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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28 백제의 미소, 찾아가는 길

 세상이 많이 편해졌습니다.

 

예전 같으면 아무 대책 없이 버스 정류장에서 배차 간격 뜸한 버스를 기다리며 거위처럼 목을 길게 빼고 도로 왼쪽만 하염없이 바라봐야 했지만(물론 저는 아직도 그러고 있지만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자신이 기다리는 버스가 정확하게 몇 분 뒤에 정류장에 오는지 알기 때문에 허튼 시간 버리지도 추위와 더위에 시달리지도 않습니다. 갈수록 그렇게 편리함의 속도는 빨라지겠지요. 물론 그렇다고 그게 마냥 부럽기만 한 건 아닙니다.

 

우리처럼 아날로그의 끝자락과 디지털의 첫 단추를 동시에 걸쳐 있는 세대는 아날로그의 온기와 디지털의 속도를 함께 누릴 수 있는 나름의 특권도 있지요. 물론 아날로그에서 온기를 누리거나 품지 못하고 디지털에서 속도를 즐기거나 만들어내지 못하는 얼치기가 되지는 않아야 가능하겠지만 말입니다.

 

오랜 동안 청산통신도 접고 마감해야 할 원고들과 새롭게 펼치기 시작한 원고들에 치대어 보내다가 갑자기 해미로 떠나고 싶었습니다. 언젠가 머지않아 그곳에서 움터를 마련해서 그저 읽고 쓰는 일에만 파묻혀 지내고 싶은 곳이기에 항상 마음 한 켠 자리 잡고 있는 곳이지요. 그러나 며칠 전 길을 떠난 건 해미가 아니라 운산의 마애석불 때문입니다.

 

흔히 ‘백제의 미소’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어서 정말 그게 백제인의 모습이려니 하고 각인될 만큼 소담한 마애불입니다. 그걸 보호한답시고 닫집을 만들어 자연 채광으로 드러내는 미소의 아름다움은 박제되고 어설픈 인공조명으로 비추는, 굳은돌이어서 마음이 시렸는데, 얼마 전 마침내 그 닫집을 걷어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가야지, 가마 하면서도 정작 쉽게 떠나진 못했습니다. 자동차를 갖고 있지 않아서 그 길이 사실 그리 만만하지 않아서 늘 마음에만 담고 있다가 날 풀리는 봄날 몸살 하듯 내처 떠나고 보자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마침 고등학교 동창이 함께 가자 해서 그 친구 차로 떠날 수 있었습니다. 비는 추적추적 쉼 없이 내렸지만 자동차의 편리함은 그것쯤은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얼마쯤 지나 운산의 계곡에 우리를 내려놓았습니다.

 

과연 쓸데없는 옷을 뒤집어쓴 채 어색하게 웃던 부처님은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해서 한걸음에 올랐습니다. 말끔하게 닫집을 벗고 마침내 본디 모습으로 잔잔하게 웃고 있는 부처님의 모습이 얼마나 반갑고 감격스러웠는지 모릅니다. 해마다 들러본 곳이면서도 사뭇 달랐습니다. 정작 제 모습을 왜곡한 채 보호라는 명목으로 감금되었던 부처님도 비로소 제대로 웃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벼르고 벼른 끝에 찾아간 마애불에서 머문 시간은 고작 20여 분에 불과했습니다. 방사능비가 무서워서도 아니고 눈맞춤했으니 그걸로 족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내친 김에 개심사와 해미읍성까지 둘러볼 마음으로, 아니 모처럼 떠난 길, 본디 꽃구경 좋아하지 않지만 비인 마량포구의 동백 숲까지 가볼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동백 숲엔 가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저 마음만 바쁘고 시간만 축냈을 뿐입니다. 물론 풀밭에 뚝 떨어진 동백의 자태가 흠씬 아름답긴 했지만 말입니다.

 

동행한 벗이 함께 길 떠나기에 참 좋은 친구였기에, 그 덕에 편하게 가본 참에 좋아하는 개심사와 읍성까지 안내하고 싶었기 때문이긴 했습니다. 필요할 때는 서로 아무 말 없이 그저 묵묵히 길을 걸을 수 있는 동행은 분명 고마운 복입니다. 그런 친구였기에 아마 어쩌면 더 많이 들러보게 하고 싶기도 했을 겁니다. 물론 저 역시 쉽게 가지 못하는 길, 이왕이면 한 묶음으로 꿰고 올 생각이었습니다.

 

발단은 욕심에 동백 숲까지 간 데서 비롯되었던 것을 돌아오는 길에 깨달았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마애불까지 가려면 터미널에 가서 시외버스를 타고, 다시 내려 한참을 기다렸다가 하루에 서너 차례만 오가는 시골 버스를 타고서야 가능합니다. 어차피 다음 버스까진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까닭에 엎어진 김에 쉬었다 가는 심정으로 몇 시간이고 그 작은 계곡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러니 좋든 싫든 내내 마애불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요. 그것만으로 하루를 다 보내거나 운 좋아 버스 시간 맞으면 개심사까지 들르곤 했습니다.

 

여행을 나타내는 낱말 travel의 어원인 라틴어 travail의 뜻이 ‘고생하다’ 라는 걸 불현 듯 깨달았습니다. 옛사람들은 힘들게 찾아간 곳에서 잠깐 일별하고 다시 길을 떠나지는 못했겠지요. 그저 그거 하나 찾아갈 일념으로 반나절이나 한나절 내내 걸어갔을 겁니다. 다른 건 들여다볼 생각일랑 아예 품지 못했기에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게 걸어가지는 않아도 몇 시간 동안 버스 갈아타며 찾아간 그곳에서 그렇게 짧은 방문으로 마감하진 못했겠지요.

 

참된 사랑은 오롯하고 직수굿하게 상대에게 집중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사실 그런 사랑은 효율도 떨어지고 다양성도 딸립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 하나에 대한 확실한 마음과 애틋함은 마음껏 누리고 채우겠지요. 그게 사람이건 사물이건 다르지 않겠지요. 이것저것 들쑤시고 욕심만 내면서 정작 하나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사는 일이 얼마나 많을까 돌아봅니다. 마음만 앞서고 조바심만 내면서 말입니다.

 

모처럼 떠난 길 서둘지 말고 욕심내지 말고 차분하게 누리고 오지 못했습니다. 마애불 초입의 산중턱 관리소 기와집 마루에서 무심하게 걸터앉아 아무 말 없이 그저 처마 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낙수 소리에 취해서 맞은 편 산기슭의 나무들에도 눈길을 나눌 수 있어도 좋았을 것이고,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며 마음에 품었으면서 정작 잘 꺼내보지 않아서 조금은 낯설기도 할 이야기들도 두런두런 나누지 못하고 돌아온 게 아쉽고 동행한 벗에게도 미안한 하루였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건 쉽게 떠날 수 있는 편리한 자동차. 그러나 정작 한 곳에 집중할 마음을 상실한 게 그런 편리함 때문이라는 걸 미련스럽게도 돌아온 뒤에 확인합니다. 여행의 본디 뜻이 고생함이라는 걸 겸손하게 되돌아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조금은 미련하게 느긋하게 다가서고 지켜볼 수 있는 고생스러운 넉넉함을 생각합니다. 정말 만나고 싶은 건 꽃도 아니고 멋진 날씨도 아니며 바로 시간이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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