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일밤 아나운서 신입사원. 매회 탈락의 드라마가 펼쳐집니다. 말이 드라마이지, 아나운서에 도전한 분들은 매 순간이 얼음판이겠지요. 심정을 어찌 헤아리겠습니까. 어제 최현정 아나운서는 눈물을 흘렸지요. 최 아나운서는 시험만 10번을 치루었다고 합니다. 9전 10기인가요? 인간드라마인가요? 그렇다보니, 남의 탈락이 곧 나의 탈락처럼 느껴졌겠지요. 요즘 카이스트 대학생의 자살, 서울대 졸업생의 자살 등 슬픈 소식 때문에 마음이 언짢습니다.

취업이 되지 않아 낙심 끝에 자살을 선택한 학생과 경쟁과 성적 부담 때문에 목숨을 끊은 학생들. 사회적 타살이라고 하지만, 또 한편 '삶에 대한 의지'를 왜 잃게 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도전은 아름답습니다. 실패 또한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도전과 실패를 겪는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지요. 아름다움은 이들에게 추상입니다. 추상을 현실 극복의 장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사회문화입니다. 아홉번의 도전 끝에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꿈을 실천하는 삶. 그 끈기와 삶에 대한 희망을 전해 주는 것은 어른들의 몫입니다.


성공학이 아니라 실패학이 필요합니다. 좌절학도 필요합니다. 우울학도 필요합니다. 고난을 극복하게 할 수 있는 인문적 소양과 철학을 청소년 시절 부터 심어주어야 합니다. 더 많은 체험도 필요합니다. 핀란드의 경우, 대학에 입학 하기 전에 사회 생활(직장 체험 외)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지요. 바로 대학에 가는 것보다 사회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대학을 가는 이유가 결국 사람과 사람, 공존의 미학을 실천하는 것이니까요. 유아독존이 아니라, 협력하고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을 배우게 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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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하지만 실패도 나름. 창조적 실패는 소중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패를 반면교사 삼지 않고, 실패로 인정해 버리고 기억에서 지워버린 다면 아무 소용없지요. ‘온고지신’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공자의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말입니다. “옛 것을 알고 새 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라는 뜻입니다. 옛것 속에는 성공과 실패의 사례가 있습니다. 잘된 것은 이어서 현재에 맞게 잘 꾸려 가면 될 것이고, 실패는 실패 사례를 잘 분석해서 같은 실패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면 되겠지요. 또한 실패는 그 당시에는 실패였지만, 현재에는 성공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위험 사회입니다. 그렇기에 과거의 실패로부터 얻는 교훈은 참 크지요. 그렇기에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실패학이 조명 받고 있습니다. 타산지석. 다른 산의 나쁜 돌이라도 자신의 산의 옥돌을 가는 데에 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듯 과거의 경험으로 배우는 것은 불확실성의 시대를 사는 사람에게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아직 실패학보다는 성공학이 지배적이지요.

 

멀쩡해 보였던 다리와 아파트가 무너지고, 지하철이 불타고, 매번 같은 지역에서 홍수 피해가 나고, 숱한 안전 불감증 사고가 반복되어 일어나도 실패로부터 얻은 교훈은 없어 보입니다. 다시는 같은 사고가 발생되지 않게 만들어진 매뉴얼이나 백서도 부족한 사회. 한국을 위험공화국이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실패를 이야기 할 때 에디슨을 자주 이야기 하지요. 신제품을 만들기 위해 숱한 실패를 반복했기에 성공을 일구어 낼 수 있었습니다. 즉 실패학은 실패의 경험을 분석하여 누구나 학습을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성공학보다 더 중요한 이유입니다. 안전사고도 마찬가지지요. 재발을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을 잘 만들어 놓은 다면 같은 실수는 반복될 수 없겠지요.

 

실패를 감추거나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인 이상 누군들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감추는 것이 더 위험합니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반복해서 실수를 하면 안 되겠지요. 더구나 사람 생명이 달린 안전문제는 더 그렇습니다. 창조적 파괴가 아니라 창조적 실패. 4,000년 전 쓰여진 함브라이 법전에는 이런 판결문이 적혀 있습니다. “ 만일 건축가가 지은 집이 튼튼하지 않아 집이 무너져서 집 주인이 죽으면, 그 건축가는 사형에 처한다” 너무 심한가요? 하지만 안전 불감증 시대, 너무 성공을 향한 질주만 하는 시대에 되새김 해 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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