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의 성희롱 발언이 인터넷 공간에 도배되고 있네요. 중앙일보에 의해 첫 보도된 강용석 의원 발언이 조선일보, 매일경제를 통해 추가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강용석 의원이 발언한 내용을 하나하나 읽어보니, 참 부끄럽네요. 아이들 보기에 민망할 정도입니다. 한나라당이냐 민주당이냐 정치적 색깔을 떠나 왜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성추행 발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지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강용석 의원은 서울대 법대와 하버드대에서 법학 석사를 받은, 그야말로 한국사회 엘리트 코스를 밟은 재원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성비하, 성희롱 발언을 쉽게 했을까요? 강 의원이 발언 내용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진위여부를 가릴 때까지는 쉽게 비판해서는 안 되지만, 지금까지 정황으로 미루어 본다면, 발언 내용이 사실 인 것 같습니다. 한나라당에서 급히 제명 조치를 내린 걸 보면.

 

강용석 의원뿐만 아니라, 과거를 돌아다보면 한국 사회 성추행, 성 비하 발언과 사건은 부지기수입니다. 여성을 상품화하거나, 비하하는 것은 분명 차별입니다. 성차별문제지요. 성차별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그 뿌리는 가정입니다. 물론 가정교육이 모든 것을 다 이루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참 중요하지요. 엄마 아빠는 자녀의 바로미터. 부부가 인격적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을 보고 자란 자녀들과 그렇지 않은 경우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한국에는 남존여비사상의 잔재가 남아있지요. 아내를 시중꾼처럼 대하는 아빠의 발언과 자세야 말로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요.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부부는 서로 인격적으로 대우해주어야 합니다.

 
딸아이의 눈으로 본 어른 세계의 모습을 담은 ‘100% 엔젤’이라는 책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아빠가 엄마에게 이것저것 시킵니다. 엄마는 말합니다. “이것 봐요. 나 남편 필요 없어요. 나도 아내를 구해줘요!” “한국 땅에서 제일 살기 좋은 사람은 아내있는 사람이예요. 밥해줘, 양말 빨아줘, 재떨이 갖다줘, 시키는 대로 말 잘 들어줘, 혼 내키면 야단맞아줘, 자식 키워줘, 부모 모셔줘, 나도 남편 필요 없어요, 아내 하나 구해줘요”

 
예전에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안상수 교수. 안상수 교수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존칭을 쓰지요. 형식적인 존칭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난 존칭.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차별의 근본 뿌리는 가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아야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합니다. 마치 교육이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출세가 보장된 직장을 얻는 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지요. 평생교육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극단을 달리는 말, 싸움을 위한 말이 아니라 마음의 평온과 평화를 위한 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부모도 이제 교육을 지속적으로 받아야 합니다.

 
강용석 의원의 성추행 발언을 통해, 한국 사회의 성에 대한 인식과 성문화, 인권교육이 어느 수준인지 반성하고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나는 일상에서 남을 차별하고 상처를 주는 발언을 하지 않았는지....'불완전 한 것이 비로서 인생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완전 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끝임없이 배우고, 인성을 가다듬는 교육이 절실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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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주는 사람은 부모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을 잊고 살지요. 가볍게 던진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하나가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그대로 전해집니다. 자녀들에게 부모는 세상을 보는 바로미터. 요즘 학교 체벌 때문에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폭력은 근절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어느 한편에서 바라 볼 문제는 아닙니다. 선생, 학생, 학부모가 같이 고민해서 풀 문제입니다. 체벌은 내재적 처벌과, 외형적 처벌 두개가 존재합니다. 외형적 체벌은 육체적 벌이 있고, 내재적 체벌은 말의 폭력, 멸시와 혐오 차별의 시선입니다. 폭력은 내재적 체벌에 통해 주로 발생합니다. 말의 폭력은 육체적 폭력으로 연결되지요. 화를 억제하지 못하면, 결국 폭력으로 이어지니까요. 체벌은 금지되어야 하지만, 그 전제는 과연 가정과 학교에서 비폭력 대화법에 익숙한지, 토론과 대화문화가 성숙되어 있는지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오늘 소개시켜 드릴 시계는 폭력 금지 시계입니다.
물론 이 시계가 폭력을 막지는 못합니다.
필리핀에서 제작한 "여성 학대 시계'는 꼭 여성에게만 국한된 시계가 아닙니다.
필리핀에서는 한 시간 마다 여성 폭력이 발생합니다. 필리핀만의 현황이 아닙니다. 






바로 이 시계입니다.
한 시간이 다 되어 가면 분침(남자)가 시침(여성)을 향해 주먹질을....




   







직장과 학교, 공공시설에 시계를 설치해 놓았네요.

이런 시계가 제작 되지 않는 사회가 오면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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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그리스어로 멀리서 보다라는 뜻인데 너무 가깝게 보고 있지 않으신가요? 영국 출신의 대표적인 현대 사진작가 중에 한사람인 폴 그레이엄(Paul Graham,1956~). 그레이엄이 렌즈에 담은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현대인의 자화상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대 최고의 발명품 중에 하나인 텔레비전. 텔레비전에 너무 중독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텔레비전으로 인해 가정에서. 대화의 벽이 생긴 것은 아닌지....
미국의 대표적인 언론인 매기잭슨은 텔레비전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이리저리 흔들며 쥐었다 놓았다 하는 텔레비전은 알고 보면 인간을 방해하는 데 전문인 기계로, 인간의 집중력을 잘개 쪼개는 힘이 이만큼 막강한 장치는 이제까지 없었다". 미국의 한 연구진(앤더슨팀)은 tv를 시청하지 않고 있는 순간조차도 tv가 가정생활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최근 밝혀내었습니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1~3세 아기들은 텔레비전이 켜져있을 때 놀이에 대한 집중력이 25%나 떨어진다고 합니다. 또한 tv를 볼 때는 아이들과의 교류가 20퍼센트 줄어들고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수동적은 반응을 보인다고 하네요.("귀찮게 하지마, tv 보는 중이잖이" 하는 식으로)

텔레비전은 결국 자라나는 아이들의 주의력결핍장애를 일으키는 셈이지요.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미국에서는 매년 4월 마지막 주에 텔레비전 끄기 운동을 전개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중산층 가정마다 보통 n+1대의 텔레비전이 있다고 하지요. 여기에서 n은 각 가정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수 그러면 +1은? 스포츠 방송을 시청하디 위한 별도의 텔레비전이 한 대 더 있다는 말. 텔레비전 보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야 말로 가정에서  대화를 복원하는 가장 중요한 바탕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아니면 한 달에 한번이라도 텔레비전 보지 않는 날을 만들어 보면 어떨지요.


< 폴 그레이엄의 텔레비전 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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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은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정신적 육체적인 능력을 감소시킬 뿐 아니라
텔레비전은 자연과 타인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마저 소외시키고 인간의 감각구조를 혼란스럽게 한다. - 제리 맨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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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들은 현재 중학교 2학년 남학생입니다.

현재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님께 좋은 예가 될 것 같아서 몇 자 적어봅니다.

 

제 아들은 2학년 초만 해도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친구들과 뛰어노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학교에서도 왠만한 아이들이나 선생님은 이름만 들어도 까불대는 녀석이라고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갑자기 공부에 열을 내더니, 외고를 가겠다고 의지에 불타고 있습니다.

놀기만 하던 아이가 공부를 갑자기 하자니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옆에서 지켜보는 저는 차라리 나랑 놀자며 유혹하며 달래줍니다.

 

영어는 초등 3학년부터 집에서 제일 가까운 학원을 다니다가

6학년이 되면서 제법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원을 선택해서 다녔는데 열심히 했습니다.

다른 학원은 전혀 다녀 본 적이 없으며,

중학교 1학년을 앞 둔 1월에 수학 전문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4 주 전에 저 몰래 외고 준비반에 시험을 치고 반 배정을 받았습니다.

어제는 학원에서 외고 설명회를 한다기에, 아들 친구 어머니와 다녀왔습니다.

설명회를 듣고나니, 마치 고3 수험 준비를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기가 막혔습니다.

너무 힘들 것 같아서 걱정이라고 했더니, 아들은 심장박동수가 빨라진다며 의지를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아들의 성적이 최상위권도 아닙니다.

1학년 때는 전교 30% 끝자락이었는데, 이번 시험에야 겨우 7% 정도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외고를 갈 수 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 달, 두 달 변해가는 아이를 보면서 저는 행복합니다.

앞으로 아이가 살아갈 남은 세월을 생각해보면, 외고를 못간들 어떻겠습니까.

중학교 2학년 학창시절에, 스스로 학업에 도전을 하고 실패와 성공을 번갈아 체험할 수 있다면

언젠가는 자아실현의 꿈을 꾸고 실천해가며 인생의 참 맛을 배우고 말 것으로 보여서 저는 행복합니다.

 

 

 자기 주도적 학습의 시작

아들은 초등 6년 동안 성적이 학급 평균을 넘겨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4학년 때 국어를 100점 받아 본 경험이 100점의 전부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성적표를 받아올 때마다 아이는 죄송하다며 울었습니다.

저는 단 한번도 성적에 대해 질책하거나 실망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면,

성적표에 나와있는 다른 아이들의 성적이, 그 아이 자신만의 진정한 수치가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중·고등학교에 가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단순 암기로 이루어진 이해력으로는 학습이 어려우며

반드시 자기주도적 이해력과 사고력만이 진짜 실력인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학습 이론에는 만 15세 전·후가 되면 자기정체성을 깊이 있게 탐구하며

자기주도적 학습을 여러 각도로 시도해보는 시기가 온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자신감끈기 있는 사고습관을 훈련해야 합니다.

 

너무 어려서부터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 문제를 쉽게 푸는 방법만 익히기 때문에

스스로 도전하고 실패의  쓴 경험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보면 자기주도적 학습을 해야할 시기가 되었을 때,

끈기가 부족하여 깊이 있는 사고력에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제 아들은 성격이 매우 급한 편인데

수학문제 하나를 푸는데 30분을 고민하다가 답을 찾지 못해, 얼굴이 시뻘개져서 울부짖은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 잠시 후 다시 안정을 찾고 오기를 가지며 책상에 앉아 다시 답을 찾기 시작하여

드디어 답을 해결했을 때 환희에 벅차서 날뛰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순간들이 모여서 오늘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실패한 경험과 혼자서 그것을 이겨낸 경험이 없으면 자기주도적 학습으로 가기가 어렵습니다.

 

 

초등학생이 갖추어야 할 항목

초등 시기에는 음악, 미술과 같은 예체능이나 영어 학습 정도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각 학년 교과과정의 기본 개념만 명확하게 이해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 다음에는 열심히 책을 읽히는 것이 진리라는 것을 부모님께서 믿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헛된 광고나, 이웃 어머니의 신빙성 없는 유언비어에 불안한 부모님이라면

아이를 학습에 몰아부치지 말고, 학습에 관련한 좋은 책을 읽으시는 편이 좋습니다.

특히, 초등학교 시기에는 논술이라는 함정에 절대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장점이 한 두 가지는 있습니다.

제 아들은 적성평가 결과에서 정열성이 상위 3%이며, 지배성, 주도성이 높았습니다.

대신 자아통제성이 매우 낮아서 문제가 많은 학생이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아들은 자신의 장점을 놀기에만 집중했으며, 게임을 할 때는 손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몰입했습니다.

저는 게임에는 전혀 통제를 하지 않았고, 인터넷 게임은 비밀번호로 부모가 있을 때만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핸드폰은 절대로 사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아이가 자기만의 장점을, 부모가 원하지 않는 방향에 집중하여도 칭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런 말을 자주 했습니다. 당연히, 제 스스로 믿음을 가진 후에 한 말이었습니다.

"놀 때도 머리를 써야 하지? 그것도 좋은 거야. 그게 결국은 나중에 너가 원하는 것을 할 때 도움이 될거야."

"너는 정열성이 뛰어나서 언젠가는 성공하고 말거야!"

물론, 사소한 일로 꾸짖은 적도 많습니다. 그러나 칭찬과 꾸짖음의 중간길을 지키려고 무던히 애를 썼습니다.

그 중간길을 교육이론에서는 황금길이라고 표현합니다.

 

 

글을 마치면서

책은 어떻게 읽히는 것이 좋은지 가까운 날에 다시 한번 글을 올리겠습니다.

예체능이나 영어는 부모님이 가르치기 어려워 학원을 이용하는 것도 좋지만

독서는 학원을 보내므로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 훨씬 쉬운 영역입니다.

부모님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가장 훌륭한 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독서관련 학원을 보내더라도 부모님의 보조역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가까운 날에 각 가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독서교육 방법을 소개하겠습니다.

제가 수술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1시간 이상을 앉아 있을 수 없는 형편인 것을 양해바랍니다.

 

위의 글은 지극히 제 개인적인 예를 든 글이므로

이 글을 읽으시는 부모님의 교육관과 대비하여 깊이 있게 생각하다보면

각 가정마다 적합한 학습교육관이 생기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좋은 사례가 있으면 답글로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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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보건 기구(WHO)는 우울증이 2020년 무렵에는 관상동맥질환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질병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한국의 자살률은 세계 1위. 2006년부터 자살률이 더 급증하고 있습니다. 칸 국제 영화제에서 주목할 시선 부문 대상을 받은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에서도 주인공이 항우울제를 습관처럼 복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요.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는데. 우울증. 왜 우울증에 빠지는 걸까요? 행복하다면 굳이 항우울증제를 먹을 필요가 없겠지요. 자신이 불행하다는 생각, 견딜 수 없는 고통, 고독 소외감, 스트레스으로 인해 우울증이 발생합니다.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거나, 즐기기 뿐만이 아니라, 더 많은 행복을 원합니다. 아마존 사이트를 가보면 행복을 가져오는 일곱 가지 습관, 아홉 가지 선택, 행복에 관한 14,000 여 개의 다양한 관점의 2,000종 이상의 책이 있습니다. 행복은 인간에게 있어서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지요. 항우울제 또한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찾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전문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하지만, 우울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행복하지 못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약물치료는 행복감을 증가시키지 못했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족하고, 안전하고, 건강하고, 정신 건강에 좋은 의약품과 치료법들이 있는 세상에 살고 있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우울과 불안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사람이 단 맛보다 쓴 맛에 더 자극을 더 예민하지요. 칭찬보다 비판에 더 민감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부정적인 의견(혐오적인 말)으로 상대방을 욕하면, 그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한 번의 욕보다 더 많은 칭찬이 필요하듯.

 

사람은 부정적인 것에 아주 민감합니다. 단 맛을 좋아하고 쓴 맛을 싫어하듯. 거친 표면보다 부드러운 것을 만지는 걸 좋아하지요. 평범한 얼굴보다 아름다운 얼굴을 보기 좋아합니다. 불협화음보다 협화음의 선율을 듣고 싶어 합니다. 행복이 유전자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물도 있지요. 행복해지는 것은 키 크는 것만큼 어렵다는 말도 유행될 정도였으니까요. 말도 안 되죠?

 

행복에 대해 생각할 때, 사람들은 세상 밖의 무언가에 몰입할 때, 타인과 함께 있고, 활동적이고, 스포츠를 하고, 사랑하는 사람에 열중하고, 배우고, 사랑을 나눌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자살한 사람의 글을 컴퓨터로 분석해보면 흥미롭게도 “우리”가 아닌 “나”란 일인칭 단수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하지요. 돈으로 사는 행복에 대한 근거는 희박합니다. 하지만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요. 돈에 관한 문제 중 하나는 실제로 돈 자체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돈을 너무 탐욕스럽게 좇을 때 그들은 삶의 실제 기본적인 즐거움에 대해서 잊어 버립니다 가장 중요한 가치는 행복입니다.

 

“오직 하나의 질문만이 있다. 이 세상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만약 당신의 일상이 초라해 보이면 그것을 나무라지 말라. 당신을 나무라고 스스로에게 삶의 풍족함을 이끌어낼 만큼 시적이지 않다고 말하라.” “먼저 자신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말하라.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라.” (릴케)

 

사람은 누구나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우울증은 이제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가족 구성원 중에 우울한 증상을 보이면, 자세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울러 정신질환에 대한 선입감을 지워야 합니다. 정신치료는 참 중요합니다. 정신장애가 사회적 장애로 가지 않아야 합니다.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처방은 관심과 대화입니다. 항우울제가 우울증을 결코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합니다.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도록 생각하고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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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하의 자살. 참 충격적인 일입니다. 2005년 영화배우 이은주의 자살에 이어 올해까지 7명이 넘는 유명 연예인들이 자살했습니다. 철학자 파스칼은 ‘자살을 하는 사람조차도 어떻게든지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자살하는 사람도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살을 선택했지만,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절망과 희망 사이를 넘다듭니다. 행복을 끝없이 추구하지만 절망에 이르기도 하지요. 김용하의 자살을 통해서 ‘행복’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버트런드 러셀은 인간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를 이야기 합니다. 인간은 무엇인가 충족하지 못한 데서 행복을 찾지 않고, 개인적 기질이 불행을 자초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꾸짖습니다. 자기 안(에고)에 갇혀 이유 없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 극심한 경쟁, 권태감, 질투의 감정, 불합리한 죄의식, 남에 대한 원망, 세상에 대한 부적응 등이 인간 행복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라고. 러셀은 열정, 사랑, 일, 폭넓은 관심, 노력을 통해 행복은 순간순간 다가온다고.

 

순간의 행복을 찾아서

사실 행복해지려고 신경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열정을 갖고 살아가면 됩니다. 삶의 오르막과 내리막, 그 우여곡절, 고통 또한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면 고통이 잠시 동안 멈추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지요. 그 순간이 행복 아닐까요?

 동양과 서양의 문학을 들여다보면 무수히 다양한 행복의 정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 행복이란 단어 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찾아 볼 수 있을까요? 구글에 ‘행복’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웹문서 1억 개에 가까운 검색결과를 보여줍니다. 그만큼 인간은 행복을 찾기 위해 행복해지기 위해 끝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지요.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현재는 믿지 않는다. 다만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상상할 뿐이다. 반면, 행복은 지금 여기에 있다거나 행복은 지금 이 순간의 생생함에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인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류의 대사상가들은 행복이란 말은 모호하게 남겨두었다. 그래서 각자 자기 자신 만의 말로 그것을 정의내릴 수 있게 말이다."

 

만약 행복이 우리의 삶 순간 순간의 질을 결정할 무언가라면 우리는 그게 무엇인지 좀 더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아마, 우리는 행복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원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순간의 행복에 등을 돌려 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 우리는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하지만, 오히려 어떻게 보면 그것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습니다. 가장 흔한 예가 행복을 쾌락과 혼동하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이 둘의 성격을 가만히 살펴보면, 쾌락은 시간과 장소, 그리고 대상에 의해 좌지우지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자체로 영원불변하는 건 아니지요. 보기에도 좋은 초콜릿 케잌을 예로 들자면: 처음 한 접시는 맛나지요. 그 다음 건 전 것만 못하구요, 나중엔 넌덜머리가 나죠. (웃음) 세상 일이란 게 대게 그렇습니다: 질리게 마련이지요. 당신이 추울 때, 가까이서 불을 쬐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겠죠. 좀 있다가는 한 발짝 물러서게 되구요 더 있다가는 살이 타는 듯 하기 시작합니다. 당신이 경험함에 따라 쾌락이 마치 스스로를 갉아먹는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쾌락이 전염성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당신이 진한 쾌락을 느끼는 반면 몇몇 주변인들은 엄청나게 고통받을 수 있는 것 처럼요.

 

행복이라 무엇일까?


그렇다면 행복이란 뭘까요? "행복"은 너무 추상적인 단어이니까 대신 "웰빙"이라고 합시다. 행복은 모든 감정적인 상태에 걸치는 것이며 그 기저를 이루는 상태입니다. 한 사람에게 닥칠 수 있는 모든 기쁨과 슬픔을 포함해서 말이죠. 당신에게는 조금 놀라운 말일 수도 있겠군요. 슬프면서 동시에 이런 웰빙을 가질 수 있을까요? 물가로 밀려오는 파도를 보세요. 파도 아랫부분에 있다면 당신은 바닥을 치게됩니다. 딱딱한 바위에 부딪히게 되죠. 위쪽에서 파도를 타고 있다면, 당신은 한껏 들뜰 겁니다. 들뜸과 침울함 사이를 오갈 뿐, 깊이라고는 없죠. 이번에는 심해를 생각해 봅시다. 거울처럼 아름답고 고요한 해양도 있겠구요 폭풍이 휘몰아 칠 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해양의 깊이만은 변하지 않은 채로 언제나 존재하죠. 어떤가요? 웰빙이란 의식의 존재양식이지 단순히 순간의 감정이나 느낌은 아닙니다. 기쁨조차도, 행복의 소산일 수도 있지만, 사악한 기쁨이란 것도 있습니다. 다른이 의 고통에 크게 기뻐할 수도 있죠.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행복을 추구할까요?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외부를 바라봅니다. 우리가 흔히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라 말하는 것처럼 이것과 저것 등 모든 조건들을 갖춘다면 행복해질거라 생각합니다. "행복해지기 위한 모든 것을 갖는다" 이 문장 자체가 이미 행복의 파멸이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을 드러냅니다. 모든 것을 갖는다란 말은 우리가 하나라도 놓치면 행복이 무너짐을 뜻합니다. 또한, 일이 잘못되어갈 때, 우리는 외부사항을 바꾸고자 무던히도 노력합니다. 그러나 외부세계에 대한 우리의 통제력이란 제한되어 있고, 일시적이며, 종종 허상에 불과합니다.

달라이 라마가 포르투갈에 머물 때의 일입니다. 도처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이봐요. 당신은 이 모든 걸 하고 있지만 그 안을 채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 또한 멋지지 않겠어요?" 이어서 말하길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가 최신식의 편안한 빌딩의 100층에 최첨단의 주거공간을 갖는다 해도 그 안에서 몹시 불행하다면 그가 찾는 거라곤 뛰어내릴 창문 뿐일 겁니다."

 

답은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번영하게 하고, 웰빙을 가져오는 특정 정신 상태는 바로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인들이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라고 부른 것이죠. 정신적 가치가 우선시되는 행복. 화, 미움, 질투, 오만, 강박적 욕구, 과욕과 같은 것들이 있죠. 이것들은 우리가 긍정적 상태에 머물도록 가만 냅두는 법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런 것들은 타인의 행복에까지 치명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에 이들의 침범이 잦아 질수록 연쇄반응으로 우리는 더 비참해지고 고통 받을 것입니다. 반면 사심없이 하는 관대한 행동들 먼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한 그런 행동들이 한 아이의 삶을 살릴 수도,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인정을 위한 것도, 감사의 표현을 받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마음이 시키는 데로 한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그렇게 하고 싶어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고 마음을 바꾸는 일이 가능한건가요? 우리의 본성에 부정적이거나 파괴적인 감정들 역시 내재되어 있지 않나요? 우리의 감정, 성격, 기분의 변화는 가능할까요? 여기에 대답하기 위해선 먼저 본성이란 무엇인지부터 물어야 합니다. 경험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의식의 제 1 특징은 무엇을 알고자 하는 인지적 특성입니다. 의식이란 사물을 비추는 거울과 같습니다. 거울에 비춰진 게 못난 얼굴일 수도, 예쁜 얼굴일 수도 있지만 거울 자체는 그것이 비추는 이미지에 의해 더럽혀지거나 바뀌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생각에는 그저 의식, 순수한 의식이 있을 따름입니다. 이게 바로 본성입니다. 애초부터 미움이나 질투같은 것 때문에 더럽혀질 수 없는거죠. 그런 것이 가능했다면, 염색이 옷 전체로 퍼지는 것처럼 미움이나 질투를 언제든 발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화 내고 질투하거나, 혹은 언제나 관대하지는 못합니다.

 

모든 감정에 작용하는 일반적인 해독제를 찾아야 합니다. 본성 중의 본성을 살피면 가능하죠. 대게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짜증이 났거나 화가 났거나 그가 싫다면, 아니면 무언가에 사로잡혀 있다면, 마음은 계속 그 대상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대상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찰 때 강박관념이나 짜증은 한층 더 강화하죠. 나중에 이 같은 과정이 저절로 반복됩니다. 자 이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외부가 아닌 내부입니다. 화를 예로 들면 겉보기엔 밀려드는 먹구름이나 폭풍우처럼 매우 위협적으로 보이죠. 하지만 만약 우리가 구름 위에 앉을 수 있다면? 막상 가까이 다가가 보면 그저 안개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화'를 가만히 관찰한다면 아침 해에 스러지는 서리처럼 사라질 겁니다. 당신이 이를 계속해서 반복한다면 당신의 욱하는 성질은 매번 화를 누그러뜨릴 때마다 점점 옅어질 겁니다. 결국에는 '화'의 감정이 생겨도 그냥 잠깐 스쳐지나가고 말 것입니다. 마치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가 하늘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것처럼요.

 

시간이야 필요합니다. 부정적 감정들이 우리 마음에서 생겨나고 습관이 되는데 이를 푸는데도 똑같이 시간이 걸리겠죠. 하지만 이 길 밖엔 없습니다. 마음가짐을 새로 하는 것.

 

 
박용하 자살 소식을 지켜보면서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한국의 상황이 참 암담해 보입니다. 이럴수록 가족 구성원들의 대화와 자기 공부, 마음 수련이 필요합니다. 영성이 필요한 시대지요. 행복에 대해서 행복을 이루는 조건에 대해서, 절망을 뚫고 희망을 만들어 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다시는 자살로 서로 상처 받는 일이 없기를 소망합니다.

 

* 참고 및 인용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
마띠유 리카드의 행복의 습관들
(본문 중 많은 부분은 리카드의 말씀을 정리인용 수록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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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로 인한 아버지로서의 시행착오"

- '좋은 아버지 교실'에 참석한 한 아버지의 글 -

 




처음 큰 아들이 태어나 내질렀던 울음소리, 그리고 내 품에 안겨 처음 눈을 뜨던 그 모습은 신기하고 또 신기했습니다. 생명은 정말 아름답고 고귀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아들은 쉴새 없이 먹고, 자고, 싸며 칭얼댔고 아버지가 된 저는 한숨도 못 자는 피곤한 날이 늘어갔습니다.  아버지가 되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생각을 종종 했는데 사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큰 아들은 자라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차츰 아들의 공부와 성적에 대해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공부만 했고, 그렇게 공부해서 대학을 나왔지만 세상을 사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아들에게 저는 그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훈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나아지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점점 아들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게 되었고, 그게 먹히지 않자 야단을 하고 매도 대며 공부를 시키고자 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습니다. 계속 잔소리와 야단을 듣던 아들도 서서히 반발하고 대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제가 홧김에 내민 손찌검이 아들의 코뼈를 상하게 하였고 아들은 많은 코피를 흘리며 쓰러져 이로 인해 코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아들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아 더 반항적이 되어갔습니다. 전 이런 아들이 못마땅했고 동생에게도 좋지 않은 선례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심하게 꾸중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그럴수록 더 자기만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다니던 교회도 가기를 거부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교회에서 만나 기독교신앙을 기초로 결혼을 했고 아이들도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녀왔기 때문에 아들의 이런 행동은 우리의 근심을 더욱 깊어지게 만들었습니다.

 


큰 아들로 인한 근심이 깊어가고 있을 때, 아내가 제게 성남지역교육협의회에서 개설하는 좋은 아버지 교실을 수강해보라고 권유했습니다

 

교육을 수강하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교육을 통해 자식에 대한 걱정으로 시작한 고민과 노력이 결국은 자기 자신에 대한 문제로 수렴되었습니다. 자신에 대한 답을 찾고 현재 당면한 자녀와의 문제들을 풀어가는 이 시점에서 돌이켜볼 때 아이들은 제가 더 많이 배워야 하고,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부딪히며 지나온 갈등들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 동안 만나게 될 어려움들 또한 많을 것인데 그때마다 앞서 해결해주고자 하기보다 지혜롭게. 위로와 격려의 말,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말, 칭찬의 말, 긍정의 말을 많이 하고 많이 사랑하며 살아야지... 두 아들이 힘들 때마다 힘을 얻으려고 찾는 아버지가 되어야지..’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일을 함께 겪으며 노력해온 사랑하는 아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좋은 아버지 교실은? 


 자녀에게 아빠의 존재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아버지,

자신의 눈높이를 자녀의 관심사로 낮출 수 있는 아버지,

자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아버지,

마음이 부자인 아버지가‘진정한’부자 아빠인 것을

대다수의 아버지는 잊고 있습니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는 부의 축적보다

아이에게 한발짝 더 다가서서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뒷짐지고 헛기침을 하던‘아버지’를 버리고,

다가서서 대화하고 표현하는‘아빠’로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좋은 아빠가 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신다면,

‘좋은 아버지 교실’의 문을 두드리세요.

이 곳에서 좋은 아빠가 되는 길로의 첫걸음을 떼시기 바랍니다.

‘좋은 아버지 교실’에서는 보다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이 모여,

강의뿐만 아니라 토론과 역할극을 통해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

자녀와의 관계 진단, 효과적인 자녀와의 대화방법, 자녀교육관 등을 되돌아보고

재정립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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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이 가장 갈등을 일으키는 것 중에 하나다 바로 '잠'이지요. 그런데 사춘기 때는 성장호르몬이 증가하기 때문에 잠이 늘어난다고 하네요. 이런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수면 상태 지연'이라고 합니다.성장호르몬 수면중에 생산되고, 분비되기 때문에 잠을 적게 자게 하면 성장을 저해한다고 합니다.

스탠포드 대학의 수면 캠프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어린이에 비해 사춘기에 접어든 청소년들이 더 많이 잠을 자야한다고 합니다. 늦게 자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것을 너무 야단치지 마세요.^^

청소년 때 잠을 더 많이 자게하면, 지각,결석, 우을증, 정신이 맑은 성취도 등 학업과 감정, 행동면에서 더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학생에 비해 더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켜 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잠 잘 수 있는 비법을 같이 살펴보깔요? ^^




 

벤자민 프랭클린은 에세이 《즐거운 꿈을 꾸는 방법》에서 ‘침대에서 일어나 베개를 툭툭 쳐서 뒤집어 놓고, 이부자리는 적어도 한 스무 번은 탈탈 턴 다음, 침실 문을 활짝 열어 공기를 시원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옷을 벗고 침실 안을 돌아다닌다. 찬 공기가 불쾌해지기 시작할 때 침대 속으로 들어가면 금방 잠이 드는데, 이때의 잠은 달콤하고 기분 좋다.’고 밝히고 있다. 옛 어르신의 별난 습관쯤으로 무심코 들어 넘기기에 그의 조언은 상당히 과학적이다. 개개인의 몸과 마음의 건강상태며 취향은 백양백색이고 숙면을 위한 방법 또한 그만큼 다양하겠지만 다음의 ‘일반적’인 방법들을 알아둔다면 편안한 잠자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잠자기는 거룩한 권리이자 자랑스러운 의무


잠을 잘 자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잠을 인정하고 좋아하는 일이다. 잠자는 행위를 인생의 가장 큰 낭비이고 성공의 적이라 여겨 부끄러워하고 죄책감마저 갖는다면 잠자리에 누워서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고 숙면을 취할 수도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장되어 온 평균 필수 수면시간은 8시간쯤이다. 서양인의 평균 수면시간이 7~8시간인데 반해, 잠에 부정적인 동양인은 6시간이다.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으니 내게 맞는 수면시간을 알아두면 좋다.

 


잠자리 들기 전에 몸과 마음의 릴렉스


잠을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은 스트레스이다. 주말이나 휴일에 늦잠을 자는 이유는 평일 동안 받았던 스트레스와 자극이 줄어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잠들기 한 시간 전에 가벼운 맨손체조나 스트레칭으로 몸의 근육을 풀어주도록 한다. 단, 격한 유산소운동이나 웨이트 트레이닝은 금물이다. 명상도 좋다. 잠들기 30분 전에는 언성을 높이지도 말고 컴퓨터나 TV도 보지 않도록 한다. 이런 행위는 은근히 자극적이어서 뇌를 긴장시킨다.


잠자리에 누웠는데도 20분 동안 잠이 오지 않는다면 일어나 조용히 책을 보거나 하는 편이 낫다. 꼭 자야 한다거나 혹은 덜 자야 한다는 등의 잠에 대한 강박은 잠을 더 멀리 달아나게 한다.

 

 

충분한 햇볕과 깊은 어둠, 옛날 옛적 그대로의 생체리듬


매일 같은 시간에 잠들고 기상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습관을 들이면 뒤척임없이 잠자리에 들 수 있고 알람시계 없이도 눈이 번쩍 떠질 것이다. 원래 인간은 다른 동물들처럼 스케줄표와 알람시계 없이도 거의 같은 시간에 잠이 들고 깨어나는 생명체이다.


생체리듬을 살리기 위해 낮에는 옛날의 인류가 그랬듯 햇볕을 충분히 쬐도록 한다. 밝은 빛에 노출되면 생체시계가 제대로 작동해 야간 수면의 질이 높아진다. 잠자기 두 시간 전에는 밝은 형광등을 끄고 은은한 불빛의 램프를 켜서 생체시계를 잠들기 준비단계로 전환시킨다. 

 

 

몸통은 차갑고 발은 따뜻하게 


체온은 얼마나 빨리 잠드는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 취침 전 샤워나 가벼운 운동을 권하는 이유는 모두 체온과 관련이 있다. 체온이 떨어지면 잠이 잘 온다. 취침 한두 시간 전에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면 체온이 일시적으로 상승했다가 서서히 떨어지는데 이러한 현상은 잠이 잘 드는데 효과적이다. 단, 취침 바로 직전에 오랫동안 너무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찬물 목욕 또한 체온을 올려 잠을 깨운다. 격한 운동도 체온을 지나치게 올린다. 


발을 따뜻하게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잠자기 전 몸통의 체온은 떨어지는 반면 손과 발은 혈관이 팽창하면서 체온이 올라간다. 곧 손발이 따뜻해진 만큼 몸통은 차가워지기 때문에 잠을 잘 자는데 도움이 된다. 손과 발은 몸통보다 1~2℃가 낮지만 잠이 깊어질수록 온도 차이는 줄어 나중에는 전혀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한편 전기장판같이 인위적으로 열을 높여주는 도구는 잠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약간의 체온 상승도 잠을 방해하기에 충분한 요소이다.

 


잠들기 전 만약 꼭 먹어야 한다면 우유를


잠들기 서너 시간 전에 저녁식사를 마쳐 자는 동안 소화기관이 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만약 배가 고파 잠들기 힘들다면 수면을 유도하는 아미노산인 트립토판 성분이 든 우유를 조금 마시는 것이 도움이 된다. 우유는 예로부터 자연 수면제로 불렸다. 달걀, 치즈, 바나나, 콩, 두부 등에도 트립토판 성분이 들었다.
반면 카페인, 알코올, 흡연은 잠을 방해한다. 흥분과 각성 효과가 있는 카페인이 든 초콜릿, 차, 커피, 탄산음료들은 너무 많이 먹지 않도록 하고, 빠른 숙면을 원한다면 오후 중반부터는 아예 마시지 않는 편이 좋다. 술을 마시면 알코올이 혈류 속으로 빠르게 흡수되어 잠이 오지만 후반부의 렘 수면량은 감소한다. 술을 많이 마시면 마실수록 깊이 잠들기 어려워 수면의 질은 떨어진다. 담배 속 니코틴은 일종의 흥분제로 중추신경계를 자극해 잠을 방해한다.    

 

 

오직 ‘잠’만을 위한 담백한 잠자리 풍경


침실에는 베개와 이불, 작은 스탠드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 침실에서는 오직 잠만 자도록 하고 모든 방해 요소를 없애 편안한 수면 환경을 만든다. 인테리어는 소박하고 단순할수록 좋다.

 

소음과 빛, 온도와 습도
최대한 조용히, 강한 조명은 피한다. 낮 동안 활동했던 시각과 청각을 잠재워야 수면 리듬을 되찾을 수 있다. 수면을 촉진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은 어두운 곳에서 잘 분비되고 밝은 곳에서는 분비가 억제된다. 밤에는 빛을 완벽히 차단하고 아침에는 햇살을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소리에 민감하다면 시계도 치워둔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뇌에 수면을 유발하는 최적의 온도는 15~20℃ 정도이다. 침실 온도가 이쯤 되면 몸 중심의 온도가 낮아져 편안하게 잠들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습도는 50%가 적당하다. 환기는 기본이다. 

 

베개와 이불
베개는 너무 높으면 목이 구부정하게 되어 목근육이 긴장 상태에 있기 때문에 깊은 잠에 빠지기 힘들다. 낮거나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그렇다. 목과 머리의 곡선에 꼭 맞는 것으로 각자의 습관, 취향에 맞게 고르면 된다. 이불은 무거우면 자는 사이 몸에 부담을 주니 가볍고 부드러운 것으로 선택한다.

 


잠을 부르는 파란색과 라벤더


파란색은 긴장, 불안감을 가라앉히고 두통, 신경성 고혈압, 불면증, 신경통, 히스테리 등의 치료에 쓰인다. 흰색, 베이지색, 옅은 갈색도 비슷한 효과를 준다.  


천연 아로마 오일을 목욕물이나 잠옷, 베개에 한두 방울 떨어뜨리는 것도 도움이 된다. 라벤더는 예로부터 천연 마취제이자 최면제로 쓰였다. 캐모마일과 일랑일랑도 불면증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향들 외에도 기분과 취향에 맞게 자극적이지 않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향을 찾아 사용하면 된다.     

 

참고도서: 《달콤한 잠의 유혹》(폴 마틴 지음, 베텔스만 코리아 펴냄), <아이는 사춘기 엄마는 성장기>(이윤정, 한겨레 에듀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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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철 아동성폭력과 최근 청소년 성범죄를 보면서 걱정이 앞섭니다. 부모 입장에서 보면 참 무섭고 각박한 세상이니까요. ‘아이들은 부모에게 배운다’라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다가섭니다. 학교 밖 위기에 처한 청소년 숫자가 7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요. 가정의 탓인가, 학교 교육의 문제인가, 사회 문제인가. 개인의 탓으로 돌리 수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엄마와 딸이 함께 쓴 그림 책 <100% 엔젤 - 나는 머리냄새 나는 아이예요>를 읽어보니, 서로 다름의 인정, 대화, 배려, 평등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결함이 있지요. 가난, 신체 부자유, 성격 등등. 하지만 결함을 결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름을 인정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완벽함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나도 머리카락 냄새가 나는 것처럼 누구나 결함이 있다는 것을 알고, 결함을 결함으로 보지 않는 시선. 존중 받고 싶으면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것. 그런데 사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편향되고 차별적 시각이 너무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스웨덴 기자 출신 무명작가 스티그 라르손(Stieg Larsson/1954-2004)을 하루아침에 유명 작가로 발돋움하게 한 소설 ‘밀레니엄’. 소설에는 트랜스젠더와 아동성폭력, 성범죄, 근친상간이 오롯이 담겨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기자와 남성을 위장한 한 여성입니다. 여성을 증오한 남자들이 아니라 여성을 성폭력의 대상으로 여겼던 여성을 착취했던 남성들의 이야기와 담겨있지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족사와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난 밀레니엄의 역사는 억압과 착취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여성과 환경의 세기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세기를 열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마련되어 있는가 진단하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선과 불균형한 시선, 말의 폭력은 자녀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분노로 표출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교육은 이제 부모들도 다시 받아야 합니다. 범죄의 대부분은 차별과 억압이 낳은 결과입니다.

 

히틀러는요

엄마가 말해줬는데요.
히틀러는 단 한 번도 여자를 사랑한 적이 없대요.
왜냐하면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는
남자와 동등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래요.
그래서 그는 어떤 여자와도 동등해지기 싫어서
절대로 여자를 사랑하지 않았대요.

 
히틀러는요.
아무리 친한 사람도 자기 어깨를 못치게 했대요.
그러면 자기와 동등해지니까요.
또 아무도 자기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했대요.
이름을 부르면 동등해지기 때문에
항상 각하라고 부르게 했답니다.
아무래도 히틀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나봐요.
(100% 엔젤- 나는 머리냄새나는 아이예요 중에서)

 

 권위를 위한 권위는 억압을 낳고 불평등한 시선을 낳고, 도덕을 무너뜨립니다. 관용과 배려, 따뜻한 말 한마디. 지금 사회 밖에는 다양한 성교육과 부모교육, 민간차원의 대안적인 프로그램이 존재합니다. 너무나 경쟁만 부추기는 교육환경에 젖어 있지 않았는가. 차별의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지 않았는가, 제도적 문제점을 지적하기에 앞서, 스스로 반추해보는 시간을 갖고, 이 땅에 폭력이 사라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밀레니엄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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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의 조두순 사건으로 불리는 김수철 사건. 김길태 사건이 일어 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흉악무도한 아동성폭행 사건이 또 일어났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한국 사회에 도덕적 해이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책임도 책임이지만, 사회적 책임은 없는지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가정 환경배경은 다르지만,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 중에 하나는 가정교육과 사회 환경이 문제가 아닐까요. 제도적 장치를 구비하고 법을 만들고, 사전예방교육을 실시하더라도, 근원적 처방을 내릴 수 없습니다.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눈뜬다는 말이 있지요. 가정이 잠들면 괴물이 눈 뜰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육의 중요합니다. 가정은 제 1의 학교라 불립니다. 하지만 요즘 같이 각박하고 빠른 사회에서 가족공동체는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맞벌이부부 증가 대화단절 등 가정이 그 기능을 다하고 있는지 돌아다보아야 합니다. 마을공동체가 없어진 것도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예전에는 마을공동체의 힘이 있었습니다. 어른들이 있었고, 동네 선생들이 있었지요. 하지만 이제 시나브로 동네공동체는 사라졌습니다.

 

그렇기에 자녀교육이 아니라 부모교육이 중요합니다. 부모도 공부하는 마음으로 자녀를 보아야 합니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 하나는 ‘고등어를 금하노라’ 독일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 엄마의 눈으로 담은 가족이야기입니다. 한국인 엄마(52)와 독일인 아빠(49) 사이에 아들(21)과 딸(18)을 둔 괴짜 가족의 식탁으로 초대받아 책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이 가족의 화두는 ‘자유’와 ‘환경’입니다. 절약과 근면은 독일인들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검약이 몸에 배인 살림 왕 엄마, 돈보다 출세보다 직업인 전문인으로 살고 싶은 물리학 박사 출신의 아빠, 엄마 아빠의 정신을 이어 받은 대학생 아들, 유일하게 사치를 하면서 자유를 추구하는 고등학생 딸이 벌이는 논쟁의 장에 빠져보면, 가정교육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결국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갈 수 있게끔 서로 격려하고 존중하는 삶이 바로 큰 가르침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많이 가진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지요. 김수철 사건이 시사해 주는 것은 사회 환경과 문화입니다. 소외현상이 괴물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성의 길러주는 곳이 가족이며 학교이지요.



독일교육과 한 괴짜가족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국가의 경쟁력은 경쟁이 아니라 협동과 배려, 도덕적 가치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독일과 한국은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다릅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와 나 자신을 반추해 돌아다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자유로운 만큼 내 아이도 자유롭게, 아이가 배우는 만큼 나도 배우고, 돈이 아니라 시간의 소중함과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너무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것은 아닌지, 물질적 풍요만 추구하는 것은 아닌지, 배려가 사라지고 독선만 횡행하는 사회에서, 나만 잘살면 된다는 사회적 무관심이 김수철을 탄생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 조금 다른 시각에서 살펴보았습니다.

 


 다음뷰 베스트에 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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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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