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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2.10 추자도에 가면...

“무조건 떠나는 거야!”

 

작년에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설 여행’을 드디어 관철시켰다. 집안에 맏이인 우리가 명절에 집 떠나보기는 결혼 후 처음이다. 시댁과 친정이 다 서울인지라 우리에겐 찾아갈 고향이 없었고, 그래서 명절 때 차 밀리는 고향 길 대열에 나도 꼭 한번 껴보고 싶었다.

 

 

설날 새벽 두 시에 출발하여 여섯 시간 만에 완도 여객터미널에 도착, 거기서 배를 타고 다시 두 시간 반을 달려 목적지인 추자도에 안착했다. 집에서부터 거의 아홉 시간이 걸렸는데 고속도로가 엄청 막힐 거라고 극구 반대했던 애들의 염려와는 달리 길은 뻥 뚫렸다. 다만 새벽안개로 인해 운전에 조금 방해를 받긴 했지만 그 또한 처음 해보는 경험이라 신기했다. 물안개를 가르며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몽환적이면서 스릴이 넘쳤다.

 

 

 

 

추자도 선착장에 내리니 <고향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여러 척의 배들은 모두 정박해 있고 고단함이 깃든 어부들의 일상도 설을 맞아 잠시 휴식기에 들어간 듯 섬 마을은 전체적으로 고요했다. 인적 없는 적막한 바다를 갈매기 떼들이 대신 지켜주고 있었다.

가장 먼저 숙소를 잡아야 했기에 가기 전에 인터넷에서 찾아본 몇 군데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방이 꽉 찼다는 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님 명절이라서 고향에 내려온 자식들이 묵고 있어 대부분 방이 없단다. 덜컥 겁이 났다. 이러다가 섬에 갇혀 미아 신세가 되는 건 아닐까, 고민 끝에 남편이 해양경찰대에 들어가 읍소(?)를 했다. 다행히 한 군데를 찾았다. ‘태성레저’ 이층에 방이 많은 걸 보니 수입이 꽤 짭짤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민박집은 잠자리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매끼 밥까지 차려준단다. “야호, 땡잡았다!” 쾌재를 부르며 갔다. 주름살 가득한 주인 할머니는 어서 오라며 반색을 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부부를 이미 예약한 다른 팀으로 착각을 했던 것이다. 어쩐지 지나치게 반가워하신다니... 다행히 자식들이 오후에 떠나면 방은 여유가 있을 테니 나갔다가 저녁 먹을 때 들어오라고 했다. 아무렴 재워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인데 무얼 더 바라겠는가.

 

 

 

 

삼치, 참돔, 멸치젓갈 등으로 할머니가 풍성하게 차려준 점심을 잘 먹고 나서 짐을 챙기려는데 아, 이럴 수가! 옷가방이 행방불명이다. 각자 어깨에 메고 있던 작은 베낭만 짊어진 채 왔던 것이다. 혼비백산하여 가방 찾기에 나섰다. 처음 추자도에 도착하여 우리가 들렀던 곳을 하나하나 되짚어 갔다. 편의점, 면사무소, 해양경찰대... 그러다가 저 멀리 면사무소 앞 의자에 놓여있는 까만 직사각형 물체를 내가 먼저 발견했다. 틀림없는 우리 것이었다. 지도를 얻으러 면사무소에 들렀다가 놓고 나왔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 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는 가방을 보니 갑자기 추자도 사람들에 대한 신뢰도가 급상승했다. 가방을 갖고 다시 들어서는 우리를 보고서 “거봐요! 우리 추자도 사람들은 절대로 남의 물건에 손 안 댄다니까.” 웃으며 말하는 할머니 얼굴에 섬광처럼 스치는 자부심이 엿보였다. “네, 천만다행이에요. 아님 우린 이 길로 서울 가야했을 텐데...” 정말로 가방을 못 찾았다면 나는 다 때려치우고 곧바로 집으로 가는 길을 택했을 것이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본격적인 올레길 탐방에 나섰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두 시, 뜻밖에도 올레길 초입에 학교가 있었고 때맞추어 알록달록 깃발을 든 풍물패가 운동장을 돌며 지신밝기를 하고 있었다.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민속놀이, 조용한 섬마을에 농악단의 흥겨운 가락이 울려 퍼지니 비로소 사람 사는 동네 같았다. 반가운 마음에 그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학교 뒷마당에는 고려 시대 장군이었던 ‘최영 장군 사당’도 있었다. 그래, 장군이 남겼다는 ‘황금을 보기를 돌 같이 하라’는 유명한 말이 있었지.

남녘이라 그런지 산 속은 봄기운이 가득하여 길옆으로 유채꽃과 동백꽃이 만발했다. 해안가라 그런지 비자림도 많았고 겨우내 매서운 바람을 이겨낸 단단한 고사목도 더러 있었다. 모두가 수천 년의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낸 걸작품들이었다. 사실 눈 덮인 겨울 산을 밟고 싶어서 아이젠까지 갖춰갔는데 우리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날 기온이 영상 10도가 넘었다고 하니 거의 한 달을 앞당겨서 봄을 만난 셈이다.

길은 거의가 완만한 오르막이었지만 평소 내 운동량으로 볼 때 세 시간 넘게 걷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첫날의 목표인 등대섬까지는 무사히 올라갔다. 등대에 다다르니 추자도 섬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어느 각도에서 바라봐도 절경이다. 자연과 인간을 아우르는 오묘한 조화가 마치 밀레의 저녁 풍경을 연상 시켰고 아무도 없는 호젓한 길은 신성한 순례지 같았다. 평화와 자기 극복의 시간, 지금이 바로 그런 때인 것 같다.

 

 

긴 시간의 트레킹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씻고 저녁을 먹으려는데 낯선 얼굴들이 먼저 식탁을 점령하고 있었다. 주인장 할머니가 아까 우리와 착각하셨던 중년의 커플이었다. 그들은 성지순례 중이라고 하는데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부인은 어딘가 아픈 사람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부부의 얼굴에서는 기품과 온화함이 느껴졌고 식탁에 앉아 여러 번 성호를 긋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튿날은 일곱 시쯤 기상하여 일출을 보았다. 어둠을 걷어내고 장엄하게 떠오르는 해, 2014년 새해 첫날 하지 못했던 해맞이를 추자도 민박집에서 하게 될 줄이야! 아침밥을 먹자마자 성지순례 팀 부부는 제주도로 떠났고 우리는 다시 올레길에 나섰다. 어제는 상추자도였고 오늘은 하추자 탐방 길인데 하추자도에는 음식 사먹을 곳이 마땅치 않다고 할머니가 친절하게도 점심 도시락을 싸주셨다. 삼다수 물병까지 곁들여서.

 

 

아침에 일기예보를 들으니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고 했는데 날씨는 티 없이 맑았다.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길, 역시 인적이 없다. 어제에 이어 그 고독과 외로움이 주는 풍요가 참 좋다. 햇빛에 부서지는 은빛파도도 아름답지만 바닷바람에 광포하게 춤추는 갈대밭은 더 아름다웠다. 인기척에 놀라 날아가는 새들도 만났다.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의 삼박자가 잘 어우러진 공간이다. 하추자 길섶에는 쑥이 참 많았고 물기가 있는 곳에는 돌미나리가 무더기로 올라와 있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쑥과 미나리를 뜯었다. 금세 한 봉지가 가득 찼다. 그것들은 해풍을 맞으며 한겨울 땅속에서 꿋꿋하게 자란 것들이니 보약이나 다름없었다. 벌써부터 쑥 된장국 냄새가 솔솔 풍겨오는 듯했다.

이날 올레길에서 만난 ‘황경헌의 눈물’이라는 샘물이 가장 인상에 남았는데 거기에는 너무도 가슴 뭉클한 사연이 담겨 있었다.

 

 

황경헌은 조선 순조 때 천주교 박해 사건인 신유사옥 시 백서를 작성한 황사경과 정난주(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황사영은 약관 16세 나이로 진사에 급제한 인사로서 당시 명문가인 정약용의 맏형 정약현의 딸 정난주와 결혼하였고 신유사옥 때 천주교의 핵심 주모자로 지목되어 처참하게 순교하였다.

황사영의 부인 정난주는 제주 대정현의 관노로 유배되어 37년간 길고 긴 인욕의 세월을 살았고 당시 두 살이던 황경헌은 추자도로 유배되어 항상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살았다. 이곳은 어미를 그리워하는 아들의 애끓는 소망에 하늘이 탄복하여 내리는 황경헌의 눈물로서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늘 흐르고 있다.

 

 

자칫 밋밋하기만 했던 올레길에 숨어있었던 이 애틋한 사연은 지나가는 길손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이 눈물샘의 주인공 황경헌은 나중에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다니 아마 그의 후손들이 지금도 추자도 어디엔가 살고 있으리라. 이렇듯 오래된 전설과 현재의 삶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닌가 싶다.

 

 

세 시간 쯤을 걷고 나니 적당히 땀이 나고 배도 고팠다. 그런데 할머니가 싸준 도시락을 먹으려 하니 밥이 너무 차다. 남편이 포구 근처 동네가게를 찾아 컵라면을 주문했다. 그리고 뜨거운 물을 끓여주는 주인아줌마와 잠시 얘기를 나누는데 자기도 서울사람이란다. 게다가 친정이 휘경동이라는 말에 더욱 관심이 쏠렸다. 내가 휘경초등학교를 다녔고 남편도 그 동네 경희고등학교를 나왔다고 하니 그때부터 그녀는 아예 우리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끊임없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추자도가 고향인 남편과 서울 생활하다가 오 년 전에 고향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오십 대 초반인 그들 부부, 낚시 배를 가지고 있고 가게까지 있으니 노년에 먹고 사는 것은 물론 정서적인 노후대책까지 문제없어 보였다. 거칠지만 뜨거운 삶을 살아낸 사람들, 민박집 할머니가 그랬고 가겟집 아줌마가 그랬다. 잠시 그들의 여유로운 노후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줌마와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는 가게 앞 벤치가 아늑한 사랑방 같았다. 여자는 우리의 아득한 기억을 일깨워준 것도 고마운데 일어설 때 문어를 선물로 주었다. 그것도 세 마리씩이나. 돈을 주겠다고 하니 극구 사양하며 다시 추자도에 오면 그땐 꼭 자기 집에 오라면서 명함을 준다. ‘추자도 사람들 진짜 부자인가 보네’

 

 

거의 다 내려왔을 무렵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과연 일기예보가 틀리지 않았다. 선착장까지 가려면 십 분 정도는 더 걸어야 하는데 별 수 없다. 산길이라 피할 곳도 없고 그냥 비를 맞고 걷는다. 이것도 변화무쌍한 어촌의 겨울 맛이라 생각하며 걸었다. 오후 네 시 이십 분, 완도로 돌아오는 배를 탔는데 배 안에서 일몰을 구경했다. 일출과 일몰을 하루에 다 보았으니 이날 운이 아주 좋았다.

 

 

완도의 시애틀 호텔에서 하룻밤 더 묵고 이튿날 아침 전복죽 한 그릇 먹고는 서둘러 귀경길에 올랐다. 갈 때와 마찬가지로 차는 막힘없이 달렸다. 만물이 잠드는 겨울, 그러나 봄 색이 완연한 추자도에서 우리는 느림과 고요의 선물을 듬뿍 안고 왔다. 세상의 모든 시계들이 똑딱거리거나 말거나 여린 뿔을 허공에 이리저리 흔들며 나아가는 풀잎 위의 달팽이처럼 올해는 그냥 이렇게 느리게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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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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