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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26 옛길 찾아 걸으며, 새 삶을 얻다




쉰한 살의 김재홍 씨는 왜 옛길을 걷느냐는 물음에는 머뭇거렸지만 꿈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바로 말문을 열었다. 마흔에 길을 걷고부터 세상일에 유순해졌고 사람을 그리워하게 되었으며 꿈이 생겼다. 그의 변화를 듣고 나니 그가 걷고 있는 옛길이 무엇인지 더욱 궁금해졌다.


2000년 김재홍 씨는 아내 송연 씨와 함께 내면의 자유와 행복을 찾기 위해 인도여행을 계획했고 그 전초전으로 동해안 도보여행에 나섰다. 길을 걸으며 우리 땅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고 마침내 옛길 탐사를 시작했다.《대동여지도》,《해동지도》와 같은 옛 지도와 옛 문헌을 사전조사하고 마을에 가서 어르신들의 구술을 받아 옛길의 흔적을 좇았다. 그들이 걸은 길은 영남대로(서울~부산) 950리, 삼남대로(서울~해남) 970리를 포함하여 무려 4천㎞가 넘는다. 2005년에는 옛길을 발굴하고 복원하자는 소박한 마음을 정리한《옛길을 가다》라는 책도 펴냈으며 지금은 경기도 의정부에서 ‘옛길 따라’라는 주막집을 운영하고 있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경흥의 서수라까지 연결했던 옛 경흥대로가 뻗어 있다는 이유로 건물 3층이라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가게 자리를 얻었다. 또한 발로 뛰며 모은 옛 지도와 자료, 그리고 생생한 경험이 담긴 여행기를 인터넷 사이트 ‘자유촌(www.jayuchon.com)’에 올려 옛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과의 교류도 활발히 하고 있다. 겨울의 초입, ‘옛길 따라’에서 김재홍 씨를 만났다.

 

몇 시간을 걷다보니 사람이 그리워졌다.
걷지 않았으면 더 망가졌을 것이다.
덜어내는 법, 핑계대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처음 계획했던 인도에는 다녀왔나. 아니. 우리 옛길을 걷느라 다른 나라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걷기 여행이 유행이다. 원래 도보여행을 즐겼나. 나는 속도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차를 몰고 나가서 부산에서 점심 먹고 목포에서 저녁 먹고 다시 의정부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최대한 속도를 높여 내가 정한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면 그뿐이었다. 인도 배낭여행에 앞서 우리 땅은 제대로 알고 있나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부산하면 떠오르는 게 해운대와 태종대가 고작이더라. 우리 땅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민망한 일이었다. 체력 훈련 겸 우리 땅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자 도보여행을 나서게 되었는데 첫날부터 발에 밤톨만한 물집이 잡혀 이틀 만에 포기하고 돌아와야만 했다. 물집이 아물기를 기다려 목표했던 태안반도만 걷기로 했는데 이 땅의 무엇에 홀렸는지 걸음이 계속 이어져 동해안과 민통선을 거쳐 강화까지 내쳐 걸었다. 하지만 이런 여행으로는 우리 땅을 알았다고 장담할 수 없기에 고민 끝에 옛길이라는 화두를 붙잡게 되었다. 

 

옛길은 어떻게 찾았나.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지지’를 길잡이로 해서 길을 찾는다. 조선시대의 옛길은 지금의 고속도로에 해당하는 길이다. 대동지지에 모두 열 개나 되는 큰길이 경로별로 자세히 적혀 있으나 수십 갈래로 변한 오늘의 길에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옛길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난 그날부터 행복한 고생이 시작되었다. 옛 지도와 문서를 직접 뒤져 자료를 찾았다. 지금은 어디든 가면 지도를 살 수 있지만 2000년도만 해도 경기도 수원에 있는 국립지도원에 가서 신분증을 보여주어야만 5만분의 1 지도를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한문세대가 아니다. 아버지 옥편을 잡고 뒤늦게 한자공부도 했다. 걸어서 보름 걸리는 삼남대로를 준비하는데 석 달이 걸렸다. 지금까지 고산자의 열 개의 길 중 다섯 곳을 다녔다. 옛길은 아직 많이 남아있다. 개발이 안 된 곳일수록,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곳일수록 많이 남아있다.

 

 

걷기에 좋은 길도 있고 그렇지 않은 길도 있겠다. 도보여행에서 가장 기쁠 때가 흙을 밟을 때다. 너른 흙길은 환상적이다. 평소에는 걷지 못하는 이런 흙길이 남아있는 것이 고맙기만 하다. 한여름 찻길, 아스팔트 길은 열기가 대단하다. 지루하고 징그럽다. 짜증나고 불안하다. 어렸을 적에 걸었던 갯벌에 대한 추억이 그리워 처음 도보여행을 서해안으로 잡았는데 여러모로 힘든 길이었다. 해안선이 30% 넘게 사라졌다는 뉴스를 듣긴 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갯벌이 아니라 방조제만 실컷 걷다왔다.
 

길은 쉽게 사라지지도 생겨나지도 않는다. 길이란 사람과 사람을 잇고 마음과 마음을 잇는다. 길이 길을 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동물에게도 그들의 가족과 무리를 잇는 길이 있을 텐데 길을 만든다면서 다른 길을 허투루 끊어도 되는 것인지. 누구든 생명의 길을 가질 권리가 있으니 길을 사람만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잘못이다. 길을 걸으면서 삶의 근거와 정서가 인위적으로 갈라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책에 “옛길을 따라 걷는 것은 옛사람과 함께 가장 원시적인 걸음으로 미래로 향하는 가슴 따뜻한 여행이자 끝이 없는 여행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걷는다는 것, 걸음은 곧 만남이다. 걸으면 내 밖의 세상과도 만날 수가 있다. 더구나 옛길은 옛사람과도 만날 수 있어 더욱 좋다. 길에 얽힌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사람이 있는 곳에 길이 있듯이 조선의 문화와 경제를 이어주던 한양 천릿길을 일제가 어떻게 바꾸며 왜곡했는지 또 자동차에 의해 소멸한 길이 어떻게 부활했는지도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기에 옛길은 살아 숨쉬는 역사박물관이자 미래를 알려주는 예언자이기도 하다. 어렵사리 찾아낸 길에서 나라를 구해낸 이순신 장군의 발자국을 좇는 영광이며, 유배가는 다산 정약용의 탄식을 듣기도 한다. 어사또 이몽룡의 금의환향을 따르기도 한다. 옛길에서 옛사람을 만난다. 고산자 할배, 심청이와도 이야기를 나눈다. 길에 서면 누가 어떤 일로 어떤 아픔과 설움과 기쁨을 가지고 갔는지가 보인다. 또 걸을수록 원시가 미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걷다보니 자동차가 정말 몹쓸 존재인거다. 걷고부터 운전을 하지 않는다. 휴대전화도 안 쓴다.

 

걷고 나서 또 무엇이 달라졌나. 지금은 사람이 곧 길이다, 라고까지 말하지만 처음에는 사람을 피해 걸었다. 현지인들에게 폐를 끼치지 말자는 마음도 있었고 사람이 싫어서이기도 했다. 내가 원래 모가 많이 난 사람이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봐 넘기기가 힘들었다. 헌데 혼자서 몇 시간을 걷다보니 사람이 그리워졌다. 걷지 않았으면 더 망가졌을 것이다. 덜어내는 법, 핑계대지 않는 법을 배웠다. 걸으며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은 어떤 세상도 아니고 그 누구도 아닌 나이자 내 몸뚱이였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여행 중에는 소소한 다툼이 잦다. 부부끼리 의견 충돌도 꽤 있었겠다.
내가 함께 떠나자고 아내를 꼬드겼다. 해안선을 따라 걸을 때는 나 혼자였기에 입에서 곰팡이 냄새가 날 지경이었다. 무척 외로웠다. 그래서 아내 보고 같이 가자고 했다. 우리는 무엇을 정할 때 결정하기까지는 치열하게 고민하지만 한 번 결정하면 무조건 따른다. 함께 옛길을 걷자고 했을 때 아내는 적극적이었지만 생업까지 놓자는 의견에는 반대했다. 그러다가 끝내 결정을 해버리니 그대로 따라주었다. 출발 전 이 여행이 안 해도 될 부부 싸움의 원인이 되지 않을까 싶은 걱정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걷기로 나선 길이었고 걷는 일에 대해서는 나나 아내나 아무 것도 모르니 명령이 아니라 의논을 할 수밖에 없다. 집에서는 없던 의논하는 버릇이 생겼다. 매일 끼니를 고르는 일도 곤혹스러워 나중에는 서로 저녁은 당신이 골라라 그러면서 떠넘기곤 했다. 둘 이상의 여행에서 생각을 하나로 통일하려고 들면 다툼이 일어난다. 매사에 강요하면 안 되더라. 그래도 혼자 다니는 여행은 등 긁어주는 사람도 없는데 서로 위로와 격려가 되었다.(웃음) 

 

책에 짐 꾸리기에 대한 내용도 적어놓았던데 정말 그 정도면 충분할까. 도보여행을 처음 한다면 무엇이 필요하고 필요하지 않은지 알 수 없다. 이럴 때는 필요하다 싶은 것을 모두 싸들고 하루만 다녀보면 답이 절로 나온다. 그 다음 필요치 않은 것을 추려내 우체국을 찾아 집으로 부치면 금방 해결된다. 불안하니까 짐이 늘어나는 거다.  

 

짐 꾸리는 법을 찾듯 꿈도 길에서 찾은 것인가. 물론!(웃음) 2년만 다녀보자 했던 길이었는데 10년이 흘렀다. 길은 하나의 점으로부터 시작한다. 사람이라는 점과 점이 이어지면 마을이 되고, 다시 마을을 이어 마침내 길이 된다. 마치 몸의 핏줄과도 같다. 우리에게는 우리 고유의 길이 있었지만 어느덧 잊혀져가고 사라져 간다. 옛길은 기록해야 한다. 내가 기록하고 있는 지리지로 모든 이들이 옛길을 쉽게 접하고 내 뒤에 걷는 이들이 쉽게 걸었으면 좋겠다. 좀더 자료가 모이고 여유가 생긴다면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옛길학교를 열고 싶다. 우리의 아름다운 옛길과 옛길에 담긴 자연과 문화,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싶다. 당장은 올 겨울에 관동대로를 걸을 예정이다. 옛길에 널린 산딸기를 간식으로 먹을 수 없는 것이 좀 아쉽기는 하지만 15kg의 배낭을 짊어지고 걷기에 겨울은 충분히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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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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