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사람에게 있어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한의학에서는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는 과정을 정(精)과 혈(血)이 신(神)과 기(氣)의 작용으로 생(生)하여 장(長)하고, 수(收)하여, 장(藏)하는 것이라 일컫곤 한다. 정혈(精血)은 생명의 근원이라는 의미에서 천일생수(天一生水)라 하며, 부모의 정(精)이 모여 형체를 이루고 자라서 다시 나이 들고 노화되어 죽음으로 이르는 것은 마치 자연 속에서 물이 순환하는 것과 같다. 이처럼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물을 머금어 순환하며 살아간다. 사람의 수정란은 97%가 물이며, 신생아는 85%, 성장이 멈추는 24세 전후에는 70%가 수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의 몸에서 물의 비율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바로 노화이다.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물이란 것을 일상으로 쓰면서도 사람에게 특수한 공이 있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기 쉽다. 하늘이 사람을 낳으면 수곡(水穀)으로 기르니 물이 우리들의 생활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사람의 형체에 후박(厚薄)이 있고 년수(年壽)의 장단(長短)이 있는 것은 수토(水土) 관계에 많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니 지방의 남북을 나눠서 살펴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여 사람이 건강하고 장수하는 것은 물과 풍토에 기인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전 세계 장수촌에 맑은 물을 제공하는 수원지가 존재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어떤 물이 좋은가?

 

먹어서 몸에 더 좋은 물은 살아있는 물, 생기(生氣)가 넘치는 물이다. 특히 예로부터 약이 되는 물이라 불렸던 약수는 산소, 탄산, 철분, 미네랄 성분이 많이 든 맑은 지하수가 지표로 솟아오른 것이다. 인공수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수 특유의 차고 달콤한 맛을 지니고 있으며, 두꺼운 지층을 뚫고 대자연의 힘으로 정화된 이 자연 생수는 단연 물 중의 물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물의 생명력과 신비를 과대포장해서 수만 년 전 형성된 빙하가 녹은 물, 해양심층수 등이 각광받기도 한다. 각각의 기능수들이 미네랄 성분을 충분히 포함하고 있어 몸에 더 좋다고 광고하고 있지만, 물은 물 자체로서 중요할 뿐 미네랄을 보충하기 위해서라면 다른 식품으로 대체하는 것이 더 낫다.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물보다는 늘 가까이 두고 몸을 채워줄 수 있는 맑은 물 한잔이 더 의미가 있는 셈이다.

 

물을 어떻게 마실 것인가?

 

물은 그냥 먹는 것보다는 끓여 먹어야 살균효과를 볼 수 있지만, 끓이지 않은 물과 한 번 끓였다가 식힌 물의 성분에는 큰 차이가 없으므로 어느 것이 더 좋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자연 그대로의 약수 온도는 대부분 15∼17℃ 정도인데 이 상태의 물맛이 가장 좋다고 하며, 차가울수록 물의 구조가 육각형에 가까운 육각수가 되어 건강에 더 좋다는 일부 의견이 있다. 다만 한의학적으로는 위기(胃氣)가 약해서 소화가 잘 안되고, 더부룩하고, 무기력한 사람들은 찬물보다는 따뜻한 물을 섭취해 위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양생(養生)에 힘써 왔던 선조들은 평생 수련을 하면서 양기(陽氣)를 훼손치 않기 위해 차가운 것은 일절 먹지 않고 물도 따뜻한 물만 먹었다고 하니, 위기와 양기를 기르기 위해서는 따뜻한 물을 마시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하루에 물을 얼마나 마셔야 좋은 것일까?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하루에 물 8잔(200㎖ 컵 기준)을 마시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권고한 바 있다. 성인이 하루 동안 땀이나 호흡, 대소변 등으로 내보내는 수분의 양이 2.5ℓ정도이고 식품을 통해 섭취하는 물의 양이 약 1.4ℓ이므로 별도로 1ℓ 이상의 물을 섭취해야 균형이 맞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다. 체중의 많고 적음, 수분 섭취량의 많고 적음 등 개인차가 있겠으며, 계절적인 요인과 활동량의 차이 등도 구분지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활동량이 많거나 체중이 많거나 여름이라면 요구되는 수분섭취량이 증가할 것이며, 활동량이 적고 체중이 적게 나가고 겨울이라면 요구되는 수분섭취량이 감소할 것이다. 따라서 하루에 꼭 물 8잔을 마셔야 건강에 좋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 상태와 활동 정도, 계절 등을 고려하여 섭취하는 것이 좋겠다. 무조건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은 오히려 건강에 해롭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신장 기능이 미숙한 생후 6개월 이하의 유아들에게는 ‘물 중독’이 발생해 치명적인 상태가 될 수 있다는 보고도 있다. 필요한 양 이상으로 섭취할 경우 체내에 축적된 수분으로 인해 부종이 동반되기도 한다.

 

물을 마시는 데에도 요령이 있다. ‘아침에 일어난 뒤 마시는 물 한잔은 보약이 된다’는 말도 있듯이 아침에 물을 마시면 밤새 몸에 쌓인 노폐물 배설이 촉진되고,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신장의 부담도 덜 수 있다. 또한 장운동을 원활하게 해주어 배변을 도와주기도 한다. 식전에 마시는 물은 공복감을 줄여줘 체중조절에 도움이 된다고 하나 위산 분비를 자극해 속쓰림을 유발할 수도 있다. 식사 도중 또는 식사 직후에 물을 마시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소화력을 약화시켜 위장 기능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판단된다.

 

물을 마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수시로 조금씩 마시는 것. 한꺼번에 벌컥벌컥 마시는 것보다 조금씩 마셔야 흡수율이 더 높고, 씹어 먹듯이 천천히 마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물은 아래로 흐르는 겸손함을 가지며, 담는 그릇에 따라 어떠한 형태로든 변화될 수 있는 유연함을 가지고, 모든 물질을 수용할 수 있는 포용력을 가진다. 물을 잘 마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물처럼 유연하게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보약이라 할 만하다.



글 허지원 원장(경희동의보감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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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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