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4.10.23 손녀사랑
  2. 2014.04.28 4시간의 행복
  3. 2013.01.14 지우야, 사랑해

손녀사랑

|함수연| 만남 2014.10.23 11:02

작년 9월25일, 우리 곁을 떠난 소설가 고(故) 최인호 씨가

병마와 싸우면서도 마지막까지 기쁨으로 써 내려간 글은

손녀 사랑에 관한 글이었다.

 

그는 작고하기 4년 전부터 책의 제목<나의 딸의 딸>을 미리 지어놓고

딸과 손녀에 대한 애틋한 사랑의 글을 꾸준히 써나갔다.

 

 

 

 

 하지만 책이 미처 세상에 나오기 전에 그는 눈을 감았으니

얼마나 애달팠을까...

결국 <나의 딸의 딸>은 작가의 1주기 맞아 내놓은

유고집이 되고 말았다.

 

 

 

 

 

책에는 격하게 손녀 사랑을 털어놓은 대목이 유독 많았는데,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고인의 글씨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그는 악필로 유명한 작가였다.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문학적 영감을

손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

악필이 될 수밖에 없었노라고 했던가.

그러나 외손녀에게 쓴 손 편지 글씨는

참말로 온순하고 정갈했다.

 

 

육필 편지에서 만난 동글동글한 그의 필체를 보고서,

손녀 앞에서는 작가가 아닌 보통의 할아버지와 다름없는

인간적인 그를 발견하게 된다. ‘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 ‘눈에 밟힌다’는 표현이

너무나 예리하다는 것을 손녀 키우면서

나도 새삼스럽게 느꼈던 터라 그의 손녀사랑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으로 책을 읽었다.

 

 

그러면서도 항암 치료를 받아 빠져버린 손톱에 고무를 끼우고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을 쓰기 위해 무지 애썼을

작가의 투혼이 떠올라 읽는 내내 가슴이 아렸다.

 

 

책 속에는 신혼여행을 떠난 딸의 빈 방에 앉아

눈물짓는 아버지 최인호가 있었고,

손녀 앞에서 동요를 부르며 춤을 추는 ‘할아버지 최인호’도 있었다.

그런가하면 손녀에게 들려줄 이야깃거리를 만드느라

머리를 쥐어짜고 절대 사탕이나 초콜릿을 손녀에게 주면 안 된다는

딸의 엄명을 어기고서 딸에게 호되게 야단맞는(?) 장면도 있었다.

 

 

"아빠, 정원이한테 사탕 줬지?”

“아니!”

“아니긴 뭐가 아냐. 입에서 사탕 냄새가 나는데...”

“반 개 줬다. 딱 반 개만 줬다고!”

“반 개 건 한 개 건 내가 주지 말랬잖아. 이빨 썪으면 아빠가 책임질 거야?”

“그래, 알았다 알았어!”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 부정한 뒷거래는 그리 오래 가질 못한다.

딸이 주지 말라는 사탕을 주면서 손녀와 할아버지는 공범자가 되어

기분이 짜릿짜릿해지고 그러면서 이 세상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잘난 체하는 딸에게 복수하는 느낌까지 들어 짜릿한 스릴감마저 맛본다고 작가는 고백했다.

흐흐, 나도 비슷한 경험이 여러 번 있어 웃음이 절로 나왔다.

 

 

우하하

 

 

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울 때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손주를 키울 때의 사랑법은 확실히 달랐다.

그저 뭐든지 다해주고 싶다.

가지고 싶은 것 다 가지게 해주고 싶고 떼를 써도 다 받아주고 싶은 게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이고, 그게 손주사랑이다.

 

 

아이가 떼를 쓰며 울어도 모른 체 하는 것이

아이를 교육시키는 참 방법인 줄 알면서도

막상 애가 울면 나도 아이 입에 사탕이나 초콜릿을 물려준다.

 “쉿, 엄마한테는 비밀이야!” 하면서 손녀와 유치하게 약속을 건다.

 

 

 그렇다, 우리들의 인생은 유치한 것이다.

아이들 앞에선 더욱 유치찬란하다.

유치한 만큼 아름답고 달콤한데 어쩌란 말인가...

 

 

아이들은 자기를 사랑하는지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아이와 놀 때는 건성으로가 아니라 혼신의 힘을 다해야함을,

사랑한다는 것은 혼신의 힘을 다하는 행위라고 말한 작가의 말에 나는 백 프로 공감한다.

 

 

하트3

 

 

“세상에서 외할머니가 제일 좋아!”

나는 우리 손녀 지우에게서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격하게 감동한다.

이제 겨우 네 살배기 아이가 듣기 좋은 말을 일부러 했을 리는 없다.

느낀 그대로, 마음 속 사랑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고 본다.

정말이지 이 아이야말로 하느님이 두레박으로 세상에 내려주신 선물임을 깨닫는다.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는 <레미제라블>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 아버지들도 있다.

그러나 손자를 익애(溺愛)하지 않는 할 아버지는 없다.”

 

 

그렇다. 빅토르 위고의 말은 맞다.

최인호도 외손녀를 익애했다.

아니 세상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들의 아들과 딸이 낳은 아이를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날마다 손주 사랑에 텀벙 빠져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 맹목적 사랑에 빠진 나를 주책바가지 할머니라고 불러도 좋다.

 

 

생전에 작가는, 침샘암 투병 중에

아이 주먹만 한 조약돌을 늘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거기에는 수줍게 웃는 눈과 코와 입이 그려져 있었는데,

아직 초등학생이던 손녀가 그려준 조약돌의 미소를 떠올리며

참을 수 없는 아픔을 달랬다고 하니

그 어떤 유명 화가의 그림에 비할 수 있을까.

 

 

 

또 그는 손녀 방에 작은 쪽지들을 자주 숨겨놨다고 한다.

마치 보물찾기처럼.

그 쪽지에는 “사랑해‘ ’보고 싶어‘와 같은 말들이 적혀 있었고

그걸 찾아내면 선물로 보상을 해주었다고 하니

그의 손녀사랑은 가이없었다.

 

 

사랑해

 

 

사람은 두 번 죽는다고 했다.

세상을 떠난 바로 그때,

그리고 남은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잊었을 때다.

작가를 68세라는 나이에 떠나보내기에는 너무 이르다.

최인호 씨와 띠동갑이라는 이어령 선생은 1주기 전 책자 앞면에

 

 

 “인호가 세상을 떠났다. 나쁜 녀석! 영정 앞에 향불을 피우며 욕을 했다.

내 가슴에 그렇게 큰 구멍을 하나 뚫어놓고 먼저 가버리다니 (중략)

보고 싶다 인호야!”

라며 고인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이어령 선생 말씀대로

그가 하늘나라에서도 여전히 소년처럼 유쾌하길 바라며,

이번 주말에는 최인호의 1주기 추모전이 열리고 있는

평창동 ‘영인문학관’에라도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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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31개월이 된 손녀는 작년부터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곳은 딸의 회사 내에 있는 직장 어린이집이라서

아침에는 딸이 출근할 때 태워서 가고

오후 네 시가 되면 친할머니가 데리러 간다.

 

외할머니인 나는 매주 수요일만 담당,

만일 양쪽 할머니 둘 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종일반에 있다가

딸이 퇴근하면서 데리고 오기도 한다.

 

수요일 오후 4시, ‘이 녀석이 오늘은 어떤 모습으로 나를 반길까?’

일주일에 한번씩 늘 되풀이되는 일인데도

아이를 만나러 갈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설레고 출렁거린다.

 

어린이집에 들어서니 친구들과 풍선 날리기를 하고 있던 지우는

나를 보자마자 단숨에 달려와 안긴다.

오늘은 외할머니가 지우 데리러 오는 날이라고

아침부터 선생님한테 자랑을 했단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서인지 밥도 잘 먹고

야외활동도 잘 했다고 선생님이 전해준다.

 

집으로 오는 길, 차를 타고 오는 내내 지우는

갓 깬 물총새처럼 쉴 새 없이 조잘거린다.

오늘 간식은 뭘 먹었는지,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응가를 몇 번 했는지...

특히 선생님 흉내를 내는 말투는 몇 번이나 폭소를 터트리게 했다.

“우리 친구들 재밌었나요?”

“할머니는 참 멋진 친구 같애!”

“아니, 할머니보다 지우가 더 멋진 친구지?”

“맞아, 할머니랑 지우랑 똑같이 멋진 친구야!”

 

세 돌이 채 안 된 아이는 이제

그 누구와 대화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많은 어휘를 익혔다.

냠냠 밥을 먹고, 쿨쿨 잠을 자고,

살금살금 걸어간다는 표현은 어디서 배웠는지

의성어 의태어도 제법 쓸 줄 안다.

집에 오자마자 주방놀이 세트를 가져와서는

할머니에게 커피를 타주고 장난감 냉장고에서 빼빼로 과자도 하나 꺼내 주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 “쉿! 아빠한테는 비밀이야”

고사리 같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며 제법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왜 비밀이냐고 물었다.

아빠가 빼빼로 많이 먹으면 이빨에 개미가 생긴다고 했단다.

아이고, 웃겨라... 이렇게 지우와 대화를 나누다보면

아기자기한 즐거움이 곳곳에 별사탕처럼 숨어있다.

 

저물녘의 해 그림자가 넓게 퍼진 거실에서

이번에는 지우가 퍼즐 삼매경에 빠졌다.

42피스짜리 뽀로로 퍼즐을 엎었다가 다시 맞추고 반복하기를 세 차례,

놀라운 집중력이다. 지겹지도 않나 보다.

“할머니는 하나도 못 맞추는데 김지우는 진짜 잘 한다!”

과도하게 칭찬을 해주니 아이의 표정이 금세 환한 봄날이 된다.

마치 지금까지 한 번도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그런 아이의 충만감이 내 몸에도 고스란히 스며드는 느낌,

실내의 따뜻함과 평화가 더해져 더욱 행복한 시간이다.

 

나는 아이의 움직임으로 시간을 잰다.

태어나 앉고, 서고, 걷고, 뛰고, 말하고, 노래하고, 책을 읽고,

이 모두가 지우가 태어난 후 31개월 동안 나타난 일들이고 시간의 잣대가 된다.

갑자기 <first of May>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어릴 적 나는 크리스마스트리보다 작았어요.

 그런데 문득 나무보다 내가 훌쩍 커버렸어요’ 하는 내용의 노래이다.

 

지금 아이 방에는 기린 모양의 키 재기 그림이 붙어있다.

딸은 수시로 아이를 거기 서게 하고 연필로 빽빽하게 점찍어 두었다.

연필 자국이 조금씩 올라가면서 시간도 조금씩 흘러 어느덧 천 일,

천 일 동안 지우는 참 많이 컸다.

몸만 큰 게 아니라 마음도 배움도 자랐다.

 

 선생님과 친구를 알게 되었고 질서와 규율도 배웠다.

거실에는 첫돌, 두 돌 때 찍은 가족사진도 붙어있다.

앞으로 6개월 후에는 세 번째 가족사진이 붙게 되고

갓 태어난 지우 동생 사진도 나란히 걸리게 될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뿌듯하다.

 

저녁에 딸이 퇴근해서 오면 지우와 헤어질 시간이다.

만나러 오기는 쉽지만 떠나기는 쉽지가 않아 헤어짐에 다소 복잡한 과정이 따른다.

 “할머니, 가지마! 지우 집에서 자고 가.”

울먹이며 말하는 아이에게 나는 짐짓 더 명랑한 소리로 화답한다.

“할머니, 두 밤 자고 또 올 테니까 오늘은 엄마하고 코 자라.

 리 지우 착하지?” "“지우야, 우리 어린이집 안 가는 날

 엄마랑 아빠랑 다 같이 할머니 집에 가자아~” 제 엄마도 거든다.

나는 아이를 살포시 껴안고 이마에 눈에 빰에 뽀뽀를 해준다.

 

“지우 잘 자!”

아이는 안심한 듯 얼굴에 다시 평온이 깃들며 힘차게 손을 흔든다.

“할머니, 안녕!”

이렇게 손녀와 함께 한 시간은 하루도 아니고 불과 네 시간 남짓이다.

이 짧은 시간이 그토록 복잡한 일상의 시간을 다 태워버리고

또 만날 날을 그리워하게 만드니

나는 딸 바보가 아니라 손녀 바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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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손녀 지우가 탈장 수술을 받고난 후

처음 병원에 가는 날이다.

오늘의 미션은 배에 차있는 물을

주사기로 뽑아내는 일.

 

 

그런데 병원에 대한 두려움이

큰 두살바기 아기가 침대에 얌전히 누워서

 그 일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지

나는 가기 전부터 걱정이 앞섰다.

 

 

회사에 반차를 내고 오겠다던 딸은

사정이 있어 못 오고

양쪽 할머니(친할머니와 외할머니)가 함께 나서야 했다.

그래서 불안이 더 컸다.

 

 

 

 

딸은 계속 문자를 보내왔고

의사에게 물어보라는 주문도 많았다.

아이가 왜 갑자기 먹는 양이 줄었는지,

이제 통 목욕을 시켜도 되는지,

수술부위 매듭은 저절로 없어지는지 등등...

아마도 워킹맘들이 가장 가슴 아플 때가 이런 때이리라.

 

 

아무리 사회적 소신이 확고한 엄마들이라도

이렇게 아이가 아플 때에 함께 해주지 못한다는 시점에서는

갈등과 회한 속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아무튼 걱정을 해도 병원엔 도착했고,

담당의사의 수술 관계로 진료는 예약된 시간보다 30분 이상 늦어졌다.

한창 걸음마에 재미를 붙인 아이가 가만히 앉아있을 리가 없다.

고 짧은 다리로 종종거리며 병원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녔다.

그러다가 저를 쳐다보는 어른들에게는 빠이빠이 하며

손을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이날 소아과 외래에는 많은 아이들이 있었는데

대부분이 힘없고 축 늘어진 모습이었다.

우리 지우가 제일 발랄해 보였다.

 

 

세상에 나온 지 이제 겨우 1년4개월,

아이의 인지구조에는 세상 사람들은

다 자기를 사랑한다는 믿음이 굳게 깔려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누구든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는 것 같은데

애착형성이 잘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에서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만 3세까지 형성된 안정된 애착형성이 평생을 간다고 하지 않던가.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

그런데 병실 문을 채 들어서기도 전에

아이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한다.

자지러지듯 우는 아이를 보고 어찌할 바를 몰라

두 할머니는 같이 우는 형색이었는데 의사는 아무 표정 없이

간호사에게 물 뽑을 주사기를 가져오라고 주문한다.

그때 안사돈이 말했다.

 

 

“선생님, 오늘 꼭 물을 빼야 하나요? 다음에 하면 안 될까요?”

“그러시겠어요? 그럼 일주일 후에 다시 나오세요.

그동안 물이 몸 안으로 조금씩 흡수될 수도 있으니까요.”

의사는 선선히 허락했다.

나도 안도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아이가 너무 가여워서 다음으로 미뤘는데

 마음 약한 할머니들이 일처리를 야무지게 못했다고

혹시 딸이 뭐라 하지는 않을까.

만일 딸이 같이 왔다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하라고 했겠지.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병실 문을 나서니 아이는 언제 그랬냐 싶게 다시 명랑해졌다.

울음 끝이 짧은 아이,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린 눈을 닦아주고

바나나 한 개를 까주었더니 단숨에 먹어치운다.

 

 

곁들인 우유 한 병도 원샷! 그리고는 몇 개 안 되는 앞니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는다.

너무 귀엽다.

세상 어느 화가의 어떤 그림을 가져다 놓아도

이만큼 행복하고 평화로운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까.

 

 

모유를 먹어서인지 한 점 물살이라곤 없는

탱탱함으로 똘똘 뭉친 작은 아이, 제 어미를 쏙 빼닮았다.

되돌아 온 자리는 어디던가, 내 작은 몸으로 낳은 딸이

또 딸을 낳아 이렇게 세월의 산맥을 이루었구나.

 

 

요즘 와서 지우 덕분에 미소 짓는 날이 많아졌는데

아이와 함께 책 볼 때가 더욱 그렇다.

아이가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한다면 틀림없이

총명한 아이가 될 거라는 믿음 때문에

갓난아기 때부터 책을 통해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고 싶었다.

 

 

다행히 아이는 책 보는 시간을 좋아했다.

책 볼 때만큼은 집중력을 발휘하여 다 읽을 때까지 지그시 앉아 있는다.

또 어떤 책을 가져오라고 주문하면 제 책이 꽂혀있는 곳으로 가서

그 책을 용케도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벌써부터 책을 밝히다니, 우리 지우는 천재인가 봐!”하며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지우의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죤 두이의 ‘공유된 경험’이 참으로 중요한 개념임을 깨닫는다.

지금은 모든 학습이 반복된 경험으로 이루어지는 시기이니까...

그래서 오뉴월 하루 빛이 무서운 아이 시절에 가슴 속 환희를 공유하는 기쁨을

지우와 더 많이 나누고 싶다.

 

 

지우가 빨리 커서 공원도 가고 전시회도 가고 연극도 함께 보러 가는 날을

나는 손꼽아 기다린다.

어차피 제 엄마는 직장에 가서 할 수가 없을 테니

그 역할을 할머니가 맡을 수밖에.

그런데 아침에 엄마가 회사에 가고난 후부터 저녁 퇴근시간까지

온갖 시중을 다 들어주는 할머니의 치맛자락을 따라 다니고는

저녁에 엄마가 돌아와 초인종을 누르는 시점부터 잠들기 전까지는

 제 엄마만 쫓아다닌다.

 

 

할머니는 안중에도 없다.

역시 엄마는 엄마다.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은 퇴근 시간과 맞물려 무척 복잡했다.

그러나 추운 거리의 어수선함과는 상관없이

지우는 친할머니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외할머니의 품에 안겨 동요메들리를 즐기고 있었다.

 

 

가끔씩 율동(?)도 곁들인다.

그런 귀염둥이 손녀를 안고 있는 나는

온기 가득한 난로를 안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이가 아플 때 옛날에는 친정어머니가

 ‘네 배는 똥배, 내 손은 약손.’ 하면서 배를 문질러 주셨는데

아이의 수술 부위가 하필이면 배꼽자리인지라 그도 할 수가 없었다.

 

 

 대신 나는 지우에게 속삭여 주었다.

“지우야, 세상은 경이롭고 신기한 것 천지란다.

그래서 끊임없이 도전하며 사는 거란다.

두드려보고, 눌러보고, 던져보고, 밟아보고, 하고 또 하고 해도 해도 또 하고 싶은...

하지만 병원 가는 일은 도전 하지 않아도 된단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크렴. 힘내라 아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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