮矣. 인격()은 미약()한데 앉은 자리()가 존귀하고(), 지혜()는 적은데 도모()하는 꿈이 너무 크다(), 재앙()을 입지 않는() 경우가 드물() 것이다.’ 높은 지위가 내 눈앞에 있다 하더라도 내가 가진 능력과 인격을 먼저 돌아보고 그 자리에 앉아야 하고, 내가 어떤 꿈을 가질 것인가를 고민하기 전에 먼저 내가 가진 지혜와 능력을 돌아보라는 것이다. 능력과 인격도 안 되는데 무리하게 자리를 탐내게 되면 결국 비극적인 결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엄중한 경고다.

 

<주역>에서는 인간의 일생을 용()에 비유해 설명하고 있다. 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물속에 잠겨 능력과 덕성을 함양해야 할 잠용(潛龍)의 시기, 이때 경거망동해 내 앞에 좋은 자리가 있다고 아무런 고민 없이 앉는다면 더 큰 용으로 발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큰 화를 입게 된다. 실력과 능력이 충분히 갖춰졌다면 드디어 세상에 나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현룡(見龍)의 시기, 열심히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새로운 도약을 하는 약룡(躍龍)의 시기, 그리고 자신의 꿈을 한 없이 펼쳐 보이는 나는 용, 비룡(飛龍)의 시기까지 그때그때마다 내가 어느 자리에 앉아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정확히 알고 처신한다면 인생을 큰 잘못 없이 잘 마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일부 지도층 인사들의 올바르지 못한 처신으로 나라의 국격(國格)에 손상이 가고 개인의 인생도 수직 추락을 하는 일이 많다. 자리는 능력뿐만 아니라 인격과 도덕성이 함께 검증돼야 한다는 인사 원칙이 더욱 절실하게 대두되는 시절이다. 능력과 도덕성이 안 되는 사람이 높은 지위에 올라가면 개인의 재앙을 넘어 조직의 재앙으로 번지게 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남기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에 맞는 자리에 앉아 있어야 큰 화를 면할 수 있다는 <주역>의 글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 요즘이다. 능력이 안 되면 높은 자리는 정중하게 사양할 줄 알아야 한다. 능력도 안 되면서 높은 자리에 올라 기쁨을 만끽하려 하면 결국 크나큰 재앙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속담이 있다. 미성재구(美成在久)! 위대함은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높은 자리에 오를 자격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반대로 위대함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악성불급개(惡成不及改)! 나쁜 일이 이뤄지는 것은 손 쓸 틈도 없이 벌어진다는 뜻이다. 올라가기는 어려워도 망가지는 것은 너무나 순식간이라는 <장자>에 나오는 글귀다. 내 앞에 어떤 자리가 나를 유혹하더라도 반드시 나의 능력을 살펴서 앉는다면 인사권자의 고민과 실책이 줄어들 것임에 분명하다.

 

 

 

박재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조부에게 한학을 배우고 성균관대에서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수학했다. 고전의 재해석을 통한 새로운 미래사회 가치를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지내고 현재 포스코 전략대학 석좌교수,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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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을()의 문제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갑과 을이란 용어는 십간(十干)에 나오는 순서로 점술에서는 갑()은 양()에 속하고 을()은 음()에 속하는 상징이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갑을관계를 보면 백화점과 입점업체들, 본사와 대리점, 공급자와 판매자 등 유통업계에서부터 시작해 사장과 직원 등 다양한 사회관계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문제는 갑은 을에게 늘 무엇인가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어느 유제품 회사 직원의 막말 사건도 본사에서 정해 놓은 목표치를 달성하려다 보니 대리점 주인에게 강하게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회사의 성장과 매출의 증대를 위해 무리한 요구가 강해지면 그 과정에서 갑과 을의 불안정한 갈등이 벌어지는 것이다. 주도권을 쥐고 있는 갑()과 그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을()의 비정상적인 관계는 결국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빠른 성장과 매출을 올리려다 결국 비극으로 끝나게 되는 것이다.

 

<논어(論語)>에 보면 순리를 어기고 무리하게 빨리 가고자 하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뿐더러 큰 조직으로 성장하지 못할 것이란 구절이 있다. 일명욕속부달(欲速不達)’의 철학이다. ‘빨리() 하고자() 하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공자의 제자인 자하(子夏)가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을 때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너무 빨리 무엇을 이루려 하지 마라(無欲速)! 조그만 이익에 너무 연연하지 마라(無見小利)! 무리하게 빨리 무엇인가를 이루려 하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고(欲速則不達), 조그만 이익에 연연하면 큰일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見小利則大事不成)!’ 마음만 급한 나머지 무리하게 목표를 세우고 원칙과 기본을 어겨가며 그 목표에 도달하려 한다고 해서 목표가 반드시 달성되는 것이 아니며 달성된다고 해도 결국 원칙을 어긴 성과는 오래 못 갈 것이다. 또한 큰일을 하려는 조직이 조그만 이익에 눈이 팔려 그 이익을 쫓다 보면 큰 조직으로 성장하는 데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공자의 이런 생각 뒤에는 순리에 따라 일을 처리할 것이며 눈앞에 조그만 이익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숨어 있다.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은 개인과 조직의 성장에서 중요한 과정이다. 다만 목표를 무리하게 설정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무리하게 밀어붙인다면 비록 그 목표를 달성했다 하더라도 문제가 있는 목표달성일 수밖에 없다. 돌려 막기식 성장이나 장부상의 짜 맞추기식 성과달성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비록 좀 늦더라도 달성 가능한 목표치를 세우고 윤리와 원칙을 지켜가며 거둔 성과가 진정 가치 있는 성과이며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빨리빨리문화가 우리나라가 성장하는 데 큰 동력이 됐다는 점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기초가 없는 무리한 속도경쟁은 결국 모래 위에 쌓은 성일 뿐이다. 양적인 팽창 뒤에는 반드시 질적인 안정이 수반돼야 차곡차곡 가치 있는 성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대나무가 자라날 때 어느 정도 성장하면 마디()로 마감을 해주고 또다시 자라듯이 성장은 원칙과 기본이 수반돼야 가치 있는 성장이 될 것이다.

 

무리하게 빨리 가려 하지 마라! 조그만 이익에 연연하지 마라! 속도가 진리고 이익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요즘, 한번쯤 돌이켜 속도를 조절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인 듯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정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왕도이기 때문이다.

 

박재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조부에게 한학을 배우고 성균관대에서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수학했다. 고전의 재해석을 통한 새로운 미래사회 가치를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지내고 현재 포스코 전략대학 석좌교수,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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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되려는 마음을 먹었다면 비록 남의 말을 모는 마부(執鞭之士)의 직업이라도 가리지 않고 하겠다는 공자(孔子)의 돈에 대한 다부진 각오가 <논어(論語)>에 나온다. 돈을 버는 일이 경시돼서 안 되고 돈을 버는 과정에서 직업의 귀천을 논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유교는 돈에 대한 경멸과 가난에 대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상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그러나 정당한 방법()을 통하지 않고 돈을 버는 불로소득이 문제이지 돈을 버는 것은 전혀 비난받을 일이 아니며 가난 자체가 즐겁거나 존경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가난 속에서도 자신의 행복과 가치를 포기하지 않고 사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는 것이다. 사회가 도덕적으로 안정돼 있고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다면 돈을 못 버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라며 오히려 가난에 대해 비난하고 있다. ‘나라에 도가 있는데 가난하고 천하게 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邦有道 貧且賤焉 恥也).’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이 말 속에는 가난하게 사는 것이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반영돼 있다.

 

젊은이들이 일명 3D 업종을 기피하고 있다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직업에 차등을 두고 오로지 편하고 쉬운 일에 몰려들고 있으며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것보다 책상에 앉아 일하는 것이 더욱 고상하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대기업과 안정된 공무원직은 일자리를 구하려고 하는 사람으로 넘쳐나고 중소기업과 현장 직업은 사람을 구하기가 더 어려워진다고 한다. 이런 직업에 대한 차별과 양극화는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며 나아가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사마천 <사기>화식열전(貨殖列傳)’에 보면 돈을 버는 데는 직업의 귀천이 없다. 또 돈은 정해진 주인이 없어서 열심히 노력하고 능력을 발휘하면 돈이 몰려들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직업을 가리고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돈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부무경업(富無經業)! ‘부자()가 되기 위해서 일정한() 직업()은 없다()’는 뜻이다. 부자가 되는 방법에 직업의 귀천이나 정해진 방법이 있을 수 없다. 절약하고(纖嗇) 노력해(筋力) 부자가 되는 것이 돈을 버는 정도(正道)지만 때로는 모험을 하며 돈을 벌기도 하고(奇勝),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행상(行賈)을 하기도 하고, 화장품을 팔아 천금을 모으기도 하고(販脂), 음료를 만들어 팔거나(賣漿), 하찮은 기술인 칼을 갈아서 돈을 벌기도 하고(洒削), 말을 고치는 수의사 직업(馬醫)으로 거대한 부를 축적한 사람도 있다는 것이화식열전에 나오는 재벌이 된 사람들의 직업들이다. 심지어는 남의 무덤을 도굴하거나(), 게임이나 도박 같은 직업(博戲)을 통해 재벌이 된 사람도 있다고까지 말한다. 결론적으로 돈을 벌어 부자가 되려면 직업의 귀천과 일의 종류를 가리지 않는 돈에 대한 가치관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부자가 되는 데는 정해진 직업이 없다(富無經業). 돈도 정해진 주인이 없다(貨無常主). 능력이 있는 자에게는 돈이 물 밀듯이 몰려들 것이고(能者輻湊), 이런저런 직업을 따지는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가진 돈마저 와해되고 말 것이다(不肖者瓦解). 천금을 벌어 부자가 된 사람은 한 도읍을 소유한 임금에 비교할 수 있고(千金之家比一都之君), 수만금을 번 부자는 나라를 소유한 왕과 같은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巨萬者乃與王者同樂). 그러니 이렇게 돈을 벌어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이야말로 위대한 무관의 제왕이 아니겠는가(豈所謂素封者邪非也). 소봉(素封)은 비록 봉지(封地)를 받은 귀족이 아닌 일반인()에 지나지 않지만 자유롭고 풍요롭게 살아가는 무관(無冠)의 제왕(帝王)을 일컫는 말이다. 돈을 버는 것은 존경받을 일이며 직업의 귀천을 따져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박재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조부에게 한학을 배우고 성균관대에서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수학했다. 고전의 재해석을 통한 새로운 미래사회 가치를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지내고 현재 포스코 전략대학 석좌교수,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출처 : http://www.donga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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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달인이며 오마하의 현인이라고 불리는 워런 버핏(Warren Edward Buffett)과 비견할 만한 중국 역사 속의 투자 달인은 진()나라 여불위(呂不韋). 진시황제의 친아버지라고 알려져 있는 여불위는 특히 사람에게 투자해 다른 어떤 투자보다도 많은 수익을 올린 상인이다. 농사를 지으면 열 배가 남고 장사를 하면 백 배가 남지만 사람에게 투자하면 몇 배가 남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여불위는 남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진나라 왕자 중에 왕위 계승 순위가 한참 뒤인 자초(子楚)에게 투자해 대박을 터뜨렸다.

 

여불위의 투자 원칙은 아주 간단하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라면 무조건 투자해라! 즉 희소성의 투자원칙이다. ‘기화가거(奇貨可居)’ 특별한() 상품()은 무조건 차지()해도 좋다()! 그리고 당장은 힘들지만 미래가 있는 대상을 골라 투자하라! ‘거처곤부득의(居處困不得意)’ 현재 처()한 상황()이 어려워서() 자신의 능력과 뜻()을 제대로 펼칠 수 없는(不得)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 이런 투자 원칙을 가지고 자초 왕자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투자한 여불위는 결국 자초를 왕위에 오르게 하고 낙양의 제후로 봉해졌으며 큰 권력과 부를 갖게 됐다. 그런데 이렇게 성공 가도를 달리던 여불위의 인생 끝은 그리 좋지 않았다.

 

여불위의 권력이 강해지는 것에 위협을 느낀 진시황제는 여불위를 다방면에서 압박했고 결국 여불위는 스스로 독약을 먹고 목숨을 끊었다. 그토록 부귀영화를 누리던 투자의 귀재 여불위의 말로는 여느 여염집 필부(匹夫)보다도 못한 비참한 최후였다. 역사가 사마천은 <사기(史記)> ‘여불위열전(呂不韋列傳)’에서 여불위의 인생을 네 글자로 평가했다. ‘유문무실(有聞無實).’ 그의 인생은 화려하다는 소문()만 무성했지 실제()로는 별 볼 일 없는 인생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권력의 정점에서 세상을 호령했고 천하의 부를 소유해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했더라도 결국 여불위 인생의 실제는 별 볼 일 없었다는 것이다.

 

요즘도 명성만 무성하지 실제 인생은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 많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아주는 명예를 얻었고 누구나 부러워하는 권력과 부를 소유했던 사람들이 진정 행복하고 알찬 인생을 살다 갔느냐는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는 일이다. 권력에서 밀려난 후의 무상함, 재산을 서로 가지려고 싸우는 후손들의 추태, 이런 인생이유문무실, 소문만 무성하지 끝내 별 볼 일 없는 인생을 만드는 것들이다. 여불위가 정말 명성에 걸맞은 인생의 마무리를 하려고 했다면 물러날 때를 알았어야 옳았다. 워런 버핏은 투자에도 귀재지만 나눔에도 역시 뛰어난 사람이다. 그래서 투자와 기부활동을 잘하고 있는 그를 오마하의 현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공을 이뤘으면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功成身退)’고 말하고, 타로카드에서는태양(The Sun)카드를 뽑았다면 바보(The fool)카드로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청나라 문장가 정판교(鄭板橋)잘났다면 바보처럼 살아야 그 광채가 유지된다(難得糊塗)’고 강조했다. 인생이란 원하는 정점에 오르기도 힘들지만 적절하게 마무리하며 내려오는 출구 전략이 더욱 절실한 긴 여정이다. 세간의 평가와 명예만 의식하며 소문만 무성하고 내실은 별로 없는 인생을 살기보다는 내() ()이 튼튼한 인생을 사는 것이 훨씬 낫다는 생각을 여불위의 인생역정을 통해 확인해 본다.

 

 

 

박재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조부에게 한학을 배우고 성균관대에서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수학했다. 고전의 재해석을 통한 새로운 미래사회 가치를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지내고 현재 포스코 전략대학 석좌교수,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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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통계에 걸맞게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명을 너무나 쉽게 포기하고 세상을 등지고 있다. 경제적으로 옛날보다 많이 나아졌고 세계 유수의 선진국들과 경쟁하는 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것이 그렇게 자살을 할 만큼 비관적이거나 암울한 것도 아닌데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결국 정신적인 절망감과 자존감의 붕괴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자신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에 대해 구우일모(九牛一毛)의 선택이라고 한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행위를 아홉() 마리의 소()가 가지고 있는 털 중에 한() 개의 털()을 뽑는 것으로밖에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목숨을 구우일모처럼 헛되게 버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 중국 역사가 사마천(司馬遷)도 자신의 목숨을 포기할 정도의 절망감에 빠진 적이 있었다. 당시 서역을 정벌하다가 투항한 이릉(李陵) 장군을 옹호하다가 한() 무제(武帝)의 미움을 받아 감옥에 갇힌 사마천은 사형과 궁형(宮刑)의 비굴한 삶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내시가 되는 궁형을 받고 구차하게 살아남을 것인가? 아니면 누구에게 손가락질당하지 않고 떳떳하게 내 목숨을 던질 것인가? 사마천은 독백처럼 이렇게 내뱉었다. ‘가령 내가 형을 받고 사형을 당한다면 구우일모의 죽음밖에는 안 될 것이니 하찮은 개미나 땅강아지의 죽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사람은 한번은 죽게 돼 있지만 어떤 사람의 죽음은 태산보다도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重於泰山), 어떤 사람의 죽음은 기러기 털보다도 가벼운 죽음이 된다(輕於鴻毛). 이것은 결국 내가 어떻게 내 목숨을 사용하느냐의 차이에 달려 있는 것이다!’ 사마천은 목숨을 태산보다 소중하게 여겼고 결국 살아남아 <사기(史記)>를 완성했다. 역경에 처한 사람이 끝까지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여겨 그 역경을 극복하고 오히려 위대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대목이다. 사마천은 자신의 목숨이 무엇보다도 소중하며 역경을 극복한 사람들이 얼마나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는지에 대해 역사적 실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문왕(文王)은 감옥에 있으면서 <주역(周易)>을 지었고, 공자는 인생의 좌절 가운데 <춘추(春秋)>를 지었다. 굴원(屈原)은 추방을 당해 <이소경(賦離騷)>을 지었고, 좌구명은 눈이 멀었을 때 <국어(國語)>를 완성했다. 손빈(孫臏)은 다리를 잘리고서 <손빈병법(孫臏兵法)>을 지었고, 여불위는 촉() 땅으로 유폐됐을 때 <여람(呂覽)>을 전했으며, 한비(韓非)는 진나라 감옥에 갇혔을 때

<세난(說難)> <고분(孤憤)>을 지었다.’ 사마천이 열거한 이 사람들은 모두 역경 속에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고 역경을 극복해 재기에 성공한 사람들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치욕을 견디고 모질게 살아남아 새로운 목표와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보여주는 가장 위대한 모습 중에 하나다. 위대함이란 견디기 힘든 역경 속에서 자신의 목숨을 하찮게 여겨 아무렇게나 던지는 구우일모의 생명의식이 아니라 모질게 살아남아 새로운 모습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하는 과정에서 피는 화려한 꽃이다. 어렵고 힘든 경영환경이 예상되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자존감을 높여서 더 큰 나를 만들기 위한 변화와 도전이 어느 시대보다 중요한 가치다.

 

박재희 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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