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버지의 즐거움을 아는 것

 

아이만 위해서는 본인의 행복 못찾아

일상 속 숨겨진 기쁨서 감수성 깨우쳐 육아의 행복 느껴야 진짜 ‘좋은 아빠’

 

 

 

 

일본에서는 진작부터 육아에 참여하는 아빠가 멋진 남자로 그려지고 있다. 아빠들을 위한 육아잡지까지 있을 정도이다. 우리나라도 사정이 비슷해지고 있다. TV채널을 돌리다 보면 프로그램 하나는 걸릴 정도로 아빠는 ‘대세남(男)’이다. 그런데 이른바 ‘좋은 아빠’ 이야기들을 들을 때면 뭔가 개운치가 않다. ‘좋은’ 앞에 ‘아이에게만’ 또는 ‘애엄마가 보기에’가 생략돼 있기 때문이 아닐까? ‘좋은 아빠’라는 말에는 당사자인 아빠 본인의 행복과 성찰이 빠져 있다는 거다.

오래전 사촌형이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을 때 일이다. 형은 정훈장교로 입대했었지만, 장교든 병이든 훈련받을 때 춥고 배고픈 건 매한가지이다. 하루의 고된 훈련을 마치고 나면, 야식으로 ‘보름달’이라는 카스테라가 나왔다. 달에서 방아 찧는 토끼가 포장지에 그려진 그 빵이 얼마나 맛나던지! 그 보름달로 힘든 나날을 버틸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폭설이 내렸고, 그만 ‘빵’ 트럭이 끊겨 버렸다. 장차 군의 교양과 이념을 가르칠 사람들이었지만, 빵 앞에서 이성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내무반에선 대한민국의 군수시스템에 대한 격한 성토대회가 벌어졌다. 뿐만 아니라 훈련소장의 준비부족도 도마에 올랐다. “보름달이 없으면 반달이라도 줘야 할 것 아니야!” 뭐 이런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럼 뭐 하겠는가? 배만 더 고파질 따름이었다. 그저 울분을 삼키며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사촌형은 이미 결혼해서 아들까지 두고 있었기에 잠들기 전이면 그리운 아내와 아들을 떠올리면서 남몰래 눈물짓곤 했었다. 하지만 그날 밤엔 아내와 아들 얼굴은 온데 간데 없었다. 그저 천정에는 보름달만 아른거릴 뿐이었다.

이렇게 아빠는 아빠이기 이전에 인간이고, 인간은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아빠 자신의 실존적 문제를 떠나, 그저 아이를 위하거나 엄마 주도형 아빠 역할을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현실적이지도 못하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아빠라는 명찰을 달고 있건 말건 한 마리 수컷으로서 자신의 욕망만을 좇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좋은’ 아빠의 길을 수도승처럼 가야만 할 것인가? 다행히도 ‘제3의 길’은 있다. 바로 ‘아빠됨의 즐거움’을 찾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에 의하면 아빠 노릇을 통해 아빠 본인이 행복감을 느끼게 돼 있다. 그래야만 종족 보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선 영양을 공급받아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먹는 것이 즐거워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그동안 간과돼 왔거나 숨겨져 왔던 아빠노릇의 행복을 느끼는 훈련을 살짜쿵 하면 된다. 굳이 훈련이라고 할 것도 없다. 그저 잠재돼 있는 감수성을 깨우기만 하면 될 일이다.

아빠로서 느끼는 쾌감, 만족감, 뿌듯함, 행복감은 어떤 때 생기는 걸까? 어린 시절 어른들은 “세상에서 제일 듣기좋은 소리는 자식 목구멍에 밥 넘어가는 소리와 자식이 글읽는 소리”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바로 아빠되는 즐거움 아닌가 싶다. 늦은 밤 소주폭탄을 지고 들어와 새끼들이 발뻗고 자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요지부동의 딸기잼 병뚜껑을 따주면서, 아빠들은 가슴이 뿌듯해진다. 일찍이 파스칼은 “현재의 소소한 기쁨에 소홀한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고 했듯이, 이렇게 소소한 일상 속에서 아빠의 행복들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제발 아빠 노릇은 ‘행복’이 아니라 ‘고역’이라고 주장하면서, 드라마속 백마탄 아빠를 들이대지는 말자. 아빠되는 행복감을 미처 맛보기도 전에 기계적이고 당위론적인 ‘좋은 아빠’ 타령을 늘어놓은 건, 아빠에게도 아이에게도 역효과일 가능성이 크다. “좋은 아빠 되라”는 이야기가 학창시절 “공부하라”는 엄마의 잔소리처럼 들리는 순간, 만사 ‘꽝’이다.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좋아서 아빠 노릇을 하도록 기다려주고 기회를 주자. 손학규씨는 정계를 은퇴했지만 ‘저녁있는 삶’은 여전히 아빠들의 로망이기 때문이다.

 

 


김혜준 KACE 아버지다움연구소 소장

 

 

 

 

출처:경상일보

http://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2474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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