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가 무심코 하는 말에

가슴에 상처가 되고

상처난 가슴으로 평생을 살아간다고

생각해보신적 있으신가요?

 

 

우리는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동안

많은 부분 '말'로서 소통하기에

의도적든, 의도적이지 않든

누군가에게 '말'이라는 칼로 

다른 사람의 가슴에 상처를 낼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나 또한 누군가의 '말'로 인해

상처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나와 상대방이 서로 상생(win-win)할 수 있는

소통을 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비폭력 대화>이론을 통해

우리가 매일 내뱉는 '말'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습관처럼 남을 평가한다.

평가하는 말이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성인은 아이에 비해 선입견이 많아서

대화할 때 관찰보다는 평가를 하게 된다.

평가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화의 진전을 막고

진정한 의사소통을 방해한다.

 

 

어떤 자극이 있을 경우 그것을 관찰한 후에는

우선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들여다봐야 한다.

수업에서는 각자에게 느낌말과 욕구 목록이 적힌 카드를 나눠준 후

특정 상황에서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말하게 했다.

그러나 놀랍게 많은 사람들은

내 욕구가 무엇인지,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몰라 한다.

 

 

마음을 열고 의사소통 하려면

서로의 욕구를 동등하게 존중해야 하지만

내 욕구부터 살펴봐야 한다.

 

 

내 욕구를 돌보지 않으면 무의식적으로 남한테 내 욕구를 돌봐달라고 강요하게 된다.

내 욕구가 수용되는 경험을 축적해야

나한테 중요한 것, 필요한 것이 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욕구와 욕망은 구별해야 한다.

욕구는 채워지면 사라지지만 욕망은 끊임없이 추구하게 되어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내 느낌과 욕구를 돌보는 것은 타인을 공감하는 능력과도 직결된다.

누군가를 공감하기 힘들거나 하기 싫을 때

자신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기공감'이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에게 공감하기 위해서는 자기공감이 우선이다.

대화를 할 때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려 하지 말고,

상대방이 자신을 충분히 표현하고 이해받았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의 욕구를 이해해서 마음과 마음이 연결된 후

긍정적이고 구체적인 언어로 부탁을 하면 비로소 비폭력대화가 완성된다.

 

 

 

이러한 비폭력대화는

쉽지는 않지만 노력하다보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되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고,

인간관계가 훨씬 수월해진다.

소통이 된다는 것은 상대방과 내가 승-승한다는 것이다.

상대방보다 내가 우월하다는 생각은

소통의 가장 큰 적이다.

 

 

참고: 노컷뉴스(2013-02-20 ) '폭력언어'는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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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싸움을 말리려는 선생님을 한 초등학생이 때렸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라고 하네요. 얼마나 싸움에 열중했으면, 선생님을 때리나요. 하지만 오히려 선생님을 구타한 학생의 학부모는 선생과 학생이 서로 성격이 맞지 않아서 발생한 사건이라며 자신의 자식을 감싸주었다고 합니다. 선생하고 학생이 마찰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문제는 폭력이지요.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겠지만, 선생님을 때린 초등학생의 잘못은 크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도 학생이지만 부모 책임도 있습니다. 내리 사랑이라 하지만 왜 자신의 자녀가 선생에게 폭력을 저질렀는지, 이유 이전에 폭력 그 자체에 대해 꾸지람을 해야지요.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새해 나라 살림 예산을 놓고 국회에서 벌어진 난투극이 떠오릅니다. 국회의원 여러분 요즘 초등학생들은 정보력을 잘 알고 계십니까? 나라를 책임진다는 사람들이 서로 다투는 정도를 넘어 폭력을 난발하니, 자라나는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국회에서는 초등학생이나 학생들 대상으로 한 모의국회 프로그램이나 국회 견학을 시키고 있지요. 이제 국회는 초등학생 관람 불가나 미성년자 관람(방문) 불가 지역으로 선포해야 하나요. 비폭력 대화법이 필요합니다. 국회의원들은 당선되면 필수이수과목으로 비폭력대화법을 배워야 할 걱 같습니다. 물론 정치인들뿐만 아닙니다. 재벌 3세가 노동자를 돈 뿌리면서 폭력을 휘두르는 일이 다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방송이나 언론, 오락프로그램 등 폭력이 너무나 노출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초등학생이 선생에게 폭력을 가한 사건을 단순히, 학생 한 사람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습니다. 학교 폭력뿐만 아니라, 사회에는 언어폭력을 비롯해서 대화 실종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진 어른들이 먼저 자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육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식을 배우는 장이지만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인성교육의 마당입니다. 아무리 출세한들 인간 됨됨이가 되지 않으면 소용없지요. 폭력은 폭력 이전에 말에서 시작됩니다. 서로를 자극하는 말 한마디가 화를 불러내지요. 안철수 교수 모친은 자신의 자식에게도 존댓말을 쓴다고 합니다. 물론 존경하는 마음이 말로 표현되는 것은 다가 아니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가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간디는 말했습니다. “ 무살생· 비폭력(Ahimsa)은 가장 위대한 사랑이다. 그것은 최상의 법칙이다. 이것만이 인류를 구하는 유일한 길이다. 비폭력을 믿는 사람은 살아 있는 신을 믿는 사람이다” 라고. 너무나 비폭력 대화법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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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대화법을 배워야 한다(학생,교사, 학부모)

 

자라온 성장배경과 세대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다들 선생님한테 맞거나, 벌주는 모습을 당하거나 본 기억이 있을 것 같다. 최근 한 초등학교에서 선생이 학생을 때리는 동영상이 공개되자, 다시 체벌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필자가 학교(70년대 초)에 다닐 때는 체벌이 심했을 때다. 맞는 게 일상다반사였다고 할까? 선생한테 벌 받고, 선배한테 벌 받고 이중고를 겪었다. 아침마다 학교 교문 앞에서 완장 찬 이른바 규율 선생(체육, 교련 선생)과 선배들에게 복장에서부터, 하나하나 점검을 받아야 했다. 운이 없으면 벌이었다. 벌의 종류도 참 다양했던 것 같다. 그당시 대부분 체육선생들은  ROTC 출신이 많았다. 그렇다 보니, 군대식 얼 차례가 적용되었다. 빰 맞는 것은 부지기수, 별의 별 벌칙이 다 적용되었다. 분명 폭력이었지만, 학생들은 규칙을 어기면  당연 맞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폭력에 길들여진 것이다.  집단체벌도 심했다. 한 학생이 자신의 소지품이라도 분실했을 경우, 범인(?)이 잡힐 때까지 함께 벌을 받았으니까. 그뿐이랴?

 

교육과학기술부 홈페이지에 외국 체벌 현황 자료가 있는지 검색해보니 2002년도 자료가 있어서 살펴보았다. 한국의 경우 대법원 판례를 보면 '교육상 필요가 있는 경우 교정이 불가능해 보이는 경우‘ 제한적 체벌을 허용하고 있다. 나라마다 체벌에 대한 법적용과 기준은 다르다. 최근 영국에서는 불량학생에 대한 체벌을 대폭 허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불량학생이라는 기준이 참 모호하지만. 그렇다면 불량선생은 누가 체벌해야 하는가? 불량학부모는? 사람마다 체벌에 대한 생각이 다르겠지만, 모든 폭력은 근절되어야 한다. 체벌을 없앨 수는 없겠지만, 체벌의 범위를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도를 넘어선 체벌은 폭력이다. 물론 폭력은 물리적 폭력만 의미하지 않는다. 말의 폭력 또한 마찬가지. <소유냐 존재냐>의 저자이자 독일출신의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체벌을 권력에 빗대어 표현했다. 공공연하게 드러나는 권력과 숨겨져 있는 권력. 드러나는 권력은 강압적인 조치다. 규칙을 어겼으니 너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 숨겨져 있는 권력은 물리적으로 때리는 것이 아니라, 교육자 자신이 괴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학생(어린이)들에게 부적응자로 멸시하는 것. 체벌은 두 가지가 존재하는 셈이다.



도를 넘어선 물리적 체벌도 문제지만 말의 폭력, 멸시 또한 체벌이다. 예전에는 휴대폰(동영상)도 CCTV도 없었다. 맞으면 그뿐. 맞아도 내가 잘못했으니 맞았지 시인하거나 혹은 폭력을 묵인했다. 하지만 요즘 시대는 어떤가. 체벌로써 아이들을 바꾼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말의 폭력과 폭행은 폭력을 키울 뿐이다. 맞는 사람이 때려 본다고, 폭력은 다른 사람에게 전가될 수 있다. 폭력바이러스가 퍼져 나갈 수 있다.

 

한국도 이제 체벌(벌)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필요하다. 매번 사건이 발생할 때 마다 법적 대응 혹은 폭력교사 처벌 등 이야기가 나오는 것 보다는, 세부적으로 체벌의 항목을 마련해야 한다. 아니면 체벌을 아예 없애버리던지. 아울러 학생뿐만 아니라 선생 학부모들도 비폭력 대화법을 배워야 한다. 비폭력 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가능하다. 어느 한 쪽의 교육만으로는 폭력은 근절되지 않는다. 체벌의 관점을 넓게 크게 보아야 한다.


<외국의 체벌 규제 현황>


*출처: 교육과학기술부



체벌도 역사적, 사회적 관점에서 연구해야 한다. 왜 체벌이 나왔고, 체벌이 폭력적 양상을 띄게 된 배경도 살펴보아야 한다. 그 다음에 어느 한편의 교육이 아니라, 쌍방향 비폭력 교육, 대화법을 학습 받아야 한다. 학생도 마찬가지지만, 선생이나 학부모도 완전한 인간이 아니다. 한편에만 전달하는 일반적 교육이 더 문제가 아닐까? 이번에 초등학교에서 폭력을 행사한 교사도 처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왜 폭력교사가 탄생되었는가라는 물음에 고민해 보아야 한다. 그 해결의 실마리또한 교육(비폭력대화법과 인권교육)과 학습으로 풀어야 한다. 교사도, 학부모도 '나는 학생이다'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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