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4.06.30 꽃들은 어디로 갔나
  2. 2013.03.22 봄맞이

30세 연상 김동리와 결혼한 여인, 서영은의 ‘살아낸 사랑’ <꽃들은 어디로 갔나>라는 책은

올봄에 나온 서영은 씨의 자전적 소설이다.

그녀는 소설가이면서 우리나라 문학의 거장인 김동리 선생의 세 번째 부인이기도 하다.

당시 김동리의 연애사와 결혼생활은 파란만장했고 그의 작품만큼이나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신랑 나이 74세, 신부 나이 44세로 시작한 그들의 상처투성이 결혼 생활은

당시 매스컴을 통해서 비교적 소상히 알려졌다. 한마디로 충격적이었다.

사실 1987년에 결혼해서 1990년에 김동리 선생이 쓰러졌으니 결혼생활이 길지는 않았다.

이 책은 고작 3년 남짓한 시간에 벌어진 일들을 쓴 글인데,

서영은 씨 나이 칠십이 넘어서야 비로소 그녀는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객관화 시킨 것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서영은의 열혈 독자이다.

작품은 물론 인간 서영은도 좋아한다.

우선 내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 박완서를 닮은 겸손한 외모가 맘에 든다.

요즘 가볍고 경박한 글이 넘치는 마당에 고뇌하는 작가로서의

치열성과 진정성이 강하게 녹아있는 그의 글은

그래서 더욱 돋보이고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머리가 아닌 경험과 끝없는 자기성찰에서 불러오는 글,

그녀의 구도자 같은 삶과 거의 일치한다.

아마도 작가의 치열함으로 따지자면 <혼불>의 작가 최명희 씨에 버금가리라 본다.

 

 

한편 ‘왜 그녀는 서른 살 차이나 나는 김동리 선생과 결혼을 했을까?’

‘전처 자식들과의 재산분쟁은 어떻게 끝이 났을까? 등등

평소 작가에 대한 나의 저급한 호기심도 많았는데

책에서 작가의 사생활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그 은밀함을 나는 야금야금 즐길 수 있었다.

더하여 서영은의 장편으로는 14년 만에 나왔다고 하니 이번 <꽃들은 어디로 갔나>는

이래저래 반가운 책이었다.

 

 

문단에 데뷔하기 위해 글을 들고 찾아간 이십대 초반에 김동리 선생을 만나고

그의 사랑의 포로가 되어 너무도 험난한 삶을 살았던 서영은,

그는 30대에 혜성 같이 나타나 1983년 <먼 그대>라는 작품으로

이상 문학상을 받은 화제의 여성작가였다.

그런 그녀에게 김동리 선생과의 만남은 생의 가시밭길에 제 발로 뛰어든 형국이었다.

 

 

책에는 작가의 인고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는데

본인 스스로도 나이 칠십에 쓴 이 작품은 가장 아프게,

가장 나중까지 울면서 쓴 마음자세의 결과라고 고백했다.

 

 

김동리의 두 번째 아내 역시 소설가였다.

손소희 여사로 그녀는 서영은과 모녀 같은 신분을 유지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서른 살 아래의 젊은 작가와 사랑에 빠진 것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암환자로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손 씨는 그들의 관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김 선생은 가엾고 불쌍한 사람이니 네가 잘 돌봐드려야 한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1987년 손소희 씨는 세상을 떴다.

서영은 씨는 이때부터 수많은 고통과 아픔을 온몸으로 견디며 아슬아슬한 결혼생활에 돌입한다.

 

 

오랜 연애기간을 청산하고 두 사람은 서울 정릉에 있는

봉국사에서 조용히 결혼식을 올렸다.

절 마당은 소리마저 쓸어낸 듯 적막했고 하객이라곤 서영은의 노모와 이모,

그리고 운전기사가 전부였다.

 

 

신랑과 신부는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아니라 이미 살아온 날들에 대해

스님이 하시는 주례사를 엄숙하게 듣고 있었다.

아마도 이날 74세의 신랑은 팔순의 장모에게 떳떳치는 못했으리라.

누구에게 축복 받는 결혼식도 아니고,

죽은 아내의 무덤의 떼가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서둘러 한 혼인이기에

만일 새 아내를 맞은 것이 세상에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축복은커녕 손가락질 받을 일이었다.

 

 

더구나 그에게는 전처 자식이 다섯이나 있지 않은가. 그것도 아들만 다섯.

그래도 노모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이제 한시름 놓았다’는 말을 남기고 결혼식 이틀 만에

아들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떠났다.

그도 그럴 것이 딸이 이십 대에 만나 사십을 훌쩍 넘긴 마당이니

두 사람이 냉수라도 떠놓고 어서 식을 올리라고 성화를 해대던 어머니였다.

노모의 그런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그들의 빛나던 사랑은 결혼이라는 현실 생활 안에서 점점 비참해졌다.

막상 결혼하여 한집에 살다보니 가슴 떨리게 하던 연인은 온데간데없고

의심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노인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연인과 남편 사이에는 너무나 큰 격차가 있었다.

남편은 잔소리꾼에다가 인색하기 짝이 없었다.

생활비도 잘 주지 않았고 집에서 일하는 아줌마의 월급까지 깎아내리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그녀는 날이 갈수록 구차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삶이 참 두렵구나!’ 불쑥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고 홀로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혼자 살 때가 훨씬 행복했다.

그런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반야심경’을 따라 읽는 것.

 

 

작가는 나중에 자신의 사랑을 ‘살아낸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사랑이 주는 아름다움과 설렘 뿐 아니라

스러지는 고통과 슬픔까지도 함께 끌어안고 가야하는 사랑이었기에...

언젠가 4박5일의 잠적 여행 끝에 돌아온 사람에게 김동리 선생은 손찌검까지 했다.

 

 

헤어지고 싶었다는 여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날아든 주먹세례.

코에서는 피가 흘렀고 말을 하면 할수록 더 때렸다.

하지만 그녀는 매를 피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기뻤다고 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운명의 확인이었다.

‘그래, 견디어 내리라, 무슨 일이 있어도 견디어 내리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며

그녀의 운명을 재차 확인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과연 학창시절에 <무녀도> <등신불> <사반의 십자가> 같은

주옥같은 작품으로 만났던 김동리라는 소설가가 고작 이런 인간이었단 말인가,

라는 탄식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그 자신의 개인사가 한국 문학사와 궤를 같이 하고,

여러 예술 단체의 굵직굵직한 장도 많이 맡았던 그가 과연 한국의 대작가이며

그토록 사회적 경륜이 화려한 인물이 맞는지, 매우 혼란스러웠다.

 

 

일상생활에서 남편의 행동, 남편의 말에 적이 실망할 때마다

작가는 전처인 손소희 여사를 떠올렸다.

그는 어떻게 이 수모를 견디고 살았을까,

또한 이 세상에서 아내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다른 많은 여성들도 떠올렸다.

지금도 많은 부부들이 떫은 감정과 슬픔은 속으로 다 감추고 겉보기만

금슬 좋은 부부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김동리 씨는 말년에 상다리가 휘어지게 술상을 차려놓고

그를 찾아오는 손님들과 술자리를 갖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잔이 몇 순배 돌고나면 항상 그가 하는 말이 있다.

“나는 다 가진 사람이오. 첫째 아내는 자식을 줬고, 둘째 아내는 재산을 줬고, 셋째 아내는 사랑을 줬어요.”

이렇듯 그는 나이로 인해 세상일로부터는 ‘귀거래’했으나 그의 여생은 도연명보다 더 풍성한 듯했다.

 

 

본인 말대로 아무 부족함 없어 보이던 그가 갑자기 의식의 절벽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어느 여름날 뇌졸중으로 쓰러져 길고 긴 병원생활로 가게 된 것.

이로써 서영은 씨는 한순간에 모든 걸 잃게 되었다.

부인을 제쳐두고 평소 왕래가 없었던 전처 자식들이 나타나 온갖 참견과 결정을 다해버린다.

 

 

병원을, 의사를, 수술을, 간병인을 그들이 다 정하고 새어머니는 얼씬도 못하게 한다.

그녀가 남편과 살았던 집마저 빼앗는다.

그리고 이어진 끝없는 재산분쟁.

그 과정은 당시 신문에도 여러 번 났었다.

 

 

사실 1987년에 결혼해서 1990년에 김동리 선생이 쓰러졌으니 결혼생활이 길지는 않았다.

고작 3년 남짓한 시간에 벌어진 일들인데,

서영은 씨 나이 칠십이 넘어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객관화 시킨 것이다.

그러니까 그 담담함에 이르기까지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다.

 

 

비슷한 연배로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30년의 나이 차 때문에 공감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고.

나는 공감했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큰 불행의 단서였을 거라고.

 또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던 서른 살 나이 차의 유부남과의 사랑도 작가에게는

평생 엄청난 부담이 되었을 것 같다.

 

 

작년 2013년은 김동리 선생이 탄생 100년이 되는 해였기에

자연스럽게 지면에서 그의 삶과 문학을 재조명해 볼 수 있었다.
김동리 선생과 서영은 씨가 맺은 인연의 시작은 ‘불쌍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인연을 통해 선생이 불쌍하다는 것을 알아가면서

그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운명적 사랑!

어쩌면 이 측은지심은 마음결 고운 작가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 같기도 했다.

 

 

김동리 선생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휠체어에 앉은 이후 이야기는

앞으로 2,3편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나는 몹시 기다려지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스럽다.

작가의 불행이 계속 가슴 아프게 이어지면 어쩌나 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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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맞이

|김경집| 완보완심 2013. 3. 22. 10:46

어김없이 봄은 왔습니다.

그런데 동해안 북부에는

 때 아닌 폭설이 내려

 설악동에는 눈꽃이 만개했다지요?

 

서울에도 어제 그제 잠깐씩

어설픈 빗발과 풋눈이 섞여 내리더니

오늘은 영하의 날씨로 뚝 떨어졌습니다.

 

 

 

남쪽에는 매화니 동백이 활짝 폈고

산수유는 언덕과 마을을 온통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지만

여전히 서울은 꽃은커녕 봉오리조차 채 맺지 못한 봄꽃들이

입을 앙다물고 있으니

꽃샘추위라는 말이 조금은 어색한,

3월 하순의 추위입니다.

 

삶은 덧셈과 뺄셈이 섞여 있는 것을,

덧셈은 잊고 뺄셈에만

신경 곤두세우지는 않았는지

이 어색한 매운 봄바람이 일깨우는 것만 같습니다.

 

사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때도 가끔

겨울의 날씨에 적응하지 못하고

가을볕의 날씨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타박하거나 탓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유독 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보이는

꽃샘추위에 대해서는 유난하게 타박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가을에 겨울을 기다리는 마음보다는

겨울에 대한 대비를 하는 처지에서

잠깐의 볕과 따뜻함은 고맙게 느낄 수도 있겠지요.

 

그에 반해 매운 겨울 털고 고대하던 봄의 길목에서

심술궂게 찾아온 반짝 추위가 조금은 야속도 하겠지요.

 

하지만 자연은 시간의 길목에서 조금씩 엇박자를 둬서

우리에게 그냥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기다리는 것을

얻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라고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이라고 다르겠습니까?

때론 굴곡도 있고 때론 너르게 뻗은 대로도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조금만 아쉽고 매워도 야속하고 원망스럽지요.

그리고 정작 이따금씩 느끼는 행복은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게다가 그 행복이라는 것도 예전과 같은 것이면

도무지 만족하려하지 않지요.

 

조금 더 크고 많은 행복에만 마음을 뺏깁니다.

그래서 행복도 복습이 필요한 것이겠지요.

롤러코스트처럼 정신없이 치솟다가

곤두박질치는 삶은 버겁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삶에는 높낮이가 두루 섞여 있습니다.

그런데도 잔망스럽게 조금만 오르면 희희낙락하고

잠깐 내려가도 호들갑 떠는 것을 보면

참 잔망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올 겨울 유난히 맵고 길었습니다.

어지간하면 잠깐 볕 날 때 정신줄 놓은

개나리 몇 봉오리쯤은 일찍 꽃을 내밀었다가

화들짝 놀라 질겁하던 일이 허다했는데,

올 겨울은 아예 한 녀석도 그런 것을 보지 못했으니

춥긴 어지간히 추웠던 모양입니다.

 

어쩌면 우리네 삶이 신산해서

더욱 그렇게 느껴졌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느낌에 비례해서 봄의 희망과 기다림의 부피는

어느 때보다 더 큰 것 아닌가 싶습니다.

 

춥고 매운 날씨를 겪어봐야 볕의 따사로움이

그런데도 봄꽃은 예년보다 1주일쯤 일찍 핀다지요?

어쩌면 그리 매운 겨울 겪었기에,

꽃들도 그걸 이겨내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서둘러 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여전히 봄을 느끼지 못하는 우리에게

힘내라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기특한 뜻이 담겨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올봄 꽃구경은 다른 해에 비해

느낌이 조금은 더 진할 듯합니다.

매운 겨울 이겨낸 기특함과 씩씩함을 확인하며

삶에서도 그런 가치들을 새삼 되살리고 싶을 테니 말입니다.

 

아직은 제대로 봄은 아닌 듯합니다.

그야말로 봄은 봄이되 봄 같지 않은 그런 때이지요.

전한(前漢) 말기 흉노의 선우에게

정략결혼으로 시집간 왕소군의 심정을 대신해

당나라 시인 동방규(東方虬)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노래한 것처럼,

시간으로는 봄이지만,

도무지 봄 같지 않으니 조금은 안타깝고

약간은 섭섭함이 느껴지는 그런 절기이지요.

 

그러나 어찌 봄이 오지 않겠습니까?

기어코 봄은 오게 마련이지요.

그게 자연의 질서이지요.

그런데도 조그만 돌덩이처럼 뜻하지 않은

자잘한 돌출에도 성마른 우리는 짜증을 냅니다.

어쩌면 그런 우리에게 사람 노릇 제대로 하라고

자연이 가르쳐주기 위해

꽃샘추위를 마련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힘든 일은 오래 기억하고 좋았던 일은 쉬 잊거나

더 좋은 일이 있어야 겨우 만족하는

우리의 어리석은 성정이

이 꽃샘추위를 불평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가을에서 겨울 넘어갈 때 잠깐 따뜻해지는 건

탓하거나 의식하지 않으면서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

잠깐 추워지는 것에 예민해지는 건

공평한 일은 아니겠지요.

 

어쩌면 꽃샘추위는

우리에게 삶의 겨울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반성을

갈무리했는지 묻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냥 시간의 흐름으로 저절로

봄의 꽃과 잎을 누리는 게 아니라

겨울의 신난한 기억들을 하나하나

고마워하고 삶의 봄을 맞으라는 신호인 듯싶습니다.

 

이제 겨우내 옷장 속에

조용히 접어두었던 봄옷들을

하나씩 꺼낼 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남은 추위끝 때문에

겨울옷도 남겨 두었습니다.

그러니 겨울과 봄이

너그럽게 공존하는 기간이기도 하지요.

 

고통과 소생의 극단적 대비가

두 계절의 공존을 불가능하게 할 것 같지만,

자연은 그마저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소통할 수 있도록 마련합니다.

 

저 의례적인 소임의 교대가 아니라

봄은 겨울에게 모질어서 야속했지만

그래도 덕분에 더 진한 꽃 피우고

더 많은 잎을 낼 수 있었다며

고마워하고 겨울은 봄에게 견뎌낸 힘을

격려하고 축하하는 너그러움으로 교환함을 배워야겠습니다.

 

아직 바람끝이 매운데도

나무들은 이미 제 봉오리를 터뜨릴 채비를

마무리하고 있나봅니다.

겨울을 잊지 않아야 봄의 진가를 제대로 누릴 수 있음을

이 짧은 꽃샘추위의 시기에 곰곰 생각해봅니다.

야속했지만 고마운 겨울에게 애썼다고 도닥이기 위해

 이 저녁 밖에 나가볼까 합니다.

 

두 계절의 화해를 축하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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