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수연| 만남'에 해당되는 글 33건

  1. 2012.07.16 장마철에는 부침개를
  2. 2012.06.25 책 출판, 그 후
  3. 2012.05.24 KACE의 고마움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여름날

괜히 입이 궁금해지면

나는 고소한 기름내가 코끝을 자극하고

지글거리는 소리가 빗소리 같기도 한

부침개가 먹고 싶어진다.

 

 

밥 외에는 달리 먹을 것이 없었던

내 어릴 적에 부추나 호박 또는 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돼지비계를 두른 번철에다

노릇노릇 알맞게 지져낸 부침개는

장마철 주전부리로는 단연 으뜸이었다.

 

 

맛도 맛이지만 아마도 일곱 명이나 되는 형제들이

올망졸망 둘러앉아 부치기가 무섭게 쟁탈전을 벌려야 했기에

더욱 입맛을 다셨는지도 모른다.

 

 

거기에 비하면 요즘은 건강을 생각해서 몸에 좋다는

각종 야채와 해물, 버섯 따위를 듬뿍 넣고

기름도 콜레스테롤이 적다는 올리브유나 포도씨유를 가지고

부쳐내지만 아무래도 고소한 맛은 옛날보다 덜 한 것 같다.

그런데 결코 특별한 음식이라고 할 것도 없는

이 부침개에도 우리 집에서는 한 가지 불문율이 있었으니

부침개 첫 장은 꼭 남자가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첫 소당을 여자가 먼저 먹어버리면

부정이 탄다나 어쩐다나... ㅡ,.ㅡ

 

 

아버지나 큰오빠는 그렇다고 쳐도

새까맣게 어린 남동생이 어머니나 누나들을 제치고

제일 먼저 먹는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안 갔다.

그래서 그 부당함에 맞서

언니들과 함께 저항(?)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문제는 내가 지금 어머니 방식 그대로 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쁘다는데 굳이 역행할 필요는 없지 뭐.’ 하면서 말이다.

이래서 교육이 무섭다고 했나?

뉴스를 보니 올 장마는 예년보다 더 길어질 전망이란다.

따라서 이번 여름엔 부침개를, 특히 감자전을 많이 부쳐 먹게 될 것이다.

올해는 다른 밭작물보다 감자 농사가 풍작을 이뤘으니

재료에서부터 완성품에 이르기까지 먹는 기쁨이 다른 때보다 훨씬 더 클 것 같다.

 

 

비오는 날 부침개의 기억이 진한 까닭을 기상학자들은 이렇게 해석한다.

평소엔 상승기류와 함께 날아갈 냄새들이

궂은 날 저기압에 갇혀 주위를 맴돌기 때문에

부침개 지지는 냄새가 유난히 고소하게 느껴진다는 얘기다.

따라서 체온이 떨어져 차고 물기 많은 음식을 멀리하게 되는 장마철엔

고소한 기름 냄새가 식욕을 자극하고 제철 채소를 듬뿍 섭취할 수 있는 부침개가 제격이란다.

 

 

기름에 지글지글 부쳐 먹는 빈대떡은

원래 가난한 사람의 떡(貧者떡)이라는 뜻이었다.

조선시대 흉년이 들면 유랑민이 남대문으로 모여 들었는데,

이 잘사는 양반집에서 빈자떡을 소달구지에 싣고 와

“누구누구 집의 적선이요!” 하면서 던져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으라던

‘빈대떡 신사’ 노래 가사처럼 그 시절 가난한 어머니들이

무더운 여름날에 집에 있는 자투리 채소들을 집어넣고

부침개를 즐겨 해먹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옛날에는 무엇이든지 어머니가 해주는 대로 군소리 없이 먹었다.

지금처럼 “뭐 먹고 싶니?” 물어서 먹고 싶은 음식을 대령하는 일은 가당치도 않았다.

적어도 음식에 관한 한 어린아이들에게 ‘표현의 자유’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엄마들은 아이들 먹이는 일이 결코 수월치 않다고 말한다.

대개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몸에 해롭고, 몸에 좋은 음식은 아이들이 기피하기 때문이다.

 

 

사실 혀끝에 남아있는 감미롭고 화려한 미각만이 기억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진수성찬의 기억은 강렬하고 매혹적이지만 대체로 살뜰한 여운이 없다.

이에 비해 궁핍했던 어린 시절 음식의 기억은 흐릿하면서도 끈질기다.

그래서 비오는 날 고소한 부침개 냄새와 맛엔 어김없이

옛 기억도 조건 반사처럼 끼어드는데 거기에는

우리네 맛의 뿌리인 모성이 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득 그 옛날 장마 진 날 대청마루에 앉아

하염없이 적시는 빗줄기를 바라보면서 형제들과

호박 부침개를 나누어 먹던 어린 시절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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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겁 없이

또 한 권의 책을 엮었다.

 

내 이름을 달고 나온

세 번째 책이었다.

그런데 첫 번째 두 번째와 달리

이번에는 주변의 반응이 뜨거웠다.

 

많은 사람들이 전화와

문자로 격려를 해주었고

이메일로 독후감을 써준 사람도

서넛 있었다.

 

 

 

싱가포르에 사는 여동생은

습작 같은 치졸한 산문집 수준에서 벗어나

글이 많이 세련되었다고 전화로 말해 주었다.

아랫사람으로서 조금 건방진 발언 같았으나

그냥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책이 나오고 나서 맨 처음의 독자는

가족이었다.

남편은 백 권이 넘는 책을

자기가 아는 사람들에게 배포했다.

책이 나오기 전에

이미 출판비의 절반 이상을 부담했던 터라

그는 정말 부담 없이 책을 돌렸다.

 

추가 주문도 받아 왔다.

작년 12월3일에는 남편의 고교 동창 송년 모임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어 주어

저자 사인회도 가졌다.

 

나중에 거기서 걷힌 책값을

동창회 장학금으로 내놓으면서

남편은 꽤나 으쓱해했다.

 

큰딸도 30권만 사겠다면서

책값을 부쳐왔다.

우리 엄마가 책의 저자라고 뻐기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단다.

헌데 유독 작은딸만은 시종 무관심으로 일관.

이유인즉슨 책 속에 등장한 자기의 술 취한 모습을

너무 적나라하게 묘사해서 망신스럽기 짝이 없단다.

왜 엄마는 그런 얘기를 자기 허락도 없이 썼느냐고

거세게 항의했다.

엄연한 초상권 침해라나 뭐라나.

 

그 후 1월 중순 쯤,

재미있는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평소 알고 지내던 권사님인데

자기 남편이 내 책을 읽고 나서

저자와의 만남을 주선해 달라고 요청했단다.

뜻밖의 제안이었다.

 

그러나 내가 무슨 유명작가도 아니고

또한 나를 만나면 남편의 환상이 깨질까봐 걱정된다며

나름대로 재치 있게 거절한다고 했건만

거듭된 요청에 결국은 수락하고 말았다.

 

며칠 후 우리는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정식 집에서 만났다.

깔끔한 인상의 그 남편분은 말수는 적었지만

문학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오랫동안 시를 썼다고 했다.

그는 내 책 내용은 물론

우리 딸들 이름까지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책읽기가 아까워서

단숨에 읽기보다는 한번에 네 편씩 아껴가며

읽었노라고 수줍게 털어놓았다.

 

아, 이보다 더 큰 찬사가 어디 있으랴...

사실 이번 책 출판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딸의 혼사준비,

어머님의 수술과 장기 입원 등으로

글 쓸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게다가 같은 자세로

긴 시간을 컴퓨터와 함께 하다 보니

목 디스크까지 걸려

근 석 달 간 물리치료까지 받았다.

어쩔 수 없이 글쓰기는 당분간 접어야만 했다.

 

그런데 이날의 황홀한 칭찬에 힘입어

나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고 말았으니

실로 성취가 주는 마력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앞으로 권사님은 빠지시고 우리 둘이서만 만나면 안 될까요?”

 

하고 내가 농담을 건넸더니

그분은 그건 절대 안 된다며 정색을 하는데

옆자리의 부인은 몹시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응수한다.

“아휴, 우리 남편 순진하시기는...”

 

책 출판 후,

가장 획기적인 일은

안사돈으로부터 받은 책 주문이었다.

딸아이의 결혼식을 앞두고

사돈과 함께 한 자리였다.

 

상견례이후 두 번째 만남이어서

아직은 많이 어색한 분위기였는데

안사돈이 갑자기 책 얘기를 꺼내는 거였다.

아들이 가지고 있던 내 수필집을 빌려 읽으셨단다.

 

 

“저, 이런 얘기 해도 될지 모르겠네요.

 사실은 제가 소현이 어머니 책을 읽고 나서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주려고 출판사에 전화를 걸었댔어요.

  한 20권쯤 주문하려고 했는데 그런데 재고가 없다지 뭐에요.”

 

뜻밖의 발언에 뭐라고 답해야 될지 몰라서 잠시 생각하는 사이 딸이 먼저 말했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집에 책 많이 있어요.”

 

어떻게 집에 책이 많이 남았냐는 질문에 딸은 또 말했다.

“안 팔린 책이 박스 가득 있다니까요.”

 아, 이럴 땐 내가 뭐라고 해야 하나....

 

또 여러 사람들이 물었다.

책은 많이 팔렸는지,

비둘기 소동에 나온 그 비둘기들은 어찌 되었는지,

남편은 아직도 줄기차게 택배를 시키는지,

등등 궁금한 게 많았나 보다.

 

한편 내용이 중복되어서

책의 완성도가 떨어졌다는 고마운 충고도 있었으나

대체적으로 재미있었다고 했다.

보통 수필이 재미없다고들 한다.

 

 ‘사실의 재현과 전달’이라는

수필 본래의 정의와 성격에 갇혀 그렇게 인식되는 것 같다.

소설이 재미있어야 한다는 말은 수필에게도 해당된다고 본다.

지나치게 논리적이며

추론적인 수필은 독자의 접근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사랑, 끝나지 않은 여정>은

대충 읽을 사람들을 고려해서 지루하지 않게 쓰려고 노력했다.

가능한 대로 꾸미지 않고 쉽게 썼다는 얘기도 될 터인데

만일 누군가가 신변잡기에 불과한 글이라고 혹평을 해도 나는 기꺼이 감수하겠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네 삶은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니던가.

세상 모든 생명이 저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그래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은

나의 삶에 대한 성찰과 반성, 격려와 희망을 준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호들갑스럽지 않고 억지 꾸밈도 뽐냄도 없는 잔잔한 글,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그런 것들이었는데

더러 공감해준다면 고맙고 행복한 일이다.

 

어느 수필가가 말했다.

 ‘수필은 솔직하면 창피하고 감추면 의미가 없다’고.

속을 다 드러내고도 부끄럽지 않을 경지에 이른 인격이라야

비로소 수필을 쓸 수 있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종(鍾)이 좋아야

좋은 소리를 울리듯

마음이 넓고 맑아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건 당연한 이치라고 본다.

 

인생의 경지가 곧 수필의 경지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공부와 더불어 마음 밭을 가꾸는 일에

더욱 매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번에 내가 사인해서

준 책을 오래오래 간직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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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시 건강가정지원센터로

강의를 나갔을 때의 일이다.

 

 

비가 온 탓인지 그날따라 경부고속도로는

기흥에서부터 꽉 막혀 정류장을 방불케 했다.

 

 

강의 시간은 다 돼 가고 차 안에 오랫동안 갇혀 있다 보니

침이 마르고 발에 쥐까지 났다.

그런데 바로 옆의 버스전용차선은

너무도 시원하게 뻥 뚫려있는 게 아닌가.

할 수 없다, 벌금을 물더라도 그 길로 달릴 수밖에.

결과는 9만 원짜리 범칙금 두 장에 30분 지각 사태. 각오는 했으나 너무 심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감사하다.

재작년 딱 한번 모든 걸 중단해야 할 위기가 찾아왔다.

남편의 병간호 때문이었는데 강의는 물론

나의 모든 생활이 올 스톱 상태가 되었다.

 

 

당분간 휴직강사가 되어야했다.

그때 하루 단위로 빼곡히 들어차있던 프리랜서의 일감을 끊어야 했을 때,

소소하나 무시할 수 없는 그 돈벌이와 일정기간 이별해야 했을 때,

나중에라도 그 일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싶은 두려움에 나는 불안했다

 

 

2009년 5월 26일, 강남의 메리어트 호텔에서 열린

 지역사회교육운동 40주년 기념식장에서

 협의회는 나에게 공로상을 주었다.

사실 내가 크게 공로를 끼친 바는 없으나

아마도 오랫동안 참여했다는 의미에서 주는 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가슴 뻐근할 만큼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숱한 역경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잘 버텨 왔기 때문이다.

도종환 시인의 말처럼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강사의 길, 그 길은 누구의 강요 없이 내가 좋아서 선택한 길이었으며

그 길에서 나는 적지 않은 보람과 행복을 건져 올렸다.

 

 

가장 최근에 천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글쓰기 심화 과정 강의 의뢰를 받고 갔는데,

수강자들은 위촉을 받고 현재 강사로 활동 중인 사람들이었다.

거기에는 10년 전 분당 이마트 문화센터에서 내 강의를 들었던 선생님도 있었다.

 

 

 첫날 강의가 끝나고 점심을 먹으면서 그가 말하였다.

“제가 처음 이마트에서 공부할 때 10년 후엔

 나도 함수연 선생님처럼 엄마들에게 강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꿈이 이루어져 저는 지금 그 일을 하고 있는데

오늘 선생님을 만나면서 다시 10년 후의 꿈이 생겼어요.

이제는 강사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심화 과정을 맡아 하겠다고요...”

 

 

앞으로 10년 후의 꿈을 말하면서

그녀는 해바라기 같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랬구나! 왠지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를 본보기로 삼겠다니 더 잘 해야지.’ 하는

 부담감과 그는 이미 청출어람의 단계를 뛰어 넘었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한편 서울서 낳고 자란 나는 지방에는 아무런 연고가 없었는데

 전국으로 강의를 다니다 보니 지역마다 절친한 친구가 하나 둘씩 생겨났다.

 

 

여수, 부산, 울산, 부천, 의정부 등등.

처음 시작은 대부분 강사와 수강자의 관계로 만났으나

지금은 동료강사로서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좋은 길동무가 되었다.

 

 

 더구나 이 친구들은 현재 그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강사로

눈부신 활동을 하고 있으니 인연을 만들어준 KACE가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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