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ce'에 해당되는 글 501건

  1. 2013.01.28 가족회의 하고계세요?
  2. 2013.01.25 터미널 풍경
  3. 2013.01.23 새해 첫 날마다 쓰는 유서
  4. 2013.01.21 여행자의 집
  5. 2013.01.17 당신은 생각 하는가?
  6. 2013.01.16 뭉뚝한 칼의 지혜
  7. 2013.01.15 학교의 눈물
  8. 2013.01.14 지우야, 사랑해
  9. 2013.01.10 72:1 법칙
  10. 2013.01.08 혼자만의 하루

 

 

 

바쁜 일상에 치어 사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 지친 마음의 치유를 위한

힐링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힐링의 방법은 다양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가장 필요한 힐링은 바로

'대화'가 아닐까?

 

요즘 부부간의 대화,

혹은 부모자녀와의 대화가 단절되었거나

지극히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부모는 일하느라 바쁘고

아이들은 부모 귀가 시간에 맞춰 학원 다니느라 바쁘고

늦은 귀가에 피곤한 탓에 스트레스를 풀어야한다는 핑계로

오로지 TV나 스마트폰 게임에 몰두하고

가족간 대화는 없으면서 스마트폰(카톡이나 게임),

혹은 온라인 소통을 위해 모니터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정에서는 기껏 문제가 생겼을 때나

급한 용무가 있을 때만 부랴부랴

대화를 서두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럴때 일부러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

그것이 바로 가족회의. 

가족회의에도 노하우가 있다.

 

회의를 한답시고,

부모가 아이에게 일방적인 강요나 설득을 하려한다면

아이는 가족회의를 싫어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가족회의의 본취지를 잃게 되며

급기야는 회의 자체가 무산되기 일쑤이다.

 

본격적인 가족회의에 앞서 가족의 좋은 모습이나

좋아지고 있는 부분에 대해 서로 칭찬하거나

감사하는 시간을 가지면 가족의 사기도 높아지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다.

 

가족회의 때 토의할 수 있는 안건은

가족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무엇이든 상관없다.

청소 구역 등 집안일 분담에 관한 것이나

서로 불편한 점, 고쳤으며 하는 점을 규칙으로 정할 수도 있고,

용돈 문제나 가정 경제 혹은 집안에 있게 될 생일, 명절, 시험 등의

행사 때 서로 도와줄 내용을 의논하거나 머리를 맞대고 식단표를 짤 수도 있다.

 

 

논의할 안건을 식구들의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 놓아

회의 전에 미리 생각하게 하면 더욱 원활한 회의가 된다.

결정된 안건 또한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게시하여

잊어버리지 않도록 한다.

 

 

가족회의가 심판의 장이 되어버린다면

오히려 가족 간의 갈등만 커질 수 있으므로

식구의 잘못한 행동에 대한 지적이나 비난은 삼간다.

한 아이에게만 해당되는 훈육 문제는 아이와 사적으로 다루도록 한다.

 

 

가족회의라고 회의만 하라는 법은 없다.

가족에게 미안했던 일, 책에서 읽은 좋은 문구,

친구에게 들은 유머, 생활 속에서 겪은 일,

삶의 지혜와 교훈이 담긴 이야기,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시사적인 주제 등

가족끼리 할 수 있는 이야기거리는 다양하다.

가끔은 특별한 시간을 마련해 보는 것도 의미 있다.

 

 

시 낭송, 사진 보며 옛 추억 떠올리기,

가족끼리 할 수 있는 놀이 하기,

서로에게 쓴 편지 읽어주기,

작지만 사연이 담긴 선물 교환하기 등으로

감성적 공감대를 형성하면 가족애도 더욱 끈끈해 질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웃음 넘치는 가정만들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른가슴에 물주기  (0) 2013.02.12
내 인생, 5년  (0) 2013.01.31
가족회의 하고계세요?  (0) 2013.01.28
72:1 법칙  (0) 2013.01.10
만화 '카림에게'  (0) 2012.12.28
삶이 있는 저녁을 위한 비밀  (0) 2012.12.12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눈이라도 올 것 같은 잔뜩 흐린 날씨,

구미협의회에서 강의를 끝내고

터미널에 도착하여 동서울 행 차표를 끊었다.

 

 

출발 시간까지는 아직 40분의 여유가 있어

커피 한잔을 사들고 의자에 앉아서

버스를 기다렸다.

 

 

 

대합실 안에는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히터 주변에서 몸을 녹이고 있는 이들도 있긴 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빛바랜 주황색 의자에 앉아서

잔뜩 웅크린 채 TV만 보고 있었다.

 

 

겨울날 터미널 근처는 바람이 더 맵고 을씨년스럽다.

예전 같으면 난로라도 있어서 훈기를 더했을 텐데

넓은 대합실에 난방 기구라고는 작은 히터 한 대뿐,

냉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버스터미널에 가면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이 있다.

특히 계절이 바뀌면 계절병이 도져 서울의 바짝 마른

회색 빌딩 숲을 떠나고픈 욕구를 주체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떠날 때가 많은데

장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곳이 지방의 작은 도시여도 좋고 시골이어도 좋다.

한적한 어촌이면 더욱 좋다. 다만 혼자여야 한다.

남들은 청승맞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가끔씩은 일상의 치열함에서 한 걸음 물러나 생각을 정리하고 오면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요즘 힐링이 대세라는데 바로 이런 것 아닐까?

그러려면 외롭더라도 나 홀로 여행이 제격인데

처음이 어렵지 몇 번 시도하다 보면

혼자만의 여행에서 얻는 매력이 의외로 많다.

 

 

한편 터미널에 가면 꼭 누군가가 나를 찾아서

먼 길을 달려와 방금 도착한 버스에서 내려

나에게 달려올 것만 같은 생각도 든다.

 

 

하여 누가 온다는 약속도 없는데

괜스레 인파에 휩쓸리는 숱한 사람들을 유심히 살피게 된다.

어쩌면 이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원초적인 본능이 아닐까.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되는 그 곳,

거기에는 행복한 여행도 있고

오랜만에 마주한 친지과의 설레는 상봉도 있겠지만

때로는 멀리 떠나는 가족을 배웅하고

뿌옇게 흐려진 눈으로 터미널을 빠져 나가는 사람도 있으리라.

 

 

마침 내 앞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 한 쌍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각자 커다란 가방 하나씩을 갖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지금 떠났다가 바로 되돌아 올 모양새는 아니었다.

 

 

가방의 크기로 봐서는 이박삼일이나 삼박사일은 족히 될 것 같았다.

아님 해외여행?

뭐가 그리 좋은지 여자는 남자의 어깨에 기대어

연신 웃음보를 터트리고

남자는 여자의 긴 머리카락을 계속 쓰다듬고 있었다.

 

 

찰랑찰랑하니 여자의 머릿결이 참 고와 보였다.

같이 있고 싶은 마음, 함께 멀리 둘만의 여행을 떠나고 싶고

그리하여 함께 머물고 싶은 그런 간절함으로 손을 꼭 잡은 젊은 연인들.

 

 

겨울날의 오후, 칙칙한 터미널 분위기 속에서

청춘의 반란은 두드러져 보였다.

나에게도 저렇게 푸르른 시절이 있었나,

아무 근심 없이 해맑게 한껏 웃었을 때가...

 

 

미소를 머금고 젊은이들 사랑의 구경꾼 노릇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할머니 한 분이 나타나 껌을 팔아달란다.

70대 중반쯤 되었을까,

남루한 옷차림에다 깊은 주름살이 패어있는 할머니의 얼굴은

마른 검불처럼 기운이 하나도 없어보였다.

 

 

노란색의 쥬시후레쉬껌 한 통에 천 원이란다.

보아하니 개시도 못한 듯했다.

버스표 끊고 남은 잔돈 이천 원으로 껌 두 통을 샀다.

너무도 고마워하는 할머니,

그런 할머니를 보니 일전에 읽었던

오탁번 시인의 <해피 버스데이>라는 우스운 시가 떠올랐다.

 

 

해피 버스데이

 

시골 버스 정류장에서

할머니와 서양아저씨가

읍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제멋대로인 버스가

한참 후에 왔다

-왔데이!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 말을 영어인 줄 알고

눈이 파란 아저씨가

오늘은 월요일이라고 대꾸했다

- 먼데이?

 

버스를 보고 뭐냐고 묻는 줄 알고

할머니가 친절하게 말했다

- 버스데이!

 

오늘이 할머니 생일이라고 생각한

서양아저씨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해피 버스데이 투유!

 

 

실제 상황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훈훈해졌다.

다소 지루했을 40여 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드디어 탑승! 손님은 나까지 포함해서 고작 여섯 명.

서울 가는 기름 값도 안 될 적은 인원이었다.

승객이 적어서일까 기사는 얼어죽지 않을 만큼만 히터를 틀어주었다.

나는 외투를 단단히 여민 다음 팔장을 끼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위는 그런대로 견딜만했으나 발이 몹시 시려워 잠이 오질 않았다.

털장갑을 벗어서 발에다 꼈다.

구미에서 서울로 오는 세 시간 동안 나는 계속 그 자세로 있었다.

겨울이 점점 깊어가는구나...

버스가 구미 IC를 빠져 나오자

홍시 같은 노을이 천천히 서산마루를 넘어가고 있었다.

 

 

다시 서울이다.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니 다시 일상이고 아파트 숲이다.

머릿속은 빠른 속도로 분주해지고

이제부터 해야 할 일들의 목록도 길게 이어졌다.

하지만 몹시 배가 고파서 당장은 밥 생각뿐이었다.

마중 나온 남편은 뭐라도 먹고 가자고 했지만 나는 그냥 가겠다고 했다.

어딘가 또 들러서 자리를 잡는다는 게 귀찮고 번거로웠다.

시간도 많이 늦었다.

“엄마, 아빠 어서들 오시와요!”

 

집에 도착하니 뜻밖에도 딸이 밥상을 차려놓았다.

메뉴는 뚝배기 불고기 일명 뚝불!

거기에다 막 썰은 포기김치와 구운 김이 전부였다.

아까 남편이 밥 먹고 들어가자고 했을 때

나는 식당 밥이 아닌 가정식 밥이 먹고 싶었다.

아침은 씨리얼, 점심은 수강자들과 스파게티를 먹었으니

쌀밥에 고기반찬이 반가울 수밖에.

 

 

<춘향전>에서 한양에 과거시험 보러 갔다가

상거지 차림으로 돌아온 이몽룡이 월매가 차려준 밥상 앞에서

 “밥아, 너 본지 오래다.” 하며 아귀아귀 먹던 그 장면,

내가 꼭 그 꼴이었다.

 

 

밥 한 공기에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먹고 나니

지친 몸과 마음에 다시 에너지가 차오르고 생기가 돌았다.

날마다 먹는 밥이지만 확실히 밥처럼 신축성이 강한 음식은 없는 것 같다.

 

 

사실 이날은 우리의 결혼기념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낮에 남편한테서 온

문자메시지가 생각났다.

‘결혼기념일 축하해요.

우리 앞으로 더 사랑하고 행복하게 삽시다!’

생전 문자메시지라곤 ‘그래’ ‘알았어’ 같은

단답형이 고작이었는데

글쟁이 마누라를 두시더니

어느 새 이런 수준급(?) 모국어까지 구사할 수 있다니,

역시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함수연| 만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우동’의 산실, 능소원  (0) 2013.03.11
겨울 바다  (0) 2013.02.18
터미널 풍경  (0) 2013.01.25
지우야, 사랑해  (0) 2013.01.14
혼자만의 하루  (0) 2013.01.08
엔딩노트  (0) 2012.12.21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해가 바뀔 때마다

우리는 마음을 다잡습니다.

그게 한 해의 어느 다른 날과

 무에 그리 다를 까닭이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새로운 해를 열면서

아무런 바람도 다짐도 없이 지나는 것은

 좀 허허로운 일이지요.

 

 

 

저는 늘 새해 첫날 첫 새벽에 유서를 써왔습니다.

조금 섬뜩하고 엽기적이라 여기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십년 넘게 그렇게 해왔습니다.

 

 혹여 갑자기 저의 삶이 마감되면 어찌 해야 할지,

 저의 죽음에 대한 바람은 어떤지를

적어두어야 아이들이 당황하지 않겠다 싶어서

시작했던 일입니다.

 

 그러나 진짜 속내는 그런 순간이 결국 찾아왔을 때

최소한 부끄럽지 않게 받아들이기 위한

 저 나름의 약속입니다.

 

올해도 첫날, 유서를 썼습니다.

그 전날, 그러니까 한 해의 마지막 날 작년 첫날에 썼던

유서를 차분히 읽었습니다.

받을 일보다 갚아야 일과 빚이 더 많으니

여전히 부끄러운 삶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고,

조금이라도 좋은 일 하려고 애쓰며 살았던 것 같아

스스로에게 애썼다며 위무도 했습니다.

 

작년 마지막 날, 눈이 가득 내린 서오릉을 걸으면서

허물은 반성하고 애쓴 보람의 일에는 감사했습니다.

물론 이 한 해가 마감되는 날,

다시 그 순례를 하고 싶은 건 여전합니다.

 

누구에게나 시작은 설렘과 긴장이 함께 찾아옵니다.

금연이니 금주니 하는 다짐은 고작 사흘도 넘긴 적이 없어서

이젠 아예 그런 다짐은 내밀지도 않을 만큼 노회해진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다짐과 바람을 세워봅니다.

 

비록 그 다짐이 금세 무너진다고 해도

그러한 다짐을 세운 것은 이미 살아오면서

스스로 느낀 바 있고 값을 속으로 매겼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니 설령 그 다짐을 끝까지 실천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런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대견하다 여길 수 있는 아량도 필요하겠다 싶습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 다짐도 자꾸만 소박해져갑니다.

건강을 유지하고 싶고, 자리에서 떨려나지 않기를 바라고,

자식들 다치지 않고 제 길 잘 나아가 주기만 빌 뿐입니다.

그러나 이미 건강은 작년과 다르고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는 후배 무서워서가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살림살이가 갈수록 으스스해지니

아무리 버티려 해도 재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는 자식들 다치지 않고 커주는 것만으로도

대견하고 행복했습니다.

나무처럼 자라나는 그 녀석들의 성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먹지 않고도 배가 불렀습니다.

 

하지만 자꾸만 더 차가워지는 세상은

녀석들이 제 앞가림조차 하기 어렵게 돌아갑니다.

아비들이 누렸던 젊은 시절의 낭만과 호기는

이미 구석기 시대의 신화처럼 화석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혼과 출산은커녕 마음 놓고 낭만적인 연애조차도 사치고

공포인 이 젊은이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못난 선배인 우리가 세상 잘못 살아서 그런 거지요.

그렇다고 어찌 우리가 허튼 삶을 살기나 했습니까?

 

그야말로 전투적으로 살았지요.

우리의 부모 세대보다는 안락한 삶을 누렸지만

우리도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훌쩍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우리의 아이들이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상태로 엎어져있습니다.

눈물조차 흘릴 여유마저 없이 말입니다.

 

새해의 문을 열면서 저의 가장 큰 바람은

젊은이들이 숨이나마 제대로 쉴 수 있게 해주고 싶은 것입니다.

저라고 무슨 용빼는 재주 있겠으며,

나라가 못하는 걸 무슨 힘으로 그리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어설프게 달래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적어도 그들로 하여금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을

억울하게 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올 한해는 인문학자로서 그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세대의 각성을 인문학을 통해

일깨워서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젊은이들과 우리의 미래에 대해

성숙한 관심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려 합니다.

 

그건 최소한의 도리이자 의무이고 사명이겠습니다.

정말 우리의 아이들이 자존감과 주체성을 가지고

무릎을 곧추 세우고 일어설 수 있어야

우리가 행복하게 자리를 비워줄 수 있겠지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라는 유명한 사진작가의 말이 떠오릅니다.

“사진을 찍을 때 한 쪽 눈을 감는 이유는 마음의 눈을 뜨기 위해서이다.”

이제 우리가 한 쪽 눈을 감아야겠습니다.

그게 인문 정신입니다.

 

올 한 해는 그 바람을 실천할 수 있는 글을 쓰고

가르칠 수 있는 일에 몰두하고 싶습니다.

정말 하고 싶고 쓰고 싶은 일은 따로 있지만

 명색이 인문학자로서 해야 할 일을 미루거나 외면할 수는 없겠다 싶습니다.

 

그 일이 바람대로 이루어질지는 저도 모릅니다.

세상일이라는 게 어디 제 맘먹은 대로 이뤄지는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늘 그런 바람 지니고 살다보면 조금은 그 뜻에 가깝게 다가설 수 있겠지요.

 

금연이니 금주니 하는 다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자신도 없거니와

그것을 지키는 것이 생각보다 맵고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한 해를 마감할 때 새해 첫날 써둔 유서를 다시 읽어보면서

그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대견해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사회적 몫을 묵묵히 해야겠습니다.

 

속고 또 속은, 절망 속에서

다시 선택한 비극을 탓하기보다는

다시는 그런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밝은 눈을 지닐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여깁니다.

 

살다보면 꺾이는 일도 있을 것이고

생각지도 못했던 구렁에 빠지는 경우도 있겠지요.

그래도 그걸 이겨내고 버텨낼 수 있는 힘은

 단단한 다짐에서 오는 것이라 여깁니다.

 

그래서 우리가 새해 첫날 나름대로 그런 다짐을 하는 것이겠지요.

똑같은 하루의 몫일 뿐이지만 그래도 따사로운 것은 바로

그런 다짐을 세울 수 있는 각별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첫 문을 열었습니다.

다시 길을 나서야 할 시간입니다.

그러나 그 길이 외롭지 않은 것은 첫날 다짐해둔

 바람의 견고한 힘 덕분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짐작해봅니다.

 

올 한 해도 여러분들의 바람과 다짐이

모두 이루어지고 그 행복을 두루 누리시길 빕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김경집| 완보완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금은 행복을 복습하는 시간  (0) 2013.05.22
봄맞이  (0) 2013.03.22
새해 첫 날마다 쓰는 유서  (0) 2013.01.23
뭉뚝한 칼의 지혜  (0) 2013.01.16
왜 성찰이 요구되는가?  (0) 2012.11.30
엄마, 학교 가고 싶어요!  (0) 2012.11.01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너는 여행자의 집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낯선 이들이 드나 드는 여행자의 집.

 

즐거움, 우울함, 비열함.

순간의 깨달음이 기다리지 않는

사람처럼 찾아온다.

 

그들이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아끼는 가구를 모두 없애는

슬픔의 무리일지라도

정성을 다해 환대하라.

 

새로운 기쁨을 가져다 주기 위해

집안을 깨끗이 바꾸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두운 생각, 날카로운 적의,

 비겁한 속임수가 오더라도

문밖까지 나가 웃으며 맞이하라.

 

귀한 손님처럼 안으로 모셔라.

누가 찾아오든 고개 숙여 감사하라.

 

문을 두드리는 낯선 사람은

너의 앞길을 밝혀 주기 위해 찾아온

미래에서 온 안내자이다

 

- 갈랄 앗딥 루에

 

 

우리 인생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여행...

우리는 시간이 흐른다고 표현 하지만

시간은 우리가 만들어낸 개념.

사실 흐르고, 바뀌는건 '나'이다.

 

오늘도 나에게 들른

여행자에게 나는

어떻게 대할 것인가?

 

문득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나와 내 주변인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삶의 지혜와 감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들  (0) 2013.02.05
나는 너에게 희망의 씨앗이 되고 싶다  (0) 2013.02.04
여행자의 집  (0) 2013.01.21
당신은 생각 하는가?  (0) 2013.01.17
사진으로 찾아가는 고향  (0) 2013.01.03
새해의 기도  (0) 2013.01.02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얼마전,

아주 영리한 학생들과 어울린 자리에서

나는 그들에게 캠브리지(영국 명문) 대학교의 과학자들이

당까마귀라는 새를 대상으로 한 최근의 실험에 관해

 문제 하나를 던졌다.

 

 

과학자들은 길고 좁은 관에 물을 채우고

그곳에 먹음직스러운 통통한 벌레 한 마리를 띄웠다.

당까마귀가 부리로 먹이를 쪼기에는 관의 폭이 너무 좁았다.

 나는 학생들에게 물었다. 여러분도 생각해보라.

 

 

"만약에 여러분이 당까마귀라면 어떻게 벌레를 먹겠나?"

 

 

답을 찾아낸 학생은 없었다.

놀라운 사실은 당까마귀는

이 문제를 풀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무척 창의적인 방법이었다.

당까마귀는 돌멩이를 물어와 하나씩 관에 떨어뜨렸다.

 

 

그랬더니 관속의 수위가 차츰 올라가서

마침내 벌레가 부리에 닿을수 있을만한 높이로 떠올랐다.

정말 영리하지 않은가?

여기에 관해 조금 더 생각해보자.

 

 

당까마귀는 단지물에 돌을 넣으면

수면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아는 것뿐만 아니라 

행동을 통해 그것을 실행하고,

또 이 모든 과정을 적절한 순서로 배치하기도 했다.

 

 

물론 이 학생들이 당까마귀 만큼도 총명하지 않다고

말하는건 아니다.

 

 

단지 그들도 우리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창의적인 생각의 습관에서 너무 벗어나 있던 나머지

평범한 사고의 틀에 갇혀

아주 단순한 문제도 풀 수 없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생각은 우리를 흥분시키고 우리를 살아있게 한다.

우리는 때때로 새로운 관점,

새로운 사고, 새로운 시각을 갖는다.

 

 

-존 판던의 저서 [이것은 질문입니까?] 中에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삶의 지혜와 감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너에게 희망의 씨앗이 되고 싶다  (0) 2013.02.04
여행자의 집  (0) 2013.01.21
당신은 생각 하는가?  (0) 2013.01.17
사진으로 찾아가는 고향  (0) 2013.01.03
새해의 기도  (0) 2013.01.02
행복의 열쇠, 이카리아식 삶  (0) 2012.12.14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어떤 스승이 두 사람에게 한 과제를 내주었습니다.

 

칼 두자루를 주면서 그 칼이 잘 들도록

길들이는 사람을 당신의 제자로 삼겠다고 말했습니다.

 

두 사람은 날마다 열심히 칼을 갈았습니다.

 

마침내 검사를 받는 날,

한 사람의 칼은 바람에 스치는 옷깃마저 그대로 잘라낼 만큼

날카롭게 날이 섰지만,

다른 한 사람의 칼은

오히려 내 준 칼보다 더 무뎌지다 못해

뭉툭한 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스승은

날이 무딘 칼을 내놓은 사람을 제자로 삼았습니다.

칼을 갈다가 칼이 얼마나 위험한 물건인지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 그 사람은

일부러 칼을 무디게 만들었던 겁니다.

 

어렸을 때에는 열심히 칼을 갈았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그때 날이 잘 선 칼로

누구든 맞서는 사람과

억압하는 못된 사람을 베어버리고 싶었습니다.

정의에 대한 열정은 있었지만

자비와 용서는 미처 배우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꺾이는 법을 배웠습니다.

처음에는 내 칼보다 더 예리한 칼이있다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칼을 거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칼의 진정한 의미를 꺠닫는

지혜는 그렇게 늦게 찾아왔습니다.

이제는 입보다 귀를 더 많이 열어두는 법도 알게되었습니다.

 

나를 내세우기보다 상대방을

받아줄 수 있는 마음을 조금씩 열어가면서

삶의 진지함과 성숙함을 겨우 알게되었습니다.

이제는 아주 조금씩이지만 더 너그러워지기 위해

애쓰며 사는게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깨닫습니다.

 

 

- 김경집 [나이 듦의 즐거움] 中에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김경집| 완보완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맞이  (0) 2013.03.22
새해 첫 날마다 쓰는 유서  (0) 2013.01.23
뭉뚝한 칼의 지혜  (0) 2013.01.16
왜 성찰이 요구되는가?  (0) 2012.11.30
엄마, 학교 가고 싶어요!  (0) 2012.11.01
당신과 함께 살아서 행복했습니다.   (0) 2012.08.17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SBS신년기획 '학교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밝고 희망차기만 했던 청소년들의 앞모습과는 달리

아이들의 뒷모습은 학교폭력에 얼룩져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야할

이들의 모습에 너무나 안타깝고 씁쓸한 마음이

가시질 않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요?

 

가해자, 피해자, 그들의 가족, 이를 지켜보는 모든 이들

우리 모두는 피해자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야할 이들도

우리 모두입니다.

 

 

[SBS스페셜 - 학교의 눈물 중에서 ]

 

 

[SBS스페셜 - 학교의 눈물 중에서 ]

 

 

폭력없는 행복한 학교 만들기는

우리 모두의 바람이자 과제입니다.

지난해 제1차 평생교육정책포럼에서

주성민 (재)한국지역사회교육연구원 이사장의 발표문을 통해

이에 대한 해결방안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

폭력 없는 행복한 학교 만들기

 

미래학자 피터드러커는 <이노베이터의 조건>라는 책을 통해 지식사회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은 NPO(Non-Profit Organization)가 책임감을 가져야한다고 했습니다. 이번 학교폭력의 문제를 보면서 NPO단체 중의 하나인 본 단체는 막중한 책임을 느끼며, 우리도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한다는 생각에 뜻을 모으고 있습니다. KACE는 그동안 “좋은부모가 좋은 자녀를 만든다”는 케치프레이즈를 내걸고 26년 동안 연100만 명의 학부모 교육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학교폭력 문제가 더 심각해진 문제로 떠올랐음에 당황하고 있습니다.

 

적극적이기보다는 소극적으로 활동해왔다는 반성과 공격적으로 추진해야겠다는 다짐을 바탕으로 “우리아이 잘 길러야 내 아이도 잘 자랄 수 있다”는 생각이 더 확산되도록 부모교육을 추진해 나갈 각오를 해 봅니다.

 

우리 청소년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청소년이 무너지면 대한민국 미래도 없습니다. 누가 망가지고 있는 청소년들을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지켜줄 수 있을까요? 이는 청소년들에게 절망과 상처를 주고 있는 학교폭력 문제를 우리가 함께 인식하고, 함께 해결해나가야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청소년들은 가르쳐준 것만 배우지 않습니다. 부모, 교사, 사회가 보여준 것을 보고 배우며 자랍니다. 학교폭력은 학교가 가르쳐준 것 아닙니다. 사회를 보고 배운 것 입니다. 학교가 만든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만든 문제 입니다. 학교폭력 문제를 우리가 함께 해결 해 나가야하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학교폭력의 문제는 갑자기 생긴 문제도 아니고, 갑자기 없어질 문제도 아닙니다.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며, 나의 자녀의 일, 나의 가족의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가정과 학교와 지역사회가 같이 책임의식을 가지고 힘을 모아야한다는 뜻에 공감하고 이를 전제로 교사, 교장, 학부모, 지역사회가 함께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계획적이고, 조직적이고, 진정성 있고, 지속적인, 총체적인 대안을 세우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번에 음지에 있던 학교폭력문제가 양지로 나왔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학교는 쉬쉬 할 일도 아니고, 감출일도 아니고, 숨길일도 아니고, 축소할 일도 아닙니다.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오히려 도움을 요청해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학교는 교사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고, 교장은 교사가 문제를 해결해나가도록 적극적인 도움을 줘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교장과 교사는 원활한 소통을 해야 합니다. 이제 학교는 집단교육으로 실시되고 있는 학교현장을 생활지도만이라도 개별적으로 전향해야 할 때입니다. 학부모들과 소통하면서, 학부모의 참여와 도움을 요청해야할 것입니다. “세상은 울부짖는 사람이 아니라 미소 짓는 사람이 바꾼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 학부모의 따뜻한 리더십, 보살핌의 리더십, 돌봄의 리더십이 학교 안에 들어올 때, 학부모와 함께 학교를 운영하려고 하는 열린 교장이 있을 때, 그리고 학교에 주인의식을 가진 학부모가 있을 때, 우리는 효과적으로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맞는 아이, 죽는 아이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때린 아이, 남아있는 아이가 평생의 삶을 문제없이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제 우리 학부모들은 공부 줄 내려놓고 생명줄을 붙잡아야합니다. 공부의 힘만 키우는 세상이 아니라 마음의 힘을 키워나가는 세상을 만들어야합니다. “엘리트 보다는 인성이 좋은 아이를 만들어내야 한다”라는 자녀교육의 패러다임으로 바뀌지 않으면 이 문제는 영영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학부모는 교사와 소통하고 자녀와 소통하고, 아이가 행복한 삶을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이제 학교폭력의 문제는 학교교육 관점에서만 보지 말고, 평생교육 관점에서 그 해결책을 찾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학교는 학생만 교육하는 곳이 아닙니다. 학교는 학부모와 주민교육까지도 해야 합니다. 학교는 학교교육만 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교육을 하는 곳으로, 학부모의 교육은 일시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교육이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학부모교육이 지속되어야합니다. 학부모가 달려져서 자녀가 달라지고, 주민이 변해서 학생이 변하고, 시민이 달라져서 우리 청소년들이 밝은 사회에서 자랄 수 있도록 만들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학교중심 평생교육 활성화가 필요합니다.

 

서두루지 말기로 합시다. 하지만 서로 길이 되어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흥분해서 일시적으로 땜방하는 식의 수습이 아니라 “언제라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라는 차분한 이성으로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힘을 합쳐 우리가 각각 할 일이 무엇인지를 논하고, 진정성이 있는 활동으로 이어져야 해결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런 논의를 할 수 있도록 진흥원이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본 협의회도 이에 대한 방향성을 검토할 수 있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다니고 싶은 학교만들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선생님이 좋아요  (0) 2013.06.04
꼴찌 날개를 달다 - EBS다큐프라임  (0) 2013.04.03
학교의 눈물  (0) 2013.01.15
날 힘들게 한 너, 사라져!  (0) 2012.11.13
상상 속의 학교  (0) 2012.11.09
선생님이 자랑스러워요  (0) 2012.09.19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외손녀 지우가 탈장 수술을 받고난 후

처음 병원에 가는 날이다.

오늘의 미션은 배에 차있는 물을

주사기로 뽑아내는 일.

 

 

그런데 병원에 대한 두려움이

큰 두살바기 아기가 침대에 얌전히 누워서

 그 일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지

나는 가기 전부터 걱정이 앞섰다.

 

 

회사에 반차를 내고 오겠다던 딸은

사정이 있어 못 오고

양쪽 할머니(친할머니와 외할머니)가 함께 나서야 했다.

그래서 불안이 더 컸다.

 

 

 

 

딸은 계속 문자를 보내왔고

의사에게 물어보라는 주문도 많았다.

아이가 왜 갑자기 먹는 양이 줄었는지,

이제 통 목욕을 시켜도 되는지,

수술부위 매듭은 저절로 없어지는지 등등...

아마도 워킹맘들이 가장 가슴 아플 때가 이런 때이리라.

 

 

아무리 사회적 소신이 확고한 엄마들이라도

이렇게 아이가 아플 때에 함께 해주지 못한다는 시점에서는

갈등과 회한 속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아무튼 걱정을 해도 병원엔 도착했고,

담당의사의 수술 관계로 진료는 예약된 시간보다 30분 이상 늦어졌다.

한창 걸음마에 재미를 붙인 아이가 가만히 앉아있을 리가 없다.

고 짧은 다리로 종종거리며 병원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녔다.

그러다가 저를 쳐다보는 어른들에게는 빠이빠이 하며

손을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이날 소아과 외래에는 많은 아이들이 있었는데

대부분이 힘없고 축 늘어진 모습이었다.

우리 지우가 제일 발랄해 보였다.

 

 

세상에 나온 지 이제 겨우 1년4개월,

아이의 인지구조에는 세상 사람들은

다 자기를 사랑한다는 믿음이 굳게 깔려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누구든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는 것 같은데

애착형성이 잘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에서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만 3세까지 형성된 안정된 애착형성이 평생을 간다고 하지 않던가.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

그런데 병실 문을 채 들어서기도 전에

아이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한다.

자지러지듯 우는 아이를 보고 어찌할 바를 몰라

두 할머니는 같이 우는 형색이었는데 의사는 아무 표정 없이

간호사에게 물 뽑을 주사기를 가져오라고 주문한다.

그때 안사돈이 말했다.

 

 

“선생님, 오늘 꼭 물을 빼야 하나요? 다음에 하면 안 될까요?”

“그러시겠어요? 그럼 일주일 후에 다시 나오세요.

그동안 물이 몸 안으로 조금씩 흡수될 수도 있으니까요.”

의사는 선선히 허락했다.

나도 안도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아이가 너무 가여워서 다음으로 미뤘는데

 마음 약한 할머니들이 일처리를 야무지게 못했다고

혹시 딸이 뭐라 하지는 않을까.

만일 딸이 같이 왔다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하라고 했겠지.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병실 문을 나서니 아이는 언제 그랬냐 싶게 다시 명랑해졌다.

울음 끝이 짧은 아이,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린 눈을 닦아주고

바나나 한 개를 까주었더니 단숨에 먹어치운다.

 

 

곁들인 우유 한 병도 원샷! 그리고는 몇 개 안 되는 앞니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는다.

너무 귀엽다.

세상 어느 화가의 어떤 그림을 가져다 놓아도

이만큼 행복하고 평화로운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까.

 

 

모유를 먹어서인지 한 점 물살이라곤 없는

탱탱함으로 똘똘 뭉친 작은 아이, 제 어미를 쏙 빼닮았다.

되돌아 온 자리는 어디던가, 내 작은 몸으로 낳은 딸이

또 딸을 낳아 이렇게 세월의 산맥을 이루었구나.

 

 

요즘 와서 지우 덕분에 미소 짓는 날이 많아졌는데

아이와 함께 책 볼 때가 더욱 그렇다.

아이가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한다면 틀림없이

총명한 아이가 될 거라는 믿음 때문에

갓난아기 때부터 책을 통해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고 싶었다.

 

 

다행히 아이는 책 보는 시간을 좋아했다.

책 볼 때만큼은 집중력을 발휘하여 다 읽을 때까지 지그시 앉아 있는다.

또 어떤 책을 가져오라고 주문하면 제 책이 꽂혀있는 곳으로 가서

그 책을 용케도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벌써부터 책을 밝히다니, 우리 지우는 천재인가 봐!”하며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지우의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죤 두이의 ‘공유된 경험’이 참으로 중요한 개념임을 깨닫는다.

지금은 모든 학습이 반복된 경험으로 이루어지는 시기이니까...

그래서 오뉴월 하루 빛이 무서운 아이 시절에 가슴 속 환희를 공유하는 기쁨을

지우와 더 많이 나누고 싶다.

 

 

지우가 빨리 커서 공원도 가고 전시회도 가고 연극도 함께 보러 가는 날을

나는 손꼽아 기다린다.

어차피 제 엄마는 직장에 가서 할 수가 없을 테니

그 역할을 할머니가 맡을 수밖에.

그런데 아침에 엄마가 회사에 가고난 후부터 저녁 퇴근시간까지

온갖 시중을 다 들어주는 할머니의 치맛자락을 따라 다니고는

저녁에 엄마가 돌아와 초인종을 누르는 시점부터 잠들기 전까지는

 제 엄마만 쫓아다닌다.

 

 

할머니는 안중에도 없다.

역시 엄마는 엄마다.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은 퇴근 시간과 맞물려 무척 복잡했다.

그러나 추운 거리의 어수선함과는 상관없이

지우는 친할머니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외할머니의 품에 안겨 동요메들리를 즐기고 있었다.

 

 

가끔씩 율동(?)도 곁들인다.

그런 귀염둥이 손녀를 안고 있는 나는

온기 가득한 난로를 안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이가 아플 때 옛날에는 친정어머니가

 ‘네 배는 똥배, 내 손은 약손.’ 하면서 배를 문질러 주셨는데

아이의 수술 부위가 하필이면 배꼽자리인지라 그도 할 수가 없었다.

 

 

 대신 나는 지우에게 속삭여 주었다.

“지우야, 세상은 경이롭고 신기한 것 천지란다.

그래서 끊임없이 도전하며 사는 거란다.

두드려보고, 눌러보고, 던져보고, 밟아보고, 하고 또 하고 해도 해도 또 하고 싶은...

하지만 병원 가는 일은 도전 하지 않아도 된단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크렴. 힘내라 아기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함수연| 만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 바다  (0) 2013.02.18
터미널 풍경  (0) 2013.01.25
지우야, 사랑해  (0) 2013.01.14
혼자만의 하루  (0) 2013.01.08
엔딩노트  (0) 2012.12.21
택배 사절  (0) 2012.11.19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72:1법칙’이라고 있다.

‘72:1’법칙은 마음먹은 일을 72시간,

즉 3일 이내에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성공할 확률이 1%도 안 된다는 뜻이다.

 

 

 

운동하기로 결심하고

‘내일부터 운동하겠다’는 결연한 각오를 한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조깅의 걸림돌인 비가 오고 있지 않는가?

 

 

운동하기로 결심한 사람은

내심 비가 오고 있음을 반갑게 받아들이면서

자기 합리화의 탈을 쓴다.

 

 

하지만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오면,

결심은 사라지고 또 다른 핑계거리를 궁리한다.

다짐한 것을 즉시 실천하지 않으면

‘다음’에 ‘다시’하기는 하늘에 별따기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하기로 결심한 사항을

실천하는데에는 생각지 못한

장애요인이나 걸림돌이 등장한다.

 

 

어떻게하면 결심한 일을 하지 못하게 막을지

고민하는 이 훼방꾼을 물리치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 바로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체인지」 中 유영만(교수) 글

 

 

코멘트

2013년 계사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가 되면 새로운 다짐으로 한해를 준비하는 마음은

너나 할 것 없이 간절하고, 비장합니다.

누구나가 마음 먹고 다짐하지만

아무나 일을 완성하지는 않습니다.

72시간, 작심 3일이 되지 않도록,

다짐한 바를 오늘 실천하는건 어떨지요. 

 

오늘, 당신이 다짐한 그 무엇인가가

마음속 깊숙이 자리잡아 온 우주로 전달되었으니

두려워 말고 시작해보세요.

 

모든 것이 그대 손에 달려있으니,

2013년 더 큰 행복,

건강과 웃음을 만들어 가기를 기원합니다.

 

- e부모약 '72:1의 법칙' 中에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웃음 넘치는 가정만들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인생, 5년  (0) 2013.01.31
가족회의 하고계세요?  (0) 2013.01.28
72:1 법칙  (0) 2013.01.10
만화 '카림에게'  (0) 2012.12.28
삶이 있는 저녁을 위한 비밀  (0) 2012.12.12
애착  (0) 2012.12.04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공휴일인데도 식구들이 다 나가고

혼자 있게 되니 무료했다.

남편은 새벽같이 강원도 홍천으로 놀러갔고

딸은 해외 출장 중이었다.

 

 

따라서 더 이상 나갈 사람도 없고

올 사람도 없는 이 시간.

늦잠이나 잘 요량으로

다시 침대 속으로 향하는데

때마침 전화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언니! 나야, 다행히 집에 있었네.

 나, 다음달 12일 한국에 다니러 갈 거야.”

“그래? 잘 됐다.”

 

 

싱가포르에 사는 여동생의 전화였다.

곧 여름 방학을 맞는 두 아들과 함께 와서

시어머니가 계시는 수원에 머무를 것이며,

이번에 와서 꼭 해야 할 일,

그리고 선물은 무얼 사가면 좋겠냐는 등

꽤 긴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는 사이 밀려오던 잠은

멀리 달아나 버렸다.

아무리 무료해도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할 필요까지는 없는 터라

찌뿌둥한 몸을 집안 일로 풀기로 하고 청소와 빨래부터 해치웠다.

 

 

 

 

 

아이들 방에 이불과 침대보까지

다 벗겨내서 세탁기를 두 번이나 돌렸다.

혹시 동생네 식구가

며칠 자고 갈지도 모르니까

 침구 정리는 미리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곤 쇠고기를 듬뿍 넣어 끓인 떡국으로

혼자만의 아침상을 차렸다.

반찬은 배추김치와 동치미가 전부였지만

부유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셨다.

 

 

혼자 마시는 커피는 더욱 향기로웠다.

커피를 마시면서, 음악을 들으면서,

잠시 여유롭고 격조 높은(?) 분위기에 취해 있다가

불현듯 누군가에게 편지가 쓰고 싶어졌다.

‘그래, 어머님한테 편지를 쓰자.’

 

 

제주도에 사시는 어머님은 이사한 우리 집에 처음 오셔서

무엇 때문에 심기가 불편하셨는지 4박 5일 동안

있는 듯 없는 듯 계시다가 가셨다.

팔순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호기심에다

 말씀도 재미나게 잘 하셔서 늘 이야기보따리가 풍성했던 분이신데,

끼니때가 되면 차려놓은 밥만 말없이 드실 뿐 도통 말이 없으셨다.

 

 

‘내가 뭘 잘못 했나?’ ‘이사 와서 새롭게 장만한 가전제품과 가구들이 거슬려서

그러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매일 수업해 가면서

혼자 이삿짐 꾸리느라 동분서주했건만 애썼다는 칭찬 한마디 없이

입 꽉 다물고 계신 어머니가 야속했다.

대화가 끊긴 채 한집에서 며칠을 지내자니

마치 사포 같은 것에 긁힌 듯 마음이 쓰라렸다.

 

 

시동생과 어머님이 제주도로 가시고 난 후

곧 바로 편지를 썼다.

이사하게 된 배경과 자금내역을 상세히 썼고

아울러 어머님이 무엇 때문에 그리 언짢으셨는지,

그간 불편했던 내 마음을 글로 정리해서 부쳤다.

 

 

물론 이런 내용들은 어머님이 우리 집에 계시는 동안

주고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말로 하면 감정이 실려 차분한 대화가 힘들 것 같아

문자언어로 대신했다.

그래도 그건 어디까지나 내 판단일 뿐,

이번에는 별로 유쾌한 내용이 아닌

편지를 받고 난 후의 어머님 반응이 염려스러웠다.

 

 

2주 후, 검정색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지 세 장 분량의 긴 답장이 제주에서 날아왔다.

거기에는 어머님이 오해하셨던 부분도 들어 있었고

당신의 지난날의 아픈 회상도 담겨 있었다.

없는 집에 맏며느리로 시집 와 고생 많았다는 이야기도 처음으로 하셨다.

 

 

그리고 사연 끝에다 그 동안 서로 앙금처럼 남아 있었던

섭섭한 마음일랑 다 잊자는 당부의 말과 함께

‘사랑한다!’는 말도 몇 번이나 덧붙이셨다.

 

 

코끝이 찡했다. 역시 표현해야 한다.

그리고 말보다 글의 힘이 컸다.

만일 마주보고 이야길 했다면 사랑한다는 말을 그토록 쉽게 할 수 있었을까?

 

 

살다보면 이렇게 꼬이고 꼬인 매듭 같은 시간을 건너야 하는 일도 있는 법,

결국 그때의 일은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돼 이름다운 이해로 끝났다.

사실 내 편지를 받고 어머님이 더 노여워하지는 않으실까 걱정도 많이 했는데

다행히 며느리의 입장을 이해하고 수용하여

 답장까지 보내 주셨으니 참으로 감사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오랫동안 봉사하신 경험도 작용했던 것 같다.

생전 처음 받아본 어머님의 편지글.

황해도 해주에서 여고를 졸업하신 어머님의 글 솜씨는 훌륭했고 감동적이었다.

남편 말대로 글공부를 계속하셨다면 아마 박완서 못지않은 작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답장을 받고 나서 이젠 어머님께 가끔씩 편지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전화보다는 따뜻하고 정감이 있는 그런 편지를.

인터넷이 일반화 된 요즘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메일이나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글을 쓰고 읽지만

글을 써야 한다는 절박함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속도감이 없어서인지 편지 쓰기는 점점 실종되어 가는 느낌이다.

 

 

편지를 다 쓰고 나서 TV 요리 시간에 소개된 ‘해물완자 전골‘을

만들기 위해 장보기를 했다.

보기에 재료와 요리법이 간단하면서도 푸짐해 보였다.

음식을 만들면서 언뜻언뜻 부엌 창문으로 지나가는 사람 구경도 하고

김치 볶음밥도 만들어 먹었다.

 

 

저녁엔 삶은 고구마로 식사를 대신하고

좀처럼 진도가 안 나가는 책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를 집어 들었다.

역시 더디다.

베란다 화단 옆 의자에 앉아 책을 건성으로 읽다가 장미꽃과 눈이 마주쳤다.

장미꽃에게 착하다는 눈인사를 해주었다.

게으름 피지 않고 주어진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자기 할 일을 다 했으니 말이다.

 

 

예쁜 꽃, 착한 꽃.

그런데 없는 솜씨 부려가며 만든 해물전골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은 왜 여태 소식이 없을까?

아무도 없는 텅 빈집에서 세끼 밥 다 찾아 먹고

빨래와 청소하고, 전화 받고, 편지 쓰고, 인터넷하고...

혼자 있는 시간은 길고도 풍요로웠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함수연| 만남' 카테고리의 다른 글

터미널 풍경  (0) 2013.01.25
지우야, 사랑해  (0) 2013.01.14
혼자만의 하루  (0) 2013.01.08
엔딩노트  (0) 2012.12.21
택배 사절  (0) 2012.11.19
비둘기 소동  (0) 2012.10.04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