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남 쌍둥이 형제가 서울대에 나란히 합격했다고 합니다. 관련 기사를 읽어보니 쌍둥이형제는 고등학교 재학 중에도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고 합니다. 공부비법으로 자기주도학습법과 오답노트작성활용법을 꼽았습니다. 부모님 입장에서, 이런 소식을 들으면 자녀분들이 먼저 떠오를 것 같습니다. 공부. 자녀들에게나 부모들에게나 끝나지 않은 숙제이니까요. 학교와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교육이 이루어지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사교육 실태조사결과(2007년)를 살펴 보면 수능과 내신에서 비중이 높은 영어와 수학 등 일부 과목에 국한된 과거와 달리 초등학생까지 매월 수십만 원을 들여 예체능과 논술을 배우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른바 ‘묻지마 사교육’ 광풍. 지역별 사교육 참여율을 보면 서울 강남이 93.9%, 서울이 81.6%, 수도권 81.3%, 광역시 77.2%, 중소도시 75.9%, 읍면지역 66.8%로 조사됐다. 연간 1인당 사교육비 지출 현황을 보면 초등학생 6학년은 100만~300만 원이 38%로 가장 많았고, 5백만~1천만 원이 12%, 2천만 원 이상을 쓴다는 응답(0.6%)도 있었습니다.


사교육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수업만으로는 좋은 대학을 갈 수 없다는 불안감을 크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남이 하니까 나도 해야 한다는 무계획적 기대심리가 작용된 것이지요. 하지만 과외나 학원 등 이른바 입시를 위한 학원교육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서울지역 고등학교 2학년 1165명 중 4년 이상 과외․선행학습을 계속한 학생과 과외를 전혀 하지 않은 학생의 중1~고2때 내신성적을 추적한 연구 결과, 과외나 선행학습을 수년간 해도 고학년으로 갈수록 그 효과가 크게 떨어져 과외를 전혀 받지 않은 학생과 성적 차이가 거의 없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특히 상위권 학생들 사이에는 성적 역전현상도 나타났습니다. 조사결과가 보여주듯 자기주도학습법이 주입암기식학습법보다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자기주독학습법>


효율적인 자기주도학습을 위해서 다음과 같은 방법이 필요하다.

• 잠자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한다. 처음부터 잠자는 시간을 줄이면서 공부시간을 정하는 것은 욕심이다. 낮 시간의 수업과 공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숙면 습관을 가진다.

• 수업시간에 열심히 듣되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수업에 방해되는 게 있다면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한다.

• 선생님이 중요한 정보를 제시할 때 활용하는 말투나 행동을 찾는다.

• 스스로 공부할 때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계획과 실천을 대조하면서 스스로 점검하는 것이 좋다.

• 한 달, 일주일, 하루 계획표를 세운다. 전체적인 것만 아니라 하루 계획까지 세워 매일 점검한다.

• 모든 공부는 쉬운 것부터 한다. 특히 수학문제가 그러하다. 공부를 하겠다는 의욕에 불타서 마구 덤벼들지 말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 자신감을 가진다.

• 교과서가 바로 해답이다. 적은 시간에 많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게 바로 교과서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 공부하는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공부하느냐를 고민한다. 무조건 책을 많이 본다고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하루의 계획을 시간 단위로 짜되 각 목표를 세부적으로 정한다.

• 평소에 준비하는 습관을 가진다. 시험기간만 되면 달달 외우는 공부 방법은 시험이 끝나면 곧바로 잊어버린다. 암기과목은 평소 소설책 읽듯이 처음부터 읽어나가는 게 좋다.

• 노트나 문제집의 여백을 잘 활용한다. 마냥 베끼거나 문제를 푼다고 공부가 잘 되는 건 아니다. 노트나 문제집의 여백에 보충설명이나 참고 사항을 메모하여 잘 활용한다.


* 출처:  송인섭 교수 강연록에서 발췌

 


쌍둥이형재 공부비법인 자기주도적학습과 '오답노트작성법'. 오답노트 또한 자신의 실수와 공부 이해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메꾸워 주는 공부법입니다. 짧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를 통해 오랫동안 기억알 수 있는, 시행착오 극복노트라고 보아도 좋을 듯 합니다.




공감하시면 아래 손가락 모양 클릭 (정기 구독도 + ^ ^) -
더 많은 사람들과 관련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

 

 

카이스트 입학 당시 로봇 영재라는 말을 들었던 한 학생이 자살했다고 한다. 대학 생활 1년. 성적비관 때문인지, 개인 사생활 때문인지 밝혀지겠지만, 너무 안타깝다. 자살한 로봇 영재는 공고를 졸업하고 입학사정관제도를 통해 카이스트에 입학했다. 주위의 기대는 컸겠지만,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꽉 짜인 공부 일정을 소화해 내어야 했을 것이다.

 
로봇 교육이란 완벽을 지향하는 교육이 아니다. 로봇을 만드는 것과 로봇 교육은 다르다. 로봇 교육은 로봇처럼 틀에 짜인 시나리오에 따라 이루어지는 교육. 로봇은 단 한 번 만에 완벽하게 만들어 낼 수 없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로봇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공학적 이해와 설계도 필요하지만 창의력이나 디자인 등 여러 요인이 함께 녹아들어져야 한다. 하지만 획일적인 시험이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없는 로봇 교육은 지양되어야 한다.

 
숨쉬기가 버거울 정도로 공부를 해야 하는 대학생활은 어떨까? 물론 카이스트 학교 문화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한 때 방송 연속극에 소개된 내용 수준 정도. 가끔 언론에 보도되는 기사 정도니.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다. 카이스트가 쉽게 아무나 들어 갈 수 있는 대학인가. 물론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 세계적인 로봇전문가나 과학자들은 하루아침에 대가의 반열에 오른 것은 아니다. 치열하게 공부를 하고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다시 공부의 신이 되어야 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서보면 왠지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는 무얼까.

 
카이스트를 탓하거나 겨냥한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 획일적이고 천편일률적인 로봇 만들기 인재 만들기 문화가 만연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짚어 살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 밖에 모르는 꽉 막힌 천재보다는 천재가 아니더라도 실패와 좌절을 통해 넘어졌다가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오뚜기 교육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공감하시면 아래 손가락 모양 클릭 (정기 구독도 + ^ ^) -
더 많은 사람들과 관련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시민교육 세미나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답니다. 세미나 이후 스웨덴 성인교육위원회 ,절제운동본부와 스터디 서클을 운영하고 있는 기관들을 방문해서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그들의 교육운동에 대한 열정에 큰 감동을 받았지요. 한국에도 이런 운동을 전파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스웨덴의 사회환경 및 교육환경

스웨덴 정치는 한마디로 국민과의 소통을 통한 국민정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전통은 1880년대 후반부터 오랫동안 사민당(사회민주주의)이 장악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산업혁명과 함께 불었던 음주문화를 바로 잡기 위해 금주, 절제운동, 1910년대 여성참정권운동, 930년대의 노동자의 삶의 질과 노동조건의 개선을 위한 노동운동 때문이기도합니다. 1940년대 사회적 협의를 통한 살바텐 협약(노사협력을 위한 협약), 1960년대 반전, 평화국민운동, 1980년대의 환경보호운동 등 수많은 국민운동을 범사회적으로 펼쳐나가면서 오늘날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이 정착되게 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1812년 이후 중립국 선언을 한 덕분이기도 하지요. 200여 년 간 전쟁의 포화를 빗겨갈 수 있었기에 경제적인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지요. 하지만 국민중심의 스웨덴 민주주의가 있기까지는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와 국민운동이 가강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웨덴에서 배움은 곧 자신을 가르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학습 개념이 녹아들여 있습니다. 교육의 요람인셈이지요. 스웨덴의 평생학습은 주로 지역마다 위치한 포크하이스쿨 (Folk high school)에서 스터디서클(Study circle)을 중심으로 시민 주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답니다. 포크하이스쿨은 민중대학 혹은 국민대학으로 번역되는데 사실 덴마크의 그룬트비히에 의해 만들어진 국민대학이 그 시조이지요. 하지만 지금은 전체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전파되어 스웨덴에도 곳곳에 포크하이스쿨이 건립되어 있어 언제나 자신들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자체적으로 학습 동아리를 만들어 함께 학습할 수 있도록 제도화되어 있지요.



스터디 서클의 유래와 현황

‘학습동아리 (study circle)’는 스웨덴의 대표적인 학습공동체로서 1902년 오스카 올슨 Oscar Olsson에 의해 창시되었습니다. 오스카는 사회교육의 모토를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교육으로 정하고, 성인교육이 성공ㆍ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조직이 학습자 자신들에 의해 조직되고 지지되어져야 한다고 믿고 있었지요.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한다고  그 소망 하나가 실천 기구로 스터디 서클을이 탄생하게됩니다(Blid, 1989). 스터디 서클은 지역주민들의 학습 품앗이를 통해 자기개발과 지역사회개발을 촉진하는 학습공동체운동입니다. 특히 시민들로 하여금 그들의 국가나 지역사회의 삶을 깊이 이해하고 참여하도록 하는 시민교육의 장이지요.

1947년부터는 정부의 재정보조를 본격적으로 지원받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급속 팽창하게 됩니다. 스웨덴의 성인교육위원회 산하에는 8개의 스터디 서클을 운영하는 조직이 있는데, 일정한 요건만 갖추게 되면 리더에 대한 사례금, 교재비, 운영비 등을 평가해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국고보조금을 받으려면 학습은 최소 20시간 이상 지속되어야 하며 3명 이상만 모이면 스터디 서클을 조직할 수 있지요. 정부보조금은 비용의 75% 정도, 장애인이나 이민자를 위한 소외자를 위한 스터디의 경우에는 전액 지원을 받습니다. 현재 스웨덴 성인의 60% 이상이 스터디 서클에 가입되어 있으며 전국에 약 28만개의 동아리가 운영되고 있다고 하니부러울 따름입니다.



스웨덴 학습동아리를 통한 시사점

스웨덴은 국가 차원에서 스터디 써클을 장려함으로써 성인들의 학습기회제공과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있다고 볼수있지요. 스터디 써클은 학습자의 자율적 참여와 참여자들의 협력학습, 타인의 의견 및 개인의 관점존중, 집단에서 도출된 지혜의 사회적 활용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학습공동체의 실천적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시사받을 수 있는 점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첫째 스터디 써클은 학습자 중심으로 운영되며 개개인이 존중되면서 학습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는 학습내용이나 주제가 학습자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 학습자들이 조직 운영 시 돌아가면서 리더의 역할을 하도록 한 점, 그리고 주된 학습방법으로 대화와 토론이 사용된다는 점 등에서 잘 드러난다.

>> 둘째 ‘공동의 학습’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즉, 스터디 써클의 목표는 동의를 전제로 설정되며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학습방법의 선택, 그리고 누구도 만남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조직활동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며, 실천적 의미를 중시하고 있다. 이는 나와 함께 더불어 사는 타인에 대한 배려를 중시한다는 것이며, 이를 통해 시민의 자질을 기르고 있다.

>> 셋째 리더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점이며, 리더를 위해 성인학교협회에서 다양한 강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사실상 학습동아리가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이들에 대한 교육과 훈련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할을 성인학교협회에서 담당해 주고 이들에 대한 사례금도 정부가 부담해줌으로써 실질적인 운영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 넷째 학습방법이 다양하다는 점이다. 학습동아리의 접근방식이 다양하기 때문에 학습자들의 다양한 교육적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으며 학습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다.




이렇듯이 스웨덴 학습동아리는 성인들로 하여금 자기주도적인 학습을 통해 자신의 관점으로 설정하게 되어있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을 보다 사회적인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함으로써 민주시민사회를 구축하는 토대가 되었지요.  뿐만 아닙니다. 정부는 적극적으로 협조, 필요한 재정적 뒷받침을 해 주었지요. 그 외에 정치적 조직/노동조합/대중운동단체 그리고 지방정부들도 자율적으로 이에 적극적으로 도왔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이 활성화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학습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다는 것, 사회 전체적인 학습 분위기도 한 몫을 담당했다고 봅니다.  결국 스웨덴의 학습동아리는 민과 관이 상호 협조하여 이루어낸 이상적인 학습공동체의 전형이지요. 거버넌스(협치)를 실천한 것입니다. 스웨덴을 방문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스웨덴 사람들 대부분이 타인의 고통은 곧 나의 고통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점. 기꺼이 남을 도울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스웨덴 시민들은 정의로운 사회, 평등한 사회는 곧 스웨덴의 경쟁력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요. 이러한 믿음은 스웨덴 복지사회를 만든 주요한 철학이자 배경입니다.  학습동아리는 진정한 학습사회를 위한 기초가 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도 많은 단체들이 교육문화를 꽃피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국가의 지원이나 시민의 참여는 부족합니다.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가랑비에 옷 젓듯이 평생교육, 시민교육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해봅니다.




공감하시면 아래 손가락 모양 클릭 (정기 구독도 + ^ ^) -
더 많은 사람들과 관련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





- 이번 여름방학에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시민교육 세미나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세미나 이후 스웨덴의 성인교육위원회 및 절제운동본부 그리고 스터디 서클을 운영하고 있는 기관들을 방문하고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교육운동에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필자는 우리도 이러한 운동을 전파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유사한 한국의 시민교육지인 ‘새이웃’을 통해 스웨덴의 학습동아리 운동과 시민교육에 대해 소개하기로 하였다.
스웨덴의 사회환경 및 교육환경
스웨덴의 정치는 한마디로 국민과의 소통을 통한 국민정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통은 1880년대 후반부터 오랫동안 사민당(사회민주주의)이 장악하였기 때문이며 산업혁명과 함께 불었던 음주문화를 바로 잡기 위해 금주, 절제운동, 그리고 1910년대 여성의 참정권 확대를 위한 여성참정운동, 그리고 1930년대의 노동자의 삶의 질과 노동조건의 개선을 위한 노동운동, 1940년대 사회적 협의를 통한 살바텐 협약(노사협력을 위한 협약), 1960년대 반전, 평화국민운동, 1980년대의 환경보호운동 등 수많은 국민운동을 범사회적으로 펼쳐나가면서 오늘날의 복지국가 모델을 정착시키게 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1812년 이후 중립국 선언을 한 덕분에 200여 년 간 전쟁을 치루지 않아도 되고 그 결과 경제적인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국민중심의 스웨덴 민주주의가 있기까지는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와 국민운동이 가강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할 수 있다.
스웨덴에서 배움은 곧 자신을 가르치는 행위를 의미하며, 태어나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평생학습을 커버하는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 스웨덴의 학습은 주로 지역마다 위치한 포크하이스쿨 Folk high school에서 스터디서클 Study circle을 중심으로 시민 스스로에 의해 자기주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포크하이스쿨은 민중대학 혹은 국민대학으로 번역되는데 사실 덴마크의 그룬트비히에 의해 만들어진 국민대학이 그 시조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체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전파되어 스웨덴에도 곳곳에 포크하이스쿨이 건립되어 있어 언제나 자신들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그 안에서 자체적으로 학습 동아리를 만들어 함께 학습할 수 있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스터디 서클의 유래와 현황
‘학습동아리 study circle’는 스웨덴의 대표적인 학습공동체로서 1902년 오스카 올슨 Oscar Olsson에 의해 창시되었다. 그는 사회교육의 모토를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교육으로 정하고, 성인교육이 성공ㆍ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조직이 학습자 자신들에 의해 조직되고 지지되어져야 하며 그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한다고 믿고, 실천 기구로 스터디 서클을 조직하였다(Blid, 1989). 스터디 서클은 지역주민들의 학습 품앗이를 통해 자기개발과 지역사회개발을 촉진하는 학습공동체운동이며, 특히 시민들로 하여금 그들의 국가나 지역사회의 삶을 깊이 이해하고 참여하도록 하는 시민교육의 장이다.
1947년부터는 정부의 재정보조를 본격적으로 지원받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급속 팽창하게 된다. 스웨덴의 성인교육위원회 산하에는 8개의 스터디 서클을 운영하는 조직이 있는데 이들은 일정한 요건만 갖추게 되면 리더에 대한 사례금, 교재비, 운영비 등을 평가하여 지원하고 있다. 국고보조금을 받으려면 학습은 최소 20시간 이상 지속되어야 하며 3명 이상만 모이면 스터디 서클을 조직할 수 있다. 정부보조금은 비용의 75% 정도이며 장애인이나 이민자를 위한 소외자를 위한 스터디의 경우에는 전액 지원을 받기도 한다. 현재 스웨덴 성인의 60% 이상이 스터디 서클에 가입되어 있으며 전국에 약 28만개의 동아리가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스웨덴 학습동아리를 통한 시사점
스웨덴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스터디 써클을 장려함으로써 성인들의 학습기회제공과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있다. 스터디 써클은 학습자의 자율적 참여와 참여자들의 협력학습, 타인의 의견 및 개인의 관점존중, 집단에서 도출된 지혜의 사회적 활용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학습공동체의 실천적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시사받을 수 있는 점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첫째 스터디 써클은 학습자 중심으로 운영되며 개개인이 존중되면서 학습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는 학습내용이나 주제가 학습자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 학습자들이 조직 운영 시 돌아가면서 리더의 역할을 하도록 한 점, 그리고 주된 학습방법으로 대화와 토론이 사용된다는 점 등에서 잘 드러난다.
>> 둘째 ‘공동의 학습’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즉, 스터디 써클의 목표는 동의를 전제로 설정되며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학습방법의 선택, 그리고 누구도 만남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조직활동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며, 실천적 의미를 중시하고 있다. 이는 나와 함께 더불어 사는 타인에 대한 배려를 중시한다는 것이며, 이를 통해 시민의 자질을 기르고 있다.
>> 셋째 리더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점이며, 리더를 위해 성인학교협회에서 다양한 강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사실상 학습동아리가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이들에 대한 교육과 훈련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할을 성인학교협회에서 담당해 주고 이들에 대한 사례금도 정부가 부담해줌으로써 실질적인 운영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 넷째 학습방법이 다양하다는 점이다. 학습동아리의 접근방식이 다양하기 때문에 학습자들의 다양한 교육적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으며 학습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다.
이상을 종합해 볼 때, 스웨덴의 학습동아리는 성인들로 하여금 자기주도적인 학습을 통해 자신의 삶의 관점을 설정하게 하고, 나아가 자신을 보다 사회적인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함으로써 민주시민사회를 구축하는 토대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이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필요한 재정적 뒷받침을 해 주었고, 그 외에 정치적 조직/노동조합/대중운동단체 그리고 지방정부들도 자율적으로 이에 적극적으로 도왔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이 활성화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학습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다는 점이며, 사회 전체적인 학습 분위기도 한 몫을 담당했다고 본다. 그러므로 결국 스웨덴의 학습동아리는 민과 관이 상호 협조하여 이루어낸 이상적인 학습공동체의 전형이라 하겠다.
스웨덴을 방문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스웨덴 사람들의 대부분은 타인의 고통은 곧 나의 고통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 기꺼이 남을 도울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의로운 사회, 평등한 사회는 곧 스웨덴의 경쟁력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믿음은 스웨덴을 오늘날의 복지사회로 만든 주요한 철학이 되었으며, 학습동아리는 진정한 학습사회를 위한 기초가 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출처: 새이웃
글:이해주 교수님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

 

 

 

연합뉴스에 따르면 한 고교생이 50미터 굴뚝에 매달려 자살하려 했다고 합니다. 출동한 구조대의 설득에 내려왔다고 하니 다행이네요. 경찰은 학생이 굴뚝에 오르기 전 보낸 문자메시지나 가족들의 이야기를 미루어 떨어진 성적 때문이라고 이라고 추정하는 것 같습니다. 떨어진 성적 때문에 떨어지면 절대 안 됩니다. 성적 비관 자살 사건은 많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사회 여론은 한국 교육 현실에 우려를 보냈지요. 오죽하면 자살을 했을까. 하지만 자살은 그 어는 것 하나 풀어주지 못합니다. 자살할 용기가 있다면 삶을 선택하는 것이 낫지요. 그 용기면 어떤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자살은 결코 자살을 선택한 사람이나 주위 분들에게 날개를 달아 주지 않습니다. 깊은 상처만 남기지요.

 
완전한 인생이 없듯,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낙담에 빠지고, 좌절과 실패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하려 하면 안 됩니다. 사람이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이유는 한계 상황에 이르렀을 때 극복하기 위한 힘을 길러주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경험 또한 중요하지요. 고등학교 시절은 중요할 수 있지만,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는 지나가는 한 과정일 뿐입니다. 모든 것이 고등학교 때 판가름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누구나 읽기 힘든 경전이 있듯이, 불완전한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님들도 매순간 앎을 넘어 깨달아야 합니다.

 

굴뚝에 오른 한 한생의 끝 모를 바닥의 공포. 정말 성적이 떨어져서 그랬다면, 성적 중에 잘 한 과목을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누구에게는 힘든 과목이 누구에게는 쉬울 수 가 있지요. 굳이 학과목이 아니더라도 사람에게는 장점이 있습니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습니다. 아무쪼록 힘든 상황을 이겨내고 50미터 굴뚝 계단을 오를 때 생각으로 악착같이 생활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희망의 날개를 만들어 보십시오. 이 학생뿐만 아닙니다. 혹시나 마음속의 굴뚝을 오르고 있는 학생들이 있다면 내려오시길 바랍니다. 인생은 길고 머니까요. 평생 공부해야 하는 시대에 한 때의 성적 부진으로 날개를 접지 마시길 바랍니다.

 



공감하시면 아래 손가락 모양 클릭 (정기 구독도 + ^ ^) -
더 많은 사람들과 관련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





쥐식빵은 왜 탄생되었을까?


달콤한 잼이 아니라, 쥐가 들어있는 식빵. 인터넷 공간을 달구었던 쥐식빵 논란이 종지부를 찍었다. 쥐식빵을 제보한 분이 자수를 했기 때문이다. 자수는 했지만 광명 찾을 수 있을까?  식빵에 쥐가 들어있다는 것을 한 사이트에 공개(제보)한 인물은 경쟁업체 빵집 주인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식빵을 구입했는데 쥐가 나왔다면, 당연 해당 공급업체나 가게에 직접 항의할 일이다. 또 하나는 왜 경쟁업체 가게에서 식빵을 구입했을까. 자신의 가게에서 만든 식빵이 맛이 없어서 그랬을까? 여러 가지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제보자의 진술 또한 쥐꼬리를 폈다 감추기를 반복했다.  쥐 식빵을 제보했던 분은 인터넷 PC방에서 타인의 이름으로 한 사이트에 사진을 공개했다. 떳떳한 일인데 자신의 신분을 감출 필요가 없었다. 


동네방네 수제 빵집도 시나브로 없어졌다. 대형 체인점 빵집. 코 앞 경쟁은 과도한 불협화음을 낳을 수 있다. 마음의 쥐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쥐를 떠올릴 때 좋은 이미지 보다 나쁜 연상을 많이 한다. 누가 당신에게 쥐 같은 사람이라고 하면 어떤 기분일까. 동물학자도 아니고, 쥐 전문가도 아니니 쥐의 성향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마음의 쥐란 공정한 쥐가 아니라 불공정한 쥐다. 공정하게 경쟁을 할 자신이 없으면 마음의 쥐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경쟁은 결국 쥐 식빵 사건 같은 상황을 연출 할 수 있다. 사람인 이상 평상시 잘 먹던 식빵인데, 쥐가 나왔다고 하면 소비심리가 금방 위축된다.  특히 먹을 것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면 지탄 받을 일이다. 이 사건을 보면서, 우리 사회 경쟁은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마음의 쥐는 없는지 돌이켜 보았으면 한다.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상처 받은 사람은 없는지. 바깥세상을 전염시키는 쥐보다 마음의 쥐가 더 무서울 수 있지 않을까? 한 번 자란 마음의 쥐는 잡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음의 고양이도 키울 일이다. 쥐식빵 자작극 소식을 들으면서 드라바 <제빵왕 김탁구>가 떠올랐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올해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 중에 하나는  ‘제빵왕 김탁구’.  시청률 44%를 돌파하기도 했다. 70년대 경제 개발기 때 김탁구가 제빵왕으로 등극하기 까지 과정을 다룬 드라마가 왜 상한가를 쳤을까.
제빵왕 김탁구를 보면서 1999년에 방송된 MBC 드라마 ‘국희’가 떠올랐다. 국희 또한 당시 시청자의 심금을 울린 드라마다. 국희는 제빵업계가 제과업계의 성장 비화를 담고 있다. 한국 현대사 초창기의 기업 성장 드라마. 국희의 유명세 때문에 국희이름을 딴 과자가 나올 정도였으니 미루어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그 당시 이 드라마가 나가자, 과자(제과) 매출이 급증하기도 했다.

 
사람은 과거의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다. 디지털 시대, 그 많았던 골목길 빵집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골목길이 사라지듯. 빵집을 지날 때마가 갓 구워 낸 빵 굽는 냄새가 얼마나 가슴을 콩닥거리게 했나. 제빵왕 김탁구의 인기는 어쩌면 아날로그 시대의 향수때문인지 모른다. 국희가 그랬듯이. 고등학교 1학년 때 필자는 다니던 학교 앞에서 하숙을 했다. 같은 방을 썼던 하숙집 주인의 동생분과 같은 방을 썼다. 그 분은 한 호텔의 제빵사였다. 전라도 한 작은 섬에 태어난 이 분의 학력은 없었다. 가정이 어려워 빵집에서 점원으로 생활하면서 빵 기술을 배운 독학 제빵사였다. 저녁상을 비우고, 그 분은 나에게 빵 이야기를 해주었다. 자긍심이 대단했던 걸로 기억한다. 빵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 분이 건내 준 빵 이야기와 퇴근 때마다 가져온 빵 때문에 잠시나마 빵을 사랑하기도 했다.

 

세월은 흘러 군대를 가게 된 나는 훈련병 시절, 너무나 빵이 먹고 싶었다. 나뿐만 아니었을 것이다. 고된 훈련과 강원도 전방의 살벌한 겨울 날씨, 금방 사람 잡을 것 같은 교관들의 목소리에 주눅이 들어서인지 언제나 허기졌다. 겨우 겨우 주말을 이용 군대 안 가게(당시 피엑스)에서 구입한 빵이나, 배식으로 나온 빵을 아껴두었다가, 몰래 화장실에서 먹었을 정도이니. 왜 그렇게 군대에서는 빵이 먹고 싶었던지, 돌이켜 보면 헛웃음만 나온다. 군대를 제대하고 영화관련 일을 할 때 한 감독과 저녁식사 자리에서 군대이야기를 하다가 빵 이야기가 나왔다. 이 분도 역시 군대에서 가장 먹고 싶었던 것이 빵이라고 이야기를 했을 때 동병상련. 가슴이 찡했다. 그 감독은 가장 싫어했던 것이 빵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가족 면회 때, 가장 먼저 이야기 했던 것이 빵 사달라는 말.

 

빵은 중세시대 때 권력이었다. 빵 부스러기를 버리는 것은 죄악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빵은 서양의 주식이다. 이 빵이 한국에 건너와 제빵왕을 탄생시켰다. 빵과 제과는 산업이 되었다. 동네 구멍가게가 체인점으로 대체되었듯이 빵집도 마찬가지다. 그 많았던 동네방네 제빵왕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제빵왕 김탁구와 제과왕 국희는 눈물 젖은 빵의 신화다.



맺는 말


경쟁업체의 한 빵가게 주인이 매출을 올리기 위해 벌인 쥐식빵자작극으로, 연말연시 빵매출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쥐식빵 자작극은 마음의 쥐를 키웠기 때문이다. 자신의 빵집에서 쥐식빵을 만들어 낼 정도면 무슨 일을 못하겠는가. 과도한 경쟁이 낳은 시대의 우울한 식빵이야기다. 새해에는 마음의 쥐를 키우지 말고 서로 공생하는 문화를 만들면 좋겠다. 이웃 사촌이 사라진 요즘, 공동체 문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함깨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쥐식빵자작극같은 일은 다시 벌어져서는 안 된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 아들이 쥐식빵을 경쟁업체에서 구입했다고 거짓말한 아빠. 아들이 묻고 갈 상처를 생각해보라.





 

공감하시면 아래 손가락 모양 클릭 (정기 구독도 + ^ ^) -
더 많은 사람들과 관련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모든 종교는 도덕을 전제로 한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특정 종교를 비판하거나 폄하하고 싶은 마음 없습니다. 하지만 종교의 이름으로 교리에 따라 병원에서 수혈을 거부, 자신의 자식을 숨지게 한 일은 충격적입니다. 두 살 배기 간난 아기의 생명을 뺏어 갈 수 있는 것이 종교의 자유입니까. 교정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종교의 원리만 원칙만 강조하는 것은 무지입니다.

 

자신이 믿는 종교의 최면술에 걸려, 자신이 믿는 종교만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무지몽매한 사람들. 대문호 톨스토이는 자기들에게 주입된 교리만 강조하고 다른 종교를 배타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야 말로 종교의 탈을 쓴 늑대와 다름없다고 말했지요.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된 수혈거부는 영아 사망 사건은 간접적 살인입니다. 물론 서양 관점(?)의 의료 체계나 치료방식이 정답은 아닙니다. 하지만 살 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 때문에 죽은 아이는 누가 책임지나요. 지금이 봉건시대입니까. 야만시대입니까.

 

 “모든 종교는 도덕을 전제로 한다” 라는 칸트의 명제에 대해 다시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도덕이라는 말은 쉬운 것 같지만 참 어려운 용어이자 가치입니다. 위키 백과에 나와 있는 도덕을 살펴보면, <도덕(道德, 영어 "Morality"는 라틴어moralitas에서 유래했다.), 곧 "예의범절, 성품, 예의바른 행동"(manner, character, proper behavior")은 덕과 악덕을 분간하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다>. 도덕은 사회공동체나 종교에 따라 천차만별, 다양하게 해석되고 적용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편적인 도덕의 기준은 있어야지요. 영아를 수혈 금지라는 종교적 규약에 따라 죽음의 길로 안내하는 것이 예의 바른 행동입니까. 덕인가요?

 

종교마다 다름의 가치를 인정해 주어야 하지만, 무엇이 이단이고, 비도덕적인지 판단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종교의 이면과 종교 너머의 인간적 존재와 가치가 우선이니까요.

 




공감하시면 아래 손가락 모양 클릭 (정기 구독도 + ^ ^) -
더 많은 사람들과 관련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

 





오늘은 서울을 비롯해서 여러 지역에 눈이 내린다고 합니다. 수능 시험을 치른 학생들은 수능성적표를 어제부터 인터넷을 통해 확인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시험이 끝나자마자 어느 정도 자신의 성적을 가늠(자체 채점)할 수 있었겠지요. 좋은 성적을 받아 기뻐하는 학생도 있었을 것이고, 반대로 낙담하는 학생도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구인들 시험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새벽부터 이렇게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어른 된 입장에서 미안해서입니다.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의 항로가 결정되는 것이 아닌데, 현재 한국 사회는 그렇지 못하지요. 빠른 진로 선택이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최근에 인터넷에 공개된 <고등학생의 하루>라는 11초 동영상이 떠오릅니다. 자신의 선택해야 할 길에 대해서 많은 생각과 경험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주어져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지요. 11초 같은 반복된 하루니까요. 지금의 제도에서는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우선 중요하니까요. 그렇다면 대학교에 가지 못하는 학생들은 ‘낙오생; 일까요?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사회여론은 그렇지 않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에 입학 하는 것이 맞는 걸까? 자신이 관심 있는 영역에서 사회경험을 2년 정도 해보고, 대학에 가는 것은 어떨까? 아시다시피 대학교에 입학하면 역시 시험의 늪에 빠져야 합니다. 자신의 전공보다 졸업 이후의 취업이 중요하니까요. 이런 교육시스템에서 학생들의 창의력이 살아날까, 많은 교육자들과 학부모님들은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교육개혁이라는 것이 쉽지 않지요. 여러 합의를 거쳐, 지속적으로 이루어내는 힘이 필요하니까요.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조변석개로 바뀌는 교육정책은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할 뿐입니다.

 

 
저도 취업을 해서 직장생활을 오래 해보았지만, 전공과는 무관한 일에 종사 했습니다. 아마 대부분이 그럴 것 같습니다. 특히 인문분야는 더 그렇지요.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고 가정을 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지요. 가치 지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자신의 선택한 길에 대해 후회를 하지 않지요. 가끔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듣습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냐고? 이제 그 물음에 답해 주어야 합니다. 시험이 없어 질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학생들이 보다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경험하는 시간들이 많이 주어졌으면 합니다. 젊은 시절 읽은 책 한권이 인생의 길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요즘의 학생들이 시험과 동떨어진 인문학 서적 한 권 읽을 틈이나 있는지요.



수능성적표를 받아본 학생 여러분, 성적이 좋게 나오지 않았다고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기회는 여러 번 있으니까요. 학부모님들도 대화를 많이 나누었으면 합니다. 요즘은 평생교육시대입니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도 사라졌습니다. 공부도 제 때에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여행도 다니고 책도 읽고 생각의 폭을 넓혀 보시길 바랍니다. 세상은 우물 안 대학이 아닙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도 많다는 것을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 영화 한 편(발레교습소)도 추천해 드리고 싶네요
 

"나머진 하면서 알면되잖아,,, 이제 겨우 스무살인데..
젊음이라는거... 언제나 무언갈 할수있다는 그 자신감 그래서 젊은이 좋다."(발레교습소 중에서)

 

 

 




공감하시면 아래 손가락 모양 클릭 (정기 구독도 + ^ ^) -
더 많은 사람들과 관련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

 

 


한 중년의 여교사가 승진 문제 때문에 자살했다고 합니다. 입시철이 끝나고 성적이 공개된 뒤에 학생들의 자살 소식이 간간히 들렸습니다. 그 때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시나브로 그 숫자가 늘어났지요. 자살 소식을 전해들을 때마다 언론에서는 앞 다투어 보도를 합니다. 하지만 그 때 뿐이지요. 결국 성적, 시험 지상주의가 만든 시대의 자화상인데.

 
선생님의 자살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1989년에 만들어진 한국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라는 영화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이제 학생뿐만 아니라 선생까지 성적순에 시달리고 있나 봅니다. 선생 뿐 이겠습니까. 직장인들도 마찬가지지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여전히 한국 사람의 행복은 성적순인가 봅니다. 한국의 행복지수는 어떨까요? 최빈국이라 불리는 부탄이라는 나라는 행복지수가 높지요. 그렇다면 행복은 어디에서 찾아야 될까요. 한 교사의 자살을 그냥 단순히 스쳐 보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내일은 수능성적표를 발급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실수로 성적이 좋지 않게 나온 학생들도 있을 겁니다. 한 번의 시험이 인생의 행로를 바꿀 수 없습니다.

 
자살공화국이라는 한국. 이제 자살은 막아야 합니다. 자살이 해답이 될 수 없습니다. 누구나 살면서 좌절할 수 있고 실패를 맛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이여내고 뚫고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행복은 절대 성적순에 따라 오지 않습니다. 성적 보다 무서운 것은 성적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시선이 더 큰 문제입니다. 이제 사회는 행복이 성적순이 아니라고 다시 말해야 할 때입니다. 사회 제도는 성적에 따라 저울질 되지만, 결코 성적이 인생을 좌우하지 않는다고 어른들은 말해야 합니다.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이 좌절하지 않도록 따뜻한 말 한마디와 격려가 필요합니다. 자살의 절벽으로 학생들을 내몰아서는 안 됩니다. 학생뿐만 아닙니다. 편견의 시선을 버려야 합니다. 직업의 귀천 없이 누구나 떳떳하게 자기의 자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칭찬해 주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난 로보트도 아니고 인형도 아니고 돌맹이처럼 감정이 없는 물건도 아니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영화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에 출연한 이미연 대사 중에서)






공감하시면 아래 손가락 모양 클릭 (정기 구독도 + ^ ^) -
더 많은 사람들과 관련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

 


똥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Pee bag'을 들고 있는 소년

 

점심 맛있게 드셨는데, 똥이야기 드려 죄송합니다. ^^
시인 안도현씨가 최근 강의 중에 “시는 똥을 대변이라고 부르면 시가 아니다. 똥을 똥이라 불러야 시라고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대변은 가식적이다. 시는 똥처럼 말랑말랑해야 된다는 속뜻이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사회의 똥은 말랑말랑하지 않으며 건강하지도 않습니다.
똥이 흙과 만나 독소가 빠지고 융화되어야 하는데,
물에 스며들어 독이 되고 있는 현실이니까요.
똥이 자원이 되어야 하는데 공해가 되고 있습니다. 화학첨가제 듬뿍 들어 있는 음식이나,
패스트푸드를 먹는데 똥답게 똥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똥이 오염되고 물이 오염되고 땅이 오염되고 인간이 오염되고 있습니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사람 똥의 순환과 가치만 잘 이해해도
세상이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 갈 터인데,
똥을 똥 같지 않게 생각해서 똥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요?


 


물이 죽어가고 있다. 3월 22일 '세계 물의 날'

 
세계 26억의 사람들, 100명 중 40명이 위생시설(화장실 등)이
갖추어지지 않은 곳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사람 몸에 치명적인 질병균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물을 펑펑 쓰고 있지만
세계 남반구(개발도상국)의 많은 사람들이 물이 없어, 물이 오염되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똥을 처리할 수 있는 시설도 없으니,
아무렇게나 방치된 똥은 빗물 때문에 강으로 흘러들고 오염된 물을 마시니
병에 안 걸릴 재간이 있겠습니까?

 
외국의 한 NGO(사회적 기업; NGO의 역할이 사회적 기업으로 외연을 확대하고 있음,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실질적인 대안을 찾는)에서는 남반구의 똥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하기 위해 ‘peepoo bag’을 개발했습니다. 이 백은 비닐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똥을 눌 수 있는 통에다 이 제품을 두르고(쓰레기통에 분리수거 비닐을 설치하듯), 똥을 누면 됩니다. 비닐재료는 천연 소재로 만들어져 있고, 똥을 비료로 바꾸는 역할을 합니다. 냄새도 나지 않게 천연 향신재료가 섞여 있다고 합니다.

 

 

24시간 후에 똥은 땅을 살리는 비료로 변신됩니다. 농사짓는 땅에 섞거나, 비료회사에 팔수도 있다고 하네요. 2009년 중반기에 생산 보급된다고 하니 기대가 됩니다.

정말 '물의 날'도 물의 날이지만 똥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똥의 날'도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

 “문제는 우리가 똥의 실체를 제대로 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똥은 폐기물이 아니라 자원이다. 그것을 자원으로 볼 때 재순환할 수 있는 방법도 보인다. 똥을 폐기물이라고 고집하면 우리 스스로 장님이 되는 것과 다름없다. 처리해서 내버려야 할 폐기물이라고 믿음으로써 우리 스스로 엄청난 짐을 지는 셈이다.” - 조셉 젠킨스-

 

 <추천해 주고 싶은 똥이야기가 담긴책들>

 

 

왼쪽부터 '똥살리기 땅살리기', '똥이 자원이다', Why? 똥'

 

 

<똥과 관련된 재미난 사진>

이웃이신 재석님 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사진 원출처는 '산노을 산악회'카페입니다)

 

 

 

 

<원순닷컴에서 가져온 사진도 잼있네요>

 

 

     
공감하시면 아래 손가락 모양 클릭 (정기 구독도 + ^ ^) -
더 많은 사람들과 관련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