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특히, 그녀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그녀들은 내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립니다. 꽃미남이냐고요? 보자마자 “와~”라며 탄성을 지르는 이도 있지만 누군가를 한눈에 사로잡을 만큼 잘생기진 않았습니다. 이들은 내 외모보다는 내가 품고 있는 자연의 향취를 즐기며, 내 장점들을 재빨리 알아보고 포용할 만큼 영민합니다.

안녕하세요.

나는 전남 여수시 돌산읍 평사리 산 318번지에 살고 있는, 스물한 살 난 유자나무입니다.

 
밀림 속 유자나무?

한려수도 남해 바닷가 돌산섬에 자리한 두란농장. 1988년부터 이곳에서 내 친구 김광부(66세) 씨와 동고동락 해왔습니다. 그는 한때 큰 배의 선장으로 오대양을 누비던 바다 사나이였으나 푸른 숲이 그리워 고향에 돌아와 산을 개간하고 3천 그루의 유자나무를 심었습니다. 왜 하필 나였냐고요? 나뭇가지에 달린 노란빛 유자 열매가 보석처럼 찬란하고 예뻤다고 합니다. 귀하게 얻은 막내딸을 보자마자 동글동글한 야생 콩란을 닮았다며 ‘두란(豆蘭)’이란 환상적인 이름을 붙인걸 보면 그에겐 그리 뜬금없는 일도 아닌 듯싶습니다.

 
농장을 방문한 사람들은 대개 눈을 동그랗고 뜨고 이렇게 묻곤 합니다. “아니, 유자는 어디 있습니까?” 하긴 모눈종이에 점찍듯 평지에 일렬종대로 심어진 유자나무, 유자밭만 봐왔던 그들 눈에는 내가 쉽게 보이지 않을 겁니다. 지금 나는 남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서쪽 언덕 위, 오동나무 건너편, 소나무 앞에 있습니다. 옆에는 후박나무가 있고, 저 멀리 산벚나무, 대나무, 찔레넝쿨도 있습니다. 고사리, 취, 둥굴레, 산마, 하수오까지 지천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농장이 아니라 울창한 숲에 살고 있는 셈입니다. 옛날 옛적 내 먼 조상들이 그랬듯 말입니다.

 

마침내 면이 섰습니다

 
김광복 씨는 인공적인 것이라면 질색을 합니다. 플라스틱도 싫어하고 시멘트도 싫어합니다. 농장 입구 길을 시멘트로 포장한 것도 불과 몇 년 전의 일입니다. 당연히 농약도 싫어할 밖에요. 그래서 이날 이때껏 농약이란 건 단 한 방울도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80년대는 바야흐로 대량 생산의 시대였고, 질보다 양이 더 높은 가치였습니다. 수많은 생명들이 약에 취해 해롱댈 때 나는 김 씨의 기대 속에서 맨 정신으로 버텼습니다.

 

남들 눈에는 우리가 우습고 한심스럽게 보였나봅니다. 하루는 농업을 담당한다는 관리들이 찾아와 온갖 잡목으로 우거진 이 곳을 보고는 “이게 무슨 농장이냐”며 혀를 끌끌 차는 걸로 시작해, 나를 향해 “에게, 몇 개 달리지도 않았네”라며 속을 뒤집어 놓은 일도 있습니다. 관행농으로 재배하는 유자나무가 7년이면 첫 수확을 하는데 반해, 나는 적어도 12,13년은 지나야 수확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뭘 몰라도 한참 몰랐던 거지요.

 

남해의 따뜻한 날씨 속에 바닷바람과 풍부한 햇볕을 흠뻑 빨아들이며 뿌리부터 힘을 키울 동안 김씨는 부지런히 퇴비를 만들어 지게에 얹고는 가파른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뿌려주었습니다. 닭똥과 톱밥, 설탕을 섞어 발효시킨 것부터 쌀겨, 여수의 멸치공장에서 나온 멸치가루까지!

 

2005년 드디어 유기농농산물 판매처에 유자 열매를 팔고나서 받은 돈은 일금 12만 원. 팔수도 있구나,라고 감격스러워하는 그를 보며 비로소 면이 섰습니다. 나를 믿고 끝까지 기다려준 그가 참 고맙습니다.

 
과잉보호는 사양합니다

 
내가 한 해 동안 얼마나 바쁘게, 또 열심히 살고 있는지 알려드리면 이렇습니다.

4월에 첫 순을 내고, 5월이면 꽃을 피웁니다. 열매가 그러하듯 꽃도 향이 기가 막힙니다. 6월에는 작은 사탕알 만한 연둣빛 열매를 냅니다. 차츰 알이 굵어지고 노란빛을 띠어 10월 말쯤에는 전체가 노랗게 변합니다. 9월까지는 즙이 많지만 10,11월쯤 되면 즙이 줄어들면서 껍질이 두꺼워집니다. 유자 열매는 추워야 본격적으로 익으니 맛과 향은 11월 말이나 12월 초가 가장 좋습니다. 따낸 열매는 생육으로 팔기도 하고, 즙이나 차로 만들어 내놓기도 합니다. 이듬해 봄까지 김씨는 1만 5천여 평 숲 속을 누비며 도장지(웃자람가지)를 쳐냅니다. 가지가 하늘을 향해 직선으로 쭉 뻗으면 열매를 잘 맺지 못하니까 일일이 손으로 잘라주는 겁니다.

 

나는 물을 무척 많이 먹는 나무입니다만, ‘자연 그대로’를 외치는 그는 일부러 물을 더 주는 법이 없습니다. 덕분에 빗물과 바닷바람이 실어다 주는 짭조름한 물까지 잘 빨아들이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가는 중입니다. 힘들지 않냐고요? 글쎄요, 과잉보호는 사양합니다.

 

특히, 겨울에 안성맞춤

 
이제 열매 자랑을 좀 해볼까 합니다.

향은, 가히 감동적입니다! 모두들 내 앞에서는 코를 벌름거리며 무장해제 됩니다. 향수나 화장수, 방향제의 원료로 쓰이는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특유의 오일 성분은 피부에 좋은 영향을 발휘합니다. 영양도 풍부합니다. 비타민C의 함량은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사과의 25배, 레몬의 3배로 과일 중 단연 으뜸입니다. 칼슘도 사과, 바나나보다 무려 10배나 더 많이 들어 있어 성장기 아이의 뼈 성장에, 어른들의 골다공증 예방에 도움을 줍니다. 8종류의 유기산 중 가장 많이 든 것은 구연산으로 이 성분은 비타민C와 함께 피로 회복에 좋습니다. 현미에 든 비타민B1도 있으니 평소 백미 먹는 이에게 권할 만하지요.

 

플라보노이드, 히스페리딘같은 항암성분도 가지고 있으며 이는 혈압을 안정적으로 조절해주어 뇌졸중을 예방합니다. 동의보감에서는 술독을 풀어주어 음주자에게 좋다고도 나와 있습니다. 사시사철 곁에 두고 먹어도 좋지만 이맘때면 감기가 잦고, 줄어든 일조량으로 쉽게 피로해지며, 피부가 건조해지고, 뇌졸중 발병률이 높아지는 것을 감안할 때 특히 겨울에 먹기 좋은 음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포인트는 껍데기! 건더기까지 꼭꼭 씹어 먹고

 

 

열매는 무척 시어서 그냥 먹기 보다는 껍질과 과육을 얇게 저민 다음 설탕에 절여 차로 즐겨 먹습니다. 생즙을 내어 주스처럼 마시기도 합니다. 즙과 물을 2대 8 비율로 섞고 꿀을 한 숟가락 넣어 마시면 피로 회복에 그만입니다. 만약 차로 먹는다면 뜨거운 물보다는 따뜻한 물을 권합니다. 비타민C는 뜨거운 물에 약하니 말입니다.

 

유자차의 활용은 무궁무진합니다. 잼처럼 빵에 발라먹어도 좋고, 샐러드에 끼얹을 드레싱을 만들 때 넣으면 향긋함과 새콤함이 샐러드의 격을 한층 높여줍니다. 생선 조림에 넣는다면 유자향이 비린내를 물리쳐 평범한 조림 요리의 반전을 맛볼 수 있습니다. 유자약식과 유자설기, 유자양갱, 유자카스텔라, 유자머핀, 유자셔벗도 일품입니다. 유자 넣은 유자식혜, 유자식초, 유자술도 있습니다. 기억하기 어렵다고요? 꿀, 조청, 물엿, 설탕 대신! 그리고 상큼한 향이 필요한 어느 음식에든 넣으십시오.

 

여름이 지나면 유자차의 색이 변할 수 있는데, 냉동실에 두고 먹을 만큼만 덜어 냉장고에 보관한다면 변하는 속도를 늦출 수 있습니다. 유자차를 마실 때 건더기를 먹지 않는 이들이 많은데 그 영양을 생각한다면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유자는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습니다. 예로부터 한의학에서는 노란 겉껍질, 흰 속껍질, 과육, 씨를 각각 한약재로 만들어 치료에 사용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좋은 영양들 거의가 과육보다 껍질에 몰려있으니 건더기까지 꼭꼭 씹어 모두 드십시오. 잘 만들어진 유자차라면 쫀득쫀득 씹힐 겁니다.

 

울퉁불퉁 못생겨야 진짜

       

 


마지막으로 당부할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내년에는 부디, 내 열매를 좀 더 느긋하게 기다려주길 바랍니다. 유자는 12월 초순이 가장 잘 익었을 때이고, 맛있을 때입니다. 나를 좋아해주는 것은 기쁘고 고마운 일이나 10월부터 성화를 하는 통에 좌불안석입니다. 나는 성장촉진제를 먹지 않는 유자입니다. 때때로 김 씨는 너무 오래 품고 있게 하여 미안하다고 하지만, 마지막 한 알까지 잘 키워내는 것은 나의 중요한 소임입니다. 남들보다 빨리 먹겠다는 생각보다는, 딱 알맞은 때에 더불어 먹겠다는 넉넉한 마음을 가져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내 열매는 예전에도 그랬듯 앞으로도 울퉁불퉁 거뭇거뭇 못생겼을 겁니다. 죽었다 깨나도 말간 얼굴은 될 수 없습니다. 울퉁불퉁하고 온통 노르스름하며 두툼한 껍질, 그것이 내 열매의 참 모습입니다.

 

올 겨울도 나와 함께 건강하길, 내가 지닌 향과 영양으로 몸의 감기는 물론 마음의 감기도 말끔히 치유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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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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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한 살의 김재홍 씨는 왜 옛길을 걷느냐는 물음에는 머뭇거렸지만 꿈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바로 말문을 열었다. 마흔에 길을 걷고부터 세상일에 유순해졌고 사람을 그리워하게 되었으며 꿈이 생겼다. 그의 변화를 듣고 나니 그가 걷고 있는 옛길이 무엇인지 더욱 궁금해졌다.


2000년 김재홍 씨는 아내 송연 씨와 함께 내면의 자유와 행복을 찾기 위해 인도여행을 계획했고 그 전초전으로 동해안 도보여행에 나섰다. 길을 걸으며 우리 땅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고 마침내 옛길 탐사를 시작했다.《대동여지도》,《해동지도》와 같은 옛 지도와 옛 문헌을 사전조사하고 마을에 가서 어르신들의 구술을 받아 옛길의 흔적을 좇았다. 그들이 걸은 길은 영남대로(서울~부산) 950리, 삼남대로(서울~해남) 970리를 포함하여 무려 4천㎞가 넘는다. 2005년에는 옛길을 발굴하고 복원하자는 소박한 마음을 정리한《옛길을 가다》라는 책도 펴냈으며 지금은 경기도 의정부에서 ‘옛길 따라’라는 주막집을 운영하고 있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경흥의 서수라까지 연결했던 옛 경흥대로가 뻗어 있다는 이유로 건물 3층이라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가게 자리를 얻었다. 또한 발로 뛰며 모은 옛 지도와 자료, 그리고 생생한 경험이 담긴 여행기를 인터넷 사이트 ‘자유촌(www.jayuchon.com)’에 올려 옛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과의 교류도 활발히 하고 있다. 겨울의 초입, ‘옛길 따라’에서 김재홍 씨를 만났다.

 

몇 시간을 걷다보니 사람이 그리워졌다.
걷지 않았으면 더 망가졌을 것이다.
덜어내는 법, 핑계대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처음 계획했던 인도에는 다녀왔나. 아니. 우리 옛길을 걷느라 다른 나라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걷기 여행이 유행이다. 원래 도보여행을 즐겼나. 나는 속도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차를 몰고 나가서 부산에서 점심 먹고 목포에서 저녁 먹고 다시 의정부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최대한 속도를 높여 내가 정한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면 그뿐이었다. 인도 배낭여행에 앞서 우리 땅은 제대로 알고 있나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부산하면 떠오르는 게 해운대와 태종대가 고작이더라. 우리 땅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민망한 일이었다. 체력 훈련 겸 우리 땅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자 도보여행을 나서게 되었는데 첫날부터 발에 밤톨만한 물집이 잡혀 이틀 만에 포기하고 돌아와야만 했다. 물집이 아물기를 기다려 목표했던 태안반도만 걷기로 했는데 이 땅의 무엇에 홀렸는지 걸음이 계속 이어져 동해안과 민통선을 거쳐 강화까지 내쳐 걸었다. 하지만 이런 여행으로는 우리 땅을 알았다고 장담할 수 없기에 고민 끝에 옛길이라는 화두를 붙잡게 되었다. 

 

옛길은 어떻게 찾았나.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지지’를 길잡이로 해서 길을 찾는다. 조선시대의 옛길은 지금의 고속도로에 해당하는 길이다. 대동지지에 모두 열 개나 되는 큰길이 경로별로 자세히 적혀 있으나 수십 갈래로 변한 오늘의 길에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옛길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난 그날부터 행복한 고생이 시작되었다. 옛 지도와 문서를 직접 뒤져 자료를 찾았다. 지금은 어디든 가면 지도를 살 수 있지만 2000년도만 해도 경기도 수원에 있는 국립지도원에 가서 신분증을 보여주어야만 5만분의 1 지도를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한문세대가 아니다. 아버지 옥편을 잡고 뒤늦게 한자공부도 했다. 걸어서 보름 걸리는 삼남대로를 준비하는데 석 달이 걸렸다. 지금까지 고산자의 열 개의 길 중 다섯 곳을 다녔다. 옛길은 아직 많이 남아있다. 개발이 안 된 곳일수록,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곳일수록 많이 남아있다.

 

 

걷기에 좋은 길도 있고 그렇지 않은 길도 있겠다. 도보여행에서 가장 기쁠 때가 흙을 밟을 때다. 너른 흙길은 환상적이다. 평소에는 걷지 못하는 이런 흙길이 남아있는 것이 고맙기만 하다. 한여름 찻길, 아스팔트 길은 열기가 대단하다. 지루하고 징그럽다. 짜증나고 불안하다. 어렸을 적에 걸었던 갯벌에 대한 추억이 그리워 처음 도보여행을 서해안으로 잡았는데 여러모로 힘든 길이었다. 해안선이 30% 넘게 사라졌다는 뉴스를 듣긴 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갯벌이 아니라 방조제만 실컷 걷다왔다.
 

길은 쉽게 사라지지도 생겨나지도 않는다. 길이란 사람과 사람을 잇고 마음과 마음을 잇는다. 길이 길을 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동물에게도 그들의 가족과 무리를 잇는 길이 있을 텐데 길을 만든다면서 다른 길을 허투루 끊어도 되는 것인지. 누구든 생명의 길을 가질 권리가 있으니 길을 사람만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잘못이다. 길을 걸으면서 삶의 근거와 정서가 인위적으로 갈라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책에 “옛길을 따라 걷는 것은 옛사람과 함께 가장 원시적인 걸음으로 미래로 향하는 가슴 따뜻한 여행이자 끝이 없는 여행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걷는다는 것, 걸음은 곧 만남이다. 걸으면 내 밖의 세상과도 만날 수가 있다. 더구나 옛길은 옛사람과도 만날 수 있어 더욱 좋다. 길에 얽힌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사람이 있는 곳에 길이 있듯이 조선의 문화와 경제를 이어주던 한양 천릿길을 일제가 어떻게 바꾸며 왜곡했는지 또 자동차에 의해 소멸한 길이 어떻게 부활했는지도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기에 옛길은 살아 숨쉬는 역사박물관이자 미래를 알려주는 예언자이기도 하다. 어렵사리 찾아낸 길에서 나라를 구해낸 이순신 장군의 발자국을 좇는 영광이며, 유배가는 다산 정약용의 탄식을 듣기도 한다. 어사또 이몽룡의 금의환향을 따르기도 한다. 옛길에서 옛사람을 만난다. 고산자 할배, 심청이와도 이야기를 나눈다. 길에 서면 누가 어떤 일로 어떤 아픔과 설움과 기쁨을 가지고 갔는지가 보인다. 또 걸을수록 원시가 미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걷다보니 자동차가 정말 몹쓸 존재인거다. 걷고부터 운전을 하지 않는다. 휴대전화도 안 쓴다.

 

걷고 나서 또 무엇이 달라졌나. 지금은 사람이 곧 길이다, 라고까지 말하지만 처음에는 사람을 피해 걸었다. 현지인들에게 폐를 끼치지 말자는 마음도 있었고 사람이 싫어서이기도 했다. 내가 원래 모가 많이 난 사람이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봐 넘기기가 힘들었다. 헌데 혼자서 몇 시간을 걷다보니 사람이 그리워졌다. 걷지 않았으면 더 망가졌을 것이다. 덜어내는 법, 핑계대지 않는 법을 배웠다. 걸으며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은 어떤 세상도 아니고 그 누구도 아닌 나이자 내 몸뚱이였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여행 중에는 소소한 다툼이 잦다. 부부끼리 의견 충돌도 꽤 있었겠다.
내가 함께 떠나자고 아내를 꼬드겼다. 해안선을 따라 걸을 때는 나 혼자였기에 입에서 곰팡이 냄새가 날 지경이었다. 무척 외로웠다. 그래서 아내 보고 같이 가자고 했다. 우리는 무엇을 정할 때 결정하기까지는 치열하게 고민하지만 한 번 결정하면 무조건 따른다. 함께 옛길을 걷자고 했을 때 아내는 적극적이었지만 생업까지 놓자는 의견에는 반대했다. 그러다가 끝내 결정을 해버리니 그대로 따라주었다. 출발 전 이 여행이 안 해도 될 부부 싸움의 원인이 되지 않을까 싶은 걱정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걷기로 나선 길이었고 걷는 일에 대해서는 나나 아내나 아무 것도 모르니 명령이 아니라 의논을 할 수밖에 없다. 집에서는 없던 의논하는 버릇이 생겼다. 매일 끼니를 고르는 일도 곤혹스러워 나중에는 서로 저녁은 당신이 골라라 그러면서 떠넘기곤 했다. 둘 이상의 여행에서 생각을 하나로 통일하려고 들면 다툼이 일어난다. 매사에 강요하면 안 되더라. 그래도 혼자 다니는 여행은 등 긁어주는 사람도 없는데 서로 위로와 격려가 되었다.(웃음) 

 

책에 짐 꾸리기에 대한 내용도 적어놓았던데 정말 그 정도면 충분할까. 도보여행을 처음 한다면 무엇이 필요하고 필요하지 않은지 알 수 없다. 이럴 때는 필요하다 싶은 것을 모두 싸들고 하루만 다녀보면 답이 절로 나온다. 그 다음 필요치 않은 것을 추려내 우체국을 찾아 집으로 부치면 금방 해결된다. 불안하니까 짐이 늘어나는 거다.  

 

짐 꾸리는 법을 찾듯 꿈도 길에서 찾은 것인가. 물론!(웃음) 2년만 다녀보자 했던 길이었는데 10년이 흘렀다. 길은 하나의 점으로부터 시작한다. 사람이라는 점과 점이 이어지면 마을이 되고, 다시 마을을 이어 마침내 길이 된다. 마치 몸의 핏줄과도 같다. 우리에게는 우리 고유의 길이 있었지만 어느덧 잊혀져가고 사라져 간다. 옛길은 기록해야 한다. 내가 기록하고 있는 지리지로 모든 이들이 옛길을 쉽게 접하고 내 뒤에 걷는 이들이 쉽게 걸었으면 좋겠다. 좀더 자료가 모이고 여유가 생긴다면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옛길학교를 열고 싶다. 우리의 아름다운 옛길과 옛길에 담긴 자연과 문화,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싶다. 당장은 올 겨울에 관동대로를 걸을 예정이다. 옛길에 널린 산딸기를 간식으로 먹을 수 없는 것이 좀 아쉽기는 하지만 15kg의 배낭을 짊어지고 걷기에 겨울은 충분히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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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프랭클린은 에세이 《즐거운 꿈을 꾸는 방법》에서 ‘침대에서 일어나 베개를 툭툭 쳐서 뒤집어 놓고, 이부자리는 적어도 한 스무 번은 탈탈 턴 다음, 침실 문을 활짝 열어 공기를 시원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옷을 벗고 침실 안을 돌아다닌다. 찬 공기가 불쾌해지기 시작할 때 침대 속으로 들어가면 금방 잠이 드는데, 이때의 잠은 달콤하고 기분 좋다.’고 밝히고 있다. 옛 어르신의 별난 습관쯤으로 무심코 들어 넘기기에 그의 조언은 상당히 과학적이다. 개개인의 몸과 마음의 건강상태며 취향은 백양백색이고 숙면을 위한 방법 또한 그만큼 다양하겠지만 다음의 ‘일반적’인 방법들을 알아둔다면 편안한 잠자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잠자기는 거룩한 권리이자 자랑스러운 의무


잠을 잘 자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잠을 인정하고 좋아하는 일이다. 잠자는 행위를 인생의 가장 큰 낭비이고 성공의 적이라 여겨 부끄러워하고 죄책감마저 갖는다면 잠자리에 누워서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고 숙면을 취할 수도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장되어 온 평균 필수 수면시간은 8시간쯤이다. 서양인의 평균 수면시간이 7~8시간인데 반해, 잠에 부정적인 동양인은 6시간이다.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으니 내게 맞는 수면시간을 알아두면 좋다.

 


잠자리 들기 전에 몸과 마음의 릴렉스


잠을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은 스트레스이다. 주말이나 휴일에 늦잠을 자는 이유는 평일 동안 받았던 스트레스와 자극이 줄어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잠들기 한 시간 전에 가벼운 맨손체조나 스트레칭으로 몸의 근육을 풀어주도록 한다. 단, 격한 유산소운동이나 웨이트 트레이닝은 금물이다. 명상도 좋다. 잠들기 30분 전에는 언성을 높이지도 말고 컴퓨터나 TV도 보지 않도록 한다. 이런 행위는 은근히 자극적이어서 뇌를 긴장시킨다.


잠자리에 누웠는데도 20분 동안 잠이 오지 않는다면 일어나 조용히 책을 보거나 하는 편이 낫다. 꼭 자야 한다거나 혹은 덜 자야 한다는 등의 잠에 대한 강박은 잠을 더 멀리 달아나게 한다.

 

 

충분한 햇볕과 깊은 어둠, 옛날 옛적 그대로의 생체리듬


매일 같은 시간에 잠들고 기상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습관을 들이면 뒤척임없이 잠자리에 들 수 있고 알람시계 없이도 눈이 번쩍 떠질 것이다. 원래 인간은 다른 동물들처럼 스케줄표와 알람시계 없이도 거의 같은 시간에 잠이 들고 깨어나는 생명체이다.


생체리듬을 살리기 위해 낮에는 옛날의 인류가 그랬듯 햇볕을 충분히 쬐도록 한다. 밝은 빛에 노출되면 생체시계가 제대로 작동해 야간 수면의 질이 높아진다. 잠자기 두 시간 전에는 밝은 형광등을 끄고 은은한 불빛의 램프를 켜서 생체시계를 잠들기 준비단계로 전환시킨다. 

 

 

몸통은 차갑고 발은 따뜻하게 


체온은 얼마나 빨리 잠드는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 취침 전 샤워나 가벼운 운동을 권하는 이유는 모두 체온과 관련이 있다. 체온이 떨어지면 잠이 잘 온다. 취침 한두 시간 전에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면 체온이 일시적으로 상승했다가 서서히 떨어지는데 이러한 현상은 잠이 잘 드는데 효과적이다. 단, 취침 바로 직전에 오랫동안 너무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찬물 목욕 또한 체온을 올려 잠을 깨운다. 격한 운동도 체온을 지나치게 올린다. 


발을 따뜻하게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잠자기 전 몸통의 체온은 떨어지는 반면 손과 발은 혈관이 팽창하면서 체온이 올라간다. 곧 손발이 따뜻해진 만큼 몸통은 차가워지기 때문에 잠을 잘 자는데 도움이 된다. 손과 발은 몸통보다 1~2℃가 낮지만 잠이 깊어질수록 온도 차이는 줄어 나중에는 전혀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한편 전기장판같이 인위적으로 열을 높여주는 도구는 잠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약간의 체온 상승도 잠을 방해하기에 충분한 요소이다.

 


잠들기 전 만약 꼭 먹어야 한다면 우유를


잠들기 서너 시간 전에 저녁식사를 마쳐 자는 동안 소화기관이 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만약 배가 고파 잠들기 힘들다면 수면을 유도하는 아미노산인 트립토판 성분이 든 우유를 조금 마시는 것이 도움이 된다. 우유는 예로부터 자연 수면제로 불렸다. 달걀, 치즈, 바나나, 콩, 두부 등에도 트립토판 성분이 들었다.
반면 카페인, 알코올, 흡연은 잠을 방해한다. 흥분과 각성 효과가 있는 카페인이 든 초콜릿, 차, 커피, 탄산음료들은 너무 많이 먹지 않도록 하고, 빠른 숙면을 원한다면 오후 중반부터는 아예 마시지 않는 편이 좋다. 술을 마시면 알코올이 혈류 속으로 빠르게 흡수되어 잠이 오지만 후반부의 렘 수면량은 감소한다. 술을 많이 마시면 마실수록 깊이 잠들기 어려워 수면의 질은 떨어진다. 담배 속 니코틴은 일종의 흥분제로 중추신경계를 자극해 잠을 방해한다.    

 

 

오직 ‘잠’만을 위한 담백한 잠자리 풍경


침실에는 베개와 이불, 작은 스탠드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 침실에서는 오직 잠만 자도록 하고 모든 방해 요소를 없애 편안한 수면 환경을 만든다. 인테리어는 소박하고 단순할수록 좋다.

 

소음과 빛, 온도와 습도
최대한 조용히, 강한 조명은 피한다. 낮 동안 활동했던 시각과 청각을 잠재워야 수면 리듬을 되찾을 수 있다. 수면을 촉진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은 어두운 곳에서 잘 분비되고 밝은 곳에서는 분비가 억제된다. 밤에는 빛을 완벽히 차단하고 아침에는 햇살을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소리에 민감하다면 시계도 치워둔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뇌에 수면을 유발하는 최적의 온도는 15~20℃ 정도이다. 침실 온도가 이쯤 되면 몸 중심의 온도가 낮아져 편안하게 잠들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습도는 50%가 적당하다. 환기는 기본이다. 

 

베개와 이불
베개는 너무 높으면 목이 구부정하게 되어 목근육이 긴장 상태에 있기 때문에 깊은 잠에 빠지기 힘들다. 낮거나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그렇다. 목과 머리의 곡선에 꼭 맞는 것으로 각자의 습관, 취향에 맞게 고르면 된다. 이불은 무거우면 자는 사이 몸에 부담을 주니 가볍고 부드러운 것으로 선택한다.

 


잠을 부르는 파란색과 라벤더


파란색은 긴장, 불안감을 가라앉히고 두통, 신경성 고혈압, 불면증, 신경통, 히스테리 등의 치료에 쓰인다. 흰색, 베이지색, 옅은 갈색도 비슷한 효과를 준다.  


천연 아로마 오일을 목욕물이나 잠옷, 베개에 한두 방울 떨어뜨리는 것도 도움이 된다. 라벤더는 예로부터 천연 마취제이자 최면제로 쓰였다. 캐모마일과 일랑일랑도 불면증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향들 외에도 기분과 취향에 맞게 자극적이지 않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향을 찾아 사용하면 된다.     

 


참고도서: 《달콤한 잠의 유혹》(폴 마틴 지음, 베텔스만 코리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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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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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진 골목 안 소문난 칼국수집. 칼국수에 곁들여 나오는 이곳 무생채는 새콤달콤하고 아삭해서 ‘리필’이 필수다. 집에서는 절대로 낼 수 없는 맛. 역시 할머니 손맛이야, 라며 오물거리는 사람들을 향해 할머니가 들려준 맛의 비밀은? “식초도 좀 넣고… 마지막으로 사카린을 꼭 넣어. 아주 조금만 넣으면 돼. 그래도 맛이 나. 많이 넣으면 못써. 너무 달거든. 내가 이렇게 자세히 얘기를 해줘도 집에서 만들면 그 맛이 안 난대. 내가 손맛이 있나봐.” 흐흐… 사카린? 아, 그 사카린?! 정 많은 할머니의 사카린, 엄마의 올리고당, 짐승 아이돌이 선전하는 콜라 속 액상과당, 껌 속 자일리톨, 소주 속 스테비오사이드… 음식 속에 노골적으로 혹은 은밀하게 들어있는 단맛의 정체가 모두 설탕인 것은 아니다. 만약 어떤 이유로 단맛을 멀리하고자 한다면 단맛에 씌워진 가면들도 낱낱이 익혀두어야 한다.

옛날 옛적 천연의 달콤한 영양 덩어리 꿀에서부터 비롯된 단맛의 역사는 지독하게 달기만 한, 난해한 화학기호 덩어리 인공감미료로까지 진화(혹은 퇴보)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식품첨가물 용어집 용어 설명에 의하면 감미료는 ‘식품에 단맛을 부여하는 식품첨가물’이라고 되어 있다. 전 세계에는 6천여 가지의 감미료가 존재한다. 감미료는 원료가 어디서 왔는지에 따라 자연에서 얻어진 천연감미료와 화학적 기술을 이용해 얻어진 인공감미료(정식 명칭은 화학적 합성품), 가공 과정에서의 정제 여부에 따라 정제당과 비정제당, 탄수화물계냐 아니냐에 따라 탄수화물계 감미료(설탕 등)와 당뇨병 환자들이 주로 섭취하는 당알코올계 감미료(자일리톨 등), 체내에서 단백질처럼 소화 흡수되는 아미노산계(아스파탐 등) 같은 비탄수화물계 감미료, 설탕을 기준으로 한 단맛의 정도에 따라 저감미 감미료와 고감미 감미료, 영양성분을 지니고 있는지에 따라 영양적 감미료와 비영양적 감미료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꿀이나 설탕 같은 천연감미료는 대부분 영양적 감미료로, 먹으면 체내에서 대사되어 에너지를 만든다. 화학적 합성품인 인공감미료는 대부분 비영양적 감미료다. 비정제당에는 꿀, 엿, 조청, 비정제 설탕 등이, 정제당에는 정제 설탕(백설탕, 황설탕, 흑설탕), 물엿, 올리고당, 액상과당 등이 있다. 정제당은 사탕수수, 사탕무와 옥수수 전분 등이 원료인 천연감미료이지만 꽤 길고 복잡한 정제 과정을 통해 단맛만 빼낸 것이기 때문에 영양은 거의 없고 단맛만 있다는 점에서 인공감미료와 닮았다.




천연감미료에는 꿀과 사탕수수(무)로 만든 설탕, 곡식으로 만드는 엿, 뿌리에서 단맛이 나는 식물인 감초 외에도 당류인 포도당, 과당, 이성화당, 젖당 등이 있다. 인류가 맛본 최초의 단맛은 꿀이나 과일 같은 식물의 열매였을 것이다. 꿀이 얼마나 귀했는고 하니 일본의 옛 문헌에 따르면 백제의 왕자가 일본에 와서 직접 양봉을 가르쳤고, 《삼국사기》에는 신라 신문왕이 왕비를 맞을 적에 보낸 폐백에 꿀이 들어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꿀과 과일을 대신해 인간의 단맛 욕구를 충족시켜준 것이 엿과 설탕이다. 서양이 사탕수수(무)에서 설탕을 얻기 위해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전락시키고 사탕수수 즙을 끓이기 위해 나무를 마구 벌목해 숲을 파괴한데 반해 동양의 엿은 그 생산과정이 비교적 소박하고 평화롭다.

엿은 밥(곡식)에 엿기름물을 섞어 약한 불에서 오래도록 뭉근하게 고아(당화) 졸인 것이다. 엿기름은 보리에 물을 부어 싹을 틔운(발아) 다음 말려 가루를 낸 것이다. 싹이 틀 때 생긴 아밀라아제라는 효소는 쌀의 전분과 반응하여 전분을 제일 작은 분자(단당류)로 쪼개어 달게 변화(당화)하도록 만든다. 밥이 몸속으로 들어가면 포도당으로 분해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엿의 원료는 찹쌀, 멥쌀, 보리, 조, 수수, 옥수수, 고구마 등 전분이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친환경 식품을 만드는 곳에서는 보리, 멥쌀, 찹쌀을 주로 쓰지만 보통 식품업체들은 값싼 옥수수가 대세다. 엿기름 대신
미생물에서 대량으로 뽑아낸 효소(아밀라아제)를 당화의 원료로 쓰는 곳도 늘고 있다.

굳은 형태로 되어 있는 엿을 과자처럼 먹었다면, 묽게 고아서 굳지 않은 엿인 조청은 설탕처럼 음식에 들어가 단맛을 내는 감미료의 역할을 담당했다. 짙은 갈색으로 설탕처럼 정제나 표백과정을 거치지 않아 각종 영양성분이 살아 있고 단맛이 온화한 것이 특징이다. 단맛이 조금 무겁고 음식의 색이 어두워지는 단점이 있지만 조림이나 고기를 재울 때 넣으면 윤기를 더해주고, 무침이나 볶음 요리를 만들 때 맨 나중에 조금 넣으면 오래 두고 먹어도 풍미와 빛깔이 유지된다.

조청은 묽은 엿이라는 의미에서 물엿이라고도 불리지만 현재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물엿과  조청은 엄연히 다르다. 조청을 닮은 물엿 옆에는 요리당, 올리고당들도 나란히 놓여 있다.

묽은 엿의 형태(물엿)인 전통적인 ‘조청’과 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물엿’ 제품의 가장 큰 차이는 원료와 묽기, 정제 여부다. 조청은 대개 쌀 등의 곡식으로 만드는데 비해 ‘물엿’은 값싼 옥수수 전분으로 만들고 있다. ‘조청물엿’이라는 애매모호한 이름으로 유통되는 제품의 원료 역시 100% 옥수수이다.

제조과정으로 보면 원래 물엿은 조청의 전 단계로 물엿을 조금 더 오래 졸이면 조청이 되는 것이지만 시중의 물엿은 잘 굳고 끈적임이 심한 조청보다 농도가 묽어 사용이 간편하고, 표백이나 정제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색이 맑고 투명해 음식에 넣어도 음식 본래의 색이 그대로 유지된다. 볶음이나 구이, 무침 요리를 할 때 마지막에 넣으면 윤기가 나고 깔끔한 단맛을 더할 수 있어 많이 쓰인다. 과자회사들도 설탕 다음으로 물엿을 많이 쓴다.

요리당은 주재료가 설탕의 원료이다. 제품에 따라 올리고당이나 물엿이 더 들어가기도 하고 캐러멜 색소를 섞어 진한 색을 내기도 한다. 맑은 갈색으로 조청과 물엿보다는 달고 농도가 묽어 두루두루 사용하기 편한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물엿이나 올리고당에 비해 뒷맛이 개운하지 않고 음식에 넣었을 때 윤기도 덜하다. 역시 정제과정을 거친 정제당이다.

올리고당은 설탕보다 덜 달다는 단점을 ‘건강한 단맛’으로 내세우며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감미료 중 하나다. 부엌에서의 쓰임이나 효능도 설탕, 조청, 물엿, 요리당을 아우른다. 식품회사에서도 앞 다투어 커피에 넣는 커피용 올리고당, 잼이나 시럽 대신 발라먹고 섞어먹는 어린이용 올리고당까지 내놓고 있다. 올리고당은 과자, 음료, 심지어 분유에도 들어있다. ‘섬유질과 영양분이 제거된 칼로리 덩어리’로 지탄받고 있는 설탕을 대신해 올리고당은 칼로리가 낮고 체내에서 수용성 식이섬유와 같은 작용을 한다는 점을 내세운다. 프락토 올리고당의 경우 비피더스 유산균의 먹이가 되어 균을 증식시킨다는 점도 올리고당의 이름값을 높이는 데 한 몫한다. 올리고당은 체내에서 소화효소에 반응하지 않는다. 소화 흡수율이 떨어진다. 올리고당을 저칼로리 식품으로 광고할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섭취가 더디면 혈당치도 덜 올리고 충치도 만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올리고당은 과연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무결점 단맛일까. 프락토 올리고당의 원료는 아이러니하게도 원당이고 이소말토 올리고당은 간혹 쌀이거나 역시 옥수수다. 이들은 모두 소화가 되지 않는 탄수화물 덩어리일 뿐 비타민이나 미네랄 같은 영양성분은 전무한 정제당이다.

올리고당은 양파, 우엉, 마늘 등에도 들었지만 그 양이 극히 적어 우리 몸이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사람의 몸속에서 가까스로 만들어지는  올리고당이 인위적으로 갑자기 듬뿍 들어오면 탈이 날 수밖에 없다. 올리고당을 과량 섭취했을 때 소화가 잘 되지 않거나 설사가 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식품학자들이 챙겨먹으라고 권하지도 않고, 효능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올리고당을 고집할 요량이면 올리고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제품들이 정말 ‘순수’ 올리고당인지 따져봐야 한다. 다른 값싼 당류가 더 많이 들어간 경우도 꽤 있다. 또 설탕보다 단맛이 덜해 자칫 지나치게 많은 양을 섭취하고도 덜 달게 먹었다고 착각하며 내심 흐뭇해할 수 있으니 먹는 동안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원료들이 수입해온 원당이나 옥수수 등인 점도 생각해볼 대목이다.

설탕을 대신해 소비자에게 인기 있는 정제당이 올리고당이라면, 가공식품 회사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정제당은 액상과당이다. 거의 대부분의 음료에 액상과당이 들어간다. 

과당은 과일 속에 많이 들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당류 중 가장 달고, 차가울수록 단맛이 더 강해진다. 첫맛은 상쾌하고 뒷맛은 깔끔하다. 결정 혹은 액상 형태로 팔리고 있는데 결정과당(꿀이나 과일에서 추출한 순수과당)은 우리가 직접 살 수 있지만 액상과당은 주로 가공식품 업체에 팔린다.

이쯤 보면 설탕의 대체당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어 보이지만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의 저자 안병수 씨는 그의 책에서 ‘설탕보다 더 해롭다’고 단언한다. 과일이나 꿀이 아닌 옥수수에서 뽑아낸(또 옥수수!) 액상과당(HFCS: High Fructose Corn Syrup: 고과당 옥수수 시럽)은 설탕보다 6배쯤 더 달면서도 값은 훨씬 싸다. 액상과당은 식욕억제호르몬 분비를 줄이기 때문에 액상과당이 든 음식을 먹으면 배부른 것을 잘 느끼지 못해 과식을 하게 된다. 설탕이 든 콜라를 한 번에 많이 마시는 건 한계가 있지만, 액상과당이 든 콜라는 훨씬 많은 양을 마실 수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먹고 싶어진다. 액상과당 섭취량과 비만율이 거의 동일하게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최근에는 술을 마시지 않아도 간에 지방이 쌓이게 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액상과당이 눈총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옥수수에서 뽑아낸 전분당이기 때문이다. 옥수수는 콩과 함께 세계에서 유전자 조작이 가장 많이 되고 있는 식품 가운데 하나다. 액상과당은 과자, 빵,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주스, 드링크제 등 거의 모든 가공식품에 들어간다. 고과당 액상과당, 고과당시럽, 고순도과당, 옥수수시럽, 과당 함유 포도당 시럽은 모두 액상과당을 이르는 말이다. 간혹 물엿이라고 표기되는 경우도 있다.

정제당에 대한 반성이 일면서 비정제 설탕과 천연감미료에 대한 관심도 부쩍 늘었다.

메이플 시럽, 아가베 시럽, 꿀가루 등의 천연감미료로는 가공 과정이 비교적 단순해 정제당에 비해 영양이 살아있다. 메이플 시럽은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먹었다는 단풍나무 수액을 원료로 한 것이다. 꿀가루는 꿀을 건조시켜 만든 것으로 천연감미료, 설탕보다 조금 낮은 칼로리, 알칼리성 식품으로 선전되지만 꿀 외에 다른 당류가 섞인 경우도 있으니 꼼꼼히 살펴야 한다. 멕시코에서 나는 아가베 선인장(용설란의 일종)에서 추출한 아가베 시럽도 인기다. 설탕보다 달지만 칼로리며 당지수가 낮아 당뇨병 환자들도 이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당이 70~90%에 달해 역시 주의가 필요하다. 과당은 포도당처럼 혈당을 급격하게 올리지는 않지만 지나치면 간에 지방이 쌓이게 할 수 있다.

언젠가부터 ‘천연감미료를 사용한 웰빙식품’이란 홍보문구 아래 자일리톨이 든 껌, 스테비오사이드가 든 소주, 에리스리톨이 든 커피믹스도 등장했다.

소주에 들어가 단맛을 내는 스테비오사이드(Stevioside)는 국화과 식물인 스테비아 잎에서 얻어지며 설탕보다 300배 강한 단맛을 낸다. 남아메리카 파라과이 주변이 원산지로 이곳 원주민들이 400년 이상 사용해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일본은 1970년대에 세계 최초로 스테비아 잎에서 쓴맛을 빼고 단맛만 나는 스테비오사이드를 추출하는 화학적인 방법을 알아내고 30년 이상 감미료로 사용해오고 있다. 하지만 스테비오사이드의 안전성에 대한 의견은 아직 어지럽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러시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호주, 뉴질랜드 등지에서는 허용되어 사용되고 있으나 미국에서는 식품원료가 아닌 식이보조제로 허용하고 있으며, 유럽연합에서는 허가를 보류한 상태다. 실험에서 매우 낮기는 하지만 급성 독성이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음료, 술 등에 사용되고 있다. 청량음료, 커피, 홍차는 물론 어묵이나 소시지, 건어물에도 들어간다. 간장에도 넣어 구수한 맛을 더 한다. 인체에서 대사되지 않고 그대로 배출되기에(한편에서는 체내에서 분해되어 해로운 물질로 바뀐다는 의견도 있다) 아이스크림이나 빙과류에 설탕 대신 넣어 칼로리는 줄이고 청량감을 높인다.
 
청량감을 내는 당알코올의 일종인 자일리톨(Xylitol)은 자일로스라는 천연 당류에 수소첨가 반응을 시켜서 얻는다. 식품위생법에서는 자일로스를 화학첨가물로 분류한다. 자일리톨은 충치 예방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일리톨을 먹지 않는 충치균은 번식을 할 수 없고 결국 굶어(?) 죽는다. 몸속에서 정상적으로 대사되지 않는 것도 우리 몸이 자일리톨이라는 물질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칼로리는 낮지만 많이 먹으면 설사가 날 수도 있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 커피믹스에 설탕 대신 들어가 ‘칼로리는 반으로 커피 맛은 그대로’ 유지시켜 준다는 에리스리톨(Erythritol), 1일 섭취 허용량이 특별히 제한되어 있지는 않지만 유기가공식품에는 사용할 수 없는 소르비톨(D-Sorbitol)을 비롯해 이노시톨, 말티톨, 만니톨, 락티톨, 이소말트 등 자일리톨과 같은 당알코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과량 섭취 시 설사를 유발할 수 있다.

인공감미료는 ‘단맛이 나는 화학적 합성품’으로 합성감미료, (설탕을 대신한) 대체감미료로도 불린다. 대부분의 인공감미료는 고감도 저칼로리 감미료로 뇌를 자극해 설탕의 수백 배나 되는 강한 단맛을 느끼게 하지만 영양소는 제로에 가까워 주로 당뇨병 환자와 비만 환자용으로 이용되었다. 인공감미료는 식품포장지에 용도와 명칭(예를 들어 합성감미료(수크랄로스))이 표시된다.

인류 최초의 인공감미료는 로마인이 만든 사파(Sapa)였다. 당시 포도주는 신맛이 무척 강했기 때문에 제조업자들은 포도주에 단맛 나는 사파를 넣어 팔았다. 사파는 포도주스를 납주전자에 넣고 거의 말라붙을 때까지 졸여 만든 것으로 주성분이 아세트산납이라는 독성이 강한 중금속 화합물이다. 사파에서 비롯된 납중독은 정신 불안증과 불임 등을 불러 왔고 결국 이것이 로마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인공감미료는 처음부터 식품첨가물로 연구·개발되기보다는 화학자들이 다른 연구 도중 우연히 발견한 경우가 많다. 현대의 인공감미료들이 갖는 공통점은 대개 이렇다. 첫째, 설탕과 같은 무색무취의 가루이거나 가루에 가깝다. 그래야 운반, 보관, 사용이 간편하다. 꿀이 가공식품에 좀 더 적극적으로 쓰이지 못한 것은 값도 값이려니와 꿀 고유의 빛깔과 맛, 향이 있고 액상형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둘째, 지독하게 달다. 달면 달수록 좋다. 단맛이 강할수록 아주 조금만 넣어도 되니 제품 원가를 줄일 수 있고 칼로리도 최대한 낮출 수 있다. 셋째, 그저 달기만 하다. 어느 식품에나 두루 넣으려면 자칫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영양 성분은 모조리 사라지고 오직 단맛만 있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맛이 중립적”이라고 표현한다. 넷째, 소화 흡수가 되지 않고 그대로 몸 밖으로 배출되어 칼로리가 거의 없다. 당뇨병과 체중 감량을 평생의 숙제로 삼고 있는 현대인들의 요구에 맞춘 것이다.

인공감미료의 유해성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에 세계보건기구는 지난 2006년 국제 식품첨가물전문가위원회를 열어 그때까지의 연구 결과들을 모두 재검토한 뒤 식품첨가물로 안전하다,고 공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분자니까 괜찮다’는 가공식품 회사와 ‘한 분자라도 해롭다’는 학자들의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참고자료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안병수, 국일미디어), 《설탕》(박은주, 김영사), 《인간이 만든 위대한 속임수 식품첨가물》(아베 쓰카사, 국일미디어), 《독소: 죽음을 부르는 만찬 : 질병을 키우는 모든 음식에 관한 충격보고서》(윌리엄 레이몽, 랜덤하우스), 《비만의 제국》(그렉 크리처, 한스미디어) 《식품진단서》(조 슈워츠, 바다출판사), 《탄수화물 중독증》(잭 컬럼, 북라인), 식품의약안전청 식품첨가물 정보망(fa.kfd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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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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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태평. 얼마나 좋은 말인가!
아뿔싸 태평농업에 혹했던 나는….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치지 않고 잡초도 뽑지 않고 그저 씨 뿌리고 자연이 주는 만큼만 거두는 태평농법 이야기를 내가 처음 알게 된 것은 십년 쯤 전 어느 신문기사에서였는데, 일단‘멋진’단어에 혹했고 태평하니 더 잘되더라는 꿈같은 철학의 실현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며칠 동안 직장에서 우리도 태평 마인드를 갖자는 생뚱맞은 얘기를 하고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 좀 놀고먹자는 이야기의 변형이었던 것 같다.

그 뒤 조그만 출판사를 차려 몇 권의 생태 환경 책도 내게 된 이유로 열성 생협 조합원인 아내를 따라 귀농운동본부 벽제농장에서 주말농사를 시작했다. 사실 처음부터 그리 태평하지는 못했다. 상추며 오이며 풋고추며 이것저것 따먹는 재미를 단단히 들인 아내가 뻔질나게 나를 끌고 농장에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마음속에 슬슬 불평이 일었다. 도대체 고생스럽기만 하고 기름값도 안 나오는 이런 일을 위해 태평스럽게 지내야할 주말의 하루를 꼬박 바쳐야 하는 것인지.


여하튼 그렇게 일 년을 했는데 주변에 주말농장 한다고 소문이 나서 우리 부부가 뭐 좀 안다고 여겼는지 어떤 지인이 서울 외곽 서오능 근처 자기 땅을 내줄테니 한번 지어보라고 했다. 찾아가보니 한 300여 평 되는데 웬만한 운동장보다 더 넓다. 걱정도 좀 됐지만 욕심도 좀 생겼다. 아는 사람들을 모아 좀 더 크게 지으면 더 적은 노동에 더 많은 수확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일단 감언이설로 열 가족을 모았으니 그 면에서는 나름대로 성공했다. 몇 가지 운영방침도 정했는데, 감자, 고구마, 옥수수, 호박 같은 작물은 네 것 내 것 없이 집단농장식으로 가꿔 공동분배하기로 하고 나머지는 각자 원하는 만큼 쓰도록 했으며, 그러고도 남는 나머지 땅은 윤작을 핑계로 그냥 방치하기로 했다.

 



그렇게 뚝딱뚝딱 농장을 만들고 땅을 배분하고 감자를 심고 채소 씨를 뿌리고 고추와 옥수수, 호박 모종을 심었는데, 봄까지는 별다른 무리 없이 착착 진행되었다. 문제는 고구마를 심고 난 후 장마를 끼는 여름부터였다. 농사 지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삼복더위에 그늘 한 점 없는 밭 한가운데 땀으로 목욕하면서 풀잡는 작업의 어려움을. 꾀가 생긴 몇 가족은 농사를 포기하다시피 했고 그들이 포기한 밭에 무성히 자란 잡초가 얼마나 우거졌는지 허리만큼 자란 풀숲 사이를 걸으면 뙤약볕에도 바지가랑이가 축축해진다. 거기에 더해 산모기 떼들은 대낮에도 맹렬하게 살갗을 물고, 온갖 벌들은 서식지를 침범하는 우리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특히 아이를 둔 가족들은 질색을 하며 점점 오는 횟수가 줄다가 급기야 농사 중단을 선언했다. 덕분에 가을 농사는 서너 가구의 힘으로 겨우겨우 무와 배추 몇 개, 고구마 몇 킬로그램, 늙은 호박 열 덩이 정도의 수확에 만족해야 했다. 결과는 참담했지만 그래도 모두들 자족하는 분위기여서 다행이었다. 다음 해에도 규모는 대폭 줄어 서너 가족이 모여서 농장을 가꿨으나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주말농장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 전라도 영암에 계셨던 아버지가 병을 얻어 서울로 오셔서 요양해야만 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남은 빈 집과 딸린 300여 평의 밭이 문제였다. 직접 경작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공시지가의 20퍼센트나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네에 살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니 공시지가보다도 한참 낮은 가격에 팔든지 말든지 하라는 식이다. 아버지의 유일한 재산을 그렇게 처분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예 마음먹고 귀농하자니 다 자란 후로는 서울에만 살았던 나로서는 마음의 준비도, 땅도 턱없이 부족했다.
 

여러 생각을 하다가 태평농법에 다시 한 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꽂아두면 끝’이라는 고구마로 승부를 걸었다. 옆집에 물어보니 아무리 못 지어도 평당 5킬로그램은 나온단다. 고구마 5킬로그램 한 상자에 만 원만 잡아도 300평 곱하기 1만 원이면 300만 원이다! 어차피 일 년에 몇 번은 가야할 곳이니 여비를 빼고도 상당히 남을 것 같다. 단순하게 생각하자. 어차피 나의 태평농사법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과 같이 3단계. 모종 심고, 풀 뽑고, 가을에는 수확이다!


그 후? 5월에 모종 심는 데만 꼬박 일주일 걸렸다. 요즘 인기가 좋다고 해서 호박고구마를 비닐 멀칭하고 심었는데 모종만 1천500포기 들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자 문제가 생겼다. 모종이 비실비실 말라죽는 것이다. 원래 호박고구마는 약해서 모종 후 비닐멀칭을 하고 그 속에 일주일 정도 두었다가 잎을 꺼내줘야, 비닐 안 머금은 습기로 뿌리가 자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때늦게 이웃들에게 들었지만, 본업이 이미 일주일이나 중단됐는데 더 머물 수는 없었다. 고구마의 생명력만 믿고 잘 자라겠지 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6월에 내려와 보니 심어둔 모종의 태반은 사라진 것 같다. 다시 심는 방법도 있다지만 그러려면 또 그만큼 머물러야 하니 포기하고 대충 김매기만 해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문제는 장마였다. 작년에는 장마가 유독 끊기질 않아, 빗길을 뚫고 내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7월은 그냥 보내고 다들 휴가를 떠나는 시기에 내려갔는데, 밭은 눈을 의심해야 하는 지경이었다. 얼룩말이 나타나도 어색하지 않을 사바나 초원이랄까, 풀이 거의 밀림처럼 그득했고 뒷집 닭들이 무슨 먹을게 많은지 익숙하게 드나들고 있었다.


한 1시간쯤 풀을 뽑았나 했는데 한 5미터 정도밖에 전진하지 못한다. 이제 오기가 생겨서 서울의 생업은 아예 잊어버리고 풀을 잡기로 해. 또 일주일을 골만 탔다. 그래도 그렇게 하니 나의 꿈을 담은 고구마 줄기들이 하나둘씩 보인다. 잎사귀가 노래서 포기했는데 끈질기게 살아난 놈들도 간혹 보인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한 마디 한다.“오매 고구마가 징글징글하게 산당께. 그래도 연적 살아있오잉”


가을에 수확하러 갔다. 풀은 제풀에 그야말로 풀이 죽어서 누렇게 뜨고, 아직 파릇한 것은 고구마 줄기와 잎이다. 그래도 살아남은 고구마 줄기가 보인다. 남들은 절반은 버릴 각오하고 트랙터로 캔다는데 고구마 하나하나가 아쉬운 우리가 그럴 수는 없고 그냥 삼지창 들고 죽을둥 살둥 쑤셔댔다.


다 캐니 서른상자가 나왔다. 10평에 한 상자. 아까워서 팔 마음이 저리 사라지고 말았다. 10만원 준다해도 안 팔 우리의 금(?)고구마를 아예 그냥 나눠주기로 했다. 친척들과 지인들한테 나눠줬더니, 왜 그런 짓을 사서 하냐면서 걱정하던 사람들이 좋아라하며 웃는다.


봄이 오면 나는 고구마 소동은 올해도 벌일 것이고, 도시 근교에서는 많은 주말농장 가족들이 서투르게 씨를 뿌리며 웃을 것이다.
태평은 정녕 어려우니 부디 기쁨을 얻는 이상은 바라지 말길.


텃밭을 사랑하는 자는 자기만의 에덴동산에서
영원한 즐거움을 심고 충실한 수확을 거두어들인다.
에이머스 브론슨 올코트


자신의 작은 땅덩어리에서 곡괭이질을 하고,
씨앗을 심어 소생하는 생명을 지켜보는 것,
이것이 인류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평범한 기쁨이자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만족스러운 일이다.
찰스 더들리 워너, 밭에서 보내는 나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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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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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교육이야기가 아니라 살림이야기?
살림도 교육이지요.
교육이 있어야 살림도 살아나니까요^^

무쇠 팬

‘눌어붙지 않아요.’라던 코팅 팬의 마법은 결국 풀리게 마련이다. 도도하게 빛나던 검정 코팅 속에 감춰진 허연 알루미늄 덩어리를 목격하고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드디어 바꿀 결심이 선 어느 날 밀려든 후회와 반성. “그동안 참 많이도 먹었구나…” 팬에 곱게 코팅되어 있던 갖가지 화학물질들의 최종 정착지는 나와 내 가족의 몸속일 게다. 가공식품이 그렇듯 조리도구 또한 인간의 간섭이 많아질수록 논란의 여지는 커진다. 녹슬지 않고 음식이 눌어붙지 않게 하기 위해 등장한 강력한 코팅은 환경호르몬에 대한 걱정도 함께 선사했다. 무쇠 팬이며 스테인리스스틸 팬(이하 스텐 팬)이 건강에도 좋고 환경에도 이롭다는 사실을 왜 모르겠냐마는 까다로운(이라기보다 까다롭다고 알려진) 사용법에는 겁부터 난다. 맨얼굴의 무쇠 팬을 사용하려면 ‘길들이기’와 ‘녹’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만 하고, 스텐 팬은 ‘예열’과 ‘불 조절’을 위한 섬세한 감각을 연마해야 한다. 사용자의 역량에 따라 결과물은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정말, 과연 그럴까? 무쇠 팬, 스텐 팬으로 ‘춤추듯 미끄러지는 온전한 형태의 달걀프라이’를 부쳐내는 그녀들에게서 솔직한 사용기를 들어본다. 선택의 갈림길에 서있는 이들에게 그녀들이 전하는 공통된 충고는 한 가지. “코팅 팬 쓰던 습관만 버리면 이만큼 좋은 팬이 없어요.” 당장의 편리를 탐하던 얕은 마음을 떨쳐버린다면 건강은 물론이거니와 ‘대를 물릴 수 있는 나만의 팬’을 품에 안을 수 있다.  

스테인리스 팬

 



무쇠와 스테인리스라는 것
인류가 무쇠와 함께 해온 역사는 1천 년이 넘는다. 무쇠는 철광석에서 직접 제조되는 철의 일종이다. 무쇠 팬은 1천400℃ 이상의 용광로에서 용해과정을 거친 쇳물을 거푸집에 부어 식혀 만든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흘러나온 무쇠 팬의 철 성분은 음식 맛을 좋게 하고 인체의 조혈기능을 돕는다. 선철(우리나라 선철은 거의 포스코에서 만들어진다)은 중금속 오염 걱정이 없지만 간혹 값싼 잡철로 만들어진 것이나 저가의 중국산 제품은 중금속이 들어있을 수 있으니 꼼꼼히 살펴야 한다. 스테인리스의 주성분은 무쇠와 같은 철이지만 무쇠와는 달리 철 외에 크롬과 니켈이 포함되어 있다. 크롬은 스테인리스의 표면에 얇고 균일한 막을 만들어 철이 산소와 반응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래서 산성 및 염기성 물질에 안전하며 물에 닿아도 녹슬지 않아 실용적이다. 스텐 팬(뿐 아니라 부엌에서 사용되는 거의 모든 스테인리스 조리도구)은 대부분 304재질이다. 스테인리스에 크롬 18%와 니켈 8~10%를 섞은 것으로 조리도구로 쓰기에 가장 안전한 성분 비율로 되어 있다. 스텐 팬에 새겨져 있는 ‘STS304’ ‘18-10’ ‘18-8’ ‘27종’이라는 표시는 모두 304재질을 뜻한다. 간혹 스테인리스 강종 표기가 없거나 ‘201’이라고 적힌 제품은 니켈 함량이 낮아 녹이 슬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내가 직접 만드는 명품, 무쇠팬
곽현숙 주부 13년차

● 왜?_ 심한 빈혈로 힘들어하는 남편을 위해서였어요. 옛 어른들 말씀이 떠올라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솥이며 팬을 모두 무쇠로 바꾼 지 1년 반이 지나자 신기하게도 건강검진에서 빈혈수치가 정상으로 나오더군요. 그 후 특히 어린 아이가 있는 집에는 적극 추천해요. 성장기 아이들에게 철분 섭취는 정말 중요하니까요.
● 좋은 점?_  무쇠제품 중 가장 간단히 길들일 수 있는 게 바로 무쇠 팬이에요. 부치고 볶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기름으로 코팅이 되면서 길이 들거든요. 코팅 팬처럼 조심해서 다루지 않아도 되고 자연 코팅이라 벗겨질 염려가 없으니 안전하죠. 생선이나 고기도 일반 전용 팬에서 구웠을 때보다 특유의 누린내 없이 담백하게 구워지고요. 쓰면 쓸수록 팬에서 윤이 나고 음식도 점점 더 맛있게 만들어지니 고마운 마음까지 들어요.(웃음)   
사용법?_  팬에 기름을 두른 후 중불에 올려 기름이 동글동글한 모양으로 퍼지면 음식 재료를 넣으세요.
그 다음 재료에 따라 예를 들어, 부침개는 중불에서 부쳐내고 버섯은 약불에서 볶아내면 돼요. 예열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다리는 것’이에요. 처음엔 이 시간이 길게 느껴지겠지만 무쇠의 성질을 알고 익숙해지면 음식에 따라 예열의 정도를 가늠하는 감이 늘어요. 더디게 달아올라 꾸준한 열기를 이어가다 찬찬히 식어가는 무쇠 팬을 쓸 때는 불을 세게 하지 않는 것이 요리를 잘 할 수 있는 노하우랍니다. 열전도율이 좋아 센불을 쓸 일이 없어서인지 무쇠로 바꾸고 나서 가스비가 줄었어요. 기름 사용량도 훨씬 줄었고요.
● 기름때?_  팬에 음식이 눌어붙었다면 물을 부어 불린 다음 숟가락으로 긁어내면 돼요. 구입 후 서너 번쯤은 물기를 닦은 다음 가스 불에서 살짝 말려주는 것이 좋고요. 무쇠 팬은 설거지가 정말 간편해요. 물로 살짝 헹궈주면 되죠. 기름이 조금 많다 싶으면 물을 붓고 살짝 끓여내면 되고요. 생선이나 고기 요리를 했을 때는 귤껍질이나 레몬껍질로 닦아내거나 식초를 한두 방울 푼 물로 헹궈내면 냄새 걱정이 없어요. 세제는 사용하지 않아요. 
● 단점?_  녹이 난다는 것인데 이 부분은 장점이기도 한 것 같아요. 잘못해서 녹이 나면 철 수세미로 녹을 벗겨 낸 다음 다시 길들이기 과정을 거치면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거든요. 아무래도 번거로운 점은 물기 있는 음식을 담아두면 녹이 생기니까 다른 용기로 옮겨 담아 보관해야 한다는 거겠죠? 저처럼 몇 년 동안 사용하면 녹 걱정 따위 안 해도 되지만 처음 사용하시는 분들은 좀 불편하게 여길 수도 있겠어요.
● ‘강추’ 이 음식_ 피자죠! 무쇠 팬에 피자 도우를 올려 오븐에서 구우면 이루 말할 수 없이 담백하고 고소해요. 우리 아이는 일반 팬에 구워준 피자와 확실히 구별해요. 바삭함이 다르다나요.(웃음)
● 선택은 어떻게?_ 9년 전 사흘 동안 인터넷을 검색해서 구입했어요. 무쇠 제품을 파는 곳은 많은데 원료인 철에 차이가 있더라고요. 여러 종류의 철(잡철)을 녹여 만드는 곳도 있으니 조심하셔야 해요. 팬은 물론 밥솥이며 국솥까지 모두 무쇠로 된 것을 사려다보니 처음엔 인지도가 낮은 국산 제품을 선택하기가 무척 망설여졌지만, 운틴가마는 선철을 쓰고 마감도 탁월한데다 3대째 무쇠 제품을 만드는 곳이어서 믿음이 갔어요. 무쇠를 처음 구입하는 분이라면 무쇠 프라이팬을 권해 드려요. 가격은 일반 코팅 팬 가격이고요, 가스레인지와 인덕션에서 모두 사용할 수 있어요. 가끔 우리나라 무쇠제품 길들이기는 귀찮아하면서 고가의 수입 제품들은 애지중지하며 길들이는 과정도 자랑스러워하는 이들을 봐요. 다 같은 무쇠인데 왜 대접이 다른가 싶어 씁쓸하죠. 우리나라 제품이 값도 정직하고 애프터서비스도 확실하니 국내에서 만들어진 걸로 고르시면 좋겠어요. 참, 선철로 만든 것인지 꼭 확인하시고요.  


 스테인리스 팬
처음 느낌 그대로, 스테인리스 팬 
전지현 주부 12년차, <스텐 팬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모임> 운영자(cafe.naver.com/jaynjoy)
● 왜?_ 엄마 부엌에서 늘 봐왔던 거라 제가 주부가 되었을 때도 자연히 가장 익숙한 소재였어요. 헌데 스테인리스 말고 팬 소재로 달리 떠올릴만한 것이 있나요?(웃음)
● 좋은 점?_  일단 무척 위생적이에요. 팬에 양념이나 냄새가 스며들지 않으니까요. 설거지도 정말 쉽죠. 바로 닦이지 않는 음식 찌꺼기도 잠시 물에 불려 놓으면 깨끗이 닦이고요. 태워도 박박 문질러 씻으면 말끔해지니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 그 다음은 경제성이에요. 녹이 나거나 코팅재가 벗겨지는 일이 없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답니다. 열전도율이 높아 음식을 빠른 시간 안에 만들 수 있고, 기름을 흡수하는 코팅재가 발라져 있지 않으니 기름을 적게 사용한다는 것도 큰 매력이이에요.
● 사용법?_  많은 이들이 무쇠처럼 길들이려고 하는데 스텐 팬은 길들일 필요가 없어요. 대신 사용자가 스텐 팬 사용법에 길이 들어야죠. 팬이 열을 받아 일정 온도 이상으로 골고루 뜨거워지고 여기에 기름까지 충분히 예열, 밀착되어 있으면 코팅 팬에서보다 더 눌어붙지 않아요. 일반적인 예열법은 이래요. 팬을 약불 혹은 중불에서 달구세요. 손바닥으로 후끈한 열기가 느껴지면 기름을 넣고요. 기름이 적당한 온도로 뜨거워지면 아주 적은 양으로도 얇게 쫙 퍼져요. 기름이 물결 모양이 되면 부치거나 볶기에 적당한 온도랍니다.
● 기름때?_  베이킹소다와 식초만 있으면 오케이에요. 기름때는 팬에 베이킹소다를 넉넉히 뿌린 뒤 물을 묻힌 수세미로 문지르면 쉽게 없앨 수 있어요. 커다란 냄비에 물을 넣고 베이킹소다를 넉넉히 풀어 삶아 주면 새것처럼 광택이 살아나죠. 생선을 조리한 뒤에는 식초 물로 헹궈주면 비린내도 사라지고 팬 표면도 더 반짝거려요. 설거지를 할 때에는 꼭 부드러운 수세미를 사용하세요. 연마석이 포함된 초록색 수세미는 거친 흠집을 내거든요.
● 단점?_  역시 예열과 불 조절이겠죠? 저는 스텐 팬을 사용하면서 요리하는 감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 과정을 즐기는 편인데 많은 이들이 무척 어려워하더라고요. 같은 화력으로 요리했을 때 스텐 팬은 코팅 팬보다 열효율이 높아 음식이 빨리 익기 때문에 처음 사용하는 이들은 음식을 태우는 경우가 많아요. 약한 불로도 같은 열을 내기 때문에 코팅 팬보다 불을 약하게 써도 된답니다. 그러니 지나치게 센 불을 사용하는 습관을 버리셔야 해요!
● ‘강추’ 이 음식_ 달걀프라이에요. 이 요리랄 수도 없는 요리가 스텐 팬에서 한 음식의 담백함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죠. 기름이 빙빙 도는 튀긴 듯한 느끼한 프라이가 아니라 담백하고 부드럽고 고소한 달걀 맛이 그대로 담겨 있다고들 해요. 소금을 뿌리지 않아도 싱겁거나 비리지 않죠. 카페 회원들은 코팅 팬에서 한 달걀프라이와는 완전히 다른 맛이라고 해요. 사실 저는 요리를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남다른 장금이의 미각을 지닌 것도 아니어서 그렇게까지 큰 차이는 잘 모르겠는데… 너무 솔직한가요?(웃음) 아, 기름을 적게 쓰게 되니 어떤 음식이건 담백한 맛을 내는 건 맞아요.
● 선택은 어떻게?_ 스테인리스 제품은 재질 자체의 신뢰성이 보장되기에 브랜드나 가격에 따른 품질의 차이가 크지 않아요. 팬의 구조(본체구조 및 두께)와 재질이 같으면 팬으로써의 기능 자체는 크게 달라질 수 없거든요. 물론 디자인으로 인한 사용 편의성이나 세부 마감, 부속품의 내구성, 재질의 느낌과 세척의 용이성을 결정해주는 연마의 완성도는 모두 제각각이에요. 가격 차이는 손잡이 재질, 디자인, 브랜드 인지도, 인덕션 가능 여부에서 비롯되죠. 제가 친구들에게 해주는 말은요. 예산을 먼저 결정한 다음 예산 안에서 마음에 드는 제품을 두세 가지 고르기. 반드시 실물로 보고 짬이 나면 인터넷에 올라있는 후기도 읽어보기. 결정했다면 단품으로 꼭 필요한 하나만 구입! 쓰다보면 자신도 몰랐던 필요와 취향을 알게 된답니다. 이때 추가로 구입해도 늦지 않아요. 무조건 세트로 사거나 고가의 유명 브랜드만을 선호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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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가 끝났습니다.

하늘은 더 깊어지고, 바람도 차가워졌습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독서에 사시사철이 어디있겠습니까. 출퇴근길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책 읽기가 쉽지 않지요. 하지만 자꾸 습관을 들이면, 지하철이 아무리 덜컹거리든, 사람이 많든, 자신 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피곤하지만, 독서를 통해 스스로를 반추해보고, 마음에 희망의 정원을 가꾸는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간과 여건만을 핑계대면 사실 책 읽기가 쉽지 않지요. 특히 직장인들은. 오늘은 가을맞이 추천 도서를 소개해 드릴까합니다. 몇 차례 나누어서 계속 책 정보를 나누어 보았으면 합니다. 2010년 가을에 꼭 읽어볼 좋은 책있으시면 추천 부탁 드립니다.^^ 정신의 밥이 되고 살이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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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으름의 찬양》
러끌레르끄 지음, 장익 옮김, 분도출판사

● 아닙니다. 아름다움이 아름다움으로 보이고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은 뛰면서 되는 일도 아니고 군중의 소란 한가운데에서 이루어지는 일도 아니고 번다한 바쁜 일들 틈바구니에서 생기는 일도 결코 아닙니다. 고독, 정적, 한가로움이 있고서야 탄생도 있는 법입니다. 때로는 섬광 짓듯 생각이나 걸작이 피어나는 것도, 이미 오래고 한가로운 잉태기가 그에 앞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2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카를 구스타프 융, A. 야페 지음, 조성기 옮김 김영사 

● 병을 앓은 후에 비로소 나는 자신의 숙명을 긍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 그럼으로써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도 자아는 굴복하지 않게 되는 법이다. 참아내며 진리를 견디며 세계와 숙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은 패배에서도 승리를 체험하게 된다. 밖에서든 안에서든 아무것에도 방해를 받지 않는다. 자신의 고유한 연속성이 인생과 시간의 흐름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기억, 꿈, 사상(카를 구스타프 융 자서전)’에 나오는 이 문장은 불가(佛家)에서 흔히 말하는 사바세계(娑婆世界)나 고해(苦海)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숙명을 받아들이고, 참고, 견디다 보면 패배에서도 승리를 체험하는 자아가 형성된다는 것은 성불(成佛)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기도 한다.  

 3

 

《마이클 폴란의 행복한 밥상》
마이클 폴란 지음, 조윤정 옮김, 다른세상

●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생물학적 필요성 이외에도 다른 많은 이유로 식사를 해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음식은 또한 즐거움에 관한 것이고, 공동체에 관한 것이고, 가족과 영성에 관한 것이고, 우리와 자연세계의 관계에 관한 것이고, 우리의 정체성 표현에 관한 것이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로 현대사회의 음식사슬들을 파헤쳤던 마이클 폴란이 과연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할까에 대해 쓴 책이다. 그는 ‘음식을 먹어라, 과식하지 마라, 주로 채식을 하라!’고 조언하는데, 그 말은 우리가 음식의 탈을 쓴 식품산업의 쓰레기들 속에 살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음식은 이 땅에서 제철에 나고 자란 유기농산물인데, 지금 괴물들이 강을 파헤쳐 일용할 음식들이 자라던 땅을 집어삼키고 있다. 나는 ‘음식’ 을 먹고 살고 싶다.


4

 

 《숲에게 길을 묻다》
김용규 지음, 비아북

● 자연은 자신의 새끼나 씨앗을 발 아래 두려 하지 않습니다. 품을 떠나보내지 못한 새끼는 무서운 맹수나 맹금류를 피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해 위태로울 것이고, 부모의 발 아래에서 발아한 씨앗은 결국 부모의 그늘에 살면서 부모와 햇빛을 나누고 양분을 다퉈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춘기 아들의 “내가 알아서 할게요” 한마디에 손끝이 풀린다. 아들이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모습이 대견하기 보다는 그저 내 품에서 떠나는 섭섭함과 허전함뿐이다. 부모의 그림자가 클수록 자식의 그림자는 작아진다고 한다. 씨앗이 발 아래 떨어지지 않게 바람에 얹어 멀리 떠나보내는 소나무의 마음으로 아들을 내 곁에서 밀어내보련다.


5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
하승우, 유해정 지음, 북하우스

● 지금 당장 행복한 삶을 요구하자. 바쁘다고 일상을 포기하지 말고 외롭다고 온기를 잃지 말자. 아득하게 멀리 보이는 곳이지만 천천히 걷다보면 어느덧 그곳에 이르고 고개를 돌리면 같은 꿈을 품고 길을 걷는 사람들이 보인다. 세상의 변화는 언제나 작은 걸음에서 시작했다.

가장 많은 불신을 받으면서도 기대의 끈마저 놓아버릴 수는 없는 것이 ‘정치’인가? 선거가 축제가 되리라는 것은 일찌감치 기대도 않았지만 또한번의 정치 소용돌이를 거치면서 오히려 갈증만 커져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다음 선거 때를 기다려 투표만하는 것뿐인가? ‘정치인들에게 빼앗긴 권리를 되찾기 위한 도시생활자들의 희망의 반격’을 이끌어내는 알찬 정보들이 가득한 실천 메뉴얼이 나왔다.



6

 

 《면역혁명》
아보 도오루 지음, 이정환 옮김, 부광

● 면역은 생명의 유지와 폐기 모두에 관련 있는 시스템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연에 순종하는 생활방식을 선택하여 면역력을 향상시킬 경우에 컨디션이 나아져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면역이 그만큼 생명 그 자체의 존재성에 깊은 관련을 가진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면역력이야말로 생명력의 진정한 주체다.


가끔 어떻게 하면 건강해지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문가들로부터 들은 말을 전해줍니다. 음식은 이렇게 먹고 이런 운동을 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려 노력하고… 돌아오는 답변은 이렇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냐” 물론 병 걸리게 하는 사회라서 건강하게 살기가 어렵기도 합니다. 그러나 건강에 왕도는 없습니다. 입에 맛난 음식 마음껏 먹고, 술 담배 다 하고, 규칙적인 운동은 하지 않고, 성질껏 살면서 건강해질 수 있는 `비방’은 없습니다. 아보 도오루의 말처럼 자연에 순종하는 생활방식을 익히는 것이 최고의 명약이고 장수비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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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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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만 보면 가슴이 벌렁벌렁 대는 사람이 있다. 옛날 게 사라질까봐 마음을 졸이는 사람이 있다. 어머니 할머니가 사용하던 물건을 졸라대며 가져와 살림장만을 하는 사람이 있다. 윤신천(50)씨. 감색·황토색 천연염색 개량한복이 잘 어울리는 그는 유난히 옛것을 찾고 수집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의 집을 한 번이라도 방문한 사람들은 옛날 분위기의 남다른 살림살이에 마음을 빼앗긴다고 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의 생활이 어떤지 궁금하던 차에 그가 살고 있는 상주로 직접 찾아갔다. 상주 시내와 조금 떨어진 조용한 마을, 아담한 3층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는 그를 만났다. 상주는 그가 태어나 자란 곳이지만 결혼한 후 남편의 근무지인 창원에서 줄곧 살아왔다. 상주로 이사 온 지는 한 달 남짓. 7년 전 남편의 귀농으로 창원과 상주 두 집 살림을 해왔다. 올해 큰 아들이 대학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부부와 딸 세 식구가 이곳에서 모여 살기 시작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소문대로 집안 풍경은 현대식 아파트 외관과 다른 세계였다. 거실 초입의 한 섬짜리 뒤주가 가장 먼저 손님을 맞는다. 오래된 나무색의 고가구가 거실 이곳저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흔히 궤짝농이라고 하는 반닫이와 문갑, 통나무를 잘라 만든 좌탁, 자그마한 찻잔과 여러 가지 허브차가 진열되어 있는 선반. 한 쪽 벽 나무 막대에는 말방울과 소방울 대여섯 개가 걸려 있다. 신라의 유적지답게 신라시대 유물 네 가지가 문갑 위에 ‘전시’되어 있다. 수집광이라고 할 정도로 모으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어디를 가든 옛날 것만 눈에 들어오면 얻거나 구입해온다. 그러다보니 자잘한 살림도구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옛날 게 쓰임새도 좋아 가능하면 쓰던 걸 버리지 않은 탓도 있다.


 

옛것들이 살림도구로
집주인은 집안에 멋스럽게 놓여 있는 고가구와 옛날 물건들을 하나씩 안내하며 그 쓰임새를 알려주었다. 뒤주에는 말린 차가 들어 있다. 시할머니가 사용하던 것으로 물고기 장식이 마음에 들어 시어머니께 졸랐더니 필요 없다며 주신 것이다. 뒤주는 습기가 차지 않아 차를 보관하기에 아주 좋다. 어른들이 사용하던 반닫이에는 다듬이 방망이가 보관되어 있었다. 20년 된 반닫이에 방망이도 그 즈음에 받은 것이다.


“나중에 단독 주택에 살게 되면 다듬이질을 할 거예요. 모시나 명주는 다리미보다 방망이로 두드려 줘야 올이 반듯해져요.”거실 선반 꼭대기에서 긴 막대기 2개를 꺼내온다. 떡살과 다식판이었다. 결혼 전 예천에서 구입한 것으로 20년이 훨씬 넘었다. 떡살은 절편 무늬 낼 때 쓰는 건데, 요즘에는 모형 판에 랩을 씌워 떡을 넣고 찍어낸다. 거실 한 편 선반에 놓여있는 올망졸망 갖가지 형태의 작은 찻주전자가 눈에 띈다. 그 옆으로 작은 찻잔들이 놓여 있다. 차를 담는 찻잔도 어느 것 하나 짝을 이루는 게 없다. 모양이 비슷한 것 같아도 태생이 다른 것이었다. 친구가 주기도 하고 지나다니다 구하다보니 구색도 안 맞고 제 짝도 없다.


점심밥이 차려진 좌탁에도 시간과 장소를 달리해 태어난 접시와 국그릇 밥그릇이 조화롭게 놓여 있다. 손님을 위해 특별히 밭에서 캐온 쑥과 머위, 부추로 만든 맛있는 국과 나물반찬이 짝이 맞지 않은 투박한 질그릇과 아주 잘 어울린다. 짝이 맞는 그릇이 하나도 없지만 조화롭다. 오래된 살림도구가 그의 집에선 마냥 골동품이 아니다. 언제든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살림살이였다. 
 




옛것이 사라지는 게 안타까워 시작한 천연염색과 전통 바느질
윤신천 씨는 옛것에 대한 그리움과 애착이 가득하다. 자신의 전공보다 역사 유적지 답사를 따라다니는 것을 더 좋아했고 토속신앙이 더 가깝게 느껴졌고 오랜 시간을 두고 덩치를 키워온 큰 나무를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천연염색을 하고 서양바느질 퀼트 대신 명주 천과 명주실, 감침질로 대표되는 전통 바느질을 더 좋아한다.


옛것이 사라지는 게 안타까웠던 마음이 가장 먼저 쏠렸던 건 천연염색이었다.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사람들과 함께 염색작업을 한다. 그의 실력도 8년이라는 쌓여온 시간을 생각하면 가르치는 위치에 설 만한데 절대로 그 자리에 나서지 않는다. 그저 조수역할을 할 뿐, 항상 실력자 선생을 모시고 모임을 꾸린다. 천연염색은 주로 생활 가까이에 있는 것과 주위 땅에서 나는 것을 이용한다. 양파 껍질이나 밤 껍질, 포도 껍질, 감, 황토… 안방에 걸려있는 개량한복도 거의 직접 염색을 한 것이다. 그는 감과 황토 염색을 가장 좋아한다. 황토염색 옷은 땀이 안 배고 달라붙지 않아 여름에 입으면 편하단다.


“염색은 자연스러운 색감 외에도 몸에 좋은 기능이 많아요. 타닌 성분이 머리를 시원하게 해 잠을 잘 오게 하고 피부 알레르기를 막아줘요. 포백된 흰옷에 염색하면 표백제의 유해성분을 막아주지요.”그는 개량 한복을 자주 입는데, 잘 어울린다. 티셔츠 위에 천연염색 조끼 하나만 걸쳐도 자태가 나온다. 바지도 남자 한복바지 같이 편한 걸 자주 입는다. 요즘 새로 만들고 있는 바지 하나를 보여준다. 마무리가 아직 안 된 한복 바지였다. 옷본이 있어 쉽게 만들었다며 대단한 게 아니라고 하지만 정교한 바느질 솜씨가 돋보였다. 염색과 함께 편하게 입는 몇 가지 옷은 직접 만들어 입는다.


“옛 아낙들은 옷을 모두 지어 입었잖아요. 그 솜씨로 돈벌이도 했으니. 요즘 사람들도 자립을 했으면 하는 생각으로 옷 만들기를 시작했어요.” 그저 옛날 어르신들이 살던 방식이 그리웠고, 뭔가 스스로 만들어 보는 게 좋아 시작한 일이다. 천연염색 모임처럼 한복 조각 천으로 바느질을 하는 규방공예 모임을 한 달에 한 번 하고 있는데, 상보, 걸개, 수저 집, 모시발, 조끼를 만든다.

“바느질엔 특별한 솜씨가 필요 없어요. 엄마나 할머니가 옷을 해 입었던 유전자를 타고난 것 같아요. 누구나 연습하면 잘 해요.” 보통 젊은 아기엄마들이 어느 한 집에 모여 조각보 이불이나 걸개, 가방과 소품을 만들기도 하는데 그의 말을 빌자면 퀼트는 서양 것, 규방공예는 우리 것이다. 퀼트는 인쇄된 무늬 천을 이용해 박음질과 홈질을 이용해 만들지만 규방공예는 명주·모시와 명주실을 주로 이용해 감침질을 하는 게 특징이다. 전통 바느질에 대한 꼼꼼한 설명이 이어진다.


“감침질은 우리 고유의 바느질이에요. 굉장히 단단해요. 감침질을 잘 하면 선 색깔을 내기도 하는데, 바탕천과 대비되는 색을 쓰기도 해요.”상보 가운데에 이어붙인 명주 천 사이에 점점이 나타난 노란 명주실이 또 하나의 선의 표현인 셈이다. “퀼트는 천 안쪽에서 조각을 잇지만, 우리 것은 겉과 겉을 감침질로 이어요. 그게 큰 차이죠.”
조각보 이불 하나쯤은 장롱에 들어 있거나 창문 걸개 정도는 안방에 걸려 있지 않을까 했는데, 큰 작품은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시간도 없지만 모여서 함께 바느질을 하는 게 즐거운 일이라 소품을 많이 만든다. 



 


손수건으로 바느질 운동

바느질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것은 손수건을 만드는 일이었다. 산청의 작은 음악회에 갔을 때 보았던 식탁 위의 손수건이 그의 가슴에 꽂혔다. 휴지 대신 손수건으로 입을 닦고 각자 가져가는 것이었다. 그때 이후 손수건을 만들기 시작했다. 면이나 거즈를 잘라 책 넓이만한 크기로 접어 홈질로 마무리를 한다. 행사를 열 때, 참석한 사람들에게 직접 만들어 하나씩 선물을 하거나, 손수건 만들기 코너를 만들어 5분만 시간을 내 직접 바느질을 해보게 하고 나서 가져가게 한다.


그의 집 부엌 좌탁에도 여러 개 손수건이 놓여 있었다. 각기 다른 색실로 홈질한 것, 규격도 제각각이었다. 모두 다른 사람들이 만든 것이란다. 언제부턴가 휴지를 가볍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입을 닦을 때도, 화장실에서도, 심지어 식탁을 닦을 때도 쉽게 휴지로 훔친다. 옛날 어머니들은 거즈 수건을 가지고 다니면서 다용도로 사용했다. 집에 와서 깨끗이 빨거나 뽀얗게 삶아 그걸 다시 사용했다. 그 마음을 그대로 실천해보자는 게 그의 손수건운동의 뜻이다.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니 바느질 안 한 천을 한가득 안겨주며 집에 가서 바느질을 해 손수건운동을 꼭 해보란다. 시간과 마음을 다잡고 앉아 작은 손수건 사방 홈질을 해야 하는 일을 언제 다 할까 걱정부터 앞선다. 그래도 푸짐한 선물 한가득 안은 듯 뿌듯하고 좋다. 숙제는 다음 일. 직접 만든 감녹차와 산국화차를 예쁜 병에 담아 선물로 건넨다. 새로 디자인해 만든 수저집도 덤으로. 넉넉한 모습만큼 넉넉한 마음으로 자꾸자꾸 퍼주신다. 파김치와 부추절임 반찬까지. 




옛것이 생활 도구로 살림살이로 자리를 잡으면 손으로 해야 할 일도 많고 씻어가며 삶아가며 다시 써야 할 물건이 많아지니 살림하는 사람들에겐 그리 달갑지는 않다. 그래도 윤신천 씨는 어머니 할머니가 쓰던 가구에 옷과 물건을 보관하고, 직접 길러낸 허브차를 마시며, 땅에서 캐낸 풀로 나물을 무치고 국을 끓여 이웃과 나눠먹고, 휴지 대신 손수건을 만들어 삶아 쓰고, 편한 바지를 만들어 입고 갖가지 천연염색을 한 옷을 계절마다 갈아입는 생활을 한다. 주택에 이사하면 다듬이 방망이까지 두드릴 거란다. 어머니, 할머니들이 징글징글하다는 옛날이 그에겐 닮고 싶은 삶이고 희망이다.


“옛날 사람들처럼 살고 싶어요. 생활습관이 옛날로 돌아간다면 세상이 행복해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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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기 지역에서 두 시간 반은 보통이고, 전국 각처에서 오고 가는데 아침 일찍부터 늦은 저녁까지 온 하루를 쏟아 부어야 하는 먼 길임에도 불구하고 경기도 끝자락 일산 양지마을의 ‘평화가 깃든 밥상’ 요리 교실에 오는 분들을 보며 ‘도대체 무엇이 이분들을 이리로 오게 하나?’ 턱을 괴고 생각에 빠질 때가 많아졌습니다. 제가 만드는 음식이라는 게 너무 빤해서 매일 간장, 된장, 들기름으로 무치거나 지지는 게 대부분이니 뭘 배울게 있나, 싶은 거지요. 저나 그분들이나 가르치고 배우는 게 아니라 그냥 이야기 나누고 함께 음식 만들어서 먹으며, 몸과 마음에 일어나는 변화를 느끼고 나누는 게 좋아서일겁니다. 맛있고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속이 편해서 좋다고들 하는 걸 보면, 더 좋은 건 마음 놓고 나누는 ‘배부른 수다’ 일겁니다.


“가볍고, 쉽고, 즐거워야 한다. 바느질, 요리, 삶… 그게 무엇이든 가볍고 쉽고 즐거워야 한다. 만약에 무겁고 어렵고 힘들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라고 자주 얘기 합니다. 우리가 지구에 인간 생명으로 온 이유는 지구를 더 풍요롭게 하고, 더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서인데 내 자신의 삶의 무게에 눌려 있다면, 그래서 지구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면 무언가 잘못되지 않았는가, 말입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삶의 무게에 눌려서 헐떡거리며 사노라 삶의 진정한 기쁨을 누릴 때가 많지 않았던 내 삶의 슬픔과 고달픔 때문에, 이러려고 이 세상에 온 건 아니잖아, 뭐가 잘못 되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얻은 결론은 “내 멋대로!”입니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살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배고프면 먹고, 편하게 입고, 많이 남긴 시간으로 나도 생각하고 남도 생각하며, 하늘도 쳐다보고 바람결도 느끼고, 물소리 새소리도 듣고 꽃 냄새 맡으며 살면 되는데…. 음식 만드느라 너무 많은 시간과 애씀을 보탤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간단하지 않은 요리는 정말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건 요리 학원하면서도 그랬습니다. 학원에서 가르치는 것과 나의 밥상이 달랐기에 일하는 재미가 없었습니다. 학원 문을 닫고 흙 땅을 두발로 딛고 살면서 광목으로 기워 입은 가벼운 옷과 달랑 된장 하나로 차린 구수한 잡곡밥상이 얼마나 나를 살찌게 했는지 모릅니다.


내 몸이 가벼워지고, 내 마음이 평온해지면 내 손길이 닿는 무엇이든지 편안해집니다. 무얼 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고, 그냥 그렇게 내 생명의 가치를 즐기고 보살피는 걸로 보람된 삶을 사는 거지요. 그래서 손 가는 음식은 잘 안 만드는데, 명절이 다가올 때는 수백 년 동안 만들어 먹었던 우리의 세포결에 새겨진 음식들이 그리워집니다. 온가족이 둘러 앉아 도란도란 빚던 송편, 아이와 함께 비비던 약과, 참기름 냄새 고소한 약밥 등.


네 딸 중 맏이였던 내가 놀러 나가려는 여동생들을 불러 모아 송편을 빚게 했던 게 삼십 년 전입니다. 동생들이 이때의 따뜻했던 추억을 살아가는 내내 간직하기를 바랬습니다. 그때 대학생이던 막내 동생은 사위를 볼 나이가 되어가고 저는 어느새 이순이 되었어요. 지금은 동생들 대신 딸아이를 붙잡고 송편을 빚게 해요. “손이 많이 가는 송편이지만 송편을 찔 때 맡는 솔 향이 사는 맛을 더해 주는구나” 이런 맛, 이럴 때, 산다는 일이 재미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송편
재료 : 칠분도 쌀가루 5컵, 소금 2작은 술, 뜨거운 물 1컵 반, 솔잎 한 줌, 참기름 5 큰 술
송편소 : 볶아서 곱게 빻은 깨 1컵, 유기농 원당 1/2컵, 꿀 1/2컵, 계피가루 2큰 술, 소금 1작은 술
만드는 법 : ① 물에 잘 불려 빻은 칠분도 쌀가루에 뜨거운 물을 넣어가며 말랑말랑 해질 때까지 익반죽한다. ② 송편소 재료들은 한데 섞어 한 입 크기로 동그랗게 경단을 빚어 놓고, 한 알씩 넣어가며 송편을 빚는다. ③ 김이 오른 찜솥에 솔잎을 깔고 송편을 쪄낸다. 이때 송편 위에도 솔잎을 뿌려두면 송편이 서로 붙지 않으며 향도 좋고 잘 쉬지 않는다. ④ 떡이 투명하게 익으면 꺼내어 한 김 식힌 후 참기름을 바른다.

 

잡곡약밥
재료 : 찹쌀 3컵, 차조 1/2컵, 차수수 1/2컵, 기장 1/2컵, 밤 15개, 대추 10개, 채 썬 생강 5큰 술, 조청 2컵, 집간장 1/3컵, 물 3컵, 참기름 1/2컵
만드는 법 : ① 압력솥에 씻어 불린 곡식과 밤, 대추, 생강을 한데 넣고 분량의 조청, 간장, 물을 부어 밥을 짓는다. ② 압력솥의 추가 돌기 시작하면 중불로 낮추었다가 10여 분 뒤 고소한 냄새가 나면 불을 끈다. ③ 참기름을 넣고 잘 저은 다음 식으면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낸다.

  

재료 : 통밀가루 2컵, 참기름 2큰 술, 다진 생강 2큰 술, 계피가루 1큰 술, 후추 1작은 술, 꿀 4큰 술
집청꿀 : 꿀 1/2컵, 다진 생강 2큰 술, 소금 2작은 술
만드는 법 : ① 밀가루에 참기름을 넣고 골고루 비벼서 고운 체에 내린 다음 꿀, 다진 생강, 계피가루, 후춧가루를 넣고 살살 뭉쳐가며 반죽한다. 이때 치대면 맛이 뻣뻣해지니 조심한다. ② ①의 반죽을 젖은 행주로 덮어 30분간 숙성시킨 다음 방망이로 밀어서 두께가 2~3mm정도 되면 다시 접어 밀기를 3~4번 반복한다. 반죽을 두께 1cm, 길이 4~5cm의 정사각형으로 썰어 섭씨 120℃의 현미유에서 노릇하게 튀겨낸다. ③ 집청꿀 재료들을 한데 섞은 다음 뜨거운 물에 중탕한다. 꿀이 노골해지면 튀긴 약과를 넣어 고루 묻혀 낸다.

  

배숙
재료 : 배 1개, 통후추 16알, 채친 생강 2큰 술, 꿀 약간
만드는 법 : ① 배는 8조각으로 잘라 씨를 빼내고 등에 후추를 박아 넣는다. ② 냄비에 배가 잠길 만큼 물을 붓고 생강을 넣은 다음 푹 끓인다. ③ 배가 투명해지면 그릇에 담아 입맛에 맞게 꿀을 타서 낸다.




- 글을 쓴 문성희 님은 이십여 년 동안 요리학원 원장으로 지내며 각종 매체의 주목을 받는 유명 요리가였지만, 가장 훌륭한 요리는 재료가 가진 본래의 생명력과 색깔과 모양을 망가뜨리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요리학원을 그만두었습니다. 현재는 ‘문성희의 자연식 밥상’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행복한 밥상을 선사하고 있으며, 자연 요리책 《평화가 깃든 밥상》을 냈습니다

*사진: 김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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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진 골목 안 소문난 칼국수집. 칼국수에 곁들여 나오는 이곳 무생채는 새콤달콤하고 아삭해서 ‘리필’이 필수다. 집에서는 절대로 낼 수 없는 맛. 역시 할머니 손맛이야, 라며 오물거리는 사람들을 향해 할머니가 들려준 맛의 비밀은? “식초도 좀 넣고… 마지막으로 사카린을 꼭 넣어. 아주 조금만 넣으면 돼. 그래도 맛이 나. 많이 넣으면 못써. 너무 달거든. 내가 이렇게 자세히 얘기를 해줘도 집에서 만들면 그 맛이 안 난대. 내가 손맛이 있나봐.” 흐흐… 사카린? 아, 그 사카린?! 정 많은 할머니의 사카린, 엄마의 올리고당, 짐승 아이돌이 선전하는 콜라 속 액상과당, 껌 속 자일리톨, 소주 속 스테비오사이드… 음식 속에 노골적으로 혹은 은밀하게 들어있는 단맛의 정체가 모두 설탕인 것은 아니다. 만약 어떤 이유로 단맛을 멀리하고자 한다면 단맛에 씌워진 가면들도 낱낱이 익혀두어야 한다.


옛날 옛적 천연의 달콤한 영양 덩어리 꿀에서부터 비롯된 단맛의 역사는 지독하게 달기만 한, 난해한 화학기호 덩어리 인공감미료로까지 진화(혹은 퇴보)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식품첨가물 용어집 용어 설명에 의하면 감미료는 ‘식품에 단맛을 부여하는 식품첨가물’이라고 되어 있다. 전 세계에는 6천여 가지의 감미료가 존재한다. 감미료는 원료가 어디서 왔는지에 따라 자연에서 얻어진 천연감미료와 화학적 기술을 이용해 얻어진 인공감미료(정식 명칭은 화학적 합성품), 가공 과정에서의 정제 여부에 따라 정제당과 비정제당, 탄수화물계냐 아니냐에 따라 탄수화물계 감미료(설탕 등)와 당뇨병 환자들이 주로 섭취하는 당알코올계 감미료(자일리톨 등), 체내에서 단백질처럼 소화 흡수되는 아미노산계(아스파탐 등) 같은 비탄수화물계 감미료, 설탕을 기준으로 한 단맛의 정도에 따라 저감미 감미료와 고감미 감미료, 영양성분을 지니고 있는지에 따라 영양적 감미료와 비영양적 감미료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꿀이나 설탕 같은 천연감미료는 대부분 영양적 감미료로, 먹으면 체내에서 대사되어 에너지를 만든다. 화학적 합성품인 인공감미료는 대부분 비영양적 감미료다. 비정제당에는 꿀, 엿, 조청, 비정제 설탕 등이, 정제당에는 정제 설탕(백설탕, 황설탕, 흑설탕), 물엿, 올리고당, 액상과당 등이 있다. 정제당은 사탕수수, 사탕무와 옥수수 전분 등이 원료인 천연감미료이지만 꽤 길고 복잡한 정제 과정을 통해 단맛만 빼낸 것이기 때문에 영양은 거의 없고 단맛만 있다는 점에서 인공감미료와 닮았다.


천연감미료에는 꿀과 사탕수수(무)로 만든 설탕, 곡식으로 만드는 엿, 뿌리에서 단맛이 나는 식물인 감초 외에도 당류인 포도당, 과당, 이성화당, 젖당 등이 있다. 인류가 맛본 최초의 단맛은 꿀이나 과일 같은 식물의 열매였을 것이다. 꿀이 얼마나 귀했는고 하니 일본의 옛 문헌에 따르면 백제의 왕자가 일본에 와서 직접 양봉을 가르쳤고, 《삼국사기》에는 신라 신문왕이 왕비를 맞을 적에 보낸 폐백에 꿀이 들어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꿀과 과일을 대신해 인간의 단맛 욕구를 충족시켜준 것이 엿과 설탕이다. 서양이 사탕수수(무)에서 설탕을 얻기 위해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전락시키고 사탕수수 즙을 끓이기 위해 나무를 마구 벌목해 숲을 파괴한데 반해 동양의 엿은 그 생산과정이 비교적 소박하고 평화롭다.

엿은 밥(곡식)에 엿기름물을 섞어 약한 불에서 오래도록 뭉근하게 고아(당화) 졸인 것이다. 엿기름은 보리에 물을 부어 싹을 틔운(발아) 다음 말려 가루를 낸 것이다. 싹이 틀 때 생긴 아밀라아제라는 효소는 쌀의 전분과 반응하여 전분을 제일 작은 분자(단당류)로 쪼개어 달게 변화(당화)하도록 만든다. 밥이 몸속으로 들어가면 포도당으로 분해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엿의 원료는 찹쌀, 멥쌀, 보리, 조, 수수, 옥수수, 고구마 등 전분이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친환경 식품을 만드는 곳에서는 보리, 멥쌀, 찹쌀을 주로 쓰지만 보통 식품업체들은 값싼 옥수수가 대세다. 엿기름 대신 미생물에서 대량으로 뽑아낸 효소(아밀라아제)를 당화의 원료로 쓰는 곳도 늘고 있다.


굳은 형태로 되어 있는 엿을 과자처럼 먹었다면, 묽게 고아서 굳지 않은 엿인 조청은 설탕처럼 음식에 들어가 단맛을 내는 감미료의 역할을 담당했다. 짙은 갈색으로 설탕처럼 정제나 표백과정을 거치지 않아 각종 영양성분이 살아 있고 단맛이 온화한 것이 특징이다. 단맛이 조금 무겁고 음식의 색이 어두워지는 단점이 있지만 조림이나 고기를 재울 때 넣으면 윤기를 더해주고, 무침이나 볶음 요리를 만들 때 맨 나중에 조금 넣으면 오래 두고 먹어도 풍미와 빛깔이 유지된다.

조청은 묽은 엿이라는 의미에서 물엿이라고도 불리지만 현재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물엿과  조청은 엄연히 다르다. 조청을 닮은 물엿 옆에는 요리당, 올리고당들도 나란히 놓여 있다.

묽은 엿의 형태(물엿)인 전통적인 ‘조청’과 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물엿’ 제품의 가장 큰 차이는 원료와 묽기, 정제 여부다. 조청은 대개 쌀 등의 곡식으로 만드는데 비해 ‘물엿’은 값싼 옥수수 전분으로 만들고 있다. ‘조청물엿’이라는 애매모호한 이름으로 유통되는 제품의 원료 역시 100% 옥수수이다.

제조과정으로 보면 원래 물엿은 조청의 전 단계로 물엿을 조금 더 오래 졸이면 조청이 되는 것이지만 시중의 물엿은 잘 굳고 끈적임이 심한 조청보다 농도가 묽어 사용이 간편하고, 표백이나 정제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색이 맑고 투명해 음식에 넣어도 음식 본래의 색이 그대로 유지된다. 볶음이나 구이, 무침 요리를 할 때 마지막에 넣으면 윤기가 나고 깔끔한 단맛을 더할 수 있어 많이 쓰인다. 과자회사들도 설탕 다음으로 물엿을 많이 쓴다.
요리당은 주재료가 설탕의 원료이다. 제품에 따라 올리고당이나 물엿이 더 들어가기도 하고 캐러멜 색소를 섞어 진한 색을 내기도 한다. 맑은 갈색으로 조청과 물엿보다는 달고 농도가 묽어 두루두루 사용하기 편한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물엿이나 올리고당에 비해 뒷맛이 개운하지 않고 음식에 넣었을 때 윤기도 덜하다. 역시 정제과정을 거친 정제당이다.


올리고당은 설탕보다 덜 달다는 단점을 ‘건강한 단맛’으로 내세우며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감미료 중 하나다. 부엌에서의 쓰임이나 효능도 설탕, 조청, 물엿, 요리당을 아우른다. 식품회사에서도 앞 다투어 커피에 넣는 커피용 올리고당, 잼이나 시럽 대신 발라먹고 섞어먹는 어린이용 올리고당까지 내놓고 있다. 올리고당은 과자, 음료, 심지어 분유에도 들어있다. ‘섬유질과 영양분이 제거된 칼로리 덩어리’로 지탄받고 있는 설탕을 대신해 올리고당은 칼로리가 낮고 체내에서 수용성 식이섬유와 같은 작용을 한다는 점을 내세운다. 프락토 올리고당의 경우 비피더스 유산균의 먹이가 되어 균을 증식시킨다는 점도 올리고당의 이름값을 높이는 데 한 몫한다. 올리고당은 체내에서 소화효소에 반응하지 않는다. 소화 흡수율이 떨어진다. 올리고당을 저칼로리 식품으로 광고할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섭취가 더디면 혈당치도 덜 올리고 충치도 만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올리고당은 과연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무결점 단맛일까. 프락토 올리고당의 원료는 아이러니하게도 원당이고 이소말토 올리고당은 간혹 쌀이거나 역시 옥수수다. 이들은 모두 소화가 되지 않는 탄수화물 덩어리일 뿐 비타민이나 미네랄 같은 영양성분은 전무한 정제당이다.


올리고당은 양파, 우엉, 마늘 등에도 들었지만 그 양이 극히 적어 우리 몸이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사람의 몸속에서 가까스로 만들어지는  올리고당이 인위적으로 갑자기 듬뿍 들어오면 탈이 날 수밖에 없다. 올리고당을 과량 섭취했을 때 소화가 잘 되지 않거나 설사가 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식품학자들이 챙겨먹으라고 권하지도 않고, 효능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올리고당을 고집할 요량이면 올리고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제품들이 정말 ‘순수’ 올리고당인지 따져봐야 한다. 다른 값싼 당류가 더 많이 들어간 경우도 꽤 있다. 또 설탕보다 단맛이 덜해 자칫 지나치게 많은 양을 섭취하고도 덜 달게 먹었다고 착각하며 내심 흐뭇해할 수 있으니 먹는 동안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원료들이 수입해온 원당이나 옥수수 등인 점도 생각해볼 대목이다.


설탕을 대신해 소비자에게 인기 있는 정제당이 올리고당이라면, 가공식품 회사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정제당은 액상과당이다. 거의 대부분의 음료에 액상과당이 들어간다.  과당은 과일 속에 많이 들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당류 중 가장 달고, 차가울수록 단맛이 더 강해진다. 첫맛은 상쾌하고 뒷맛은 깔끔하다. 결정 혹은 액상 형태로 팔리고 있는데 결정과당(꿀이나 과일에서 추출한 순수과당)은 우리가 직접 살 수 있지만 액상과당은 주로 가공식품 업체에 팔린다.


이쯤 보면 설탕의 대체당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어 보이지만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의 저자 안병수 씨는 그의 책에서 ‘설탕보다 더 해롭다’고 단언한다. 과일이나 꿀이 아닌 옥수수에서 뽑아낸(또 옥수수!) 액상과당(HFCS: High Fructose Corn Syrup: 고과당 옥수수 시럽)은 설탕보다 6배쯤 더 달면서도 값은 훨씬 싸다. 액상과당은 식욕억제호르몬 분비를 줄이기 때문에 액상과당이 든 음식을 먹으면 배부른 것을 잘 느끼지 못해 과식을 하게 된다. 설탕이 든 콜라를 한 번에 많이 마시는 건 한계가 있지만, 액상과당이 든 콜라는 훨씬 많은 양을 마실 수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먹고 싶어진다. 액상과당 섭취량과 비만율이 거의 동일하게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최근에는 술을 마시지 않아도 간에 지방이 쌓이게 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액상과당이 눈총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옥수수에서 뽑아낸 전분당이기 때문이다. 옥수수는 콩과 함께 세계에서 유전자 조작이 가장 많이 되고 있는 식품 가운데 하나다. 액상과당은 과자, 빵,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주스, 드링크제 등 거의 모든 가공식품에 들어간다. 고과당 액상과당, 고과당시럽, 고순도과당, 옥수수시럽, 과당 함유 포도당 시럽은 모두 액상과당을 이르는 말이다. 간혹 물엿이라고 표기되는 경우도 있다.


정제당에 대한 반성이 일면서 비정제 설탕과 천연감미료에 대한 관심도 부쩍 늘었다. 메이플 시럽, 아가베 시럽, 꿀가루 등의 천연감미료로는 가공 과정이 비교적 단순해 정제당에 비해 영양이 살아있다. 메이플 시럽은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먹었다는 단풍나무 수액을 원료로 한 것이다. 꿀가루는 꿀을 건조시켜 만든 것으로 천연감미료, 설탕보다 조금 낮은 칼로리, 알칼리성 식품으로 선전되지만 꿀 외에 다른 당류가 섞인 경우도 있으니 꼼꼼히 살펴야 한다. 멕시코에서 나는 아가베 선인장(용설란의 일종)에서 추출한 아가베 시럽도 인기다. 설탕보다 달지만 칼로리며 당지수가 낮아 당뇨병 환자들도 이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당이 70~90%에 달해 역시 주의가 필요하다. 과당은 포도당처럼 혈당을 급격하게 올리지는 않지만 지나치면 간에 지방이 쌓이게 할 수 있다.


언젠가부터 ‘천연감미료를 사용한 웰빙식품’이란 홍보문구 아래 자일리톨이 든 껌, 스테비오사이드가 든 소주, 에리스리톨이 든 커피믹스도 등장했다. 소주에 들어가 단맛을 내는 스테비오사이드(Stevioside)는 국화과 식물인 스테비아 잎에서 얻어지며 설탕보다 300배 강한 단맛을 낸다. 남아메리카 파라과이 주변이 원산지로 이곳 원주민들이 400년 이상 사용해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일본은 1970년대에 세계 최초로 스테비아 잎에서 쓴맛을 빼고 단맛만 나는 스테비오사이드를 추출하는 화학적인 방법을 알아내고 30년 이상 감미료로 사용해오고 있다. 하지만 스테비오사이드의 안전성에 대한 의견은 아직 어지럽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러시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호주, 뉴질랜드 등지에서는 허용되어 사용되고 있으나 미국에서는 식품원료가 아닌 식이보조제로 허용하고 있으며, 유럽연합에서는 허가를 보류한 상태다. 실험에서 매우 낮기는 하지만 급성 독성이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음료, 술 등에 사용되고 있다. 청량음료, 커피, 홍차는 물론 어묵이나 소시지, 건어물에도 들어간다. 간장에도 넣어 구수한 맛을 더 한다. 인체에서 대사되지 않고 그대로 배출되기에(한편에서는 체내에서 분해되어 해로운 물질로 바뀐다는 의견도 있다) 아이스크림이나 빙과류에 설탕 대신 넣어 칼로리는 줄이고 청량감을 높인다.


청량감을 내는 당알코올의 일종인 자일리톨(Xylitol)은 자일로스라는 천연 당류에 수소첨가 반응을 시켜서 얻는다. 식품위생법에서는 자일로스를 화학첨가물로 분류한다. 자일리톨은 충치 예방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일리톨을 먹지 않는 충치균은 번식을 할 수 없고 결국 굶어(?) 죽는다. 몸속에서 정상적으로 대사되지 않는 것도 우리 몸이 자일리톨이라는 물질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칼로리는 낮지만 많이 먹으면 설사가 날 수도 있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 커피믹스에 설탕 대신 들어가 ‘칼로리는 반으로 커피 맛은 그대로’ 유지시켜 준다는 에리스리톨(Erythritol), 1일 섭취 허용량이 특별히 제한되어 있지는 않지만 유기가공식품에는 사용할 수 없는 소르비톨(D-Sorbitol)을 비롯해 이노시톨, 말티톨, 만니톨, 락티톨, 이소말트 등 자일리톨과 같은 당알코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과량 섭취 시 설사를 유발할 수 있다.


인공감미료는 ‘단맛이 나는 화학적 합성품’으로 합성감미료, (설탕을 대신한) 대체감미료로도 불린다. 대부분의 인공감미료는 고감도 저칼로리 감미료로 뇌를 자극해 설탕의 수백 배나 되는 강한 단맛을 느끼게 하지만 영양소는 제로에 가까워 주로 당뇨병 환자와 비만 환자용으로 이용되었다. 인공감미료는 식품포장지에 용도와 명칭(예를 들어 합성감미료(수크랄로스))이 표시된다.


인류 최초의 인공감미료는 로마인이 만든 사파(Sapa)였다. 당시 포도주는 신맛이 무척 강했기 때문에 제조업자들은 포도주에 단맛 나는 사파를 넣어 팔았다. 사파는 포도주스를 납주전자에 넣고 거의 말라붙을 때까지 졸여 만든 것으로 주성분이 아세트산납이라는 독성이 강한 중금속 화합물이다. 사파에서 비롯된 납중독은 정신 불안증과 불임 등을 불러 왔고 결국 이것이 로마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인공감미료는 처음부터 식품첨가물로 연구·개발되기보다는 화학자들이 다른 연구 도중 우연히 발견한 경우가 많다. 현대의 인공감미료들이 갖는 공통점은 대개 이렇다. 첫째, 설탕과 같은 무색무취의 가루이거나 가루에 가깝다. 그래야 운반, 보관, 사용이 간편하다. 꿀이 가공식품에 좀 더 적극적으로 쓰이지 못한 것은 값도 값이려니와 꿀 고유의 빛깔과 맛, 향이 있고 액상형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둘째, 지독하게 달다. 달면 달수록 좋다. 단맛이 강할수록 아주 조금만 넣어도 되니 제품 원가를 줄일 수 있고 칼로리도 최대한 낮출 수 있다. 셋째, 그저 달기만 하다. 어느 식품에나 두루 넣으려면 자칫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영양 성분은 모조리 사라지고 오직 단맛만 있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맛이 중립적”이라고 표현한다. 넷째, 소화 흡수가 되지 않고 그대로 몸 밖으로 배출되어 칼로리가 거의 없다. 당뇨병과 체중 감량을 평생의 숙제로 삼고 있는 현대인들의 요구에 맞춘 것이다.


인공감미료의 유해성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에 세계보건기구는 지난 2006년 국제 식품첨가물전문가위원회를 열어 그때까지의 연구 결과들을 모두 재검토한 뒤 식품첨가물로 안전하다,고 공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분자니까 괜찮다’는 가공식품 회사와 ‘한 분자라도 해롭다’는 학자들의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참고자료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안병수, 국일미디어), 《설탕》(박은주, 김영사), 《인간이 만든 위대한 속임수 식품첨가물》(아베 쓰카사, 국일미디어), 《독소: 죽음을 부르는 만찬 : 질병을 키우는 모든 음식에 관한 충격보고서》(윌리엄 레이몽, 랜덤하우스), 《비만의 제국》(그렉 크리처, 한스미디어) 《식품진단서》(조 슈워츠, 바다출판사), 《탄수화물 중독증》(잭 컬럼, 북라인), 식품의약안전청 식품첨가물 정보망(fa.kfd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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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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