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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0.25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공자께서는 기원전 6세기 경 어느 날, 제자들을 모아 놓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공자님 말씀이지만, 오늘 날 우리 중고등 학생들은 이 말을 전혀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새벽부터 밤 늦게 까지 공부에 시달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것은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일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입시 경쟁을 위한 성적 위주의 생활을 하게 되면서 공부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성적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우리 아이들은 쉴 틈이 없다. 입시 경쟁과 성적 위주의 교육이 되면서 우리 아이들은 지독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런 경쟁 구도에서 학생들은 공부의 즐거움 보다는 공부를 남을 물리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기 쉽다. 수많은 경쟁 대상들을 물리쳐야 살아남는 상황에서 우리 아이들이 남을 배려하거나 걱정해 주는 여유는 없다.

 

 

 

 이런 경쟁 구도에서 우리 아이들은 폭력적으로 변하거나, 비극적 선택을 한다. 성적을 비관하거나, 친구의 폭력 때문이거나 간에 한 해 자살하는 10대 학생의 수가 446명 (‘09년기준) 이상이다. 부끄럽지만, 이 수치는 OECD 1위이다.

 

 

왜 학생들은 자살하는가? 한 마디로 배움이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하는 공자는 말씀은 우리 아이들에게 그저 ‘꼰대’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도통 현실을 모르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지금 학생들은 때때로가 배우고 익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공부기계처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배우고 익히고 있다. 그러니 학교가 즐거울 수 있고, 학문이 즐거울 수 있는가?

 

 

어렸을 적 나도 학교를 전혀 즐겁게 다니지 못했다. 교문에 들어서면 무서운 교련 선생이나 학생 주임이 학생들을 죄인 보듯이 노려보는 것부터가 싫었다. 복장불량이면 등굣길에서부터 잡아다가 엎드려뻗치기도 하고, 심지어 때리기도 하는 데 학교가 즐거울 수가 있겠는가? 학교는 즐거운 배움터가 되어야 하는데, 아침부터 수용소에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얼마 전 독일의 발도르프 학교가 TV에 나와 보니, 아침에 선생님이 문 앞에서 학생들을 일일이 손을 잡아 주며 따뜻하게 맞아 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우리에게는 왜 등굣길부터 학생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일까?

 

 

나는 고등학교 때 심각하게 방황했다. 부모님과 주변에서 무조건 공부를 해서 대학을 가야한다고 말을 하지만, 그때 나는 왜 살아야 하는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참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정작 이런 고민을 털어 놓을 선생님이 없었다. 선생님한테 가기도 어려웠다. 어쩌면 죄다 무서운 선생님들만 있었을까 싶다. 어쩌다 용기를 내서 마음 착해 보이는 선생님에게 그런 고민을 털어 놓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이랬다.

 

“그런 것은 대학 가서 고민해 ! 대학가면 다 해결돼!”

 

정말 대학을 가면 그런 것이 다 해결되는가? 얼마 전 아는 교수한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들어 온 신입생이 있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더니, 공부를 별로 하지 않고 놀기만 하는 것 같더란다. 불러서 왜 공부를 안 하느냐고 물어 보니, 그 학생 하는 말이 걸작이란다.

 

“우리 엄마가 대학 가면 놀라고 그랬어요!”

 

그 말을 들은 교수는 순간 기가 막혔다고 한다. 그러면서 대학 들어 와서 방황하는 학생들이 많은 이유를 알게 되었단다. 우리나라의 중고등학생들은 공부를 죽어라 열심히 해도, 내가 왜 공부하는지를 잘 모른다. 그런 것을 물을 틈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중고등학생 시절에 해야 할 고민을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대학에 한다.

내가 공부하는 이유를 알아야, 공부가 즐겁고 신이 나는 것이다. 그런데 공부를 하는 이유를 알려면, 근본적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해야 한다.

 

 

나의 미래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고, 나는 그 미래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물음도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도 학교 교과 과정에서는 찾을 수 없다. 학생 스스로가 찾을 수 밖에 없다. 이때 도움이 되는 것이 인문 고전에 대한 공부이다. 인문 고전은 이제까지 인간이 쌓아 온 지혜가 온축된 보고이다. 인문 고전을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한 물음도 발견하고 해답도 찾을 수 있다. 인문 고전 공부는 스스로 묻게 하고, 답을 찾게 하면서 사람을 지혜롭게 만든다.

그러면 인문고전은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 인문고전독서에는 왕도가 없다. 그래도 인문고전독서법에 대해 추천하라면 다음과 같은 방도를 권하고 싶다.

 

 

1. 자기 수준에 맞는 고전의 리스트를 작성하라.

2. 차분하게 쉬운 고전부터 읽어라.

3. 조바심을 내지 말고 한권이라도 정독하며 음미하라.

4. 자기가 읽는 고전에 몰입하라.

 

 

인문학은 남을 위한 공부가 아니다. 자기를 위한 공부이다. 인문학을 공부하다보면 자기가 변화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실례로 얼 숄리스가 개최한 인문학 강좌에 참여한 노숙자들은 노숙자 삶에서 벗어나는 커다란 변화를 보였다. 그들은 인문학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이 원하는 진정한 삶에 대한 소망을 갖고 그러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인문학은 우리의 삶에 대한 성찰과 깊은 사고를 통해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 준다. 인문 고전 공부를 통해 학교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배우고도 변화가 없었던 두뇌와 삶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경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인문 고전을 읽어야 한다. 스티브 잡스는 “소크라테스와 점심을 할 수 있다면 애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술을 그것과 바꾸겠다.”고 말을 했다. 우리는 그런 소크라테스를 인문 고전독서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인문 고전 독서를 통해 소크라테스와 만나는 즐거움을 느낀다면, 그때부터 인문고전 공부는 이렇게 바뀔 것이다. 때때로 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 새이웃 379호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글 중에서-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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