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버지와 웃는 아버지

 

가족 위해 희생하는 ‘좋은 아버지’ 정작 스스로는 행복하지 않을 수도
물질에 치우친 아버지상 되짚어봐야

 

 

 

 

‘수능을 마친 고3 교실에서 “앞으로 살 날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면, 당신의 ‘꿈’을 이루는 것과 ‘5억의 돈’ 중에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이 던져진다. 학생들은 하나같이 꿈을 이루기 위해 1년을 보내겠다고 입을 모은다. 시한부 삶이라는 무거운 질문이었음에도 아이들 특유의 발랄함이 여기저기서 튀어 오른다. 갑자기 교실안 조명이 꺼지면서 스크린 속에 학생들의 아버지들이 등장한다. 학생들은 어리둥절해 하면서 눈과 귀를 쫑긋 세운다. 화면 속에서 아버지들은 같은 질문을 받게 되고, 거의 모든 아버지들은 5억원을 선택하겠다고 한다. 남은 가족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서 말이다. 어둠속에서 학생들은 눈물을 흘린다.’

최근 필자가 본 ‘가장, 지키고 싶은 꿈’이라는 제목의 동영상 내용이다. 필자도 이걸 보면서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지고 있었다. 남성 호르몬이 줄어든 탓인지, 눈물의 치유효과를 믿고 있는 탓인지. 요새는 울보 비슷해진 것 같다. 암튼 감동의 도가니탕이었지만, 그 와중에 100% 감정의 동화를 방해하는 뭔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곰곰 생각해보니 동영상을 보면서 나는 5억원을 선택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단 ‘돈’은 아니라고 제쳐놓은 채, 내 ‘꿈’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에 대해 찰나적으로 고민했었던 것 같다. 이 사실을 마누라가 안다면 “당신은 역시 이기적인 사람이야!”라고 쏘아 붙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기적인(?) 아버지인 필자는 주장하고 싶다. 남은 1년을 ‘돈이 아닌 그 무엇으로 채우는 것이 아버지 본인을 위해서도 남아있는 가족을 위해서도 더 가치롭다’고 말이다.

우리 사회의 아버지 담론은 이른바 ‘좋은 아버지’론이다. 하지만 일본의 대표적인 아버지단체는 ‘웃는 아버지’를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좋은’ 아버지와 ‘웃는’ 아버지는 어떻게 다를까? 우리의 ‘좋은 아버지’론에는 아버지 본인은 빠진 채, 그 누구에게 유익해서 ‘좋다’는 메시지가 강하다. 그 결과 스스로 행복한 ‘웃는 아버지’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어느 매우 ‘좋은’ 아버지가 하루는 퇴근해서 집에 왔더니 아내와 아이들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식구들을 찾아 나서는 대신 거실 소파에서 홀로 웅크리고 있는 자신을 문득 발견했고, 그동안 아버지노릇에 피로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이처럼 ‘좋은 아버지’가 ‘웃는 아버지’가 되기는 쉽지 않다. ‘웃는 아버지’는 ‘좋은 아버지’이기 쉽지만….

한편 2011년 여름 영국의 데일리메일지에 소개된 이야기를 보자. 평범한 교사였던 폴 플래네이건은 피부암 진단을 받은지 9개월만에 45세 나이로 사망했는데, 당시 그에겐 5살 아들 토마스와 1살 딸 루시가 있었다. 폴은 자신의 죽음을 안 순간부터 남겨진 모든 시간을 그가 죽고 난 이후에 아이들에게 아빠로서 해줄 일들을 준비하는데 보낸다. 자신이 없더라도 아이들이 받아볼 수 있도록 수십 통의 편지를 써두는 것, 동영상 찍기, 장래의 아이들 생일선물 사두기, 감명 깊게 읽었던 책에 아이들에게 줄 메모 끼우기 등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지켜야 할 소소한 삶의 지침 28가지도 남겼다. “포크와 나이프를 바르게 사용하렴. 사람들은 너의 매너를 보고 너를 평가한단다” “다른 사람을 험담하면 너희만 나쁘게 보인단다” “훌륭한 서비스에는 팁을 주어라, 하지만 불친절한 서비스에는 절대 팁을 주지 말아라” “파티 초대엔 언제나 응해라. 니가 원하지 않더라도 너를 원하는 사람에게 친절과 존중을 베풀어라” 등등. 이처럼 죽음을 앞둔 아버지 폴이 남긴 건 아이들에게 필요한 삶의 지혜였다. 5억원의 돈이 아니라….

감동도 좋지만 기능적이고 물질에 치우친 우리의 ‘좋은 아버지’론을 되짚어 봤으면 좋겠다.

김혜준 아버지다움연구소 소장

 

 

 

출처 경상일보

http://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9387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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