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결심한 잠자리가 있었다.

 

 

가족은 참새에게 잡혀먹히고,

친한친구도 죽었다.

외롭고, 살 길이 막막했던 잠자리는 죽기로 결심하였다.

그리고 푸른요정 풍뎅이를 찾아가

자신의 생각을 실천하기 위한 상담을 받았다.

 

사연을 들은 풍뎅이는

"편안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그럼 1년 이내에 너와 같은 슬픔이 전혀없는 벌레 한 마리를 데려오거라

그러면 가르쳐 주겠다"

 

 

잠자리는 개미도 만나고, 딱정벌레도 만나고, 벌도 만나 보았다.

그러면서 다른벌레들 역시 자신과 비슷한 아픔이 많은걸알게되었다.

그 이후 잠자리는 자살을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더이상 풍뎅이도 찾을 필요가 없어졌다.

 

 

다른 벌레들과 대화를 나누며

잠자리는 이미 내적 치유가 되었던 것이다.

 

 


 

이웃의 공감과 나눔, 위로와 격려는

예상하지 못한 아픔과 상처를 겪는 우리에게

더없는 치료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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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률 1위국가라는 오명을 여전히 벗지 못한 채...

오늘도 누군가는 자살을 꿈꿉니다.

실제 한국에서는

하루에 평균 35.5명이 자살을 실천에 옮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죽기전

주변에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을까요?

 

 


 

 

 

#1. 중3 아들(이모 군·15·이하 모두 사망당시 나이)이 손톱깎이를 들고 다가왔다. "아빠, 저 손톱 좀 깎아주세요." 애교 많던 아들은 3개월 전부터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한 달 전에는 "앞이 안 보인다"고 호소해 안과에 데려갔지만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2주 전부터는 "언제 출장가세요?"라고 자주 물었다. 걱정이 커질 무렵 "손톱을 깎아달라"며 다가와준 아들이 고마웠다. 일주일 뒤, 아들은 집에서 목을 맸다. 아버지가 출장 간 사이였다. 아들은 학교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2. "숨쉬기가 힘든데…." 남편(최모 씨·51)은 아내(46)에게 가슴 압박감을 호소했다. 병원에 가도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내가 오래 살 수 있을까?" 남편이 무심히 물었다. 무직인 남편은 평소 아내가 퇴근할 때까지 설거지를 해놓는 법이 없었다. 어느 날 남편은 설거지를 깨끗이 해놓았다. 평소 전화를 하지 않던 남편은 이날 아내에게 4번 전화를 했다. 다음 날 남편은 오랜만에 아내를 회사에 데려다줬다. 몇 시간 뒤 남편은 자살했다.



스스로 생을 끝내기로 결정한 이들은 자살 전 저마다 '조용한 신호'를 보낸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자살자 60명에 대한 심리적 부검 결과를 분석해보니 52명(86.7%)이 가족에게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는 뜻을 담은 신호를 보냈다. 이 중 대부분은 일상 행동에 변화를 보이는 수준의 소소하고 조용한 신호였다.


이 군이 손톱을 깎아달라고 한 건 모든 문제를 부모가 해결해주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심리의 발현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겪고 있으니 어릴 때처럼 도와달라는 신호였다. 이 군과 최 씨가 갑자기 앞이 안 보인다거나 가슴이 답답하다는 등 신체적 고통을 호소한 건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가족들은 조용히 스쳐가는 자살 신호를 알아채지 못한다. 신호를 보낸 뒤 자살한 52명의 유가족(52명) 중 24명(46.1%)은 신호를 감지하지 못했다. 가족을 떠나보내고서야 뒤늦게 신호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설마'하는 마음에 '살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인 이 신호를 애써 못 본 척하기도 한다. 유가족 20명(38.5%)은 자살 신호라는 걸 알고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자신이 보낸 신호를 아무도 몰라주거나 외면할 때 이들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다. 민성호 연세대 원주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람의 얼굴이 제각각이듯 자살 신호도 천차만별"이라며 "'죽고 싶다'고 말하는 것 등의 널리 알려진 신호 이외에 자살자 각각이 보낸 신호를 최대한 많이 알아둬야 앞으로 일어날 자살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동아일보] 2014-03-14
[전문보기] http://news.nate.com/view/20140314n01324?mid=n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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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인과 대화할 때는 ‘정치’ ‘종교’ 외에

주제로 삼지 말아야 할 것이 또 하나 있다.

. . .

 

핀란드 정착 초기 친하게 지내던 한 핀란드 이웃이 있었다.

하루는 그가 친한 친구가 죽었다며 슬픔에 잠겨 있었다.

슬픔을 나눠보자는 생각에 친구가 어떻게 죽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문을 못 들었다고 생각한 나는 눈치 없이 재차 물었다.

이번에도 그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냥…, 죽었다…”고.

 

 

 

 

그제야 나는 ‘혹시 자살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후에도 핀란드 사람들로부터 ‘자살’이란 단어를 직접적으로 들어본 적은 거의 없다.

핀란드인과 교류가 잦아지며 웬만한 핀란드 가정은

그 가족 구성원이나 친척 중 자살한 사람이 한두 명씩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에게 ‘자살’은 남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자신과 너무 가까운,

그래서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단어였다.

   

 

핀란드는 20세기 내내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가 됐다.

사람들은 핀란드가 지리적으로 극지방에 인접해 겨울에 해를 보기 어렵고,

인구 밀도가 낮아 사람들 간 교류가 부족하여 고립감을 느끼기 쉬울 것으로 생각했다.

정치적으로는 주변 열강의 침입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경제적으로 위기가 여러 번 닥쳤다는 점도 높은 자살률의 원인일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딱 꼬집어 그 이유를 얘기하지는 못했다.

특히 핀란드의 산업화와 도시화가 가속화되었던 1965년부터 1990년까지

25년 동안 핀란드의 자살 사망률은 3배나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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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소·병원서 혈압 검사하듯 우울증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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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없이 치솟는 자살률로 국가적 위기의식까지 느낀 핀란드 정부는

1986년 세계 최초로 국가가 주도하는 거국적 ‘자살예방프로젝트’를 단행했다.

핀란드 정부는 자살을 국민 정신 건강의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생산노동인구를 감소시켜

국가경쟁력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프로젝트의 1단계는 자살자 1337명의 자살 원인을 자세히 밝히는

 ‘심리적 부검(자살 전 자살자의 행동, 주변인물 심층 인터뷰 등을 통해

자살원인을 밝히는 작업)’을 실시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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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5만명 동원 자살자 ‘심리 부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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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부터 1992년까지 무려 6년간 학교·병원·사회복지기관·군대·교회 등

각계 각층의 전문가 5만명이 동원되어 1337명에 대한 심리적 부검이 진행됐다.

1992년 핀란드 정부는 심리적 부검 결과를 바탕으로 자살 원인을 유형별로 분류하고

자살 예방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후 4년간 이 프로그램은 핀란드 전역에서 실행되었다.

 

 

핀란드 자살 예방 프로그램의 핵심은 자살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조기에 파악하여 빠르고 적절한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다.

 

 

심리적 부검 결과에 따르면 자살자의 3분의 2 이상이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병원 기록에 따르면 이 중 불과 15%만이 우울증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었고

나머지 대부분의 자살자는 자신이 우울증인지도 모른 채,

아니면 알더라도 적절한 치료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생애를 비극적으로 마무리했다.

 

 

핀란드 정부는 보건소나 일반 병원에서 정신과 환자가 아닌

일반 외래 환자라도 우울증이나 자살 충동 여부를 혈압이나

 혈당 검사처럼 주기적으로 체크하도록 했다.

잠재적 우울증 환자를 적극적으로 발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 자살자들은 대부분 자살 전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자살과 관련된 암시나 신호를 여러 번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 예방 프로젝트를 이끈 마일라 우파넨 박사는

“만일 주변에서 그런 신호를 좀 더 주의력 깊게 읽어낸다면

사전에 자살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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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감과 공감대 형성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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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 프로그램에서 의학적 치료만큼 강조점을 둔 것은

 ‘사회와의 접촉’이었다.

우파넨 박사는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사회와의 접촉을 통한

소속감과 공감대 형성이 자살을 막는 데 아주 중요한 요소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외롭고 공허함을 느끼던 사람들이 사회와의 접촉을 통해

‘내 편이 있다’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핀란드의 대표작가 아르토 파실린나의 소설

‘기발한 자살 여행’에는 버스를 타고 단체로

자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단체 생활을 통한 서로간의 교류를 통해 삶의 의지를 찾게 되고

어느새 ‘죽음’은 ‘삶’으로 바뀐다.

 

 

 이 작가는 자살 연구학자는 아니었지만 무엇이든지(비록 자살여행일지라도)

 ‘함께’ 해 나갈 때 사람들이 삶의 의지를 되찾게 된다는 것을 이미 꿰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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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언론 보도 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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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자살 예방 프로그램에서 중요시한 것은 언론의 자살 관련 보도 자제였다.

핀란드 자살 예방 프로젝트 위원회의 한 보고서를 보면

“자살은 마치 잔잔한 물 속에 돌을 던지는 것과 같다”고 쓰여 있다.

 

 

한 사람의 자살은 큰 파문을 일으키며 주변을 흔들고 때로는 사회 전체도 흔든다.

더구나 자살자가 유명인일 경우에 그 파문은 더 크고 멀리 간다.

 

 

핀란드 언론기관도 자살 예방 프로그램에 협조하여,

이때부터 동반 자살 충동을 일으키거나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자살 관련 기사를 자제하고 있다.

핀란드 언론은 개인적 죽음과 관련된 보도에서 ‘자살’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며

 자살과 관련된 구체적인 방법도 보도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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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예방 프로젝트 성공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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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부터 1997년까지 10년 이상 지속됐던 핀란드의 자살 예방 프로젝트는

상당히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990년 10만명당 30명이던 핀란드의 자살률은 해마다 떨어져

2005년에는 10만명당 18명, 2008년에는 16.7명으로까지 떨어졌다.

세계 3위까지 올라갔던 자살국 순위도 13위로까지 떨어져

서유럽의 프랑스나 오스트리아와 비슷한 수준이 되어 핀란드는‘자살공화국’이란 오명을 벗게 되었다.

 

그러나 핀란드 내부에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의견이 많다.

2007년 통계를 보면 자살은 여전히 핀란드인의 전체 사인 중 4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핀란드 청소년의 높은 자살률은 자살 예방 프로젝트에도 불구하고 줄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신문 논평에는 1990년대 말에 종결된 자살 예방 프로젝트를

다시 부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자주 개진되고 있으며

어떤 학자는 이제 심리적 부검을 1000명대가 아닌 10만명 정도로 늘려서

더 자세히 자살의 원인을 분석해야만 자살률을 확실하게 잡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출처] Asia, World / 헬싱키 = 이보영 통신원

 

 

#

우리에게도 더 이상 자살은 남의 일이 아닙니다.

물질과 성공 지향적인 삶을 잠시 내려놓고

사람과 사람이 관계맺고, 교류하면서

서로의 가치로운 삶을 응원해 줍시다.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 사는것이 아니라

인간답게, 가치롭게, 행복하게 살기위해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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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김유리씨가 자살했다고 합니다. 정확한 사인은 경찰 수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여러 정황(김유리 미니홈피에 남긴 글/모델이라는 직업이 갖는 스트레스)을 감안한다면, 우울증과 스트레스때문에 자살한 것이 아닐까 추정해 볼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번 국내외 연예인들의 자살 소식을 들을 때마다, 모방 자살(베트테르효과)이 이어질까 걱정이 됩니다. 고 최신실 자살사건 때도 그랬지요. 우울증. 특히 연예인 자살은 대부분 우울증에 기인합니다. 미국의 자살 비율은 100,000 사람중 10.9명이 자살. 사망한 사람들 중 90% 이상이 우울증 병이 있거나 다른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하지요. 이제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대책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지혜를 모아 세계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떨쳐 낼 때입니다.


      * 김유리가 자신의 미니홈피에 남긴 글

  
세계 보건 기구(WHO)는 우울증이 2020년 무렵에는 관상동맥질환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질병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한국의 자살률은 세계 1위. 2006년부터 자살률이 더 급증하고 있습니다. 칸 국제 영화제에서 주목할 시선 부문 대상을 받은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에서도 주인공이 항우울제를 습관처럼 복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요.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는데. 우울증. 왜 우울증에 빠지는 걸까요? 행복하다면 굳이 항우울증제를 먹을 필요가 없겠지요. 자신이 불행하다는 생각, 견딜 수 없는 고통, 고독 소외감, 스트레스으로 인해 우울증이 발생합니다.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거나, 즐기기 뿐만이 아니라, 더 많은 행복을 원합니다. 아마존 사이트를 가보면 행복을 가져오는 일곱 가지 습관, 아홉 가지 선택, 행복에 관한 14,000 여 개의 다양한 관점의 2,000종 이상의 책이 있습니다. 행복은 인간에게 있어서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지요. 항우울제 또한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찾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전문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하지만, 우울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행복하지 못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약물치료는 행복감을 증가시키지 못했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족하고, 안전하고, 건강하고, 정신 건강에 좋은 의약품과 치료법들이 있는 세상에 살고 있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우울과 불안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사람이 단 맛보다 쓴 맛에  더 예민하지요. 칭찬보다 비판에 더 민감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부정적인 의견(혐오적인 말)으로 상대방을 욕하면, 그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한 번의 욕보다 더 많은 칭찬이 필요하듯. 사람은 부정적인 것에 아주 민감합니다. 단 맛을 좋아하고 쓴 맛을 싫어하듯. 거친 표면보다 부드러운 것을 만지는 걸 좋아하지요. 평범한 얼굴보다 아름다운 얼굴을 보기 좋아합니다. 불협화음보다 협화음의 선율을 듣고 싶어 합니다. 행복이 유전자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물도 있지요. 행복해지는 것은 키 크는 것만큼 어렵다는 말도 유행될 정도였으니까요. 말도 안 되죠?

 

행복에 대해 생각할 때, 사람들은 세상 밖의 무언가에 몰입할 때, 타인과 함께 있고, 활동적이고, 스포츠를 하고, 사랑하는 사람에 열중하고, 배우고, 사랑을 나눌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자살한 사람의 글을 컴퓨터로 분석해보면 흥미롭게도 “우리”가 아닌 “나”란 일인칭 단수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하지요. 돈으로 사는 행복에 대한 근거는 희박합니다. 하지만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요. 돈에 관한 문제 중 하나는 실제로 돈 자체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돈을 너무 탐욕스럽게 좇을 때 그들은 삶의 실제 기본적인 즐거움에 대해서 잊어 버립니다 가장 중요한 가치는 행복입니다. “오직 하나의 질문만이 있다. 이 세상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만약 당신의 일상이 초라해 보이면 그것을 나무라지 말라. 당신을 나무라고 스스로에게 삶의 풍족함을 이끌어낼 만큼 시적이지 않다고 말하라.” “먼저 자신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말하라.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라.” (릴케)

 

사람은 누구나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우울증은 이제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가족 구성원 중에 우울한 증상을 보이면, 자세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울러 정신질환에 대한 선입감을 지워야 합니다. 정신치료는 참 중요합니다. 정신장애가 사회적 장애로 가지 않아야 합니다.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처방은 관심과 대화입니다. 항우울제가 우울증을 결코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합니다.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도록 생각하고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연예인의 경우는 특히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더 큽니다. 은막의 스타, 무대의 스타는 영원한 스타가 될 수 없습니다. 팬들로 부터 금방 잊히지요. 그렇기에 스타일 때의 생각을 많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고독감과 외로움이 일반인들에 비해 커질 수 있지요. 그렇기에 연예인들에 대한 자살예방에 대한 주위의 관심이 더 필요합니다. 이제 자살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예방책을 제대로 세울 때입니다. 뿐만아니라 일반인과 청소년 자살도 예방대책이 시급합니다. 가정, 학교, 기업, 시민단체, 정부가 지혜를 모아 중장기적인 자살방지프로그램을 실시해야될 때입니다. 



KBS에서 상영된 <'KBS스페셜', 세계탐구기획 '핀란드'편>. 핀란드는 교육 개혁의 모델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나라입니다. 교육뿐만 아니지요. 핀란드는 한국처럼 한 때 세계 자살률 1위였습니다. 핀란드 당국은 획기적인 대책을 강구합니다. <자살방지프로젝트>. 1986년부터 1992년까지 근 10년 가깝게 이루어진 프로젝트로 핀란드 자살률은 오명을 벗어 내기 시작합니다. 프로젝트 내용을 살펴보면, 자살 방지를 위해 왜 자살에 이르렀을까, 자살한 사람들의 정신적 실태(상황)를 철저하게 조사했더군요. 연구 대상 1337명. 5 만명이 넘는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했습니다. 그 결과를 토대로 대책 마련(자살예방프로그램)을 이루어 내었습니다. 대책마련이라는 것은 대책안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대책이 국민들 생활에 파고 들 수 있게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도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없지요.

  
이후, 핀란드 자살방지프로젝트 성공사례는 유엔기구나 많은 국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유럽은 한 때 자살률이 높았지요. 아시아 국가에서는 일본도 자살률이 높았습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일본 또한 2006년 자살대책기본법을 시행합니다. 자살을 개인이 아니라 국가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핀란드 <자살방지프로젝트>에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자살한 사람 3명 중에 2명이 우울증에 걸렸다고 합니다. 물론 우울증을 선천적으로 보느냐 후천적으로 보느냐에 따라 관점을 달리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울증을 탄생하게 한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지요. 한국의 경우 청소년이나 노인 자살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육제도나 복지차원에서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이렇듯 자살 하나로도 사회 여러 문제를 점검하고 대안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핀란드 <자살방지프로젝트> 자료를 보면서, 한국은 프로젝트다운 프로젝트없는 <자살방치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핀란드 작가 아르토 파실리나가 쓴 <기발한 자살여행>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집단 자살을 위해 버스를 탄 사람들이 여행을 하면서 겪는 죽음탈환기입니다. 자살과 희망사이의 접점을 찾아주는 블랙유머소설 중에 최고 작품이라고 평가 받기도 했지요. 이 소설이 주목 받는 이유 중에 하나는 자살률 1위의 핀란드 작가의 눈으로 자살문제를 들여더 보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외국의 평론가 들 중에는 자살을 앞 둔 사람이 꼭 읽어야 할 책 중에 하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자살에 이르게 된 사람이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행자들은 핀란드 사회가 냉혹하다고 입을 모았다. 삭막한 관습이 핀란드를 지배했으며, 핀란드 사람들은 서로에게 잔인하고 질투심에 찌들어 있었다. 탐욕스런 마음이 널리 팽배했고, 완강하게 돈을 움켜쥐기에만 급급했다. 핀란드 사람들은 의심이 많고 음흉했다. 웃는 경우에는 기뻐서라기보다는 남의 불행을 고소해하는 마음이 컸다. 사기꾼, 협잡꾼, 거짓말쟁이들이 많았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고, 눈앞이 핑 돌 정도로 많은 집세를 갈취했으며, 터무니없이 엄청난 이자를 우려냈다......몸이 아파 병원에 달려가면, 교만한 의사들이 사람을 당장 도살해야 하는 늙은 말처럼 다루었다. 이런 모든 걸 참지 못하고 신경쇠약에 걸리면, 정신병원의 험상궂은 간호사들이 강제로 환자복을 입히고서 마지막 남은 한 줄기 분명한 생각마저 흐리게 하는 주삿바늘을 정맥에 꽂았다......남자들은 쉴 새 없이 능력을 증명해야 했으며. 심지어는 짧은 휴가 기간 동안에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혐오스러운 직장 동료들이 기회만을 엿보다가 자신보다 약한 자가 있으면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로 심하게 몰아붙이고 괴롭혔다. 술을 마시면 간장과 췌장이 망가졌고, 음식을 좀 양껏 먹으려 들면 혈관의 콜레스테롤 수치가 증가했으며, 담배를 피우면 치명적인 암세포가 폐 속에 둥지를 틀었다. 뭘 하든 결과는 항상 나쁜 쪽으로 나타났다. 열심히 조깅을 하면 과로로 길에서 쓰러졌고, 조깅을 하지 않는 사람은 지나친 지방질 섭취로 관절이 망가지거나 척추에 문제가 생겼으며 결국에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기발한 자살여행 195 쪽 중에서 발췌>

  
핀란드는 분명 우울한 민족이다. 이 작품은 살인은 단지 100여 건인데 비해 매년 1500여건의 자살이 일어나는 핀란드의 우울한 분위기를 배경으로 한다. 우울한 현실 삶의 이야기들과 우스꽝스러운 사건들을 절묘하게 조화시켰다. 그것을 애써 구원의 이야기로 만들려고 애쓰지 않으며 설교하지도 않는다. 작품 전체에 유머가 깔려 있으며, 놀랄 만큼 재미있다. - 컴플리트리뷰닷컴complete-review.com

 

핀란드도 자살 문제가 해소된 것이 아닙니다. 자살 예방프로그램은 지속적인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기발한 자살방지버스는 없는가요? 버스 지나간 다음에 손만 흔들기를 계속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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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에 따르면 한 고교생이 50미터 굴뚝에 매달려 자살하려 했다고 합니다. 출동한 구조대의 설득에 내려왔다고 하니 다행이네요. 경찰은 학생이 굴뚝에 오르기 전 보낸 문자메시지나 가족들의 이야기를 미루어 떨어진 성적 때문이라고 이라고 추정하는 것 같습니다. 떨어진 성적 때문에 떨어지면 절대 안 됩니다. 성적 비관 자살 사건은 많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사회 여론은 한국 교육 현실에 우려를 보냈지요. 오죽하면 자살을 했을까. 하지만 자살은 그 어는 것 하나 풀어주지 못합니다. 자살할 용기가 있다면 삶을 선택하는 것이 낫지요. 그 용기면 어떤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자살은 결코 자살을 선택한 사람이나 주위 분들에게 날개를 달아 주지 않습니다. 깊은 상처만 남기지요.

 
완전한 인생이 없듯,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낙담에 빠지고, 좌절과 실패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하려 하면 안 됩니다. 사람이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이유는 한계 상황에 이르렀을 때 극복하기 위한 힘을 길러주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경험 또한 중요하지요. 고등학교 시절은 중요할 수 있지만,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는 지나가는 한 과정일 뿐입니다. 모든 것이 고등학교 때 판가름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누구나 읽기 힘든 경전이 있듯이, 불완전한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님들도 매순간 앎을 넘어 깨달아야 합니다.

 

굴뚝에 오른 한 한생의 끝 모를 바닥의 공포. 정말 성적이 떨어져서 그랬다면, 성적 중에 잘 한 과목을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누구에게는 힘든 과목이 누구에게는 쉬울 수 가 있지요. 굳이 학과목이 아니더라도 사람에게는 장점이 있습니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습니다. 아무쪼록 힘든 상황을 이겨내고 50미터 굴뚝 계단을 오를 때 생각으로 악착같이 생활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희망의 날개를 만들어 보십시오. 이 학생뿐만 아닙니다. 혹시나 마음속의 굴뚝을 오르고 있는 학생들이 있다면 내려오시길 바랍니다. 인생은 길고 머니까요. 평생 공부해야 하는 시대에 한 때의 성적 부진으로 날개를 접지 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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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년의 여교사가 승진 문제 때문에 자살했다고 합니다. 입시철이 끝나고 성적이 공개된 뒤에 학생들의 자살 소식이 간간히 들렸습니다. 그 때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시나브로 그 숫자가 늘어났지요. 자살 소식을 전해들을 때마다 언론에서는 앞 다투어 보도를 합니다. 하지만 그 때 뿐이지요. 결국 성적, 시험 지상주의가 만든 시대의 자화상인데.

 
선생님의 자살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1989년에 만들어진 한국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라는 영화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이제 학생뿐만 아니라 선생까지 성적순에 시달리고 있나 봅니다. 선생 뿐 이겠습니까. 직장인들도 마찬가지지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여전히 한국 사람의 행복은 성적순인가 봅니다. 한국의 행복지수는 어떨까요? 최빈국이라 불리는 부탄이라는 나라는 행복지수가 높지요. 그렇다면 행복은 어디에서 찾아야 될까요. 한 교사의 자살을 그냥 단순히 스쳐 보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내일은 수능성적표를 발급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실수로 성적이 좋지 않게 나온 학생들도 있을 겁니다. 한 번의 시험이 인생의 행로를 바꿀 수 없습니다.

 
자살공화국이라는 한국. 이제 자살은 막아야 합니다. 자살이 해답이 될 수 없습니다. 누구나 살면서 좌절할 수 있고 실패를 맛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이여내고 뚫고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행복은 절대 성적순에 따라 오지 않습니다. 성적 보다 무서운 것은 성적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시선이 더 큰 문제입니다. 이제 사회는 행복이 성적순이 아니라고 다시 말해야 할 때입니다. 사회 제도는 성적에 따라 저울질 되지만, 결코 성적이 인생을 좌우하지 않는다고 어른들은 말해야 합니다.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이 좌절하지 않도록 따뜻한 말 한마디와 격려가 필요합니다. 자살의 절벽으로 학생들을 내몰아서는 안 됩니다. 학생뿐만 아닙니다. 편견의 시선을 버려야 합니다. 직업의 귀천 없이 누구나 떳떳하게 자기의 자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칭찬해 주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난 로보트도 아니고 인형도 아니고 돌맹이처럼 감정이 없는 물건도 아니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영화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에 출연한 이미연 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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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희망 전도사 불리는 최윤희씨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남편과 함께 경기도 한 모텔에서 함께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고인은 우리 시대 최고의 스타 강사(작가, 방송인)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 비타민을 전해 주었다. 스스로 우울증에서 벗어나, 행복 디자이너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고인에게 찾아온 병마(심장, 폐질환)는 죽음 앞에 무릎 끓게 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고인이 남긴 유서에 700가지 통증에 시달려 본 사람이라면 심정을 이해해 줄 것이라는 전했다.

 

얼마나 고통이 심했을까. 하지만 너무 극단적인 선택은 아니었을까. 병마와 싸워 본 사람만이 그 고통을 알겠지만, 언제나 웃음으로 활력 비타민을 공급해주었던 고인의 모습을 떠올리면, 갑작스러운 죽음이 너무 안타깝기만 하다.

 

"저희는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2년 전부터 여기저기 몸에서 경계경보가 울렸다능력에 비해 너무 많은 일을 하다 보니 배터리가 방전된 것으로 2년 동안 입원 퇴원을 반복하면서 많이 지쳤다.... 그래도 감사하고 희망을 붙잡으려 노력했으나 추석 전주에 폐에 물이 찼다는 의사의 선고. 숨쉬기가 힘들어 응급실에 실려 갔고 이번엔 심장에 이상이 생겼다. 더 이상 입원에서 링거 주렁주렁 매달고 살고 싶지는 않았다”(고인의 유서 중에서 발췌)

 

고통과 절망에 빠진 많은 사람을 위해 행복과 희망의 메시지를 자신의 몸이 방전될 때까지 일했던 고인. 행복박사라라고 남들이 이름 지어주었지만  정작 자신의 육체는 죽음을 앞둔 순간 행복하지 못했던 고인, 더욱 안타까운 것은 최윤희씨와 고통을 함께했던 남편의 죽음이다. 최윤희 부부의 자살 소식을 듣고, 최윤희씨가 출연한 동영상을 보니 마음이 저며온다.


700가지 고통을 넘어서지 못한 고인.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지만, 너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고인의 강의를 듣고 웃음을 짓고 희망 비타민을 몸에서 만들어 내었던 사람들의 슬픔도 커 보인다. 하지만 자살만큼은 피했어야 했다. 700가지가 넘는 희망을 끝내 찾을 수 없었던 고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남겨진 가족들은 희망을 잃지 말기를 기원해 본다.

 


최윤희는

청와대, 각 기업체, 공무원, 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CEO, 시민, 주부들, 국가정보원, KAIST, 국가경영전략연구소, 전국 각 지역의 아카데미, 맹호부대, 해양경찰서, 공군교육사령부 등 전방위 강의활동을 하고 있다.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비서실 세미나에서는 외부강사를 절대 초청하지 않는 관례를 깨고 ‘처음’ 초청되어 강의를 했다.

대한민국 강사 중에서 가장 다양한 사람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으며 ‘앵콜’ 강의가 특히 많다. 특히 우리나라 기업 중에서 가장 강의가 많은 삼성그룹에서는 1,300명의 외부강사 중 ‘명강사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KBS ‘명사특강’, SBS ‘김미화의 U 특강’을 비롯해 수많은 TV 강의와 KBS-TV ‘아침마당’과 ‘그 사람이 보고 싶다’에서 고정 패널로 활약했으며, SBS ‘김영철·조갑경의 춤추는 라디오’, MBC ‘좋은 아침, 이문세입니다’ 등 라디오 방송에도 출연했다. 서울특별시 영상매체 심의위원, 여성단체협의회 출판공보위원을 역임했고 ?조인스닷컴?, ?여성조선?, ?코스모폴리탄? 등 언론매체에 칼럼을 연재했다.

저서로 「딸들아, 일곱 번 넘어지면 여덟 번 일어나라」, 『최윤희의 웃음 비타민』등 25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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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보건 기구(WHO)는 우울증이 2020년 무렵에는 관상동맥질환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질병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한국의 자살률은 세계 1위. 2006년부터 자살률이 더 급증하고 있습니다. 칸 국제 영화제에서 주목할 시선 부문 대상을 받은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에서도 주인공이 항우울제를 습관처럼 복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요.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는데. 우울증. 왜 우울증에 빠지는 걸까요? 행복하다면 굳이 항우울증제를 먹을 필요가 없겠지요. 자신이 불행하다는 생각, 견딜 수 없는 고통, 고독 소외감, 스트레스으로 인해 우울증이 발생합니다.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거나, 즐기기 뿐만이 아니라, 더 많은 행복을 원합니다. 아마존 사이트를 가보면 행복을 가져오는 일곱 가지 습관, 아홉 가지 선택, 행복에 관한 14,000 여 개의 다양한 관점의 2,000종 이상의 책이 있습니다. 행복은 인간에게 있어서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지요. 항우울제 또한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찾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전문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하지만, 우울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행복하지 못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약물치료는 행복감을 증가시키지 못했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족하고, 안전하고, 건강하고, 정신 건강에 좋은 의약품과 치료법들이 있는 세상에 살고 있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우울과 불안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사람이 단 맛보다 쓴 맛에 더 자극을 더 예민하지요. 칭찬보다 비판에 더 민감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부정적인 의견(혐오적인 말)으로 상대방을 욕하면, 그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한 번의 욕보다 더 많은 칭찬이 필요하듯.

 

사람은 부정적인 것에 아주 민감합니다. 단 맛을 좋아하고 쓴 맛을 싫어하듯. 거친 표면보다 부드러운 것을 만지는 걸 좋아하지요. 평범한 얼굴보다 아름다운 얼굴을 보기 좋아합니다. 불협화음보다 협화음의 선율을 듣고 싶어 합니다. 행복이 유전자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물도 있지요. 행복해지는 것은 키 크는 것만큼 어렵다는 말도 유행될 정도였으니까요. 말도 안 되죠?

 

행복에 대해 생각할 때, 사람들은 세상 밖의 무언가에 몰입할 때, 타인과 함께 있고, 활동적이고, 스포츠를 하고, 사랑하는 사람에 열중하고, 배우고, 사랑을 나눌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자살한 사람의 글을 컴퓨터로 분석해보면 흥미롭게도 “우리”가 아닌 “나”란 일인칭 단수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하지요. 돈으로 사는 행복에 대한 근거는 희박합니다. 하지만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요. 돈에 관한 문제 중 하나는 실제로 돈 자체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돈을 너무 탐욕스럽게 좇을 때 그들은 삶의 실제 기본적인 즐거움에 대해서 잊어 버립니다 가장 중요한 가치는 행복입니다.

 

“오직 하나의 질문만이 있다. 이 세상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만약 당신의 일상이 초라해 보이면 그것을 나무라지 말라. 당신을 나무라고 스스로에게 삶의 풍족함을 이끌어낼 만큼 시적이지 않다고 말하라.” “먼저 자신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말하라.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라.” (릴케)

 

사람은 누구나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우울증은 이제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가족 구성원 중에 우울한 증상을 보이면, 자세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울러 정신질환에 대한 선입감을 지워야 합니다. 정신치료는 참 중요합니다. 정신장애가 사회적 장애로 가지 않아야 합니다.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처방은 관심과 대화입니다. 항우울제가 우울증을 결코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합니다.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도록 생각하고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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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하의 자살. 참 충격적인 일입니다. 2005년 영화배우 이은주의 자살에 이어 올해까지 7명이 넘는 유명 연예인들이 자살했습니다. 철학자 파스칼은 ‘자살을 하는 사람조차도 어떻게든지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자살하는 사람도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살을 선택했지만,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절망과 희망 사이를 넘다듭니다. 행복을 끝없이 추구하지만 절망에 이르기도 하지요. 김용하의 자살을 통해서 ‘행복’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버트런드 러셀은 인간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를 이야기 합니다. 인간은 무엇인가 충족하지 못한 데서 행복을 찾지 않고, 개인적 기질이 불행을 자초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꾸짖습니다. 자기 안(에고)에 갇혀 이유 없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 극심한 경쟁, 권태감, 질투의 감정, 불합리한 죄의식, 남에 대한 원망, 세상에 대한 부적응 등이 인간 행복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라고. 러셀은 열정, 사랑, 일, 폭넓은 관심, 노력을 통해 행복은 순간순간 다가온다고.

 

순간의 행복을 찾아서

사실 행복해지려고 신경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열정을 갖고 살아가면 됩니다. 삶의 오르막과 내리막, 그 우여곡절, 고통 또한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면 고통이 잠시 동안 멈추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지요. 그 순간이 행복 아닐까요?

 동양과 서양의 문학을 들여다보면 무수히 다양한 행복의 정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 행복이란 단어 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찾아 볼 수 있을까요? 구글에 ‘행복’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웹문서 1억 개에 가까운 검색결과를 보여줍니다. 그만큼 인간은 행복을 찾기 위해 행복해지기 위해 끝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지요.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현재는 믿지 않는다. 다만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상상할 뿐이다. 반면, 행복은 지금 여기에 있다거나 행복은 지금 이 순간의 생생함에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인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류의 대사상가들은 행복이란 말은 모호하게 남겨두었다. 그래서 각자 자기 자신 만의 말로 그것을 정의내릴 수 있게 말이다."

 

만약 행복이 우리의 삶 순간 순간의 질을 결정할 무언가라면 우리는 그게 무엇인지 좀 더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아마, 우리는 행복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원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순간의 행복에 등을 돌려 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 우리는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하지만, 오히려 어떻게 보면 그것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습니다. 가장 흔한 예가 행복을 쾌락과 혼동하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이 둘의 성격을 가만히 살펴보면, 쾌락은 시간과 장소, 그리고 대상에 의해 좌지우지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자체로 영원불변하는 건 아니지요. 보기에도 좋은 초콜릿 케잌을 예로 들자면: 처음 한 접시는 맛나지요. 그 다음 건 전 것만 못하구요, 나중엔 넌덜머리가 나죠. (웃음) 세상 일이란 게 대게 그렇습니다: 질리게 마련이지요. 당신이 추울 때, 가까이서 불을 쬐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겠죠. 좀 있다가는 한 발짝 물러서게 되구요 더 있다가는 살이 타는 듯 하기 시작합니다. 당신이 경험함에 따라 쾌락이 마치 스스로를 갉아먹는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쾌락이 전염성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당신이 진한 쾌락을 느끼는 반면 몇몇 주변인들은 엄청나게 고통받을 수 있는 것 처럼요.

 

행복이라 무엇일까?


그렇다면 행복이란 뭘까요? "행복"은 너무 추상적인 단어이니까 대신 "웰빙"이라고 합시다. 행복은 모든 감정적인 상태에 걸치는 것이며 그 기저를 이루는 상태입니다. 한 사람에게 닥칠 수 있는 모든 기쁨과 슬픔을 포함해서 말이죠. 당신에게는 조금 놀라운 말일 수도 있겠군요. 슬프면서 동시에 이런 웰빙을 가질 수 있을까요? 물가로 밀려오는 파도를 보세요. 파도 아랫부분에 있다면 당신은 바닥을 치게됩니다. 딱딱한 바위에 부딪히게 되죠. 위쪽에서 파도를 타고 있다면, 당신은 한껏 들뜰 겁니다. 들뜸과 침울함 사이를 오갈 뿐, 깊이라고는 없죠. 이번에는 심해를 생각해 봅시다. 거울처럼 아름답고 고요한 해양도 있겠구요 폭풍이 휘몰아 칠 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해양의 깊이만은 변하지 않은 채로 언제나 존재하죠. 어떤가요? 웰빙이란 의식의 존재양식이지 단순히 순간의 감정이나 느낌은 아닙니다. 기쁨조차도, 행복의 소산일 수도 있지만, 사악한 기쁨이란 것도 있습니다. 다른이 의 고통에 크게 기뻐할 수도 있죠.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행복을 추구할까요?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외부를 바라봅니다. 우리가 흔히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라 말하는 것처럼 이것과 저것 등 모든 조건들을 갖춘다면 행복해질거라 생각합니다. "행복해지기 위한 모든 것을 갖는다" 이 문장 자체가 이미 행복의 파멸이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을 드러냅니다. 모든 것을 갖는다란 말은 우리가 하나라도 놓치면 행복이 무너짐을 뜻합니다. 또한, 일이 잘못되어갈 때, 우리는 외부사항을 바꾸고자 무던히도 노력합니다. 그러나 외부세계에 대한 우리의 통제력이란 제한되어 있고, 일시적이며, 종종 허상에 불과합니다.

달라이 라마가 포르투갈에 머물 때의 일입니다. 도처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이봐요. 당신은 이 모든 걸 하고 있지만 그 안을 채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 또한 멋지지 않겠어요?" 이어서 말하길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가 최신식의 편안한 빌딩의 100층에 최첨단의 주거공간을 갖는다 해도 그 안에서 몹시 불행하다면 그가 찾는 거라곤 뛰어내릴 창문 뿐일 겁니다."

 

답은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번영하게 하고, 웰빙을 가져오는 특정 정신 상태는 바로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인들이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라고 부른 것이죠. 정신적 가치가 우선시되는 행복. 화, 미움, 질투, 오만, 강박적 욕구, 과욕과 같은 것들이 있죠. 이것들은 우리가 긍정적 상태에 머물도록 가만 냅두는 법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런 것들은 타인의 행복에까지 치명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에 이들의 침범이 잦아 질수록 연쇄반응으로 우리는 더 비참해지고 고통 받을 것입니다. 반면 사심없이 하는 관대한 행동들 먼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한 그런 행동들이 한 아이의 삶을 살릴 수도,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인정을 위한 것도, 감사의 표현을 받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마음이 시키는 데로 한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그렇게 하고 싶어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고 마음을 바꾸는 일이 가능한건가요? 우리의 본성에 부정적이거나 파괴적인 감정들 역시 내재되어 있지 않나요? 우리의 감정, 성격, 기분의 변화는 가능할까요? 여기에 대답하기 위해선 먼저 본성이란 무엇인지부터 물어야 합니다. 경험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의식의 제 1 특징은 무엇을 알고자 하는 인지적 특성입니다. 의식이란 사물을 비추는 거울과 같습니다. 거울에 비춰진 게 못난 얼굴일 수도, 예쁜 얼굴일 수도 있지만 거울 자체는 그것이 비추는 이미지에 의해 더럽혀지거나 바뀌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생각에는 그저 의식, 순수한 의식이 있을 따름입니다. 이게 바로 본성입니다. 애초부터 미움이나 질투같은 것 때문에 더럽혀질 수 없는거죠. 그런 것이 가능했다면, 염색이 옷 전체로 퍼지는 것처럼 미움이나 질투를 언제든 발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화 내고 질투하거나, 혹은 언제나 관대하지는 못합니다.

 

모든 감정에 작용하는 일반적인 해독제를 찾아야 합니다. 본성 중의 본성을 살피면 가능하죠. 대게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짜증이 났거나 화가 났거나 그가 싫다면, 아니면 무언가에 사로잡혀 있다면, 마음은 계속 그 대상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대상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찰 때 강박관념이나 짜증은 한층 더 강화하죠. 나중에 이 같은 과정이 저절로 반복됩니다. 자 이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외부가 아닌 내부입니다. 화를 예로 들면 겉보기엔 밀려드는 먹구름이나 폭풍우처럼 매우 위협적으로 보이죠. 하지만 만약 우리가 구름 위에 앉을 수 있다면? 막상 가까이 다가가 보면 그저 안개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화'를 가만히 관찰한다면 아침 해에 스러지는 서리처럼 사라질 겁니다. 당신이 이를 계속해서 반복한다면 당신의 욱하는 성질은 매번 화를 누그러뜨릴 때마다 점점 옅어질 겁니다. 결국에는 '화'의 감정이 생겨도 그냥 잠깐 스쳐지나가고 말 것입니다. 마치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가 하늘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것처럼요.

 

시간이야 필요합니다. 부정적 감정들이 우리 마음에서 생겨나고 습관이 되는데 이를 푸는데도 똑같이 시간이 걸리겠죠. 하지만 이 길 밖엔 없습니다. 마음가짐을 새로 하는 것.

 

 
박용하 자살 소식을 지켜보면서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한국의 상황이 참 암담해 보입니다. 이럴수록 가족 구성원들의 대화와 자기 공부, 마음 수련이 필요합니다. 영성이 필요한 시대지요. 행복에 대해서 행복을 이루는 조건에 대해서, 절망을 뚫고 희망을 만들어 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다시는 자살로 서로 상처 받는 일이 없기를 소망합니다.

 

* 참고 및 인용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
마띠유 리카드의 행복의 습관들
(본문 중 많은 부분은 리카드의 말씀을 정리인용 수록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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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인생을 불행의 연속이라 비관하면서 , 삶과 죽음 사이에 갈등하는 자가 있다면 , 자신보다 더 못한 사람의 불행을 둘러보아라. 그럼 곧 삶과 죽음 사이에 갈등을 했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지게 될 것이다" -미뉴트-



한류 스타 탤런트 박용하씨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오죽하면 자살을 결심했을까? 자살에 이르게 한 배경을 살펴보면 심정적으로는 이해는 가지만 자살할 용기라면 살수도 있었는데, 한 개인의 자살은 주위 사람들을 너무 힘들게 하기 때문이지요. 최진실 씨가 자살했을 때 모방 자살(베르테르 효과)이 급증했지요. 특히 유명 배우가 자살할 때 이런 현상이 많이 일어납니다. 한 젊은이가 왜 자살을 선택했을까? 박용하씨는 한국판 ‘첨밀밀’이라고 불리는 드라마에 캐스팅이 된 상태였다고 하는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의 자살률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보아야 합니다.


자살 이유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생계형자살, 우울증, 스트레스 등. 한국의 경우 시골 어르신들과 20,30대 자살 비율이 높습니다. 자살은 개인적 이유로 몰고 갈 수만은 없지요. 사회적 책임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빠른 변화를 촉구하는 산업문명사회, 도시집중화, 공동체의 붕괴 등 얼마 전 미국 워싱턴포스트지는 한국 자살률에 대한 기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미국보다 한국은 자살률이 2.5배나 높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소속된 나머지 29개 국가의 국민과 비교할 때 더 많이 일하고, 덜 자고, 입시학원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워싱턴 포스트)

 


* AP가 보도란 한국 자살률 관련 기사 - 2009년 한국에서는 14,400명이 자살했다.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워싱턴 포스트지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유력 신문, 방송 통신사들이 한국 자살률에 대한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서글픈 일입니다. 이른바 부자나라로 불리는 유럽국가의 자살률은 이제 크게 증가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계속 자살률이 높아만 지는 걸까요. 자살예방도 중요하지만, 스트레스를 인정해 주는 사회분위기도 인정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표면적으로는 다 건강해 보이지만, 한가지 씩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정신병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외국 같은 경우, 특히 미국은 수시로 정신질환을 체크하고 있지요. 특히 큰 사고를 겪은 경우에는 필수 코스입니다. 트라우마(사고 후 정신적 외상)가 심하면 자살에 이를 수가 있으니까요. 동네와 마을의 해체로 인한 어르신들의 고독 소외, 인터넷과 오락 중독으로 인한 집중력 상실 등 한국 사회에서 자살에 이르게 하는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 OECD 회원 국가중 자살률 1위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의 대화, 가족공동체의 복원이 가장 시급합니다. 하지만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현실적 어려움이 많지요. 결국 성장과 빠름에 경제관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이상, 자살률을 줄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유명연예인들이나 사회여론지도층의 자살 또한 모방, 충돌 자살을 일으킬 수 있기에, 자살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관심과 배려가 절실합니다. 정부가 자살률을 방치하는 것은 사회적 타살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공존의 그물코를 다시 짜야 합니다.  내 자녀가 식구가 친구가 자살할 수도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자살률을 심각하게 바라보아야 할 때라는 것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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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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