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모든 남녀들에게 요정 워너비로 불렸던 오드리 헵번 전시회에 다녀왔다. 제목은 ‘오드리 헵번 아름다움 그 이상의 아름다움’으로 20세기 가장 뛰어난 미인이자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다 간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의 감동적 생애를 재조명한 전시회였다.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새로 들어선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T)의 총 10관의 전시관에는 그녀의 출생부터 2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후 스타로서의 삶, 그리고 소외받는 어린이들을 위해 살아온 인생까지 많은 기록물들을 설치해 놓았다. 전시장에는 영화 ‘로마의 휴일’ 촬영 때 그녀가 직접 탔던 스쿠터도 있었고 수많은 사진과 자필노트, 패션 디자이너 지방시가 만들어 준 우아한 파티복들, 실제 사용한 식기류 등 볼거리가 꽤나 다양했다. 그리고 8mm 홈비디오 영상에는 모성애 가득한 주부의 삶도 담겨 있었는데 처음엔 13000원의 입장료가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관람을 마친 후에는 그보다 더 비싸다고 해도 충분히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이날 헵번을 젊은 날의 우상으로 추억하는 중장년층 관람객이 유독 많아 보였다.

 

 

 

 

 

 

 

내 기억 속 헵번은 까만 드레스를 입고 뉴욕 5번가에 있는 티파니 상점 앞에서 보석을 쳐다보며 빵과 커피를 먹는 모습, 또한 ‘로마의 휴일’에서 깜찍한 숏커트 머리 스타일로 그레고리 펙과 함께 연애하던 장면이 고작이었다. 헌데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 그간 매스컴에 공개되지 않았던 오드리 헵번의 감추어진 일생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녀는 은퇴 후의 삶이 더 아름다웠다. 굶주리고 고통 받는 전 세계 어린이를 사랑했던 엄마로서의 그의 생애는 극진했다. 마더 테레사의 분신 같다고나 할까. ‘화려한 은막의 스타가 어찌 이런 거룩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전시회 내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의문이었다.

 

 

 

헵번의 꿈은 원래 발레리나였다. 그러나 소녀 시절의 그녀는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살던 집에서 쫓겨나 거리를 헤매게 되고, 사랑하는 외삼촌이 처형당하는 것을 눈앞에서 보게 된다. 거기다가 두 오빠는 레지스탕스가 되었으며 본인은 천식, 황달, 빈혈, 부종 등 온갖 병을 달고 있었다. 먹을 것이 없어 튤립 뿌리를 씹으며 배고픔을 달래야 했던 그 시절에 그녀는 적십자 구호 활동을 받아서 기적처럼 살아날 수 있었다. 어릴 적 유니세프는 헵번 가족에게 수호천사나 다름없었다. 이것이 훗날 그녀가 유니세프 친선대사를 맡게 된 동기였다.

 

 

헵번이 네덜란드에 살 때, 안네프랑크도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동갑내기였다. 둘 다 전쟁이 발발할 당시 열 살이었고 전쟁이 끝났을 때 열다섯 살, 헵번은 그 당시 레지스탕스에게서 배포된 비밀 신문에 실린 ‘안네의 일기’를 접하게 된다. 안네가 창문 밖을 쳐다보며 자전거 타기, 춤추기, 휘파람 불기를 마음속으로 했다는 일기 내용은 같은 나라에서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같은 나이의 헵번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었고, 그래도 자기가 처한 상황이 다락방에 갇혀 있는 안네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됐다. 이때 읽은 ‘안네의 일기’가 나중에 문학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작이 되리라고 헵번은 상상이나 했을까.

1945년 히틀러 자살 후 헵번의 열여섯 번째 생일날, 네덜란드는 독일로부터 해방이 되었다. 어릴 적 구호 받은 경험과 전쟁을 겪은 체험은 향후 그녀가 유니세프를 통해 인류 평화에 이바지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그가 죽기 전까지 펼친 구호활동은 실로 세상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그녀가 수단이나 방글라데시, 베트남, 소말리아 같은 저개발 국가를 돌면서 병에 걸린 아이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만지고 그들의 고통 앞에서 함께 눈물 흘리는 장면은 전 세계인의 가슴을 적셨고 기부 활동에 동참하게 하는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녀는 특히 소말리아 어린이들에게 강한 애착을 가졌다. 1922년 그곳을 방문했을 때 마을 공터 구석에 놓여있는 수많은 자루꾸러미를 보았다. 아이들의 시체였다. “오마이 갓!” 헵번은 하염없이 눈물을 쏟으며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언론을 향해 소말리아 어린이들에게 더 많은 구호의 손길을 달라고 호소했다. 누가 썼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녀가 피골이 상접한 한 아이를 안고 있는 사진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 있었다. ‘우리가 진정 아름다운 오드리 헵번을 만난 것은 은막에서가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였습니다’ 이때 그녀는 대장암 말기 환자의 몸이었다. 강한 통증을 느낄 때마다 진통제를 맞으며 계획했던 모든 일정을 소화했다고 하니 감동을 넘어 경외심이 무럭무럭 솟아올랐다.

 

 

헵번은 자신의 키가 너무 크고(170센티미터) 너무 말랐으며 각이 진 얼굴이라서 본인이 한번도 예쁘다는 생각을 안 했단다. 하긴 이 말은 이쁜 여자들의 단골 멘트라서 믿을 게 못 되지만 영국의 BBC 방송에서 뽑은 세계의 자연 미인 1위로 헵번이 등극한 걸 보면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에 대해선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 같다. 헵번은 젊었을 때도 그랬지만 말년의 모습 또한 여전히 아름답고 우아했다. 비록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고 피부는 늘어졌어도 누가 이 여배우를 늙고 초라한 할머니라고 생각할까? 내면의 성숙과 베푸는 삶! 나이를 먹었어도 그녀가 여전히 아름답고 당당한 비결이리라.

 

 

전시회에 가서 알게 된 재미난 사실 또 하나는 ‘로마의 휴일’이 선풍적 인기 속에서 개봉되었을 때 어느 날 14세 소년이 헵번을 찾아왔다. “난 나중에 당신과 결혼할 거에요.” 헵번보다 여덟 살 연하의 미소년은 나중에 정신과 의사가 되어 진짜로 헵번의 두 번째 남편이 되었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결혼 생활도 10년 만에 파경을 맞게 되는데 이유는 성격차이라고. 이 두 번째 남편과도 헤어지고 스위스의 한 전원주택에서 임종을 맞이할 때 그녀 곁에는 또 다른 연인이 있었다고 하니 그녀의 인생 자체가 모두 영화이고 예술이었다.

 

 

의사가 3개월의 시한부 삶을 선고하자 헵번은 모든 일정을 덮고 은퇴 후 살았던 스위스의 집으로 돌아가 생의 마지막 시간을 가족들과 함께 보냈다. 이때가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노라고 그녀는 회고했다. 마침 크리스마스, 헵번은 유언처럼 시를 읊었고 이로부터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1993년 1월 20일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날 미국은 클린턴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던 날이었지만 현지 언론들은 그녀의 사망 소식을 대통령 취임 기사보다 더 크게 다루었다고 한다. 헵번의 운명 직후 그의 절친이었던 영화배우 리즈 테일러는 한 걸음에 달려와 이렇게 말했다. 하늘은 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사를 너무나도 일찍 거두어갔다고...

 

 

헵번은 진정 위대한 배우이자 사랑을 실천한 박애가였으며 죽어서 더 큰 별이 되었다. 그녀의 두 아들은 자신들의 직업을 접어놓고 현재 ‘오드리 햅번 어린이재단’에서 세계평화와 기아방지 등 어머니의 유언을 착실히 실천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도 재단의 대표이자 그녀의 둘째아들인 루카 도티가 주관하여 헵번의 소장품을 한국으로 옮겨왔는데 수익금은 전액 재단에 귀속된다고 한다.

세계적인 무비스타의 풍모뿐만 아니라 한 명의 여성, 어머니, 인간으로서 아름다운 생을 담은 오드리 헵번 전시회는 관람 시간도 꽤 길었다. 지금 우리가 국제화, 세계화, 다원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게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껴졌다. 두 시간을 훌쩍 넘기고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날씨는 매서웠으나 마음은 더없이 훈훈했다.

 

 

헵번이 유언처럼 남겼다는 시, <아름다움의 비결>은 어쩌면 그녀의 가치를 가장 압축해서 보여준 글이며 이번 전시회의 하이라이트가 아니었나 싶다.

 

 

 

 

 

아름다움의 비결

 

 

 

 

아름다운 입술을 가지려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런 눈을 가지려면 좋은 것을 발견하라

날씬한 몸매를 원하면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어라

 

아름다운 머릿결을 가지려면

하루에 한번 아이로 하여금 그 머릿결을 어루만지게 하라

균형 잡힌 걸음걸이를 유지하려면

당신이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걸으라

 

물건 뿐 아니라 사람도

새로워져야하고, 재발견해야 하며, 활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어떤 사람도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당신이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할 때

당신 역시 팔 끝에 손을 갖고 있음을 기억하라

 

나이를 먹으면서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이 두 개의 손을 갖고 있음을

 

한 손은 당신 자신을 돕기 위해

그리고 나머지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

 

 

 

 


당신의 두 손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값지게 쓰여질수 있습니다.

 

실천하는 지역사회교육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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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기라고도 하고, 힘든 한해였다고도 합니다.
가슴 아픈 일도 많았던 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어느 해인들 조용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 속에서 온정이 싹트고
살만한 세상이라는 걸 느끼곤 합니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어느 누군가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남에게 피해 안 입히고 잘 살고 있다고 위안하면서도
가끔은 미안하고 부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역시 '사랑'만큼 넉넉한 것도 없습니다.
받은 만큼 되돌려주거나,
그것에 더욱 보태 키워가는 사랑만이
우리가 살아갈 위대한 힘입니다.

 


- 향기메일 中 최선옥 시인 글

 

 

 

 

 

 

 

 

 



KACE, 홈빌더 운동 보고회 개최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차광은 회장)는 오는 12일 오후 5시 방이동 소재 지역사회교육회관에서 결과보고회 ‘홈빌더운동 2014년 Final Briefing Party’를 개최한다.

 

홈빌더 운동은 관계 갈등 및 자존감 저하로 위기를 겪는 이웃을 교육과 상담으로 멘토링해 주는 후원금과 재능 기부로 이루어진 교육 공동체운동.

 

KACE는 올 1월 홈빌더운동 선포식을 갖고, 부모 역할이 부재돼 아이들의 학교부적응, 가출, 우울증, 학교폭력 가·피해자 등의 현상을 빚고 있는 105개의 위기가정들을 위한 홈빌더 운동을 펼쳐왔다.

 

차광은 KACE 회장은 “위기가정을 돕는 홈빌더 운동은 우리 사회를 따뜻하고 올바르게 바꿔나가는데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개인주의가 중심이 된 요즘 함께 우리 아이를 돌보는 공동체 의식이 확산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자세한 내용은 홈빌더운동은 홈페이지(http://homebuilder.or.kr)를 참고하면 된다.
 

 

 

송파타임즈  |  webmaster@songp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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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행복하게 학교를 다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행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안전이더라고요.

 운영하던 사업을 접고 학교 안전 전문가를 만나려고 무작정 미국으로 갔죠."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KACE) 소속 학교 안전 수석 컨설턴트인 한종극(49)씨는

요즘 밀려오는 전화 문의에 정신이 없다.

그는 올해로 학교 안전 컨설팅 5년째이고, 그가 키운 이 분야 전문 인력도 서른 명이 넘는다.

우리나라 처음으로 미국의 학교안전센터(NSSC)와도 협력해

학교 내 안전사고·폭력·범죄 예방 사업을 펼치고 있다.

 

 

원래 한씨는 심리학 석사를 딴 후 경영 컨설팅 사업을 해왔다.

그러다가 학교 안전에 관심을 갖게 됐다.

"올해 대학생이 된 외동딸이 캐나다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얘깁니다.

 친구들이 딸의 아이디를 훔쳐 친구 사이를 이간하고 괴롭혀 너무 힘들어했습니다.

 결국 중1 때인 2008년 한국에 돌아왔는데 그 상처가 사라지진 않더라고요."

 

 

그가 딸 때문에 학교 폭력과 왕따 문제에 관심 갖던 무렵 회사가 기울어 사업을 접었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한씨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2009년부터 학교 문제를 연구하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점차 '행복한 학교 만들기'라는 목표로 구체화되더군요. 이듬해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에 들어갔죠. 40년 넘게 '즐거운 학교 만들기' 운동을 해온 단체여서 딱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국내에서 정작 학교 안전 전문가를 찾긴 쉽지 않았다. 겨우 미국에 학교 안전 전문 기관인 '학교안전센터'가 있다는 것을 알아내 대표 로널드 스테펀 박사에게 편지를 보냈다. "제 편지의 절박한 심정을 읽어냈는지 스테펀 대표가 직접 한국에 왔어요. 함께 초등학교들을 둘러봤는데 외부인 출입을 막는다며 교문을 쇠사슬로 칭칭 감아놓은 것을 보고 경악하더라고요. 사고가 났을 때 어떻게 피하느냐는 거죠."

 

한씨는 그 후 전국 학교를 돌며 안전시설을 점검하고 주로 교장·교감에게 안전 교육을 해주고 있다. 그 사이 20개 학교가 한씨의 안전한 학교 만들기 운동에 동참했다. "학교들은 '시설 교체비를 감당할 수 없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건 안전에 대한 개념을 심어주는 일이죠. 당장 안전 수칙부터 만들어 정기적으로 대피 훈련을 하면 희생을 크게 줄일 수 있어요."

 

 

[출      처]  조선일보 2014.05.17일자 A23면 

[전문보기]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5/16/2014051603678.html

 

 


 

안전한 학교, 행복한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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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부터 언니와 뛰어다니지 않고 시끄럽게 하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이웃으로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406호 드림"

 

 

출처 : 연합뉴

 

이번 '이웃사랑 편지 보내기'는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층간소음의 주요 원인이 아이들의 발걸음이나 뛰는 소리라는 점을 감안, 공동체 마음과 이웃에 대한 배려심을 심어주기 위해 마련됐다.

동림동 주민센터는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지역 특성으로 인해 자주 발생하는 층간 소음 문제를 평화로운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동림초등학교와 한울초등학교를 방문, '이웃사랑 편지 보내기'를 제안했다.

실제 지난해 서울 도봉구 방학동 신학초등학교 학생들이 5개월 동안 1천 통 넘는 편지를 이웃에 보냈고 인근 아파트 소음 민원제기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어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아래층 이웃에게 피해를 준 것에 대한 죄송한 마음과 앞으로 인사하며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을 담아 직접 편지를 썼다.

 

학교 측과 북구는 아이들의 진심이 담긴 편지를 받는 아래층 어른들이 이해심을 발휘하고 아이들도 한 번 더 조심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이웃 간 소통으로 따뜻한 정이 넘치는 아파트 공동체 조성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북구는 지역내 초등학교와 연계해 이웃사랑 편지쓰기 캠페인을 확대 운영할 방침이다.

 

연합뉴스| 입력 2014.04.03

전문보기 |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40403111209043

 


 

광주 동림초교 2학년 170여명 학생들이

자신이 사는 아래층 이웃에게 편지를 보내어 화제다.

아파트가 늘어나고 아이들이 뛰어놀 곳이 부족한 요즘,

층간소음은 윗층 아래층 모두에게 고역이다.

윗층에 사는 아이들이 먼저 이렇게 고사리 손으로 써 보낸 편지는

냉랭한 아파트에 따뜻한 봄 기운을 전하는듯 하다.

 

이웃사촌이라는 물이 무색한 요즘,

층간소음을 한번에 해결할 방도는 없지만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과 먼저 양해를 구하고 이해를 구하는 인사로

조금은 그 갈등의 수위를 낮출 수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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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때, 가장 골칫거리였던 일기쓰기.

신이나서 쓸 때도 있지만

숙제이기에 억지로 쓰는 경우도 많았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보면

 그 때 남겼던 일기 속의 문장들에는

 아이의 고민과 생각, 마음이 고스란이 담겨져 있습니다.

 

새로운 세계에 들어선 초등학교 1학년생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1학년 일기모음 <놀고싶다>의

글 세개를 추려보았습니다. 

 

 

 

 

 

 

 

엄마 아빠 결혼 기념일

 

오늘 아빠 엄마의 결혼 사진을보고 깜짝 놀랐다.

그때는 엄마가 예뻐 보였다.

결혼한 지는 이 달 2일이 10주년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엄마 아빠께

감사의 편지와 정성이가득한 조그만 선물을 드리고

결혼기념일 때는 저를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안아드리고 볼에 뽀뽀를 해드리겠다.

엄마 아빠 고맙습니다.

 

 

 

 

 

설거지

 

나는 오늘 설거지를 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엄마를 도와드린거다.

내가 설거지를 도와 드리니까 엄마도 좋아하셨다.

엄마가 좋아하니까 나도 좋았다.

왜냐하면 나는 엄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를 칭찬합니다.

 

나는 칭찬할 점을 먼저 생각해 봤다.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엄마가 와서 칭찬할 점을 알려주셨다.

그래서 나는 일기를 썼다.

나의 칭찬할 점은 신발정리하기, 공부 잘하기,

양보하기,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기, 책상 정리하기,

 사람 기분 생각하기, 이런 것 뿐이다.

 

 

겨우 8살이지만

기특하죠?

아이들의 행동만 보고 판단하기 보다는

아이들의 깊은 마음과 생각을 읽어주는

부모가 되어주세요~

 

아이는 부모의 관심과 사랑으로 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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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면 생각 나는 것들이 있습니다.

 

 

따뜻한 아랫목.

뜨끈뜨끈한 군고구마.

쫄깃달콤한 호떡.

 

 

그리고 엄마가 끓여주시는 청국장.

시끌벅적 연례행사로 담그던 엄마의 손맛 김장김치.

 

 

콜록콜록 감기걸리면

밤점 설치며 이마에 젖은수건을 올려주시던 엄마의 모습.

겨울과 잘 어울리는 따뜻하고 편안한 엄마냄새.

 

 

겨울의 추억속에는

가족과 어머니의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부쩍 쌀쌀해진 요즘.

마음까지 추워지는 차가운 바람을 맞을때면

어쩐지 가족의 따뜻함과 추억이

더욱 소중히 느껴집니다.

 

 

오늘은 우리의 소중한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추위를 이겨내는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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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부지런하고,

가장 늦게까지 일하는 나라, 대한민국.

 

소통중요하다 말하고,

행복을 위해 살고 싶다고 하지만

정작 소통보다는 '일'과 '성과'만을 강조하는 나라, 대한민국.

 

하지만 부지런해질 수록 쫓기고 바빠지는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걸까요?

 

놀고, 웃을 여유를 잃어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내가 사는 가정, 직장, 지역사회는

어쩌면 내 삶의 놀이터일텐데 ...

우리는 삶의 과정을 즐기기 보다는

'과제수행'에만 여념이 없습니다.

 

EBS에서 '놀이터'에 대한 프로젝트 프로그램이

꽤 많은 것을 내포하고있습니다.

 

삶의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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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난세일수록

역사의 지혜가 필요하다.

KACE 인문교육원 박재희 대표의 짧은 고전강의를 통해

성공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위한

조직(공동체)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1. 꿈: 함께 꿈을 꾸고 있는가

     꿈을 공유하는 조직

 

징기스칸

"한 사람의 꿈은 그저 꿈이지만, 우리의 꿈은 반드시 현실이 된다"

 

손자병법

"같은 꿈을 꾸는자 성공하리라!"

 

 

 

2. 전략 : 생각하고 싸우고 있는가

    생각하고, 분석하고, 승산을 가지고 싸우는 조직

 

이순신 장군

 이순신 장군이길 싸움만 했다.

 이길 싸움을 정확해 예측해내는것도 전략이다.

 

-큰 판을 짤 수 있어야한다.

-때로는 물러서는 것도 전략이다.

 

 


 

[강의듣기 : 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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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버드대 의대의 마틴 타이커 교수는 학창시절 또래집단에게서

언어폭력을 당한 사람들의 뇌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조사해 보았다.

 

 

 

 

타이커 교수는 매우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는데,

일반인들에 비해 어린 시절 언어폭력을 당했던 사람들은

뇌량과 해마 부위가 매우 위축되어 있었던 것이다.

 

 

뇌량은 좌뇌와 우뇌를 연결시켜 주는 다리로,

양쪽 뇌의 정보가 이곳을 통해 교환된다.

뇌량이 손상되면 좌뇌의 지각 능력과 우뇌의 감각 능력이 원활하게 오고 가지 못해

어휘력과 사회성 등에 문제가 생긴다.

 

 

 해마는 뇌에서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로,

해마에 문제가 생기면 쉽게 불안해지고 우울증이 찾아올 확률이 높아진다.

어린 시절 언어폭력을 당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이런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었다.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 조장희 교수는

 “언어폭력이 뇌량과 해마를 위축시키는 이유는

몸에서 강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이 분비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코티졸 호르몬은 긴장했을 때나 운동할 때 부신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혈당량을 증가시켜 우리 몸이 스트레스 상황에 대응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호르몬이 뇌로 들어가면 시냅스 확장을 방해하기 때문에 뇌의 발달을 억제할 수 있다.

 

 

조 교수는 “아동기와 청소년기는 뇌량과 해마,

전두엽 등의 뇌 부위가 주로 발달하는 시기로,

이 때 코티졸이 과다하게 분비되면 뇌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무심코 한 욕이 친구의 뇌에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 전에 10대 아이들이 왜 이렇게 폭력적인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연세대 의대 소아청소년정신과 천근아 교수는

10대 청소년 시기에 대해 “변연계는 발달했지만 전두엽이 덜 발달된 시기이기 때문에

폭력적이고 충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말한다.

 

 

우리 뇌의 여러 부위들 중에는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본능과 관계된

 ‘변연계’와 이성적인 사고판단과 관계된 ‘전두엽’이 있는데,

10대는 ‘변연계만 발달하고 전두엽이 덜 발달된 시기’라는 설명이다.

 

 

 천 교수는 “변연계에서 마구 엑셀을 밟으려고 하면 전두엽에서 브레이크를 밟아줘야 하는데,

10대 때는 아직 전두엽의 통제가 약하다”면서

 “그만큼 가정과 학교에서 전두엽을 발달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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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딸을 가진 부모라면

여자아이 혼자서 한 달 이상의 여행을 떠난다고 할 때

이를 허락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19세기에 ‘금원’이 저지른 이 맹랑한 도전은

가히 시대를 넘고 남녀를 넘어 인간의 무한한 꿈과 가능성을 발견하게 한다.

 

 

 

 

1817년경 태어난 ‘금원’은 경인년(1830년) 열 네 살 나이에 남장을 하고

금강산과 관동팔경 등을 유람했고,

삼십대가 되어서는 용산 삼호정에서 여성들만의 시회(詩會)를 열었으며,

1850년 그동안의 여행기를 한문으로 기록한 책 《호동서락기》를 썼다.

충청도 호서지방의 호(湖), 금강산과 관동팔경의 동(東), 평양과 의주 등

관서지방의 서(西) 서울 한양의 낙(洛)을 다서 책이름을 《호동서락기》라 했다.

 

 

그녀는 강원도 원주 출신임에도 금강산을 좋아하여

관동 봉래산 사람이라고 자기를 소개한다.

아마도 양반가의 서녀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그녀는

‘어려서 잔병이 많아 부모님께서 어여삐 여기시어 여자의 일(女工)에 힘쓰지 않고

문자를 가르쳐 주셨다. 글공부 한지 얼마 되지 않아 경사(經師)를 통달하고

고금의 문장을 본받아 흥이 나면 때로 시문을 짓기에 이르렀다.’ 고 고백한다.

 

 

유람을 꿈꾸던 금원은 부모님을 설득하는데

이미 마음은 세상을 떠돌고 있어 유람을 가지 못하면 병이 더 깊어질 것 같으며,

나이가 어리기에 오히려 지금이 적당하다고 설득한다.

‘어린나이에 강산의 절경을 두루 돌아보며,

 증점(曾點)을 본받고자 한다면 성인께서도 옳다고 하실 것입니다.’

 

 

 결국 부모를 설득한 금원은 머리를 동자처럼 땋고 가마에 앉았다.

여행 일정은 대략 30~40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할 긴 여행이었다.

교통도 불편하고 외출할 때 가마를 타거나 장옷으로 얼굴을 가려야 할 정도로

여성의 외출에 엄격했던 조선시대를 살고 있었지만 금원의 정신은 자유로웠다.

 

 

‘눈으로 산하의 넓고 큼을 보지 못하고 마음으로 온갖 세상사를 겪지 못하면

 변화무쌍한 이치에 통달할 수 없어, 생각하는 것이 협소하고 식견이 넓을 리가 없다.

 옛말에 어진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고 했으니,

 남자라면 집밖의 넓은 세상에 뜻이 있는 것을 귀하게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여자는 규방 문밖을 나가지 못하고 오직 술과 음식 만드는 일을 노하는 것만을 옳다고 하였다.

 (증략) 여자는 세상과 단절된 채 깊숙한 규방에서 생활하고 있는 탓에 아무것도 세상에 남기지 못한 채

 자취없이 사라지고 만다면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

 

 

 금원은 어린나이에 금강산과 관동유람을 떠났고 돌아온 뒤에는 원주기생이 되어,

 시인기생으로 이름을 날렸다.

 남편 김덕희를 만나 소실이 되었고 의주 부윤이 된 그를 따라 평안도 일대의 관서여행도 해보았으며

 서울로 돌아와 삼호정에서 뜻 맞는 사람들과 시회도 열었다.

《호동서락기》는 열네살의 유람에서 시작하지만

 서른 네 살에 다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쓴 회고록이다.

 

 

추사 김정희는 재종형 김도희(금원의 남편 김덕희의 친형)에게 보낸 편지에서

금원의 글을 읽은 소감을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집안 아이들로부터 금원의 제문(祭文)을 얻어 읽어 보니 그 문장이 정(情에)에서 나온 것인지,

문장에서 정이 나온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마음 아파하며 곡진하고 도타운 슬픔과 애통함이

족히 사람을 감동하게 할 수 있는데 오리혀 이것은 두 번째입니다.

 

어찌 이처럼 기이한 글이 있단 말입니까? 글의 기운이 편안하고 구성이 반듯하며,

움직임은 패옥소리에 맞고 얼굴은 동관(역사를 기록하는 여자관리)과 같습니다.

화장을 짙게 한 여인의 기미는 한 점도 없고 옛날 여사(女士)의 요조한 품격만 있어,

턱 아래 3척 수염을 휘날리고 가슴속에는 5천자의 글을 담고 있는 제가

곧장 부끄러워 죽고만 싶을 뿐입니다. 우리 집안에 이런 사람이 있었는데도

 어떤 모양인지 알지를 못하고 하나의 심상한 테두리 속의 일개 보통사람으로만 보았으니

한갓 이 사람만 위하여 슬퍼하고 탄식하는 것이 아닙니다....’

 

 

《호동서락을 가다》는 금원이 다녔던 여정을 따라 저자가 직접 답사를 통해

금원의 글과 각 여행지를 소개하고 오류는 수정하면서 금원의 생각과 삶을 소개하고 있다.

이미 《왕을 낳은 후궁들》을 통해 우리 역사의 뒤안길로

숨겨진 여성들의 삶을 발굴하고 세상에 드러내는 역할을 해온 저자 최선경은

‘금원’이라는 시대를 행군한 여인을 발견하면서 그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6년간 준비를 거쳤다.

 

 

기껏해야 우리 역사속의 여성인물이라 하면 신사임당이나 유관순이 전부인 나에게

 ‘금원’의 출연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 글을 읽는 내내 매력적인 금원에 반하고 금원을 21세기에

 다시 탄생시킨 최선경의 탐구심과 글솜씨에 감탄했다.

 

 


 

호동서락을 가다 | 최선경 지음, 옥당

선 (KACE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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