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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03 한국 거주 한 일본할머니의 보물은?


ⓒ 수영



말자 할머니.
올해 96세.
허리는 90도로 꺾이고 귀도 어두워
집에 누가 찾아와도 잘 모르시고
이빨도 다 빠져 말도 정확하게 못하신다.
평택의 외딴 초가집에 혼자 살고 계신다.

할머니는 일본 사람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만난 한국인과 사랑에 빠져 그를 따라 한국으로 건너오셨다.
사랑하는 가족을 버리고 따라왔건만 와보니 그에게는 이미 부인이 있었단다.
그 후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낯선 한국 땅에서 쉽지 않은 세월을 살아냈다.
그 세월 동안 자식을 낳았고 손주도 보았고 몸빼바지에 스웨터를 입고
매해 밭에 파 마늘 심어 김장도 담그는 ‘한국 할머니’가 되었다.

그런 꼬부랑 할머니가 매일 그림을 그린다.
손바닥과 옷소매가 시커메지도록.
 
마음 붙일 곳 없는 낯선 땅, 찾아오는 이 없는 어두운 집에서
안그래도 작은 몸, 더 작게 웅크리고 하루종일 그림을 그린다.
종이만 있다하면 그린다. 그리고 또 그린다.
버려진 과자 종이가 할머니에게는 소중한 스케치북이다.

그 종이 안에서 할머니는 늘 수줍은 ‘소녀’가 되고
그토록 그리워하는 일본에 있는 가족을 만난다.
 초코파이(상자) 뒤에는 첫째 언니가 있고
계란과자 뒤에는 둘째 언니가 있다.
마가렛트 뒤에는 ‘젊은 아버지’와 ‘소녀인 할머니’가
기모노를 입고 함께 있다.
 
할머니는 그림이 담긴 종이들을 상자에 고이 담아
보자기에 싸서
누가 훔쳐갈까 숨겨두신다. 할머니의 보물단지다.
 
“손녀가 하나 있어.
 그 애한테 다른 거 물려줄게 없어서…
 이 그림들이 내 유산이야.”
 
할머니는 아마 오늘도 어두운 방에 웅크리고 앉아
유산을 불리고 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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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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