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도 격려와 응원을

 

아버지 노릇하기 어려워진 오늘날

무거워진 어깨 이끌고 현관나서는 우리의 영웅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나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호떡을 좋아했다. 돌아서면 배고픈 그 시절에 뭔들 맛나지 않았을까마는 부산의 어느 버스정류장 옆에 있었던 호떡집에서 만났던 호떡과의 아찔했던 첫키스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후 어스름 무렵이면 호떡이 구워지는 냄새를 동무삼아 일 나가셨던 어머니를 거기에서 기다렸다. 그러면 번번이 따뜻한 호떡 봉지가 내 손에 쥐어졌다. 봉지 안에서 끈적끈적하게 나를 올려다 보던 호떡 꿀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의 호떡사랑은 대학시절 하숙할 때까지 이어졌다. 당시 하숙집에서 큰 길가로 내려오면 버스종점이 있었는데, 그 건너편에서 호떡을 구워팔던 아저씨가 지금도 기억난다. 다른 호떡집에서는 식용유에 마치 튀기듯이 굽지만 유독 그 아저씨는 버터로 구워냈기 때문에 호떡 마니아였던 나를 단박에 매료시켰었다. 추운 겨울 저녁, 출출해지면 츄리닝 바지에 슬리퍼 바람으로 내려가 발을 동동거리면서 호떡이 봉지에 담기길 재촉하던 기억이 새롭다.

이제는 예전처럼 죽고 못사는 경지는 넘어섰다. 일단 소화력이 예전 같지 않다. 게다가 식용유가 아니라 버터로 구워야 한다는 엄격한 기준을 충족시켜주는 곳도 드물다. 그래도 빵 쟁반과 집게를 들고 빵집을 누빌 때면 으레 호떡 유사품을 들었다 놨다 하는 건 여전하다.

“아버지는 딸 아이 어릴 적 퇴근길에 호떡을 사다주곤 했다. 어린 딸은 아빠가 사온 호떡이 정말 맛있었다. 달콤하고 고소하고…. 아버지는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을 했고 이젠 머리가 희끗희끗해졌다. 딸은 옛날 생각이 나서 사온 아빠의 호떡을 봉지도 안 열어본 채로 책상위에 놓아둔 지 오래다. 딸은 이제 더 이상 어리지 않아서 저녁때가 되어도 안들어 오는 아빠를 기다리지 않는다. 어린 딸에게 아빠는 점점 말이 통하지 않는 늙은이로만 변해간다. 그 딸은 ‘소통’이라는 말을 달고 산다. 소통이 안되는 것이 너무 많단다. 아빠랑 왜 대화를 안하냐고 물으면 말이 안통해서란다. 딸에게 아빠는 못나게 나이들어버린 사람일 뿐이다. 겉으로 말만 안했지, ‘당신이 나한테 해준 게 뭐 있어요?’ 마치 남처럼 감정도 별로 남아있지 않다. 아빠가 그렇게 못되게 군 것도 아니건만. 다만 지치도록 열심히 살았고, 그러느라 딸아이와 살갑게 놀아줄 시간도 없었고, 돈을 많이 벌지 못해 입에 돈소리를 달고 살았고, 나처럼 살지말라고 딸아이에게 근면 성실을 강조했고, 노스페이스는 못 사줘도 비슷하게 따뜻한 노드페이스는 사줬지만 딸아이는 한번도 안 입었을 뿐이고, 아직도 딸아이가 호떡을 좋아할 거라고 믿고 있을 뿐인데. 아빠는 오늘도 다 식어가는 호떡을 가슴에 품고 버스정류장에서 집으로 향한다. 이게 나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어느 아버지의 글이다. 이 쓸쓸한 독백을 보면서 ‘잇몸을 꽉 잡아준다’는 잇몸약 광고는 있어도, 부성을 꽉 잡아 지지해주던 가부장적 잇몸은 우리 사회에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음을 실감한다. 이른바 ‘좋은 시절’은 지나갔고, ‘아! 옛날이여’를 부르고 있다가는 왕따되기 꼭 알맞다. 또 설사 가능하다 해도 가부장제로 회귀하거나 독불장군식 권위를 누리는 것은 아버지 본인에게도 행복한 선택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마냥 희생하고 자상하게 대하는 것만이 정답도 아니다. 환영받지 못하거나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식에게 필요한 일이라면 해야 하는 존재가 바로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날 아버지노릇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모른다.

월요일 아침이면 현관문은 유난히 무거워진다. 하지만 아버지들은 식구들을 먹이고 아이들 등록금과 학원비를 벌기 위해 힘겹지만 현관문을 열어젖혀야 한다.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불우이웃도 좋지만 우리의 아버지들에게 동정이 아닌 격려와 응원을 보내보자.

김혜준 KACE 아버지다움연구소 소장

 

 

 

출처 경상일보

http://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9346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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