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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25 옛날로 돌아간다면 세상이 행복해질 것 같아요?

 


오래된 것만 보면 가슴이 벌렁벌렁 대는 사람이 있다. 옛날 게 사라질까봐 마음을 졸이는 사람이 있다. 어머니 할머니가 사용하던 물건을 졸라대며 가져와 살림장만을 하는 사람이 있다. 윤신천(50)씨. 감색·황토색 천연염색 개량한복이 잘 어울리는 그는 유난히 옛것을 찾고 수집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의 집을 한 번이라도 방문한 사람들은 옛날 분위기의 남다른 살림살이에 마음을 빼앗긴다고 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의 생활이 어떤지 궁금하던 차에 그가 살고 있는 상주로 직접 찾아갔다. 상주 시내와 조금 떨어진 조용한 마을, 아담한 3층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는 그를 만났다. 상주는 그가 태어나 자란 곳이지만 결혼한 후 남편의 근무지인 창원에서 줄곧 살아왔다. 상주로 이사 온 지는 한 달 남짓. 7년 전 남편의 귀농으로 창원과 상주 두 집 살림을 해왔다. 올해 큰 아들이 대학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부부와 딸 세 식구가 이곳에서 모여 살기 시작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소문대로 집안 풍경은 현대식 아파트 외관과 다른 세계였다. 거실 초입의 한 섬짜리 뒤주가 가장 먼저 손님을 맞는다. 오래된 나무색의 고가구가 거실 이곳저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흔히 궤짝농이라고 하는 반닫이와 문갑, 통나무를 잘라 만든 좌탁, 자그마한 찻잔과 여러 가지 허브차가 진열되어 있는 선반. 한 쪽 벽 나무 막대에는 말방울과 소방울 대여섯 개가 걸려 있다. 신라의 유적지답게 신라시대 유물 네 가지가 문갑 위에 ‘전시’되어 있다. 수집광이라고 할 정도로 모으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어디를 가든 옛날 것만 눈에 들어오면 얻거나 구입해온다. 그러다보니 자잘한 살림도구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옛날 게 쓰임새도 좋아 가능하면 쓰던 걸 버리지 않은 탓도 있다.


 

옛것들이 살림도구로
집주인은 집안에 멋스럽게 놓여 있는 고가구와 옛날 물건들을 하나씩 안내하며 그 쓰임새를 알려주었다. 뒤주에는 말린 차가 들어 있다. 시할머니가 사용하던 것으로 물고기 장식이 마음에 들어 시어머니께 졸랐더니 필요 없다며 주신 것이다. 뒤주는 습기가 차지 않아 차를 보관하기에 아주 좋다. 어른들이 사용하던 반닫이에는 다듬이 방망이가 보관되어 있었다. 20년 된 반닫이에 방망이도 그 즈음에 받은 것이다.


“나중에 단독 주택에 살게 되면 다듬이질을 할 거예요. 모시나 명주는 다리미보다 방망이로 두드려 줘야 올이 반듯해져요.”거실 선반 꼭대기에서 긴 막대기 2개를 꺼내온다. 떡살과 다식판이었다. 결혼 전 예천에서 구입한 것으로 20년이 훨씬 넘었다. 떡살은 절편 무늬 낼 때 쓰는 건데, 요즘에는 모형 판에 랩을 씌워 떡을 넣고 찍어낸다. 거실 한 편 선반에 놓여있는 올망졸망 갖가지 형태의 작은 찻주전자가 눈에 띈다. 그 옆으로 작은 찻잔들이 놓여 있다. 차를 담는 찻잔도 어느 것 하나 짝을 이루는 게 없다. 모양이 비슷한 것 같아도 태생이 다른 것이었다. 친구가 주기도 하고 지나다니다 구하다보니 구색도 안 맞고 제 짝도 없다.


점심밥이 차려진 좌탁에도 시간과 장소를 달리해 태어난 접시와 국그릇 밥그릇이 조화롭게 놓여 있다. 손님을 위해 특별히 밭에서 캐온 쑥과 머위, 부추로 만든 맛있는 국과 나물반찬이 짝이 맞지 않은 투박한 질그릇과 아주 잘 어울린다. 짝이 맞는 그릇이 하나도 없지만 조화롭다. 오래된 살림도구가 그의 집에선 마냥 골동품이 아니다. 언제든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살림살이였다. 
 




옛것이 사라지는 게 안타까워 시작한 천연염색과 전통 바느질
윤신천 씨는 옛것에 대한 그리움과 애착이 가득하다. 자신의 전공보다 역사 유적지 답사를 따라다니는 것을 더 좋아했고 토속신앙이 더 가깝게 느껴졌고 오랜 시간을 두고 덩치를 키워온 큰 나무를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천연염색을 하고 서양바느질 퀼트 대신 명주 천과 명주실, 감침질로 대표되는 전통 바느질을 더 좋아한다.


옛것이 사라지는 게 안타까웠던 마음이 가장 먼저 쏠렸던 건 천연염색이었다.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사람들과 함께 염색작업을 한다. 그의 실력도 8년이라는 쌓여온 시간을 생각하면 가르치는 위치에 설 만한데 절대로 그 자리에 나서지 않는다. 그저 조수역할을 할 뿐, 항상 실력자 선생을 모시고 모임을 꾸린다. 천연염색은 주로 생활 가까이에 있는 것과 주위 땅에서 나는 것을 이용한다. 양파 껍질이나 밤 껍질, 포도 껍질, 감, 황토… 안방에 걸려있는 개량한복도 거의 직접 염색을 한 것이다. 그는 감과 황토 염색을 가장 좋아한다. 황토염색 옷은 땀이 안 배고 달라붙지 않아 여름에 입으면 편하단다.


“염색은 자연스러운 색감 외에도 몸에 좋은 기능이 많아요. 타닌 성분이 머리를 시원하게 해 잠을 잘 오게 하고 피부 알레르기를 막아줘요. 포백된 흰옷에 염색하면 표백제의 유해성분을 막아주지요.”그는 개량 한복을 자주 입는데, 잘 어울린다. 티셔츠 위에 천연염색 조끼 하나만 걸쳐도 자태가 나온다. 바지도 남자 한복바지 같이 편한 걸 자주 입는다. 요즘 새로 만들고 있는 바지 하나를 보여준다. 마무리가 아직 안 된 한복 바지였다. 옷본이 있어 쉽게 만들었다며 대단한 게 아니라고 하지만 정교한 바느질 솜씨가 돋보였다. 염색과 함께 편하게 입는 몇 가지 옷은 직접 만들어 입는다.


“옛 아낙들은 옷을 모두 지어 입었잖아요. 그 솜씨로 돈벌이도 했으니. 요즘 사람들도 자립을 했으면 하는 생각으로 옷 만들기를 시작했어요.” 그저 옛날 어르신들이 살던 방식이 그리웠고, 뭔가 스스로 만들어 보는 게 좋아 시작한 일이다. 천연염색 모임처럼 한복 조각 천으로 바느질을 하는 규방공예 모임을 한 달에 한 번 하고 있는데, 상보, 걸개, 수저 집, 모시발, 조끼를 만든다.

“바느질엔 특별한 솜씨가 필요 없어요. 엄마나 할머니가 옷을 해 입었던 유전자를 타고난 것 같아요. 누구나 연습하면 잘 해요.” 보통 젊은 아기엄마들이 어느 한 집에 모여 조각보 이불이나 걸개, 가방과 소품을 만들기도 하는데 그의 말을 빌자면 퀼트는 서양 것, 규방공예는 우리 것이다. 퀼트는 인쇄된 무늬 천을 이용해 박음질과 홈질을 이용해 만들지만 규방공예는 명주·모시와 명주실을 주로 이용해 감침질을 하는 게 특징이다. 전통 바느질에 대한 꼼꼼한 설명이 이어진다.


“감침질은 우리 고유의 바느질이에요. 굉장히 단단해요. 감침질을 잘 하면 선 색깔을 내기도 하는데, 바탕천과 대비되는 색을 쓰기도 해요.”상보 가운데에 이어붙인 명주 천 사이에 점점이 나타난 노란 명주실이 또 하나의 선의 표현인 셈이다. “퀼트는 천 안쪽에서 조각을 잇지만, 우리 것은 겉과 겉을 감침질로 이어요. 그게 큰 차이죠.”
조각보 이불 하나쯤은 장롱에 들어 있거나 창문 걸개 정도는 안방에 걸려 있지 않을까 했는데, 큰 작품은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시간도 없지만 모여서 함께 바느질을 하는 게 즐거운 일이라 소품을 많이 만든다. 



 


손수건으로 바느질 운동

바느질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것은 손수건을 만드는 일이었다. 산청의 작은 음악회에 갔을 때 보았던 식탁 위의 손수건이 그의 가슴에 꽂혔다. 휴지 대신 손수건으로 입을 닦고 각자 가져가는 것이었다. 그때 이후 손수건을 만들기 시작했다. 면이나 거즈를 잘라 책 넓이만한 크기로 접어 홈질로 마무리를 한다. 행사를 열 때, 참석한 사람들에게 직접 만들어 하나씩 선물을 하거나, 손수건 만들기 코너를 만들어 5분만 시간을 내 직접 바느질을 해보게 하고 나서 가져가게 한다.


그의 집 부엌 좌탁에도 여러 개 손수건이 놓여 있었다. 각기 다른 색실로 홈질한 것, 규격도 제각각이었다. 모두 다른 사람들이 만든 것이란다. 언제부턴가 휴지를 가볍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입을 닦을 때도, 화장실에서도, 심지어 식탁을 닦을 때도 쉽게 휴지로 훔친다. 옛날 어머니들은 거즈 수건을 가지고 다니면서 다용도로 사용했다. 집에 와서 깨끗이 빨거나 뽀얗게 삶아 그걸 다시 사용했다. 그 마음을 그대로 실천해보자는 게 그의 손수건운동의 뜻이다.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니 바느질 안 한 천을 한가득 안겨주며 집에 가서 바느질을 해 손수건운동을 꼭 해보란다. 시간과 마음을 다잡고 앉아 작은 손수건 사방 홈질을 해야 하는 일을 언제 다 할까 걱정부터 앞선다. 그래도 푸짐한 선물 한가득 안은 듯 뿌듯하고 좋다. 숙제는 다음 일. 직접 만든 감녹차와 산국화차를 예쁜 병에 담아 선물로 건넨다. 새로 디자인해 만든 수저집도 덤으로. 넉넉한 모습만큼 넉넉한 마음으로 자꾸자꾸 퍼주신다. 파김치와 부추절임 반찬까지. 




옛것이 생활 도구로 살림살이로 자리를 잡으면 손으로 해야 할 일도 많고 씻어가며 삶아가며 다시 써야 할 물건이 많아지니 살림하는 사람들에겐 그리 달갑지는 않다. 그래도 윤신천 씨는 어머니 할머니가 쓰던 가구에 옷과 물건을 보관하고, 직접 길러낸 허브차를 마시며, 땅에서 캐낸 풀로 나물을 무치고 국을 끓여 이웃과 나눠먹고, 휴지 대신 손수건을 만들어 삶아 쓰고, 편한 바지를 만들어 입고 갖가지 천연염색을 한 옷을 계절마다 갈아입는 생활을 한다. 주택에 이사하면 다듬이 방망이까지 두드릴 거란다. 어머니, 할머니들이 징글징글하다는 옛날이 그에겐 닮고 싶은 삶이고 희망이다.


“옛날 사람들처럼 살고 싶어요. 생활습관이 옛날로 돌아간다면 세상이 행복해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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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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