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집'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12.08.17 당신과 함께 살아서 행복했습니다. 
  2. 2012.03.28 백제의 미소, 찾아가는 길

 

 

 

누구나 겪어야 하는 일입니다.

만나고 헤어짐은 삶의 필연입니다.

會者定離 去者必返이라는 불가의 가르침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피할 수 없는 일이지요.

 

 

삶은 가족과의 첫 만남으로 시작해서

가족과의 작별로 마감되는 것이라지요.

그러니 받아들여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온전하게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쉰네 해를 함께 살아온 때문만은 아닌 듯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정확히 열흘이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실감이 되지 않습니다.

아직도 전화하면 받으실 것만 같고,

찾아가면 손을 잡아주실 것만 같습니다.

아흔의 수(壽)를 누리셨고 다행히

마지막 순간을 평안하게 삶을 마감하셨으니 복된 일입니다.

문상객들도 호상이라고 위로했습니다.

물론 듣기 좋으라고 아픈 마음 덜라고 하는

 위로의 말이지만 저도 그렇게 여겼습니다.

어느 죽음인들 호상이 있겠으면 하물며 나아주신 어머니의 죽음에

호상이라는 객쩍은 말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만

그래도 저와 함께 쉰네 해를 마련해주셨으니 고마운 일입니다.

 

 

고작 열셋의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무섭고 서럽기만 했습니다.

유난하게 막내아들을 사랑해주셨고 다섯 살 때부터

당신의 다방 순례에 동반자로 데리고 다니시며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던 아버지였기에 그 부재를 인정하기 어려웠습니다.

대여섯 살 때쯤 쏟아질 듯한 별을 바라보며 별자리 이야기를 해주시다가 갑자기

 “저 별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너보다 아름답진 않단다. 널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단다.”

하시면 제 머리를 꼭 껴안아주셨던, 그래서 그 때는 그저 닭살스럽다고만 여겼던

그런 아버지였기에 더더욱 그랬습니다.

 

 

그 시절에도 다정다감했고 어머니를 끔찍이 사랑했던,

그리고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진보적 생각을 지니셨던 아버지였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부재가 어린 저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지요.

하지만 그 날 별을 보며 제게 해주셨던 말씀이

지금 이 나이까지 저를 버티게 한 힘이었습니다.

그래서 늘 아버지는 저의 가슴에 살아있다고 느끼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깊이 사랑하셨던 것 같습니다.

두 분이 다투시는 걸 거의 본 적이 없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빼어난 미인이셨던 어머니가 홀로 남아 여섯 남매를 거둬야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았던 외삼촌은

어머니께 재가하라고 여러 차례 설득했습니다.

 

 

지금도 그 때를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중학교 1학년 때였지요.

외삼촌은 그날 밤도 어머니께 간곡하게 설득했습니다.

저는 자는 척하고 있었지요.

어머니가 뭐라 응답할지 어린 저로서는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딱 한마디로 그 두려움이 사위었습니다.

“오빠, 나는 김 서방하고 살아온 시간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남들 백 년 함께 살아도 그런 행복 못 누려요.

남은 삶 그 행복을 되새기며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러니 다시는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 뒤로는 외삼촌도 더 이상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도 매제인 아버지를 존경하고 좋아하셨던 분입니다.

하지만 누이동생이 겪어야 할 삶의 신난(辛難)이 안쓰러워

그러셨음을 알기에 아무도 당신을 야속하게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다행히 저희 남매가 큰 허물없이 자랄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의 깊은 사랑 덕분이었을 겁니다.

당신들의 바람대로 살아왔는지는 모르지만

제가 이 나이까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 두 말의 힘 때문이었다고 늘 기억합니다.

 

 

개성이 다른 남매들이 제 나름의 삶을 선택할 때마다

반대하지 않으셨던 어머니였습니다.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겠다는 말씀을 드렸을 때 그러시더군요.

“그래, 너 하고 싶은 거 해야지.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너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을 거다.”

그렇게 당신 속에는 늘 아버지가 함께 계셨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쉰 해 넘게 혼자 사시면서도

외롭지 않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야속하고 미울 때가 어찌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늘 저희들의 의사를 먼저 존중해주셨지요.

그리고 그 판단은 아버지와 함께였음을 저는 압니다.

 

 

저도 어른이 되어 두 아이를 키우다보니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당신 혼자 힘으로 더 많은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때론 매섭게 때론 자애롭게, 당신 힘들 때마다 그만큼 자식들이 큰다는 걸

 유일한 위안이자 힘으로 여기며 살아오셨음을 압니다.

 

 

그런 어머니가 여러 해 자리보전 하시다가

저희들과 작별하셨습니다.

고맙고 행복한 작별이었습니다.

당신과 쉰네 해를 함께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행복한 일입니다.

 

 

한 줌의 작은 재로 마감한 어머니.

그러나 이제 당신이 늘 가슴 속 깊은 곳에

 함께 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제는 전화를 드려도 응답할 수 없고 찾아가도

만날 수 없는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요.

그립고 서럽고 고마운 마음이겠지요.

‘살아계실 때 조금 더 잘 해 드릴 걸’ 하는 회한은 품지 않으렵니다.

어차피 눈멀어도 못 다 갚을 고마움입니다.

그래도 우리와 작별한 어머니가 그토록 사랑하시던 아버지와

따뜻한 해후를 누리셨을 거라는 안도가 저희를 행복하게 합니다.

그런데도 자꾸만 당신이 그리워집니다.

 

 

여전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당신이 떠나셔서

제 마음 깊이 아름답게 살아계시게 되었으니

행복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러운 행복, 아쉬운 기쁨으로 어머니를 보내드립니다.

 

 

그런데도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

유난스러운 이 여름의 염천(炎天) 때문만은 아닌 모양입니다.

스무 날 뒤 당신의 생신에는 당신의 자식들이 대신 촛불을 불어드릴 생각입니다.

 

 

사랑하는 엄마, 고맙습니다.

당신과 함께 살아서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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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

 세상이 많이 편해졌습니다.

 

예전 같으면 아무 대책 없이 버스 정류장에서 배차 간격 뜸한 버스를 기다리며 거위처럼 목을 길게 빼고 도로 왼쪽만 하염없이 바라봐야 했지만(물론 저는 아직도 그러고 있지만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자신이 기다리는 버스가 정확하게 몇 분 뒤에 정류장에 오는지 알기 때문에 허튼 시간 버리지도 추위와 더위에 시달리지도 않습니다. 갈수록 그렇게 편리함의 속도는 빨라지겠지요. 물론 그렇다고 그게 마냥 부럽기만 한 건 아닙니다.

 

우리처럼 아날로그의 끝자락과 디지털의 첫 단추를 동시에 걸쳐 있는 세대는 아날로그의 온기와 디지털의 속도를 함께 누릴 수 있는 나름의 특권도 있지요. 물론 아날로그에서 온기를 누리거나 품지 못하고 디지털에서 속도를 즐기거나 만들어내지 못하는 얼치기가 되지는 않아야 가능하겠지만 말입니다.

 

오랜 동안 청산통신도 접고 마감해야 할 원고들과 새롭게 펼치기 시작한 원고들에 치대어 보내다가 갑자기 해미로 떠나고 싶었습니다. 언젠가 머지않아 그곳에서 움터를 마련해서 그저 읽고 쓰는 일에만 파묻혀 지내고 싶은 곳이기에 항상 마음 한 켠 자리 잡고 있는 곳이지요. 그러나 며칠 전 길을 떠난 건 해미가 아니라 운산의 마애석불 때문입니다.

 

흔히 ‘백제의 미소’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어서 정말 그게 백제인의 모습이려니 하고 각인될 만큼 소담한 마애불입니다. 그걸 보호한답시고 닫집을 만들어 자연 채광으로 드러내는 미소의 아름다움은 박제되고 어설픈 인공조명으로 비추는, 굳은돌이어서 마음이 시렸는데, 얼마 전 마침내 그 닫집을 걷어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가야지, 가마 하면서도 정작 쉽게 떠나진 못했습니다. 자동차를 갖고 있지 않아서 그 길이 사실 그리 만만하지 않아서 늘 마음에만 담고 있다가 날 풀리는 봄날 몸살 하듯 내처 떠나고 보자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마침 고등학교 동창이 함께 가자 해서 그 친구 차로 떠날 수 있었습니다. 비는 추적추적 쉼 없이 내렸지만 자동차의 편리함은 그것쯤은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얼마쯤 지나 운산의 계곡에 우리를 내려놓았습니다.

 

과연 쓸데없는 옷을 뒤집어쓴 채 어색하게 웃던 부처님은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해서 한걸음에 올랐습니다. 말끔하게 닫집을 벗고 마침내 본디 모습으로 잔잔하게 웃고 있는 부처님의 모습이 얼마나 반갑고 감격스러웠는지 모릅니다. 해마다 들러본 곳이면서도 사뭇 달랐습니다. 정작 제 모습을 왜곡한 채 보호라는 명목으로 감금되었던 부처님도 비로소 제대로 웃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벼르고 벼른 끝에 찾아간 마애불에서 머문 시간은 고작 20여 분에 불과했습니다. 방사능비가 무서워서도 아니고 눈맞춤했으니 그걸로 족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내친 김에 개심사와 해미읍성까지 둘러볼 마음으로, 아니 모처럼 떠난 길, 본디 꽃구경 좋아하지 않지만 비인 마량포구의 동백 숲까지 가볼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동백 숲엔 가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저 마음만 바쁘고 시간만 축냈을 뿐입니다. 물론 풀밭에 뚝 떨어진 동백의 자태가 흠씬 아름답긴 했지만 말입니다.

 

동행한 벗이 함께 길 떠나기에 참 좋은 친구였기에, 그 덕에 편하게 가본 참에 좋아하는 개심사와 읍성까지 안내하고 싶었기 때문이긴 했습니다. 필요할 때는 서로 아무 말 없이 그저 묵묵히 길을 걸을 수 있는 동행은 분명 고마운 복입니다. 그런 친구였기에 아마 어쩌면 더 많이 들러보게 하고 싶기도 했을 겁니다. 물론 저 역시 쉽게 가지 못하는 길, 이왕이면 한 묶음으로 꿰고 올 생각이었습니다.

 

발단은 욕심에 동백 숲까지 간 데서 비롯되었던 것을 돌아오는 길에 깨달았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마애불까지 가려면 터미널에 가서 시외버스를 타고, 다시 내려 한참을 기다렸다가 하루에 서너 차례만 오가는 시골 버스를 타고서야 가능합니다. 어차피 다음 버스까진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까닭에 엎어진 김에 쉬었다 가는 심정으로 몇 시간이고 그 작은 계곡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러니 좋든 싫든 내내 마애불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요. 그것만으로 하루를 다 보내거나 운 좋아 버스 시간 맞으면 개심사까지 들르곤 했습니다.

 

여행을 나타내는 낱말 travel의 어원인 라틴어 travail의 뜻이 ‘고생하다’ 라는 걸 불현 듯 깨달았습니다. 옛사람들은 힘들게 찾아간 곳에서 잠깐 일별하고 다시 길을 떠나지는 못했겠지요. 그저 그거 하나 찾아갈 일념으로 반나절이나 한나절 내내 걸어갔을 겁니다. 다른 건 들여다볼 생각일랑 아예 품지 못했기에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게 걸어가지는 않아도 몇 시간 동안 버스 갈아타며 찾아간 그곳에서 그렇게 짧은 방문으로 마감하진 못했겠지요.

 

참된 사랑은 오롯하고 직수굿하게 상대에게 집중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사실 그런 사랑은 효율도 떨어지고 다양성도 딸립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 하나에 대한 확실한 마음과 애틋함은 마음껏 누리고 채우겠지요. 그게 사람이건 사물이건 다르지 않겠지요. 이것저것 들쑤시고 욕심만 내면서 정작 하나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사는 일이 얼마나 많을까 돌아봅니다. 마음만 앞서고 조바심만 내면서 말입니다.

 

모처럼 떠난 길 서둘지 말고 욕심내지 말고 차분하게 누리고 오지 못했습니다. 마애불 초입의 산중턱 관리소 기와집 마루에서 무심하게 걸터앉아 아무 말 없이 그저 처마 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낙수 소리에 취해서 맞은 편 산기슭의 나무들에도 눈길을 나눌 수 있어도 좋았을 것이고,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며 마음에 품었으면서 정작 잘 꺼내보지 않아서 조금은 낯설기도 할 이야기들도 두런두런 나누지 못하고 돌아온 게 아쉽고 동행한 벗에게도 미안한 하루였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건 쉽게 떠날 수 있는 편리한 자동차. 그러나 정작 한 곳에 집중할 마음을 상실한 게 그런 편리함 때문이라는 걸 미련스럽게도 돌아온 뒤에 확인합니다. 여행의 본디 뜻이 고생함이라는 걸 겸손하게 되돌아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조금은 미련하게 느긋하게 다가서고 지켜볼 수 있는 고생스러운 넉넉함을 생각합니다. 정말 만나고 싶은 건 꽃도 아니고 멋진 날씨도 아니며 바로 시간이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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