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우 백순철씨가 작고했다고 합니다. 특히 방송 애니메이션(만화)을 즐겨본 사람들은 백순철씨 이름 석자는 기억 못해도 목소리는 들어보시면 기억하실 것 같습니다. 백순철씨는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김두한(박성민 역) 목소리를 더빙하기도 했지요. 인어공주에서는 에릭왕자 목소리를 연기하기도 했습니다. 백순철씨의 팬이 운영하는 사이트(순철그리기/주인장:토링이)에는 백순철씨와 가진 20문 20답이 올라와 있습니다. 그 중에서 몇가지 만 뽑아 같이 공유할까 합니다. 



- 아저씨(백순철)께서 지금까지 맡아오신 역할 중 가장 인상깊었던 역할은?

난 묘하게 당시 우리 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던 몇몇 작품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행운을 얻었었어. 예를 들면, 영화에서는 "장군의 아들"에서 김두한(박상민)의 역할을 더빙했었고, 디즈니가 우리 나라에 최초로 들여오며 오디션으로 선발했던 "인어공주"의 에릭왕자 역을 했었고, 연극에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 김혜자님과 한 달이 넘는 기간동안 함께 무대에서 춤추며 공동주연을 할 수 있는 영광도 가졌었어. 또 비록 청소년이 주를 이뤘지만, 자유직이 된 뒤에도 "청소년 극장"등 많은 라디오 드라마도 해보았고. 무엇보다 라디오 드라마에서 10대부터 60대까지의 '고종'역할을 했던 기억이 아마 인상 깊었던 역중에 하나 일거야. 그밖에 "닥터 두기" "슈퍼소년 앤드류" 만화 "수라왕 슈라토"등등이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야. "닥터 두기"나 "슈퍼소년 앤드류"가 방영될 땐 여고 방송부에서 축전도 꽤 받아 갔는데...(자랑하는 시간 맞지?)


- 아저씨께서 지금까지 맡아오신 역할 중 가장 어려웠던 역할은?

내가 가장먼저 맡았던 역할이 장수 라디오 드라마 "즐거운 우리 집"의 상수역 이었는데, 그 역할을 맡은 뒤로는 거의 청소년 역을 도맡아 하게 됐어. 그래서 그런지 나이든 역들을 좀 생각같이 여유 있게 잘 소화해내지 못 했던 것 같애.좀 주눅이 들었었다고 할까? 그랬어.

녹음 자체가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역은 역시 마지막으로 했던 "슬램덩크"였어. 갑자기 미국에 오게 되는 바람에 다 녹음을 못 했지만..

- 아저씨께서 지금까지 맡아오신 역할 중 가장 좋아하는(아끼는) 역은?

KBS 전속에서 프리랜서가 된지 얼마 안돼서 맡았던 "스타맨"이라는 작품에 나왔던 꼬마역할, 이름이 생각이 안나. 왜냐하면 그 청소년배우가 내가 무척 좋아하는 스타일이었어. 설명할수 없는 묘한 얼굴 표정을 짖곤 하던 그 배역이 생각나. 영화부 김정옥씨가 연출했던 작품인데...

- 성우라는 직업에 대한 아저씨의 생각을 듣고싶어요.

참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해, 우리의 상상을 구체화 시켜준다는 점에서.라디오 드라마를 예로 들어봐; 잘 짜여진 성우 진에 가슴 시린 효과음들,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게 해주는 일상의 소리들, 기차소리, 비오는 소리, 때론 뱃고동 소리, 파도소리에 물려오는 브리지 음악들, 또 가끔씩 잘 설정된 포즈-누구는 라디오는 포즈의 예술이라고도 하지- 난 조원석 형이 연출했던 라디오 드라마에서 유강진님이 하시던 대사를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기억해, 애가 타게 호흡석인 목소리로 "...바라밀이 뭡니까?" 하시던. 그것이 지금 토링이가 가지고 있는 추억 같은 내 추억이야. 외화나 애니메이션에서는 절대적이지, 물론 부정적인 시각도 있지만 더빙에는 나쁜 점보다 좋은 점이 더 많다고 생각해; 더빙대신에 자막을 사용한다면, 자막으로 화면을 차지해서 연출자의 의도를 반감시키고, 읽느라고 중요한 장면을 몇몇 놓치고 나면 자칫 시간낭비가 될 수도 있으니까. 이제 디지털 시대가 오면 자막용과 더빙용을 동시에 선택적으로 볼 수 있는 시대가 오리라 믿어. 난 개인적으로 성우는 제 1세대가 있고, 제 2세대가 있다고 생각해; 상상하게 해주던 창조적 1세대와 기능적으로 뛰어난 2세대 혹은 모두를 소화해내는 전천후 세대. 지금은 제2세대와 전천후 세대들 밖에는 안 보이는 시기야. 하지만 정말 멋지고 훌륭한 제 1세대들도 있다는 걸 토링이 세대나 요즘세대가 잘 모를 수도 있어...

- 좋아하는 것은 ?

. 여행, 밤에 혼자 후리웨이 드라이브하기, 지혜로운 사람 (똑똑한 사람 말고)과 사심 없이 얘기하기

- 싫어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 일 하기. (헌데, 어른이 되니까 싫은일을 제일먼저 해결해야 되더라구...)


- 성우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 계기는요 ?

군 입대 전에 극단 "고향"에서 연극도 하고 - 아니 주로 포스터 붙이러 많이 다녔음; 소극장이 많이 있던 명동, 종로의 다방, 카페입구, 전봇대, 벽면 등등 휴~ - 했었는데, 당시 주 멤버들이 성우였어: 고 신원균님, 연출 담당하시던 박용기님, 김형진님, 송두석님, 주호성님 등등. 그래서 성우 하면서 연극하면 먹고 사는 게 해결될 거라는 단순한 생각에 제대후 곧바로 KBS에 응시하여 성우가 됐는데, 연극은 그 후로 딱 한편 1990년도에 김혜자님과 공동 주연으로 극단 "로뎀"에서 "우리의 브로드웨이 마마"라는 연극을 약 1개월간 했었고 그 뒤로는 먹고 살기 바빠서 연극무대는 아예 포기했어.

- 인상깊게 읽은 책. 그리고 영화는 어떤 것들이 있으세요?

난 주로 소설책을 무척 많이 읽었었는데, 한가지 문제점은 난 비록 감명 깊게 어떤 책을 읽었어도 내용을 잘 기억 못하는 단순한 머리를 가졌어. 우선 셔로이언의 "휴먼 코미디"를 꼽을수 있어. 나는 주로 잠자리에서 책을 읽는 습관이 있었는데 아마 그래서 읽은 내용을 잘 기억 못하는 것 같애. 물론 결혼 전에... 아참, 김동길 교수가 번역한 링컨에 관한 이야기를 모은 "대통령의 웃음"이란 책도 기억나네 참 재미있게 읽었던 책인데 한번 읽어봐. - The so-called(말하자면) '추천도서'

영화는 어릴 적에 감명 깊게 봤던 "사운드 오브 뮤직" 그리고 "애정의 조건" 이 영화는 한 가지 대사 때문에 도저히 잊지 못하는 영화야. 내용은 남녀간의 사랑 얘기가 아니라 모녀, 부부, 그리고 모성애에 관한 영환데; 불치의 병을 앓게된 어느 여인이 죽기 전에 곱게 화장을 하고 말썽꾸러기 아들을 병상으로 불러서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있어, "얘, 네가 이담에 큰 뒤에 엄마에게 지금 했던 어떤 일 때문에 미안하거나 죄스런 맘이 들 때 이 말을 기억해라 엄마는 그걸 다 이해하고 용서했다는 걸" 그 뒤 영화의 마지 막 장면에서 그 부인이 죽어 가는 동안 남편은 회사 일로 피곤해서 잠들어 있지만 그 아내의 엄마는 깨어 있는 거야... 무슨 얘기인지 알지?

-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일) 는 언제였나요?

우리 아버지 병간호하던 일; 제대하자마자 애인도 없이 지금의 토링이 나이 정도에 매일 매일을 세브란스 병원과 이화여대 병원에서 몇 달간을 지내며 우울하게 지내던 일이 참 기억나. (아! 우리 아버지...)

부모님이 살아계실땐 얼마나 좋은지 잘 몰라, 영어로 하면 'Take our parents for granted'(자신의 부모를 당연하다고 생각하다, 마치 공기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것처럼) 라고 해야하나?

- 마지막으로 순철그리기를 찾아주시는 분들과 토링이를 비롯한 많은 팬들에게 하고싶으신 말...

사랑하는 여러분, 토링이는 지금 자신의 추억을 차곡차곡 정리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또 새로운 일에 전념하겠죠. 여러분도 크건 작건 아마 비슷한 추억 그리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에게 있어서 먼 훗날 생각해 본다면 참으로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난 토링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고 또 본 적도 없지만 그것이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외적모습이 제게 그리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같은 의미로 자연인인 저의 존재 그 자체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보았던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 두기, 앤드류, 달타냥, 베르..., 등등이 바로 여러분이 생각하는 나 일것입니다. 당시는 정말 좋아했을 수도 있으며 그 기억들이 여러분을 토링이의 팬 페이지로 모이게 하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우선 저는 지금까지 저에 대해 이렇게 많은 자료들과 저도 기억 못할 많은 작품들을 차곡차곡 모아준 토링이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또한 여러 자료를 찾도록 도와주신 분들께도 더불어 감사드립니다.

나는 토링이가 무엇을 하던 잘해 내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토링이는 무엇이든 꾸준히, 열심히 하고 또 그것을 어떤 모습으로든 구체화 해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에게 있어서 아주 좋은 장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누구의 지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의지로 어떤 결정을 실천해나가는 것을 대부분의 서양인들은 미덕이라고 보고있으며 그런 개개인의 힘들이 결국 전체의 힘으로 키워진다고 믿습니다. 여기 제 이야기를 뒷받침해줄 이야기를 하나 인용해 보겠습니다.

Evelyn C. Wong이라는 West Los Angeles College의 President가 쓴 글중에서, "The main difference between achievers and everyone else is that achievers create their lives while everyone else is created by their lives. passively waiting to see where situations take them next instead of deliberately taking control of where they are going." '성취자들과 그 밖의 다른 사람들과의 주되게 다른 점은,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이 신중히 자신이 가는 길을 조절해 가는 대신, 수동적으로 자신의 삶이 상황이 이끄는 대로 창조되어지는 동안에, 성취자들은 자신의 인생을 창조해나가는 데 있습니다.'

토링이의 팬 페이지에 찾아오는 몇몇 분들은 이제 성인이 되어 직업을 찾는 분들도 있는 걸로 압니다. 현재가 어렵더라도 당당함을 잃지 마십시오. 언제나 어디에나 자신의 자리가 있다는걸 믿으세요, 그러나 준비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자신에게 오는 찬스를 알 수가 없습니다.

다음에 혹시 기회가 된다면 '문화'에 대한 제 개인 생각을 한번 더 써 볼 기회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지금은 제 개인적으로 많은 여유가 없군요. 하지만 토링이의 부탁을 미룰수 없어 이렇게 나름대로 성의껏 적어 봤습니다. 조금이라도 여러분의 궁금증이 풀렸기를 바랍니다.

이제 Robert Kiyosaki의 말을 인용하며 마칠까 합니다. 그에의하면, "당신이 무엇인가 필요하면 그 필요한 것을 먼저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필요한 것을 얻게 된다는 것인데, 그것이 돈이 됐든, 사랑이 됐든, 무엇이든.

여기 그가 했던 비유의 이야기의 원문과 제 번역본을 옮겨 보겠습니다.

"The guy sitting with firewood in his arms on a cold freezing night, and he is yelling at the pot-bellied stove, "When you give me some heat, then I'll put some wood in."

'몹시 추운 어느 겨울 밤, 한 남자가 팔에 장작을 안고 앉아 배불뚝이 난로에게 소리지르고 있었습니다. "네가(난로) 나를 좀 따뜻하게 해주면 내가 장작을 좀 넣어주마."'


*출처:순철그리기 www.voicejjang.com/



2002년, 고인이 남긴 답변들을 읽어보면서, 성우로서 걸어왔던 백순철씨의 길을 거슬러 올라가봅니다.

누군가에는 멘토였던 백순철씨.. 성우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목소리가 좋은 분들은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목소리도 갈고 닦으면 자신만의 개성미 뭍어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지요. 절차탁마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좋은 옥도 다듬어 내지 않으면 빛을 발하지 못합니다. 학문도 마찬가지지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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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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