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정재승 교수가 객원작가로 참여한 EBS 지식채널e '미안하다' 편을 다시 찾아 보았다. 첫 자막이 흐른다. 이 세상에서 가장 하기 힘든 말은 '미안하다'. 엘튼 존의 노랫말. " 사람들은 사과를 나약함의 상징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과 행위는 '위대한 힘'을 필요로 한다.(아론 라자르/정신과 의사)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한다. 사람에게든 자연에게든 동물에게든...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사과하는데는 서툴다. 그렇다면 '잘못(실수)'의 기준은 무엇일까? 잘못하지 않은 것을 잘못했다고 사과할 수는 없는 노릇.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사람과 사람의 경우, 팽팽한 줄달리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면, 주저함없이 '미안하다'라고 사과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안하다, 하지만.." 식의 사과는 변명으로 들릴 수 있다. '잘못한 사과는 원래의 실수를 더 악화시키고, 때로는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 낸다(홀리 위크스)'


정재승 교수는 카이스트 대학생의 자살에 대해 침묵하고 외면했던 다수(교수 등)의 진심어린 사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카이스트는 대한민국의 축소판. 서남표식 교육개혁을 칭송했다가, 비판한 언론도 사과가 필요합니다. 카이스트 학생의 자살이 사치다고 비판했던 댓글들에 상처받은 유족들. 정재승 교수는 아메리카 속담을 소개합니다. " 그 사람의 모카신을 싣고 1마일을 걸어 보기 전에 그 사람을 비난하지 마라 "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자는 뜻. 사과는 배려이기도 합니다.누구나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미안하다는 마음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원한다는 것.

정재승 교수는 책임의 시대의 미덕은 실수를 깨끗히 인정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고, 사과는 신뢰의 리더십을 추구하는 '리더의 언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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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와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학생 네명과 한 교수의 자살소식은 이유도 이유지만, 너무 가슴 아픈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아들, 딸이요 형제요 가족이요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카이스트의 진통은 한국 사회의 진통이기도 합니다. 그 아픔을 카이스트에 재직중인 한 교수(경영대학 이재규 교수)가 '시'를 통해 나누었습니다. '사랑한다 제자들아'로 시작되는 시는 수업은 머리로 부터 배우지만, 삶은 가슴으로 배워야 한다고... 사랑한다 내 아들딸들아로 끝맺습니다.






'사랑하는 KAIST 제자들에게' 라는 제목으로 학생들에게 메일을 보낸 '시' 한편 처럼,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금의 상황을 잘 타계해나갔으면 합니다. 떠난 자는 되돌 릴 수 없지만, 살아 남은 자들은 결코 떠난 자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합니다. 한 편의 글과 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합니다. 서울대 경제학부 이준구 교수는 자신의 누리집에 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공개하고 있지요. 대화와 소통은 꾸준해야 합니다. 불만이든, 아이디어든, 걱정이든, 부탁이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이어져야 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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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학생과 교수자살로 인해, 많은 분들이 한국 교육 현실 전반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고 있습니다. 경쟁지상주의, 기계적 영어수업, 서남표식 개혁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고려대를 자퇴하면 대학이 우정과 환대의 공간이 아니라, 취업을 위한 공간으로 바뀐 현실을 개탄한 김예슬의 글(나는 오늘 대학을 거부한다)도 재삼 주목받고 있습니다. 카이스트 문제는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카이스트 문제를 카이스트만의 문제로 보아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일본 츠루문과대학 비교문학과 교수인 후쿠타 세이지가 쓴 <핀란드 교실혁명>. 핀란드 교육개혁. 경쟁력을 강요하지 않는 핀란드 교육이 가장 경쟁력 있는 교육국가로 인정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국의 교육전문가나 시민단체, 정치인 등 많은 사람들이 핀란드 교육 현장을 방문했고, 글을 남겼습니다. 한국 교육 개혁을 이야기할 때 핀란드 교육개혁이 많이 언급되지요. 하지만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요. 책 '핀란드 교실혁명'의 한국판 해설을 담당한 박재원의 글은 핀란드와 한국의 교육현실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카이스트 사태를 지켜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책이기도 합니다.


핀란드도 한때 지금의 한국 교육시스템을 운영했습니다. 그렇지만 세 차례 교육개혁(10년 단위)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내었지요. 핀란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식민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는 국가지요. 척박한 자연환경 때문에 사람이 자산이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교육 개혁을 이루어내었습니다. 한국 또한 마찬가지지요. 자원이 없는 국가에서 사람만큼 중요한 것이 있나요? 저자의 지적처럼 핀란드 교육개혁은 단순한 경제적 필요성에 기반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사람이 경제를 이루어 내니까요.
 

핀란드 사람들은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단지 다를 뿐이라고 굳게 믿고 있지요. 그래서 모든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분발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고 합니다. 한국은 그렇지 않지요. 탈락자를 만들어 내기 위한 교육아닌가요? 핀란드에서는 학생 탓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회와 학교, 교사의 탓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나를 따르라가 아니라 함께 가자. 핀란드는 경쟁이 아니라, 기회균등이 능력을 키우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핀란드 교육 개혁은 어떻게 성공했을까요?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가 소개한 몇 가지 사항을 소개드릴까 합니다.


1. 가정, 성, 경쟁력, 모국어와 관계없이 교육 기회가 평등하다
2. 어떤 지역에서도 교육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다
3. 성별에 따른 분리를 부정한다
4. 모든 교육을 무상으로 실시한다
5. 종합제(수준별)로 선별하지 않는 기초교육
6. 전체는 중앙에서 조정하지만 실행은 지역에서 맡을 수 있도록 교육행정이 유연하게 지원한다
7. 모든 교육 단계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협동하는 동료의식 배양
8. 학생의 학습과 복지에 대해 개인별로 맞춤 지원
9. 시험과 서열을 없애고 발달의 관점으로 학생들을 평가한다.




교육의 최고 덕목은 무엇일까요? 저자의 말처럼 포용과 관용의 정신이라는데 동의합니다. 핀란드 교실혁명의 가치이기도 합니다. 핀라드식 '공부'의 정의는 무엇일까요. 즐겁게 공부하고 유익한 결과를 얻는것. 좋은 평가 결과가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위한 준비 과정이 바로 공부입니다. 획일적인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참여하는 배움의 기회가 보장되는 것이 핵심입니다. 개인의 차이는 비교 대상이나, 차별적(징벌적) 등록금제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배려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경쟁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학생과 교수를 자살에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그 상처는 회복될 수 없는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지요. 카이스트의 교실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피그말리온(키프로스 왕의 이름) 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타인의 기대나 관심으로 능률이 오르거나 좋은 결과를 초래한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능력과 성적이 떨어진 학생에게 기회를 주고 지속적으로 관심과 배려를 한다면,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영재라도 부조한 학생들을 돕고 이끌면서 학습 공동체 전체의 발전을 위해 역할하게 하는 것이 최고의 영재교육이라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다. 학생 한 명에게 헌신적인 학교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바로 핀란드 교육개혁의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돕는다고 생각하는 핀란드 선생님들이 바로 교실현장에서 피그말리온 효과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핀란드 교실 혁명 5장/해설자 글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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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사태는 한국 사회의 축소판. 영재교육과 한국 과학기술의 현주소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이 넘쳐납니다. 아무쪼록 카이스트 학생 자살로 빚어진 이번 논란이 부글부글 끓었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냄비현상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은 '징벌적(차별적) 등록금제'를 폐지하겠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추후 어떤 논의와 개선이 이루어질 지 계속 지켜보아야겠지요. 일차적으로는 카이스트 구성원들이 변화를 이끌어야 겠지만, 이를 통해서 한국 교육 전반의 변화와 맞물려 논의가 진행되어야겠지요.



이번 카이스트 사태를 통해 '100% 영어 강의 수업'의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웃 나라 일본과 비교해서 노벨 과학상 받은 사람 중에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례도 소개되고 있지요. 노벨상 6개분야 중에 과학분야는 세부문(생리의학, 화학, 물리)가 있지요. 일본은 지금까지 17명이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과학분야 수상자가 많지요. 영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못한 과학자(마스카와 도시히데>>  관련기사 읽어보기) 뿐만 아니라, 학사 출신 엔지니어(다나카 고이치)가 노벨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일본도 한국 못지 않는 학력사회지요. 하지만 괴짜들이 많습니다. 괴짜들을 인정해주고 있지요. 



천편일률적인 기계적 학습법이나 교육시스템은 사람의 창의력을 죽일 수 있습니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는 여러 분야에서 인재들을 발굴시킬 수 있습니다. 한국의 교육열은 그 어느 나라보다 뜨겁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 열기에 못미치는 편견과 잘못된 관행으로 선생님, 학생, 학부모님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카이스트 뿐만 아니라 이른바 상위권 대학의 현주소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노벨상이 교육의 바로미터는 아니지만, 부분 척도는 될 수 있겠지요. 노벨상 수상은 개인의 능력이나 업적뿐만아니라 외교력, 국가경쟁력도 영향을 미칩니다. 한EU FTA 협정문은 번역 오류 투성이었지요. 현실은 이렇습니다. 외국어를 왜 공부해야 하는지, 그 의미를 다시 새겨보아야 겠지요. 영어를 잘 하는 것과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은 다릅니다. 아무쪼록 이번 카이스트 사태를 통해 한국 사회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경쟁력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경쟁력이며, 교육개혁은 누구를 위한 개혁인지도 함께 살펴 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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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KAIST) 학생 자살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전도유망했던 카이스트 교수 자살 소식은 더 충격적이었다. 서남표 총장 퇴진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대화만 있고 소통이 없다고 비판하는 학생들 목소리도 들린다. 
차별적 등록금제와 100% 영어 수업에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서남표 총잔은 미국 명문 대학 자살률이 높다고 항변했지만, 반응은 쌀쌀하다. 카이스트 문제는 한국 사회의 축소판일까? 조금 넓게 살펴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한국 자살률은 세계 1위다. 한국 과학기술이 자살률과 걸맞게 세계 1위일까? 아니다. 그렇기에 미국 명문대 자살률 비교는 무의미하다. 카이스트 학생과 교수의 자살은 1차적으로는 카이스트의 교육환경에서 찾아야 되지만, 그 다음에는 한국 대학, 더 나아가 한국 교육, 더 나아가 한국 사회 자살률까지 살펴 보는 것이 맞다. 두가지 측면에서 상호보완되어야 한다. 하나는 제도의 개선(학칙, 참여, 소통 등)과 자살예방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


이웃나라 일본이나 유럽은 자살률은 한 때 높았다. 하지만 나라마다 자살예방프로그램을 국가적 차원에(거버넌스 차원)서 운영했다. 대표적인 나라가 핀란드다. 핀란드도 한국처럼 자살률이 높았던 국가였지만, 자살예방프로그램을 장기적으로 실시하면서 자살률을 줄여나갔다. 그런데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또한 경쟁지상주의 패러다임 전환과 리더십에 대한 교육과 안목을 넓힐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지식과 사람, 소셜네크워크가 시나브로 발전하는 사회에서 '나'가 아니라 '우리'로 전환되어야 한다. 한 사람의 천재가 아니라 평범한 10사람의 지혜가 더 빛나는 사회. 한 사람의 베스트가 99명의 보통사람들이 더 중요한 사회로 전환되는 사회에서 베스트 앤 베스트는 의미가 없다. 오픈 소스, 오픈 소셜 사회에서는 정보를 공개해서 지혜를 보태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사용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바뀌고 있다. 


카이스트만 문제가 있고 서울대는 문제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 교육문화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 밖에 모른는 꽉 막힌 천재는 필요없는 시대다. 그런 천재가 지배하는 사회는 불행해질 것이다. 학교교육 뿐만 아니라, 평생 교육 시대에 걸맞게 평생학습시스템 구축(재정비) 또한 중요하다. 이제 한 때의 공부와 지식 습득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카이스트 사태를 통해, 한국 교육 현실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급하게 서두를 일은 아니다. 기계적 해법이나 임시방편책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보다 광법위한 참여가 있는 민간차원의 논의구조도 꾸려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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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학생이 또 자살했다고 합니다. 올해들어 엊그제 같은 세번째 자살 소식을 뒤로하고, 네번째 자살 사건이 발생했네요. 카이스트만의 베르테르효과(동조자살)입니까. 슬픈 현실입니다. 과학기술 영재의 요람인 카이스트. 영재의 무덤이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가볍게 스쳐 지나갈 수 없는 일입니다. 자살한 학생은 우리들의 자식이요, 형제요, 친구일 수 있으니까요. 카이스트는 지난 5년간 8명의 학생이 자살했습니다. 자살 이유는 다 다르겠지만, 공통분모를 찾아야 합니다.


세번째 자살 소식이 들리자, 카이스트 서남표총장은 해결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근원적인 처방이 필요하다며, 카이스트의 징벌적(경쟁적) 등록금제와 경쟁,성적지상주의 학칙과 대학 문화(풍토)를 비판했습니다. 징벌적 등로금제는 왜 도입이 되었을까요? 카이스트 입학생들은 전액 장학금 혜택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 제도가 도입되면서, 일정 학점에 도달하지 않으면 최대 800만원까지 등록금을 지불해야 합니다. 특별전형은 왜 도입했나요? 성적순 일반 전형과 다른 시점과 관점으로 영재를 키워내겠다는 것 아닌가요. 그렇다면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단순 경쟁이 아니라 상상력을 꽃피울 수 있는 배경을 만들어 주어야지요.


카이스트 학생의 자살 논란이 공론화되자, 문화평론가 진중권은 노컷뉴스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카이스트현상에 대해 지적했습니다. 카이스트 학생 자살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르겠지만, 되새겨 볼만한 내용이기에 소개할까 합니다. " 흔히 우리는 경쟁만 하면 뭐든 게 다 잘될 것이라는 이상한 신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아니거든요... 찰스 퍼시 스노라고 아주 유명한 분이 있죠. 세계적 논쟁을 낳았던 책(두 문화와 과학혁명),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됐는데요 그 책의 저자입니다. 그 책에 이런 말이 나와요. 옥스퍼드 대학에서 그동안 했던 개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학과를 일등으로 졸업한 학생에게 표창장을 주는 제도가 있었는데 그것을 없앤 것이라고 그러더라구요. 왜냐하면 옥스퍼드 수학과를 1등으로 졸업했다, 얼마나 큰 영예겠습니까? 그래서 학생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엄청난 경쟁을 벌였는데요. 문제는 그 포상제도를 도입한 이후에 옥스퍼드 대학에서 100년 동안 수학자가 한 명 도 안 나왔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수학시험에서 점수 잘 받는다고 훌륭한 수학자가 되는 건 아니고, 또 점수 경쟁이라는 것이 오히려 수학적 창의성의 발달을 가로막아왔다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아인슈타인이 카이스트에 재학중이었다면, 과연 상대성 이론이 나왔을까요? 아무쪼록 이번 사건을 계기로 카이스트뿐만 아니라, 우리 교육 문화를 다시 점검하고 개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경쟁과 학점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진정 학생들의 재능을 살리고, 능력을 키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반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 모든 것을 일률적으로 적용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시나브로 교육문화가 바뀔 수 있도록 작은 단위에서 부터 실천이 필요할 때입니다. 또한 한국의 경쟁적 교육문화가 정말 세계의 중심에 내놓아도 경쟁력이 있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쪼록, 다시는 어떤 이유든, 자살하는 학생이 없었으면 합니다. 막연하게 학생의 개인 탓으로 돌리지 말고, 근원적 처방을 마련했으면 합니다.


  1. <카이스트 학생 자살 관련 트위터의 창 >


    Dr_Cheon_Keunah
     최근 카이스트 학생들의 잇단 자살은 "cluster suicide" 현상의 전형이다. 자아가 취약해져있거나 평소 우울증이 있던 학생에게는 같은 환경 내에서의 자살 소식 자체가 자살시도에 성큼 다가서게 만든다. 이것은 비단 카이스트만의 문제가 아니다.
  2. byguilty 카이스트 학생이 올해 들어서만 네 명째 자살. 아직 4월인데. 아니 정규교육을 받는 것만으로도 자살하는 중고등학생이 속출하고, 상위 몇 % 성적으로 간 대학에서도 줄줄이 자살하는 이 나라는 어떻게 된 나라인 건가. 책임 있는 어른들은 관심이라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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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과학기술교육의 요람 카이스트(KAIST 한국과학기술원). 올해들어 3명의 학생이 자살했다. 세번째 학생이 투신 자살로 숨지자, 총장(서남표)은 카이스트 누리집에 글을 올렸고, 글을 읽은 한 학생은 대자보를 남겼다. 서 총장은 총장으로서 당연 입장을 표명해야했다. 총장이 남긴 글에는 실패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지혜를 모으자고 이야기했지만, 사태의 핵심을 비껴간 변명의 글에 가깝다는 학생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아무튼 변명이든 질타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대화의 물꼬가 터졌다는 측면에서는 평가받을 만하다. 



캐나다 윈저 대학 서상철 교수
가 쓴 글의 제목은
< 죽어가는 카이스트의 6만 원짜리 아인슈타인들/읽어보기(클릭)>. 서 교수는 카이스트의 징벌적 등록금제 지적했다. 평점 3.0(만점 4.3)에서 0.01점이 낮아질 때마다 약 6만원이 등록금에 부가된다고 한다. 2.0 미만의 평점을 받은 학생은 최대치로 600만 원의 수업료가 부가될 수 있다고 한다. 씁슬하다. 물론 세 학생이 성적과 등록금 때문에 전적으로 자살의 벼랑 끝에 몰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학점과 경쟁 보상주의는 분명 6만원 짜리 천재들을 양산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 카이스트에 재학중인 학생이 남긴 대자보 글



서교수가 쓴 글을 읽으면서, 중국의 국보 나라의 스승이라고 불리는 원로학자 지센린의 말이 떠올랐다. 천재는 선천적으로 천재성을 띄고 태어난 사람도 있겠지만, 교육에 의해 길러진 천재도 있다. 지셴린은 ‘천재가 두렵다고’ 말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 천재라 해도 사실은 편재(偏才). 즉 ‘특정 분야에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일뿐이다. 자신에 대해 애정은 있어야겠지만, 그 애정이 지나쳐 자만심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지셴린)”

 

 지셴린의 경고는 천재가 자만심에 빠져 사람들로부터 따돌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 말이다. 천재가 오만함에 빠지면, 평범한 사람보다 못하다는 것. 결국 천재가 천재다움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가정교육과 인성교육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 타인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천재는 천재가 아니라는 것.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 있다는 뜻. 0.01 학점에 6만 원짜리 천재의 현실은 슬프다. 천재가 아니라 천재를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는 천재만들기가 슬프다. 서교수는 아인슈타인이 만약 0.01 학점에 6만원이 부가되는 징벌적(경쟁) 등록금제 환경에서 공부했다면, 그 유명한 상대성 이론이 나왔을까, 라면 묻는다. 



“ 한 수학자가 있었다. 심오한 숫자와 수학기호들이 그의 머릿속을 자유자재로 휘젓고 다니며 놀라운 수학적 능력을 과시했다. 남들은 발견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해내고, 남들은 풀지 못하는 방정식 따위를 거뜬히 풀어냈다. 사람들은 그들 천재라고 불렀다. 그런데 현실 생활로 옮겨가면 그의 지능은 초등학생보다도 못했다. 돼지고기 한 근이 3.3원이면, 다섯 근이 얼마인가? 그는 이 정도 질문에도 머뭇거리며 대답하지 못했다”(다지나간다 중에서/ 지셴린)


 경쟁과 희생이 아니라, 실패의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교육환경이 절실하다. 기다림도 필요하다. 인성교육과 인문학적 소양이 없는 천재만들기. 외골수 천재는 결국 사회부적응자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업적과 실적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업적을 위한 업적, 성적을 위한 성적지상주의는 천재의 길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했으면 한다. 카이스트는 지금이라도 징벌적 등록금제를 폐지하고, 학생과 학부모와 함께 대화의 문을 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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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영재라 불렸던 한 카이스트 학생이 자살을 했었지요. 자살 배경을 떠나 한 젊은이가 자신의 상상력과 재능을 마음껏 꽃피워 보지 못하고 숨진 것에 대해 가슴이 아팠습니다. 부모님들은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가 그 심정을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1

우리학교 1학년학생이 공부가 즐겁지 않아 자살을 선택했어요. 올바로 지도해야할 교수로서 책임을 통감합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우수한 인재를 선발했듯이, 교육과평가도 학생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존중했어야 했는데...학생들에게 많이 미안하네요. 


2

학생들은 이번 기회에 등록금 반대, 영어수업 반대 투쟁을 하려는듯하고, 언론은 입학사정관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듯. 학교는 자살방지위원회를 만들려하고. 에고. 카이스트 학생들이 배움의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한 교육대책이 절실한데.


3

학점에 따라 등록금을 부과하는 현 카이스트 시스템은 창의적인 괴짜 학생들 배출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고있지요. 이제 카이스트가 창의적인 대학교육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학생들을 정량평가의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줄때가 되었어요.


4

기초과학교육과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고등교육기관으로 거듭나는 것이 카이스트가 안고있는 가장 중요한 미션. 그러나 교수들의 창의적인 교육과수업은 승진을 위한 평가의대상도, 의무의대상도, 인정의 덕목도 아니니, 원.


5

학생자살과 관련 어제 공청회가 있었던모양이다. 나도 학생때 이런공청회를 열심히 참석했지만 유익했던기억은 없다. 기본적으로 학생들은 교수를 적이라 생각, 교수는 학생을 협의의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서로 존중하고 선의를의심하지 않아야 결실이 가능.

 

6

그런 신뢰는 하루아침에 구축되는 것이 아니다. 학교가 오랫동안 학교행정에 학생들을 참여시키지 않고, 학생도 언론을 이용하거나 귀막은 성토로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 서로의 잘못. 권력적으로 우위에 있는 학교기 먼저 손을 내밀어야할텐데.


7

다행히도 지금 우리의상황을 해결하고있는 학생처장님이 학생의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교수님이시라 아마도 좋은 결실이 있을듯. 저도 계속 연락드리고 있지만 해답이 쉽지 않은 상황인것 맞지요.


*출처: 정재승 트위터


학점에 따라 등록금을 부과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학점이 높은 학생이 로봇을 잘 만드는 걸까요? 에디슨과 아인쉬타인이 카이스트에 다녔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재발 방지도 필요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카이스트 교수와 학생들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만 정 교수의 지적처럼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방법을 가르키는 고등교육기관으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로봇을 만드는 재능이 로봇교육으로 창의성을 죽이는 결과를 빚어내지는 않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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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입학 당시 로봇 영재라는 말을 들었던 한 학생이 자살했다고 한다. 대학 생활 1년. 성적비관 때문인지, 개인 사생활 때문인지 밝혀지겠지만, 너무 안타깝다. 자살한 로봇 영재는 공고를 졸업하고 입학사정관제도를 통해 카이스트에 입학했다. 주위의 기대는 컸겠지만,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꽉 짜인 공부 일정을 소화해 내어야 했을 것이다.

 
로봇 교육이란 완벽을 지향하는 교육이 아니다. 로봇을 만드는 것과 로봇 교육은 다르다. 로봇 교육은 로봇처럼 틀에 짜인 시나리오에 따라 이루어지는 교육. 로봇은 단 한 번 만에 완벽하게 만들어 낼 수 없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로봇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공학적 이해와 설계도 필요하지만 창의력이나 디자인 등 여러 요인이 함께 녹아들어져야 한다. 하지만 획일적인 시험이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없는 로봇 교육은 지양되어야 한다.

 
숨쉬기가 버거울 정도로 공부를 해야 하는 대학생활은 어떨까? 물론 카이스트 학교 문화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한 때 방송 연속극에 소개된 내용 수준 정도. 가끔 언론에 보도되는 기사 정도니.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다. 카이스트가 쉽게 아무나 들어 갈 수 있는 대학인가. 물론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 세계적인 로봇전문가나 과학자들은 하루아침에 대가의 반열에 오른 것은 아니다. 치열하게 공부를 하고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다시 공부의 신이 되어야 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서보면 왠지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는 무얼까.

 
카이스트를 탓하거나 겨냥한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 획일적이고 천편일률적인 로봇 만들기 인재 만들기 문화가 만연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짚어 살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 밖에 모르는 꽉 막힌 천재보다는 천재가 아니더라도 실패와 좌절을 통해 넘어졌다가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오뚜기 교육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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