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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루엣

|김경집| 완보완심 2013. 11. 26. 12:15

때로는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보다

비춰진 모습이나 실루엣을 보는 것이

더 진솔할 때가 있습니다.

 

 

두려워서 응시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빤히 바라보기만 하기보다는

그 속살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뭉뚱그려진 그림자로서의

실루엣이 더 또렷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눈, 코, 입 그 모양과 색깔을 봐야만

그를 아는 건 아닐 때가 있습니다.

때론 그것에 함몰되어 전체 윤곽조차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러니 실루엣은 단순한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기도 하지요.

 

 

수연재는 남동향으로 앉은 좋은 방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코앞에는 작은 실개천이 흐르고 눈앞에는 싱싱한 논이 펼쳐졌으며

드문드문 농가가 여유롭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눈을 들면 멀찌감치 가야산이 넉넉하게 산자락을 펴놓고 있습니다.

 

 

제가 수연재에 와서 누리는 큰 호사 가운데 하나는

해넘이를 창밖 가득 본다는 점입니다.

흔히 해넘이는 바알간 해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푸른 서쪽 바다에 풍덩 몸을 던지거나 수줍게 산등성이로 사라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시간은 생각보다 무척 빠르게 지나버립니다.

 

 

우리는 해 아랫도리가 조금 사라질 때서야

황혼의 절경을 느끼며 환호합니다.

그런데 수연재에서는 해넘이의 시간이 무척 길게 이어집니다.

늦은 오후가 되면 눈앞 창밖은 이미 해넘이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해가 기우는 각도만큼 논이며 산자락이 뱉어내는 색깔이 시나브로 달라집니다.

정면으로 바라보는 해넘이는 그저 해만 바라보기 쉽지만

반대편에 비추는 해넘이는 마치 달이 해를 되비치듯

속속 변하며 감춰졌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해넘이를 넉넉하게 품는 가야산 자락은 마치

화가의 팔레트처럼 온갖 색의 조화를

마음껏 부리며 고단한 해를 보내줍니다.

그게 어찌 해넘이에만 해당되는 것이겠습니까?

 

 

사람도 세상도 같은 이치라고 여깁니다.

사랑하는 사람도 늘 마주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건 약이 아니라 독이기 쉽습니다.

금세 지질리거나 본질을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친구도 가족도 마찬가지이겠지요.

 

 

해넘이를 받아주는 맞은 편 산자락처럼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어도 서운해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드러내는 너그러움이 필요하겠지요.

 

 

누군가에게 눈앞에 보이지 않더라도 생각만 해도

고맙고 소중한 사람이 된다는 것만큼 고마운 일은 흔치 않을 겁니다.

물론 응축된 시간 속에서 농밀하고 진수를 파고드는 시선도 필요하겠습니다.

어찌 늘 변두리만 맴돌거나 변죽만 울리고 살 수 있겠습니까?

다만 그 순간에는 모든 존재를 다 투사하여 농밀하고

직관적으로 파악해야 하겠지요.

 

 마르케스는 <<백 년 동안의 고독>>에서

“한 순간의 화해란 평생 동안의 우정보다 훨씬 값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농축의 시간, 그런 교감의 순간이 없다면

아무리 오래 마주보고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저 시간이 오래 되었다고 사람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건

아닐 수도 있는 듯합니다.

 

때론 한걸음 뒤로 물러나서 너그럽게 상대를 바라보고 기다리며

그의 색깔을 받아내는 아량이 필요하겠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너무 정면으로 바라보기에만 몰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도 누군가에게 비수를 꽂는 통증일 수 있다면,

직설보다는 에둘러 말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지혜가

나이듦의 선물이 아닐까 싶어집니다.

 

진짜 사랑은 기다려줄 수 있는 아량이 필요합니다.

어찌 모든 게 다 마음에 들고 입맛에 맞을 수만 있겠습니까?

하지만 상대가 지닌 절대질량을 이미 재고 있다면,

그 질량을 확신한다면 조금은 물러서서 기다릴 줄 알아야겠습니다.

그 믿음이 있다면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지루하거나 화가 날 까닭이 없을 듯합니다.

 

 

그렇게 한 해를 서서히 마감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섣달 마지막 주 되어서야 동동거리며

분주하게 마감하는 호들갑 물리고,

서면으로 겸손하게 선 산자락이 해넘이를 너그럽게 받아내듯

조금씩 정리하고 마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도, 세상도, 삶도 그렇게 조금은 너그럽게 품어가면서 말이지요.

초겨울 저녁달이 선연하게 비춥니다.

가을걷이 끝나 바리캉 댄 민머리처럼 휑한 논매미에도 달빛이 가득합니다.

종일 심술부리던 먹구름도 잠시 자리를 내줘 그 교감을 허락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선연함이 교교함으로 조금씩 바뀌는 모습입니다.

 

 

그런 밤입니다.

 

 


김경집 |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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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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