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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2.22 동지팥죽, 사람을 돌보는 한 대접의 미학 '죽이네?"





사람을 돌보는 한 대접의 미학

 

 

인류사에 있어서 최초로 탄생한 음식다운 음식은 바로 죽이다. 서기 5천년 경 신석기 후반에 이르러 농경문화가 정착되면서 곡식을 재배하고 그릇을 만들게 된 사람들은 자신이 거둬들인 농작물에 물을 붓고 끓여 먹기 시작했다. 여기에 사냥으로 얻은 고기와 산나물, 열매 등을 함께 넣어 현재의 죽으로 추정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음식이 생겨났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 문헌에 수록되어 있는 죽만도 40여 종으로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보양음식, 별미음식, 병인음식, 구황음식으로 지속적으로 발달해 왔다.


죽의 역사적 배경을 떠나 사람으로 태어나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음식 역시 죽이다. 어미젓을 갓 뗀 아기가 미음으로부터 시작해 단계별로 먹게 되는 이유식이 모두 죽인데, 아기는 죽으로부터 피와 살을 덧붙이고 튼튼한 뼈를 키워낼 뿐만 아니라 세상사는 별난 맛 또한 차근히 익혀나간다.


죽을 쑤는 방법은 어느 곳이나 대개 비슷하다. 곡물의 6, 7배 정도로 넉넉하게 물을 붓고 훌훌하게 끓여내면 되는데, 한국의 경우 녹두나 팥 등 잡곡을 고아서 거른 물에 쌀을 넣어 쑤거나 고기나 생선, 푸성귀를 다져 넣고 쑤는 경우가 예로부터 흔했다.


죽의 종류는 용도나 재료에 따라 나뉘기도 하지만 묽기에 따라 미음·응이·암죽·죽 등으로 나뉘기도 한다. 미음은 곡물을 충분히 고아낸 후에 체에 받아낸 것으로 죽보다 묽은 것이고, 응이는 곡식의 녹말만을 가라앉혀 쑨 것이며 암죽은 곡식의 가루를 밥물에 타서 끓인 것이다.


이처럼 죽은 그 조리법과 재료가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곡물의 전분이 주원료다. 여기에 단백질 식품인 육류와 어류를, 비타민 무기질 식품인 견과류와 채소류를, 약이성 식품과 향채류를 배합하여 끓이는 것인데 언제 어느 때에 먹느냐에 따라 죽의 성격과 조리법이 또다시 사뭇 달라진다. 

 

한 그릇의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할 때

 

1611년 허균이 바닷가로 귀양가서 거친 음식만 먹게 되자 그 전에 맛본 산해진미를 생각나는 대로 써서 도문대작(屠門大嚼)을 남겼다. 제목은 고기를 먹고 싶으나 먹을 수가 없으므로 ‘도문(도살장의 문)’이나 바라보고 ‘대작(질겅질겅 씹다)’하며 자위한다는 것으로, 가당치 않은 것을 부러워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강릉방풍죽
“나의 외가인 강릉에는 방풍이 많이 산출되는데 2월이면
그 고장 사람들이 새벽 이슬을 타고 방풍의 새싹을 따서 햇빛을 쪼이지 않는다.
잘 데낀 쌀로 죽을 쑤어 반열이 되면 방풍을 넣고 한소끔 더 끓인다.
차가운 사기 그릇에 퍼 담아 따뜻할 때 먹으면
입안에 단맛과 향기가 가득하여 3일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다”
허균 <도문대작(屠門大嚼)> 중

 


조선 영·정조 때에 홍양호가 지은 <북새기략(北塞記略)〉에 따르면 “곡물이 매우 귀하여 귀보리(耳麥)로 죽을 쑤어 먹는다”고 하여 구황식으로 죽을 먹던 풍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보리죽도 못 먹으면 나물을 뜯어다가 죽을 쑤어먹었는데 조선 현종때 서유구가 펴낸 농업백과전서,〈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에서도 무죽, 당근죽, 쇠비름죽, 근대죽, 시금치죽, 냉이죽, 아욱죽과 같은 구황식을 확인할 수 있다. 세월을 뛰어넘어 1950년대 한국전쟁을 거쳐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멀건 국에 쌀이나 보리 한줌만 넣고 쑨 죽으로 온가족이 주린 배를 채웠던 기억 역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아리고도 구수한 추억이다.


반면, 죽이 보양식으로 쑤어지면 그 재료와 조리법이 화려해진다. 흰쌀을 기본으로 인삼, 대추, 복령, 갈근, 잣, 깨, 산약, 황기 등 한약재와 약이성 식품이 곁들여 지는데 이는 음식이 곧 약이 되는 우리 고유의 약식동원(藥食同源) 사상이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특히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직접 그 안정성이 확인되어 아픈 자이거나 건강한 자이거나 가릴 것 없이 원기를 돋우는 음식으로 지금까지도 톡톡히 한몫을 해내고 있다.


잃어버린 입맛을 되살릴 때도 빠짐없이 죽이 등장한다. 별미식으로 등장할 때는 대부분 지방색을 띠기 마련인데 그 지역에서 풍부하게 생산되는 작물이나 수산물을 이용하여 맛과 향, 모양까지 갖추는 경우가 많았다. 강원도는 감자, 옥수수 같은 고랭지 작물과 해안의 해산물로 된 소박한 죽들이 많았고, 충청도는 풍부한 곡류, 채소, 해산물을 이용하는 것 외에도 인삼이 들어가는 보양죽이 특징적이다. 경상도는 풍부한 해산물과 밭작물이 어우러진 담백한 죽이 많고, 전라도는 다양한 해산물을 이용한 화려하고 진한 맛이 특색이다. 제주도는 다채로운 해산물 외에도 새끼돼지의 태반으로 죽을 쑤기도 했고, 황해도·평안도·함경도의 경우 잡곡과 산림지역의 나물을 이용해 구수한 죽을 올려 입맛을 돋우고 풍류를 즐겼다.


현대에 들어서면 지친 도시인들의 속풀이용으로도 크게 환영받는 것이 죽이다. 제 때 편안히 끼니 챙겨먹기도 힘든 현실 속에서 늦도록 격무와 술자리까지 이어졌다면 술술 잘도 넘어가는 죽 한그릇이 생각나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사무실이 밀집해 있는 여의도, 광화문, 종로, 강남 등지의 한다하는 죽집들 앞에서 아침부터 긴 행렬을 보게 되는 것은 하나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배고프고, 아프고, 입맛 없고, 속 쓰리고, 소화가 안될 때 찾게 되는 죽. 단순한 음식을 넘어 몸과 마음의 슬픔과 고통까지 달래주는 따뜻한 보살핌이 되어 요란하지 않게 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예전 짧지 않은 시간 세밀한 준비와 지킴을 통해 죽을 쑤던 이는 주로 가가호호 어머니였지만 지금은 프랜차이즈 가게의 규격화된 죽도 있고, 드넓은 마트의 인스턴트 죽이며, 인터넷 쇼핑몰의 맞춤형 죽까지 쉽고 편하게 고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반면 죽이 산업화되면서 이렇게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죽은 그야말로 흥행에 성공한 몇몇 죽일 뿐이다. 그나마도 출처를 알 수 없는 원재료로 유통을 위한 가공처리를 거치는 등 소위 ‘제조현장’에 들어가 있으니 헛헛한 빈 속은 물론 가슴까지 그득하게 채워주던 그 옛적 죽이 더욱 그리울 뿐이다. 


 


서울 광장시장 한 켠의 ‘광장죽집’은 새벽부터 재래식  죽을 쑤기 시작하여 저녁 늦은 시간까지 시장 상인과 장보러 나온 행인의 속을 채워준다.


 

 

재료와 조리법에 따른 죽의 구분

 

재료  죽  미음  응이  암죽
곡물 흰죽, 콩죽, 팥죽, 녹두죽, 보리죽, 쌀미음,메조미음,   양원죽, 오누이죽, 조죽, 청량죽,     흑임자죽 등
 
차조미음,콩미음 율무응이,수수응이 쌀암죽, 떡암죽
 
곡물+채소 근대죽, 김치죽, 박죽, 버섯죽,부추죽, 아욱죽, 콩나물죽, 죽순죽,호박죽,무죽 등 당근미음,시금치미음  연근응이  

곡물 +생선·육류

양육죽, 가자미죽, 낙지죽, 대구죽,비웃죽, 생굴죽, 섭죽, 옥돔죽,우렁죽, 전복죽, 조기죽, 추어죽 등 삼합미음(해삼,홍합,쇠고기)    
곡물 +견과 개암죽, 건율죽, 잣죽, 행인죽,밤죽, 낙화생죽, 호두죽, 진군죽,상자죽 등 송(속)미음 오미자응이, 갈분응이 발암죽

곡물 + 약이성재료

가시연밥죽, 갈분죽, 녹각죽, 변두죽, 강분죽, 송피죽, 복령죽,  문동죽, 산약죽 등 수삼미음, 오미자미음 인삼응이,
구선왕도고응이
 
곡물 +기타재료 인삼죽, 타락죽, 모과죽, 매화죽, 고구마죽, 자소죽, 죽엽죽, 백시죽,  소마죽 등     식혜암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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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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