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대로 배우는 우리 아이

 

자식들 교육에 항상 골몰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닮는’ 교육에는 무신경
‘좋은 부모’ 이전에 ‘좋은 내’가 돼야

 

 

얼마전 서울의 한 뷔페식당에서 고등학교 재경동문회가 있었다. 동문선배인 식당 사장님도 섞여 있었고 식당 문닫을 시간도 다 돼 가니, 한 선배가 종업원에게 술안주거리를 부탁했다. “묵을 거 좀 갖다 주이소!” 그러자 종업원은 순간적으로 멈칫거렸다. ‘뷔페인데 갖다달라고 하니, 기분이 상했으리라….’ 좀 미안스러운 상황이었다. 잠시 후 그 종업원은 큰 쟁반에 ‘물컵’을 잔뜩 담아 가지고 왔다. ‘먹을 것’을 ‘묵을 것’도 아닌 ‘무울 꺼’라고 말하니, 그 종업원은 ‘물컵’에 정성스럽게 물을 담아서 쟁반 가득 들고 왔던 것이다. 물컵은 안 뒤집어졌지만 사람들은 모두 뒤집어지고 말았다.

한번은 동안(童顔)으로 유명한 모 정치인과의 식사자리에서, 필자가 회심의 조크를 날린 적이 있다. “의원님은 성형수술이 필요해 보입니다. 좀 ‘늙게’ 보이는 수술 말입니다.” 폭소가 터지기는커녕 장본인은 물론 주위 사람들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니, 분위기가 썰렁해지고 말았다. 뒤늦게 ‘넓게’가 아니라 ‘늙어 보이게’였다고 해명을 했지만, 본전도 찾지 못했다. 이 모두가 ‘쓸개’와 ‘설계’를 구분하지 않는 사투리 덕분이었다.

이렇듯 서울에서 수십년을 살아도 참 바뀌지 않는 것이 우리네 사투리다. 생각해보면 사투리에는 정감(情感)은 기본이고 어휘력을 풍성하게 해주는 장점도 크다. 서울사람들은 버터를 빵에 발라먹을 때도 생선살을 추려먹을 때도 똑같이 ‘발라 먹는다’고 쪼들리게 말한다. ‘볼가 먹다’라는 사투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우월한 사투리는 어디서 어떻게 학습되는 걸까? 딸이 중학생이었던 오래전 휴일 아침이었다. 머리를 감는데 샴푸가 떨어졌다. 욕실 밖의 딸에게 샴푸 좀 찾아오라고 시켰다. 그러자 녀석은 “샴푸가 어디 있~노?”라며 두리번거렸다. 물칠만 해놓은 머리를 붙잡고 있던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개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경상도 사투리의 기름기가 싹 빠진, 오리지날 경상도 사람도 울고 갈, ‘자연산’ 인토네이션이었기 때문이다. ‘고향에는 기껏해야 명절 빨간 날만 잠깐씩 다녀왔고, 사투리를 따로 교습시킨 적도 없는데, ‘우찌’ ‘저리’ 사투리가 자연스레 나오는 걸까? ‘지’ 말로는 학교에 가면 사투리 하나도 안 쓴다지만, 저렇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걸 보면 믿을 수가 없군….’

결국 녀석의 입에 붙은 사투리는 100% 우리 부부가 쓰는 말 덕분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때 문득 ‘우리 부부에게서 배운 것이 어디 ‘사투리’ 뿐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식은 땀이 났다. 내가 그동안 별 생각없이 내뱉고 저질러 왔던 말과 행동들! 그것들이 모조리 저 녀석의 대뇌피질 어디엔가 자리잡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늘 자식들 교육에 골몰하지만, ‘가르치는’ 교육만 생각하지 ‘닮는’ 교육에는 무신경하다. ‘가르침’은 난무하지만 ‘교육 효과’는 별무한 까닭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부모가 암만 가르쳐도 자식이 배우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고, 아무리 닮지 말라고 해도 저절로 배우고 마는 것이다. 한동안 ‘눈높이 교육’이 유행이었고, 지금도 금과옥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가장 잘 맞는 눈높이는 바로 부모의 언행(言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최근 어떤 직장다니는 젊은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이다. 친정 엄마가 키우는 5살배기 딸아이가 장난감 가지고 놀면서 노래를 흥얼거리길래, 자세히 들어보았단다. 그것은 “… 내 나이가 어때~서 과자먹기 딱 좋은 나인~데…”였다.

아무래도 ‘좋은 부모’ 이전에 ‘좋은 자기 자신’이 되는 게 답인 것 같다.

 

 

 


김혜준 아버지다움연구소 소장

 

 

 

 

 

출처 경상일보

http://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5913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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