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여 동안의 투병생활을 마치고

비록 완전히 낫지는 않았지만 복직을 한 후

내가 바라본 학급 아이들은 이전의 아이들이 아니었다.

 

 

교사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았던 나에게

“선생님” 하며 다가오는 아이들은 감사한 그 자체였다.

과거엔 학교란 곳이 나에게 직장 그 이상이 아니었다면

 투병 생활 이후의 학교는 나에게 소중함 그 자체였다.

 

 

 

 

 

 열심히 교재 연구를 해서 수업 시간에 지루함을 없애주고 싶었으며,

30명 아이들 하나하나와 상담을 하며

일상의 이야기를 나눠 아이들의 고민을 함께 해 주었다.

 

 

또한 월별 생일파티, 교실올림픽, Mission 보물찾기, 풍선 운동회, 요리 콘테스트 등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많이 선사해 주고 싶어 다양한 활동을 기획하였으며

그 모든 활동들을 우리 반만의 학급문집을 발간하여 간직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2010년

2010년 3월 2일은 나의 소중한 제자 1호와의 만남이 있던 날이다.

사실 2월 말 미리 반 아이들 명단을 받아

어떤 아이들을 만나게 될지 대강은 파악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2월 말 난 깊은 시름에 젖었었다.

 

 우리 반에 A라는 유명한 명물이 있던 것이었다.

4학년밖에 안 된 녀석이 교장선생님께 의자를 집어 던지고

교장선생님 뺨까지 때려 코피를 흘리시게 만들었다는

 최고의 명물. 정말 감당하기 두려운 상대였다.

 

우리 반 명단에 A라는 아이가 있다는 걸 안 순간부터

며칠간은 너무 속상해서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기선제압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인상을 쓰고 3월 2일 교탁에 섰다.

 

이름 하나하나 호명을 하며 일어나서 자신을 소개하게 했다.

역시나 A는 만만치 않았다.

일어나지도 않은 것은 물론 내가 화를 내며 나오라고 하니 나오지도 않았다.

1달여간을 매일 상담을 하며 A를 이해하고 내 마음을 전달하고자 노력하였다.

 

A는 매일 학교에서나 집에서 맞고만 자라서 나에게 맞을까봐

많이 두려워서 일부러 내 말을 거부하며 강하게 나왔다고 했다.

선생님은 A를 사랑하며 절대 너를 때리지 않는다고 안아주며

안심시켰더니 점차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A는 자신이 주인공이 되었던 3월 생일파티 시간에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는

친구들의 축가를 듣고는 하염없이 울었다.

 

새삼 학급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을 했었나 보다.

그런 A를 바라보는 내 눈시울도 참 뜨거웠던 기억이 있다.

 

친구들이 마음에 안 들면 욱해서 발길질부터 하던 다혈질 싸움꾼 B,

절대 지는 건 못 참고 뭐든지 자기가 이겨야만 하는 C등

우리반 대부분의 아이들은 꾸준한 관심과 사랑을 통해 문제행동이 많이 좋아졌으며

무슨 일이 있으면 선생님부터 챙기는 나의 열성적인 팬이 되었다.

 

 

 


 

2011년

2011년 나의 제자 2호가 탄생했다.

5학년 5반은 다시 생각해도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재치면 재치 모든 게 완벽했던 반이었다.

 

그 완벽한 반에서 3월 한 달 내내 지켜본 결과

 D는 유일하게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녀석이었다.

 선생님이 무슨 말만 하면 늘 태클을 걸었다.

 

“과연 그럴까요?”, “과연 그걸 할 필요가 있을까요?”

늘 내가 말하는 것에 반대를 외쳐댔다.

내 인내가 한계에 달했던 2011년 4월 1일 D와 상담을 했다.

1달 동안 D의 말과 행동들을 인해 선생님이 많은 상처를 받았다고

솔직하게 내 심경을 전하며 상담을 시작했다.

 

D는 선생님이 자기 때문에 상처 받았다는 것에 깜짝 놀라했다.

남에게 시비 거는 말투의 자신의 문제를 어느 정도 알고는 있으나

잘 고쳐지지 않는다며 펑펑 울었다.

 뜻밖의 모습이었다.

 

평소 늘 강인하게만 보였던 D가 하염없이 울며

자신의 문제점에 대해 직시하는 모습은 여간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D가 문제점을 고칠 수 있게 선생님이 도와주겠다고 말하며

안아주자 D는 자신감을 찾았다.

 

지금 D는 여전히 축구를 좋아해서 깁스를 많이 하는

활동적인 아이이긴 하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여

주변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온갖 영재원 합격은 물론 국제중학교에 들어간 E를 비롯하여

 까칠하지만 감수성 풍부한 글을 쏟아내는 F 등

5학년 5반은 중학교에 올라간 뒤에도 “선생님, 조으다” 라는

플랭카드를 제작하여 함박웃음을 짓게 만드는 나의 제자 2호들이다.

정말 미래가 기대되는 자랑스런 나의 제자들이다.

 

 


 

2012년

2012년 나의 제자 3호는 정말 처음엔 정이 안 가는 아이들이었다.

3학년 때부터 담임선생님께 “머리가 붕언가 봐.”, “교통 사고나 나라.” 를

 스스럼없이 이야기했던 G는 5학년 올라와서도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어느 날 출근해서 교실에 들어오는 나에게

 “선생님 왜 웃으면서 인사 안 해요?” 라고 따지듯이 물었다.

자신에게 웃으면서 인사 안 했다고 기분 나쁘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황당했던지…….

그렇게 G는 늘 즉흥적으로 자기 기분 상태를 전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아, 대머리다.”, “너무 못생겼어.”

머리에 필터 기능이 없는 것 같았다.

1년여 시간동안 G를 비롯해 G의엄마와 꾸준히 상담하여

G의 언행이 보다 신중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

 

그 결과 G는 무언가를 이야기할 때 보다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으며

자신의 문제 행동을 교정할 수 있도록 도와준 선생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지금 6학년인 G는 교정에서 볼 때마다 달려와서 품에 안기고 있다.

 

생각하면 가슴 한 편을 짠하는 만드는 H라는 제자도 있다.

4학년 말에 공장 프레스에 H 아빠가 깔리셔서 며칠간 의식 불명이셨다고 한다.

며칠 후에 깨어나셨지만 5학년 때를 비롯해 지금까지 투병중이시다.

요즘에 교과서로만 공부하는 아이가 있겠나 싶지만

H는 정말 교과서로만 공부하고도 늘 올백을 맞는 아이였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사교육을 받을 형편이 안 되어

교과서를 읽고 또 읽는다고 하였다.

거의 매일 똑같은 옷을 입는 게 안쓰러워 상담 중에

조심스럽게 어떻게 생활하는지 물어보았다.

 

모아둔 돈으로 아끼며 조금씩 쓰고 있다고 말한 H가

 안쓰러워 옷을 선물해 주었더니 수줍게 받아주어 참으로 고마웠었다.

무엇보다 H가 마음에 들었던 건 그 어려운 형편 중에서도

다른 사람을 돕는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4월에 아프리카 어린이를 돕는 “희망편지쓰기” 교내 행사가 있었는데

편지 사이에 성금을 넣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선생님이 검사하지 않을 줄 알고

 성금을 넣지 않거나 약간의 돈만 넣었는데 H는 정성껏 쓴 편지 사이에

용돈 만오천원이나 넣어 두었던 것이다.

학급에서 최고로 많은 액수였다.

H는 6학년이 된 지금도 수줍게 미소 지으며

 경찰대학교를 목표로 멋지게 생활하고 있다.

 


.    .    .

 

지난 3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은 감사함 그 자체였다.

사랑스런 제자들과 3년 동안 울고 웃으며

참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지금도 제자들의 미소를 떠올리면

피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절도 힘이 불끈불끈 솟는다.

제자들의 미소는 나에게 최고의 비타민인 것이다.

 

지금까지 배출한 제자 1호, 2호, 3호는 물론

앞으로 배출될 제자들과 사회에 행복에너지를 전파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 본다.

 

 

 


||| 2013 선생님,학생,부모님 자랑 글쓰기 대회

      학생부문 작품 최우수상 (사천초등학교 교사 남지현) 글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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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나는 울고 말았다. 어릴 때 별명이 울보였던 게 너무 싫어서 이를 악물고 참아 보지만, 요즘엔 아이들 몰래 자꾸 울게 된다. 올해로 7년째 진행하고 있는 시 발표 수업이 화근(?)이다. 시와 함께 펼쳐지는 아이들의 진솔한 이야기는 친구들을 울리고 나를 울린다. 초등학교 시절 왕따를 당해 죽고 싶었다는 이야기, 어릴 때 엄마가 돌아가셔서 학부모 총회 가정통신문이 제일 싫다는 이야기, 새아빠와 살고 있는데 아무리 잘해주셔도 솔직히 힘들다는 이야기, 중학교 때 너무 힘들어서 가출했던 이야기……. 나는 아이들이 골라온 시를 음악과 함께 듣는 이 시간이 참 좋다. 살짝 긴장한 아이들의 목소리를 따라 시를 읽다 보면 뒤숭숭한 내 마음이 가라앉는 것 같다. 그런데 그날은, 예전엔 무심히 지나치던 소박한 시 한 편이 ‘쿵!’ 내 마음을 찢어 놓았다.


그날의 발표자 예슬이가 낭랑한 목소리로 시를 읽었다. 그리고 정말 맑은 얼굴로, 어릴 적 엄마가 하던 말과 요즘 엄마가 하는 말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이야기했다. 아이들 모두 웃고 손뼉치며 공감했다. 아이들은 즐겁게 웃고 있는데, 나만 혼자 눈물이 났다. 아, 정말 이상한 세상이다. 이상한 세상이 착한 아이들을 아프게 한다.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이 버거워 약 먹는 아이, 토하는 아이, 손목을 긋는 아이, 설사가 멈추지 않는 아이, 분노를 통제할 수 없는 아이, 타인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 모두 내 주변에 있다.

 
친구들의 전폭적 지지로 봉사 동아리 회장에 선출된 수연이는 항상 80점 이상의 성적을 유지해왔다. 훤칠한 키에 성격도 활달하고, 중학교 졸업 후 1년간 미국 어학 연수를 다녀올 만큼 가정 형편도 넉넉하여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런데 이 녀석이 약을 먹었다. 공부하러 갔던 독서실에서 감기약 한 통을 다 먹었다. 그러고는 속이 너무 안 좋아서 다 토해내고 집에 돌아오다가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다행히 몸이 상하진 않았으나, 마음이 낫지 않아 여러 날 결석을 했다. 집 근처로 찾아가 간신히 만난 수연이는 시커매진 얼굴로 눈을 맞추지 못했다. 학교도 친구도 선생님도 다 싫고 엄마 아빠도 싫고 어중간한 성적에 얼굴 큰 자신도 너무 싫다는 것이다. 성적과 외모로 시달리지 않는 외국에 가서 살거나, 무인도처럼 아무도 없는 곳에 가고 싶단다. 그것도 안 되면 자퇴 후 골방에서 수능 공부만 미친 듯이 하여 일단 명문대에 합격하고, 얼굴 작아지는 성형을 하는 게 아이의 소망이다.


명랑하고 붙임성 있어서 아프다는 걸 짐작하기 어려운 현정이의 거식증은 지난 겨울부터 시작되었다. 공부에 취미도 적성도 없다고 느끼는 현정이에게 가장 즐거운 일은 연기이다. 작년엔 아주 짧은 단편독립영화에서 주요 역할로 영화도 찍었고, 연기학원에 가는 게 제일 재미있다고 한다. 연기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무대체질인 녀석이라 연기를 잘 할 것 같다. 문제는 연기학원에 본격적으로 다니면서 아이가 직면한 현실이었다. 흡사 바비 인형처럼 마른 연기지망생들, 예쁘고 날씬하지 않으면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주연이 될 수 없다는 조언들. 마른 편이었지만 자신이 뚱뚱하다고 느낀 현정이는 그때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했고, 원하는 만큼 말라깽이가 되지 않자 음식을 먹고 토하게 되었다. 자퇴를 하고 외모 관리와 연기 공부에 집중해야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학교가 지겹고 귀찮다. 배는 고픈데 먹으면 토하니 수업시간에 앉아있기도 힘들다.


미애는 학년 초부터 출결이 들쭉날쭉한 녀석이다. 수시로 병원 처방전을 받아왔지만 마음의 병이 80%인 것 같다. 어머니는 어릴 때 집을 나가셔서 얼굴도 모르고, 아이만 보면 화를 내시는 아버지는 따로 살면서 생활비만 보내주신다. 큰아버지, 할머니, 사촌들과 함께 사는데 사이가 좋지 않다. 그나마 대화를 하던 큰어머니는 작년에 이혼한 뒤 나가 사신다. 중학교 친구들과도 뿔뿔이 헤어져 학교에도 마음 터놓을 친구가 없다. 학원 대신 고모에게 과외를 받고 있지만 “넌 이것도 못하니?” 라며 비난하기 일쑤여서 공부할 의욕도 사라졌다. 아무 데도 마음 붙일 곳이 없고 가족에게도 자신이 없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되자 지난 겨울부터 손목을 긋기 시작했다. 소화가 되지 않아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밥을 먹지 않고, 수업을 듣기가 힘겨워 조퇴를 하거나 보건실에 누워 자려고만 한다. 학교도 집도 싫은 미애는 유학을 가고 싶어 한다. 유학 갈 돈도, 유학 가서 딱히 공부하고 싶은 것도 없다. 다만 자신의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유학을 갈 수 없다면 감기약을 먹고 계속 자거나, 영원히 잠들 수 있게 손목을 긋는 것이 괴로운 현실을 떠나는 방법인 게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고통과 절망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져서 내 마음에 커다란 납덩이가 매달리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이들의 고통을 없애줄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공감과 위로, 지지와 격려가 고작이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현재 아이가 얼마나 힘든지 공감해주는 일, 자신이 지금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계속 이야기해주는 일. 그 단계를 넘어 아이들이 더 많이 아프거나 자해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부모들은 정신과 치료에 대한 선입견이 강해서 웬만해서는 병원에 가지 않으려 한다. 그러다 큰맘 먹고 찾아간 병원에서 가족 치료나 약물 치료를 권하면 더욱 펄쩍 뛴다. 애가 아픈 게 왜 내 탓이냐, 섣불리 약을 먹게 했다가 공부에 지장이 생기는 건 아니냐는 것이다. 아이가 자해를 하는 상황에서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부모의 모습에 속이 상한다. 아무리 성적과 대학이 중요하다 해도, 아이들이 계속 아프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은가.


다행히 수연이와 현정이는 운이 좋았다. 그 애들에겐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있었고, 부모들은 대학이나 성공보다 아이의 건강과 행복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또한 아이에게 꾸준한 치료를 받게 할 만한 경제적 여유가 있었고, 그 결과 아이들은 비교적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다.


그러나 운 좋은 아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애는 심한 우울증에 거식증까지 나타나는 중이었고, 자해 정도도 심각했다. 하지만 미애에게는 병원에 데려갈 어른도, 집에서 돌봐줄  사람도 없었다. 엄마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처가 깊어 애정 결핍 증세가 있었지만 미애에게 돌아오는 것은 질책이나 비난이었다. 할머니는 애가 유별나다며 못마땅해 하시고, 아버지는 “나 참! 내가 저더러 돈을 벌어오라고 했나, 일을 하라고 했나. 책상에 편히 앉아서 공부만 하면 되는데 그거 하나 못합니까? 나약해 빠져가지고….” 하며 병원 가기를 꺼렸다. 처음엔 황당했으나 가정 형편을 생각하니 이해가 되기도 했다. 매주 반나절씩 생업을 중단하는 것도, 진료 때마다 2만 원이 넘는 비용을 무기한 감당하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내가 병원에 데려갔지만, 일주일에 사흘만 진료하는 청소년 담당의는 가족 치료가 절실한 상황에 부모가 병원에 오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약 관리도 해야 하고 진료비 문제도 있는데 왜 학교와 연계된 전문상담센터나 의료기관에 가지 않고 사설 병원에 데리고 오는지도 의아해했다. 연계 기관은커녕, 상담 전담 교사조차 한 명도 없는 것이 학교 현실이다. 그런 게 아예 없다고 말하자 왜 그러냐고 되묻는다. 나도 궁금하다. 도대체 이 세상이 아이들에게 해준 것이 무엇인가. 오히려 병들게 하고 있지 않나.


학벌에 광분하니 성적 때문에 병들고, 외모를 우선시하니 열등감과 다이어트로 병든다. 물신이 지배하니 돈이 없으면 가족도 모여 살 수 없고, 남겨진 아이는 정서 불안과 애정 결핍으로 병든다. 짜증난다며 남의 교과서를 순간접착제로 붙여버리는 아이, 분노 조절 장애로 수업 시간에 책상을 뒤엎는 아이, 시험 한 달 전부터 스트레스로 등교를 거부하는 아이도 생긴다.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표출하고 있지만, 실은 모두 마음에 병이 난 것이다. 병든 아이들에게 ‘너만 힘든 것 아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말하는 것은 잔인하고 잘못된 처방이다. 병은 낫도록 도와주어야지, 견딘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아이의 마음씨가 얼마나 고운가에 관심이 없는 세상은 이상한 세상이다. 사람의 출신 대학과 외모, 재산 여부에만 관심이 많은 세상은 병든 세상이다. 병들고 아파도 돈 있는 사람만 치료받는 세상은 미친 세상이다. 미숙한 부모는 아이를 통해 대리만족을 얻으려 하고, 어리석은 교사와 학교는 1등 아이의 성적으로 자기 능력을 과시하려 하며, 나쁜 정권은 이들을 부채질하여 병들고 미친 세상을 고착화하려 한다. 누구를 위해 이렇게 살아야 하나. 모든 아이들이 세상의 기준에 맞게 ‘성공’할 수는 없다. 모두가 다 알면서, 대부분 외면하는 진실이다. 성적과 외모로 삶의 질이 달라지지 않고, 저마다 생긴 대로 살아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현주 목사님의 말씀을 따온 우리 반 급훈을, 아이들에게 다시 한 번 말해주고 싶다.


“있는 그대로 참 아름다운 너!”

이상한 세상

내가 아주 어릴 적
엄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쁘게 자라 착한 사람이 돼라”고.
착한 게 뭔지 잘 몰랐지만
그냥 그 말이 좋았습니다.
그러다 성적표라는 것을
받아오기 시작하면서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돼라”고.
그냥 공부라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훌륭한 사람 말고
착한 사람이 되겠다고 했더니
“바보 돼서 뭐하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릴 적은 착해지라더니
엄마가 바본지 내가 바본지.
그냥 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국어시간에 시읽기2》 153쪽에 실린 학생의 시.

 

↘글을 쓴 꿈꾸는 바람 님은 고등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공부하며 함께 울고 웃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아픈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면서 무척 괴로웠지만, 이런 일들이 영화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매우 많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답니다. 아이들을 위해 소속 학교와 실명을 밝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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