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2.08.01 한 여름밤의 옥상파티
  2. 2012.07.16 장마철에는 부침개를
  3. 2012.07.04 운동하기 싫으면 하하하 웃으세요

 

장맛비가 잦아들자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왔다.

그래서 더위를 잠시나마 식히고자

우리 집 옥상에서는 작은 파티가 열렸다.

친정식구들과의 저녁 모임이었다.

 

 

옥상 파티의 기본 메뉴는 삼겹살과 소주

그리고 텃밭에서 금방 따온

상추와 풋고추를 곁들였다.

오랜만에 만난 형제들이 조촐한 야외 식탁을 중심으로

파라솔 의자에 등을 기대고 모여 앉으니

어디 여행이라도 온 기분이었다.

 

 

손바닥만 한 텃밭과 물탱크 하나밖에 없는

콘크리트 옥상이지만

밤의 옥상은 낮처럼 덥고 짜증나고

꽉 막힌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비록 빼어난 야경은 없더라도

답답한 실내 공간에서 벗어나 별을 보며,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거기에다 작게나마 흙냄새까지 맡을 수 있으니

 이날 형제들과의 저녁식사는

여느 호텔 만찬이 부럽지 않았다.

 

 

도시에 살면서 늘 전원생활을 꿈꾸던 우리 부부는

차선책으로 4년 전에 지금의 옥상 텃밭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야외용 식탁과 파라솔, 고기 굽는 화로 등을 갖추고

종종 지인들을 불러들여 오늘처럼 삼겹살 파티를 열었다.

 

 

같은 아파트 주민들과  어울릴 때도 있었다.

작년 여름 복날에는 옥상에서 반상회를 연 다음,

뒤풀이 행사로 삼계탕과 오리구이 파티를 했다.

공동주택에 딸린 옥상은 우리 집만의 단독 공간이 아니기에

이웃들의 양해가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가 마련한 것들을

아파트 공동 시설물로 쓰도록 했고

채소가 필요하거든 언제라도 좋으니 맘껏 따다 먹으라는 부탁(?)도 해두었다.

 

 

옥상의 작은 땅은 하늘이 지붕이다.

바람과 햇빛과 비, 그리고 넉넉지 못한 흙을 덮고도 채소들은 잘 컸다.

고추와 상추, 깻잎, 가지, 뭐든지 심기만 하면 무럭무럭 자라니

아무래도 흙 속에는 삶을 부축해주는 지팡이 같은 힘이 숨겨져 있는 것만 같았다.

 

 

화로 위에서 지글지글 고기 굽는 소리가 요란했다.

아울러 형제들이 부딪치는 술잔의 속도도 점점 빨라졌다.

큰오빠가 한마디 했다.

 

“야, 이름난 갈비 집보다 여기가 훨씬 낫다. 아무리 먹어도 취하지 않겠는 걸!”

 

 

정말 시원한 바람과 함께 마시는 술은 쉽게 취하지 않았다.

또 취한들 어떠랴, 집이라서 문제될 게 없었다.

운전이 걱정이라면 다음 날이 공휴일이니 자고 가면 된다.

모두들 식당도 집도 아닌 낯선 곳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고 했다.

나중에는 양주 한 병을 더 가져 왔다.

은박지에 싸서 고구마도 구웠다.

술자리는 점점 더 깊어졌고 형제들의 비눗방울 같은 웃음소리도 끊이질 않았다.

 

 

우리가 자랄 때는 한집에서 두세 살 터울의 칠 남매가 복작거리니

동기간의 살가운 정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오히려 형제가 너무 많아 사랑은커녕 서로가 손해 본다는 느낌이었다.

특히 나는 집에서는 오빠 둘, 언니 둘, 동생 둘 사이에서 특징 없는 칠 남매의 중간이었고,

학교에서는 특별히 잘하는 과목도 못하는 과목도 없는 존재 희박한 그런 학생이었다.

 

 

어린 시절 서로 부대끼며 컸던 여러 형제들이 중간에 잘못된 일 없이

다들 건강하게 커서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지근거리에 살면서 함께 나이 먹어가니 이보다 큰 축복이 어디 있으랴.

 

 

세월의 집요함을 함께 견뎌온 이들끼리의 동질감이랄까,

그래서 이렇게 가끔씩 한자리에 모여 웃고 떠드는 시간이

요즘 와서는 더욱 애틋하고 소중한 느낌이다.

 

 

또한 아무리 나이를 먹었어도 “수연아!” “영일아!” 하며 이름을 불러주는

동기간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따지고 보면 세상 그 어디에 피붙이보다 더 끈끈한 관계가 있을까.

 

 

설핏 위안이 되면서도 그러나 우리에게 이런 행복한 시간이

언제까지 허락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

아직까지는 모두 그럭저럭 건강한 편이지만

언니 오빠들은 모두 지하철을 공짜로 탄다는 지공세대가 되었으며

막내도 어느덧 오십 줄에 들어섰으니 괜한 기우만은 아닌 것 같다.

그리하여 바라기는 형제들과 자주 어울려서 밥 먹고

 함께 여행도 다니며 더욱 즐거운 시간을 갖고 싶다.

 

 

어느 새 시원한 밤바람이 바베큐 화로의 연기를 다 몰아냈다.

따라서 술자리도 끝나고 차분히 담소하는 분위기로 돌아섰는데

누군가 자정이 넘었다는 말 한마디에 갑자기 돌아갈 채비들을 하였다.

 

 

“아니, 모두들 자고 갈 것처럼 그러더니 왜들 이래...”

“말이 그렇지, 이 많은 식구들이 어디서 다 자누?”

나는 재빨리 내려가 냉장고에 준비해 두었던

야채봉지를 꺼내와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언니들은 잘 먹고 가는데 뭘 싸가기까지 하느냐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말보다 손이 먼저 나왔다.

내가 정성껏 키운 농작물을 한줌씩 나누어 줄 때의 벅차오르는 기쁨이

이날은 몇 배로 더 컸다.

 

 

남편이 마무리로 노래를 부르자고 했다.

아무래도 그냥 보내기가 서운한 모양이다.

“형님들, 우리 노래 한 곡 부르고 헤어집시다.

 근데 지금 이 시간에 노랠 부르면 주민들이 시끄럽다고 신고할지 모르니까

 모기만 한 목소리로 조용히 부릅시다. ‘고향의 노래’ 다 알지요? 시작!”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 ~”

남편도 취한 모양이다.

나는 한밤중에 뜬금없이 무슨 노래냐고 만류했건만

언니 오빠들은 군말 없이 잘 따라 불렀다.

 

 

아, 행복해! 라는 말이 저절로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비록 복숭아꽃, 살구꽃 피는 고향은 아니지만

형제들과 한때나마 웃음꽃을 피웠던 이날의 옥상 파티는

모두의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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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여름날

괜히 입이 궁금해지면

나는 고소한 기름내가 코끝을 자극하고

지글거리는 소리가 빗소리 같기도 한

부침개가 먹고 싶어진다.

 

 

밥 외에는 달리 먹을 것이 없었던

내 어릴 적에 부추나 호박 또는 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돼지비계를 두른 번철에다

노릇노릇 알맞게 지져낸 부침개는

장마철 주전부리로는 단연 으뜸이었다.

 

 

맛도 맛이지만 아마도 일곱 명이나 되는 형제들이

올망졸망 둘러앉아 부치기가 무섭게 쟁탈전을 벌려야 했기에

더욱 입맛을 다셨는지도 모른다.

 

 

거기에 비하면 요즘은 건강을 생각해서 몸에 좋다는

각종 야채와 해물, 버섯 따위를 듬뿍 넣고

기름도 콜레스테롤이 적다는 올리브유나 포도씨유를 가지고

부쳐내지만 아무래도 고소한 맛은 옛날보다 덜 한 것 같다.

그런데 결코 특별한 음식이라고 할 것도 없는

이 부침개에도 우리 집에서는 한 가지 불문율이 있었으니

부침개 첫 장은 꼭 남자가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첫 소당을 여자가 먼저 먹어버리면

부정이 탄다나 어쩐다나... ㅡ,.ㅡ

 

 

아버지나 큰오빠는 그렇다고 쳐도

새까맣게 어린 남동생이 어머니나 누나들을 제치고

제일 먼저 먹는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안 갔다.

그래서 그 부당함에 맞서

언니들과 함께 저항(?)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문제는 내가 지금 어머니 방식 그대로 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쁘다는데 굳이 역행할 필요는 없지 뭐.’ 하면서 말이다.

이래서 교육이 무섭다고 했나?

뉴스를 보니 올 장마는 예년보다 더 길어질 전망이란다.

따라서 이번 여름엔 부침개를, 특히 감자전을 많이 부쳐 먹게 될 것이다.

올해는 다른 밭작물보다 감자 농사가 풍작을 이뤘으니

재료에서부터 완성품에 이르기까지 먹는 기쁨이 다른 때보다 훨씬 더 클 것 같다.

 

 

비오는 날 부침개의 기억이 진한 까닭을 기상학자들은 이렇게 해석한다.

평소엔 상승기류와 함께 날아갈 냄새들이

궂은 날 저기압에 갇혀 주위를 맴돌기 때문에

부침개 지지는 냄새가 유난히 고소하게 느껴진다는 얘기다.

따라서 체온이 떨어져 차고 물기 많은 음식을 멀리하게 되는 장마철엔

고소한 기름 냄새가 식욕을 자극하고 제철 채소를 듬뿍 섭취할 수 있는 부침개가 제격이란다.

 

 

기름에 지글지글 부쳐 먹는 빈대떡은

원래 가난한 사람의 떡(貧者떡)이라는 뜻이었다.

조선시대 흉년이 들면 유랑민이 남대문으로 모여 들었는데,

이 잘사는 양반집에서 빈자떡을 소달구지에 싣고 와

“누구누구 집의 적선이요!” 하면서 던져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으라던

‘빈대떡 신사’ 노래 가사처럼 그 시절 가난한 어머니들이

무더운 여름날에 집에 있는 자투리 채소들을 집어넣고

부침개를 즐겨 해먹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옛날에는 무엇이든지 어머니가 해주는 대로 군소리 없이 먹었다.

지금처럼 “뭐 먹고 싶니?” 물어서 먹고 싶은 음식을 대령하는 일은 가당치도 않았다.

적어도 음식에 관한 한 어린아이들에게 ‘표현의 자유’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엄마들은 아이들 먹이는 일이 결코 수월치 않다고 말한다.

대개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몸에 해롭고, 몸에 좋은 음식은 아이들이 기피하기 때문이다.

 

 

사실 혀끝에 남아있는 감미롭고 화려한 미각만이 기억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진수성찬의 기억은 강렬하고 매혹적이지만 대체로 살뜰한 여운이 없다.

이에 비해 궁핍했던 어린 시절 음식의 기억은 흐릿하면서도 끈질기다.

그래서 비오는 날 고소한 부침개 냄새와 맛엔 어김없이

옛 기억도 조건 반사처럼 끼어드는데 거기에는

우리네 맛의 뿌리인 모성이 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득 그 옛날 장마 진 날 대청마루에 앉아

하염없이 적시는 빗줄기를 바라보면서 형제들과

호박 부침개를 나누어 먹던 어린 시절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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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는 듯한 더위도 견디기 힘든데

이제 곧 장마철이 다가오네요

몸도 찌뿌둥해지고,

 

이럴때,

무기력해지기 쉽상입니다.

 

이때 가장 좋은건

바로 웃음.

 

웃음의 운동효과를 아세요?

 

 

 

 

 

 

옆 사람을 웃게 만드는 일.

오늘. 나의 미션입니다.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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