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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라오스는 최빈국이다. 부채와 기아, 분쟁 등으로만 국제뉴스에 오르내리는 아프리카 여러 나라와 바로 이웃한 미얀마, 캄보디아와 함께 OECD가 정한 최빈국이다. 최빈국은 그대로 후진국이 된다. 우리는 후진국에는 본받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후지다’는 말이 욕처럼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그야말로 화폐를 기준으로 삼을 때만 진실이다. 라오스 사람들이 표정은 성적의 높고 낮음과는 전혀 무관하다.


2007년 나는 한국국제협력단 해외봉사단원으로 라오스의 시골마을 중학교에 파견되었다. 믿따팝 중학교. 믿따팝은 우정이라는 뜻이다. 임기 2년 동안 살집을 구하기 전에 영어 선생님 댁에서 열흘간 홈스테이를 했다. 영어에 서툰 나보다도 영어를 못하는 영어 선생님이어서 파견되기 전 수도에서 두 달간 배운 라오스어에 손짓발짓을 더해 의사소통을 했다. 왁자한 웃음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이런 대화법과 열흘간의 동거를 통해 자연스레 라오스 시골사람들의 일상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 댁에 처음 간 이튿날인가 저녁을 먹고 절에 ‘잔치’가 있으니 가보자고 해 집을 나섰다. 도청 옆 마을 한 가운데 있는 제일 큰 절로 향하는 길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절 입구에서는 1,000낍(우리돈 100원)을 받고 입장 리본을 달아주었다. 길에서부터 이어진 좌판은 경내라고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경내에 벌어진 좌판이 진짜 놀거리 볼거리였다. 풍선 터트리기, 스티커 사진 찍기, 거대한 튜브로 만든 어린이 놀이터 등 소박하지만 없는 게 없었다. 먹을 것도 빠질 수 없다. 그런데 연기까지 피워대며 고기꼬치를 구워판다! 스님들도 한자리 벌이고 시주를 받고 점을 쳐준다. 유일하게 덜 소란한 법당에선 설법을 듣는 사람들이 모여 있기도 했다.


라오스의 절에서는 이런 잔치가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열린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마을에 어떤 일이 있을 때 스스럼없이 공간을 내어준다. 절과 학교가 실질적인 마을 공동체 활동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특히 교육기능에 있어서 그렇다.


라오스에서 웬만한 규모의 절은 곧 학교다. 아주 가난한 집은 일찌감치 아이를 절에 맡기고,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학생들은 절로 들어온다. 라오스에서는 집에서 머물며 공부하기는 쉽지 않다. 보통의 학교를 다니면 집안일을 돕거나 노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다. 또 일생에 한 번은 절에 들어와 수양해야하는 관습이 있어 주로 학령기의 아이들이 절에서 살게 된다. 당연히 이들을 위한 교육과정이 고래로부터 있어왔다. 본인이 절 밖에 있는 대학을 가고자 하면 이에 대한 지원까지도 절에서 한다. 매일 아침 탁발로 모은 음식과 마을 사람들이 내는 시주, 장소 사용료 등이  재원이 된다.


결국 절은 마을 공동의 무료 보육원이자 학교, 문화센터인 것이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등학교 등 일반적인 각종 학교 역시 기본적인 정부의 지원 외에 공동체에서 필요한 역할을 하는 데 드는 비용은 학부모든 주최자든 공동체가 자체 부담하고 자율적으로 운영한다.

 

 

아기를 안고 가르치는 선생님


아기를 둘러 안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여교사의 모습은 초라한 교실 배경과 함께 우리에게 동남아시아의 열악한 교육환경을 웅변하는 이미지로 박혀있다. 이런 사진은 조금 다른 의도이긴 하지만 내 책에도 어김없이 실려 있다. 그런데 이 모습에는 우리들의 고정관념과는 전혀 다른 것이 있다. 여교사가 아이를 업고 수업하는 광경은 라오스의 교사들이 직무와 육아를 조화롭게 해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일 수도 있다. 라오스에서는 학교운영은 물론 직접 학생 교육과정에서도 교사들의 편의가 중시된다. 심지어 교사들을 위해, 우리의 시각으로 볼 때 학생들의 수업권이 다소 침해를 받더라도 이에 대한 학생, 학부모 모두의 이해와 협조는 당연한 것이다. 엄마 선생님들이 아기를 어디에 맡길 데가 없어서 교실로 안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확대가족, 대가족 형태가 일반적이니 절대 집에 아기 봐줄 사람이 없지 않다. 마을에 몇 개씩은 있고 거의 무상으로 운영되는 유치원(보육원)에 맡길 수도 있다. 또 직장(학교)마다 보육교사를 두고 있는 육아방이 설치되어 있으니 이는 더욱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닌 것이다. 딛따팝 중학교만 해도 엄마 선생님이 하나 둘 늘자 곧 교장실을 없애고 육아방으로 바꾸어버렸으니 말이다. 학교는 학생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선생님들도 학교에서 놀고, 운동을 즐기고, 회의를 하고, 배운다. 선생님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에도 필요에 따라 공간이 부족하면 학생들을 집으로 보내고 따로 선생님들만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학교는 교사들의 복지는 물론 자아성취를 위한 중요한 공간, 일터이기도 한 것이다.


라오스는 프랑스의 영향인지 여름에 학년을 마치고 가을에 새 학년을 시작한다. 따라서 5월 기말 시험이 끝나면 곧 진급과 졸업, 표창과 유급을 위한 성적사정이 시작된다. 이 중요한 회의에 각 반 학생대표가 참여한다. 일단 수업일수가 모자라는 학생들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한 학년에 두 번 있는 시험을 모두 보았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이 시험에서도 점수가 일정한 기준에 미달했다면 심각하게 논의해야 하는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미 각 기말시험마다 1차 시험 낙제생들을 위한 2차 시험 기회까지 있다. 객관적인 기준 외에 학생대표와 담임교사의 평가도 중요하게 반영돼 유급 대상 학생을 정한다. 마지막으로 이들 학생과 그의 부모가 학교에 출석해 유급하는 것이 좋을지 진급해 공부해도 문제가 없을지를 교사와 의논하고 마지막에 스스로 판단해 최종 결정을 한다. 결국 학생들이 부모와 함께 자신의 학업을 스스로 평가하고 최종결정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자기 성적을 자기가 책임지는 것이다. 우수 학생 표창 역시 마찬가지다. 일단 시험성적으로 우등생 후보들이 추려지면 학생대표의 견해를 듣고 표창장을 수여할 한 학생을 선발한다.   

 

 

16살과 9살짜리가 어울려 공부하는 교실


라오스의 초등학교는 5년, 중학교는 3년, 고등학교는 3년, 대학교는 5년이다(올 가을부터 중학교가 4년으로 늘어날 거다). 초등학교를 보통 만 6살에 들어가니 중학생이면 11살부터 13살 사이인 게 맞다. 그러나 수업참관을 하면서 만나는 하루 짝꿍들에게 나이를 물어보니 9살부터 16살까지 차이가 많이 났다.
 

굳이 나이를 묻지 않아도 교실을 한 번 둘러보면 키가 120㎝에도 못 미치는 ‘어린이’부터 170㎝도 넘고 수염이 거뭇거뭇한 ‘청년’이 뒤섞여 있다. 학생의 능력과 형편에 따라 스스럼없이 입학과 유급을 결정하는 까닭에 아주 어린 나이에 초등학교를 들어오는 경우 도 많고 2, 3년 이상을 유급하는 학생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이 이들이 서로 잘 어울린다는 것이었다. 라오스의 학교에는 이른바 ‘왕따’가 없다. 나이가 많고 덩치가 크다고 그 힘을 이용해 작고 어린 친구들을 때리거나 못살게 구는 경우는 없다.
반면 공부를 못해서든 다른 이유든 유급해 있는 나이 많은 친구들을 무시하거나 따돌리는 경우도 없다. 삼촌과 조카뻘로밖에 안 보이는 친구들이 스스럼없이 어울려 노는 모습은 한국식에서 굳어진 시선만이 정상이라는 고집스런 내 편견을 깨주었다.


지난 해 강압적으로 치른 일제고사 때문에 한국이 한창 떠들썩할 때였다. <한겨레신문>에 라오스 사진이 한 장 실렸다. 감독하는 선생님이 있어도 학생들이 자유롭게 의논하면서 답안지까지 서로 보여주며 시험을 치르고 있는 모습을 찍은 것이다. 2007년 파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주친 이런 모습이 당시에는 절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 이후 점차 학생들과 정도 들고 라오스 사회전반에 대한 이해가 늘었어도 이런 면까지 관대해지지는 않았다. 학생들은 시험감독으로 들어간 내게 태연하게 답을 묻기까지 했다. 내가 답을 알만한 영어, 과학, 수학, 컴퓨터 과목에서는 노골적으로 답을 묻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처음엔 당황했고 나중에는 노련하게 이런 ‘불공정’ 요구들을 거부했다.


시험은 무조건 엄정하게 치러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귀국할 때까지도 다른 것은 몰라도 라오스의 시험 분위기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내 머리가 무관하게 나의 몸과 행동은 점점 라오스 학생들의 요구대로 변해갔다.


한국어 수업의 시험이 내게 익숙한 시험이 아니라 집중 학습 기간이었다. 가장 중요한 내용만을 추려 이미 작성한 예비 시험지로 1주일 전부터 진짜 시험대비 공부를 했다. 그리고 그 예비시험지 그대로 진짜 시험문제를 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당연히 8,90점대 점수를 얻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내용은 다음 시험에도 표현만 조금 늘려 거의 똑같이 냈다. 학생들은 시험문제에 아주 익숙해졌고 그래서 시험에 나온 한국어 표현은 거의 외울 수 있게 되었다.


시험은 공부를 잘하기 위한 과정인 것이다. 좋은 점수를 얻겠다는 생각이 자극제가 되고, 보다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엄격하게 통제해서 ‘공정’하게 얻은 점수로 학생들을 등수에 따라 줄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닌 것이다. 평가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는 셈이다. 시험이 학생들의 공부를 독려하기 위한 것이라면 라오스 학생들의 이러한 ‘불공정’한  시험 행태는 시험의 본래 목적에 위배되지 않는 합리적인 행동일 수 있다.


라오스에 가기 전까지 나는 귀농을 꿈꾸고 있었다. 몸과 마음의 휴식에 갈급한 상태였다. 2009년 한국에 돌아와 이제 나는 인식의 전환까지 선물 받는 ‘귀라’를 꿈꾼다. 라오스로 돌아가는 꿈 말이다.   

 

 

글을 쓴  이영란 님은  주로 시민단체에서 일했으며 2년 동안 코이카 단원으로 라오스에 파견돼 한국어교사로 일한 경험을 모아《싸바이디 라오스》라는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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