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내가 나를 아주 싫어한 적이 있습니다.

하는 '생각'이 하는 '짓'이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아

'이 한심스러운 녀석아'하고 욕을 해댄 적도 있고

'불쌍한 녀석'하고 혀를 찬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에는

산모퉁이 돌아 외딴 우물을 찾아가서

들여다보는 '나'가 나오는 것을 스님도 알고계시지요?

미운사나이와 가엾은 사나이 사이를 왕복하는 그리하여 마지막 연(聯)에 이르면

어쩐지 '그리워지는 사나이'

 

 

저는 아직 제가 그리워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랑하랴 싶어서,

최근에야 나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흰머리칼이 제법 희끗거리고 눈주름도 제법 보이고

보기싫게 살이 쪄가는 중년남자.

쓸 만큼 쓰여져서 그런지 지난 봄에는 잇몸 공사도 다시 하고

안경 도수도 한 급 더 높였습니다.

 

 

5월에는 갑자기 유명을 달리한 친구가 생긴데다가

주위의 권고도 있고 해서

생전 처음 종합검진이라는 것을 받았는데,

내장 가운데 두 군데에 재검진이 떨어졌습니다.

 

 

다시 오라고 한 날,

잔뜩 주눅이 들어서 갔더니 위는 벽이 좀 헐었다며

약을 주었고 간은 절주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금주 아닌 절주여서 천만다행이었습니다만,

한편 그동안 내장한테 함부로 대한 것을 사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안하네'하고요.

 

 

어제는 거울 앞에서 남한테는 헤펐으면서도

나한테는 안색했던 미소를 쑥스러움을 무릎쓰고 선사하였습니다.

오늘밤은 나를 껴안아줄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스님, '나'는 '나'이어서 행복한 것이겠지요.

장마철입니다.

스님네 앞 도랑에 물소리가 크겠네요.

도랑물한테도 안부를 전합니다.

 

|발췌:  정채봉 <좋은예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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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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