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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0.29 너희들은 각각의 아름다운 꽃이란다

 

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 세 명을 데리고 일박이일 워크숍을 다녀왔다.

초등학교 때 내게 논술수업을 받은 학생들이다.

 한때 글쓰기 제자였던 아이들을 5년 만에 다시 보니 너무 많이 변해서 하마터면 몰라볼 뻔 했다.

 체격은 말할 것도 없고 얼굴도 완전 딴 판.

오동통하고 귀엽던 얼굴은 사라지고 다들 대학생 같은 포스를 풍겼다.

 

 

 

 출처: 네이버 쉽

 

 

우리가 간 곳은 경기도 남양주의 한 농원이었는데,

만오천 평 너른 땅 중심에 배밭이 있었고 캠핑장과 원두막까지 잘 갖추어져 있어서

소규모 워크숍 장소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아이들은 농장에 들어서자마자 함성을 질렀다.

 

 

꺅

 

 

“와, 선생님! 여기 되게 멋지네요?”

“근데 선생님은 여길 어떻게 아셨어요?”

“도대체 여긴 없는 게 없잖아?”

내가 미처 대답할 겨를도 없이 매우 원초적인 질문들을 속사포처럼 쏘아댄다.

농원에 오는 차 안에서는 각자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며

과묵했던 녀석들의 얼굴에 갑자기 생기가 돈다.

날씨마저 참 좋다.

너무 좋아 탈이다.

 

 

안채에 짐을 풀고 나서 본격적인 농원 산책에 나섰다.

하늘은 높푸르고 주위는 고요했다.

지천으로 핀 쑥부쟁이와 채마밭 가득 푸른 채소가 싱그러웠다.

어디선가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건조하게 들렸던 그 울음소리조차도 평화롭고 유쾌했다.

산책로에서 웃고 떠들며 종달새마냥 가벼워진 아이들의 표정을 보니

초롱초롱 빛났던 초등학교 때의 눈빛이 떠올랐다.

 

 

신나2

 

 

야외로 데리고 나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입시공부에 찌들려 잔뜩 웅크렸던 열일곱 살의 아이들과

환갑을 넘겨 반백인 나 사이에는 반세기나 되는 시간의 벽이 가로막혀 있었지만

이날만큼은 세대차이 따위는 전혀 없었다.

우린 수학여행 온 학생들처럼 함께 들떠있었다.

마치 코바늘로 뜨개질하듯 추억의 앨범을 다시 만들기로 하고 그냥 즐기기로 했다.

 

 

한가한 오후 시간, 주인 없는 농원을 거닐며

너희들이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어냐고 물었다.

듣고 보니 초등학교 때의 장래희망이 다들 바뀌었다.

 

 

 


시 암송이 취미였고 국어교사가 꿈이라던 효진이는

광고 카피라이터로 진로를 정했다고 했다.

그래서 대학도 언론홍보학과를 갈 것이며

졸업 후 제일기획에 입사하여 유능한 카피라이터가 되는 게 장기 목표란다.

꽤 구체적이다.

1학기말 고사에서 문과 전교 3등을 했는데

2학기 때는 문과 1등을 하는 게 단기 목표라며

두 남학생들이 못 듣게 내게만 살짝 알려주었다.

 

 

순간 긴 머리를 쓸어 넘기며 수줍게 자신의 꿈 이야기를 펼치는 효진이가

어찌나 듬직한지 와락 껴안고 뽀뽀라도 해주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보아온 효진이는 자기주도 학습이 잘 되는 아이였다.

또래 아이들이 학원이나 과외에 치어 힘들어 할 때,

아이는 스스로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매우 즐겼다.

그래서 본인이 기쁜 일이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스승의 날 같은 때에 내게 자주 편지를 보내며 자기표현을 하곤 했다.

 

 

 


밥 먹는 것보다 축구를 더 좋아했던 성원이는

일찌감치 축구선수가 되겠다고 축구부가 있는 강남의 한 중학교로 진학을 했다.

그런데 중학교 3년, 고등학교 1학년까지 만 4년간 학교 대표선수로 뛰던 그 아이가

올봄에 돌연 축구를 포기하고 집 앞 인문계고등학교로 전학을 했다.

 

 

축구를 너무나 사랑했고,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서

일반학교와 축구부가 있는 학교를 사이에 두고

부모님과 갈등을 빚었던 사건을 익히 알고 있기에

성원이의 전학 소식을 듣고 나는 마음이 몹시 아팠다.

 

 

얼마나 어렵게 선택한 길인데 축구를 접었다니?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축구는 이제 끝,

중학교 가서는 공부에만 전념하라는 부모님의 통고를 받고

아이는 일주일 간 식음을 전폐하고 울기만 했다.

 

 

 그때, 축구를 그만 시키겠다는 성원이부모님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성원이에게 축구를 못하게 하는 건

그 아이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는 거나 마찬가지다.

길이 아니라면 언제라도 중단하게 될 터이니

제발 물리적으로 끊지는 말아달라고 간청했다.

 

 

이번 워크숍을 기획한 것도 내가 아끼는 제자들과

오랜만에 만나 추억의 시간을 갖겠다는 욕구도 있었지만

실은 성원이를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토록 좋아하던 축구를 못하게 되었으니 녀석의 상심이 얼마나 클까?’

 

 

하지만 기우였다.

만나보니 아이는 생각보다 밝고 명랑했다.

앞으로 축구는 취미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고,

꼭 축구만이 아닌 또 다른 길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노라고.

우선 체육교육과에 진학해서 체육선생님이 되겠단다.

그동안 운동하느라고 소홀했던 공부가 다소 부담스럽긴 하지만

남은 일 년 반 열심히 해서 꼭 해내겠으니 선생님도 응원해달라고 했다.

 ‘아무렴! 너의 그 승부근성이 어디 가겠니. 넌 틀림없이 해 낼 거야!’

나는 성원이 곁으로 다가가서 말없이 등을 토닥여주었다.

 

 

 


세 아이들 중에 가장 많이 달라진 지호는 정말로 몰라볼 뻔했다.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동글동글 귀엽던 얼굴은 살이 빠져 완전 갸름형으로 바뀌었고

187센티나 되는 키에 남다른 패션 감각까지,

소위 말하는 훈남으로 변신해 있었다.

남성 모델 같았다.

학교에서는 친구들이 소지섭이라고 부른단다.

내가 보기에는 탤런트 소지섭보다 지호가 훨씬 더 잘 생겼다.

쉬는 시간이면 여학생들이 그를 보러 몰려온다니

공부가 제대로 될 리가 없을 것 같다.

우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머리와 얼굴에 끊임없이 손이 갔다.

 

 

지호는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못했단다.

초등학교 때는 장래희망이 컴퓨터 프로그래머라고 했든가.

일전에 지호어머니를 만났을 때,

나는 아이가 남다른 체격과 외모를 가졌으니 탤런트나 모델을 시키면 어떠냐고 말했다.

아마 나 말고도 여러 사람이 그런 권유를 하였나 보다.

 

 

왜 아니냐며 고등학교 2학년인데도

여전히 공부보다는 외모에 신경을 쓰고 있으니

고심 끝에 그쪽 방면의 학원이라도 보내주려고 했단다.

그러나 본인은 끝까지 공부해서 대학을 가겠다고 하면서도

공부는 뒷전이니 부모님이 심히 답답할 수밖에.

지호는 초등학교 때부터 호감 가는 외모에 공부도 잘해

줄곧 임원을 했고 예의도 바른 아이였다.

누가 봐도 인기 만점이었는데 외모가 워낙 출중하다보니

아무래도 공부는 우선순위에서 밀렸나보다.

 

 

이날, 걱정 많은 지호어머니를 대신하여

나는 지호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지호야, 너는 공부를 왜 한다고 생각하니?”

그런데 지호가 아닌 성원이가 잽싸게 말했다.

 “공부를 잘하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선택의 기회가 많아지는 것 같아요.”

선택의 기회가 많아진다는 것은?

내가 또 물었다.

“세상을 더 넓게 볼 수 있고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문제해결을 잘 할 수 있거든요.”

성원이가 재차 답했다.

“그래 맞다. 그게 정답이야!” 쓸쓸히 미소만 짓고 있는 지호, 마음이 짠했다.

괜히 물어본 것 같았다. “그렇지만 꼭 공부가 전부는 아니야.

공부가 아니라도 특정분야에 잠재력이 있다면 그걸 계발해서 집중하면 되지.

그게 바로 행복의 조건이 되는 거란다.“

 

지호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얘기지만

그건 진심이었고부모교육강사로서의 소신이기도 했다.

 

 

  토닥토닥

 


부모들은 모두가 공부 잘하는 효진이 같은 아이를 원한다.

그러나 세상은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크나 큰 마당이기에

공부 잘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운동을 잘하는 아이도 있고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 악기를 잘 다루는 아이도 있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누구나 노력만 하면 다 1등을 할 수 있다고 아이들을 닦달한다.

사실 공부도 다중지능 중에 하나일 뿐이다.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라는 책을 쓴 장승수 같은 공부 선수는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되고 나머지는 저마다의 소질과 능력에 따라 행복하게

사는 길을 택하면 된다.

꼭 공부가 아니어도 행복은 얼마든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원이가 말한 것처럼 공부를 해서 아는 것이 많으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넓고, 문제해결력이 높으니까 어느 분야에서건

요긴하게 써먹을 수는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아이들이 각기 다른 분야에서 고유의 색으로 아름답게 살기를 바란다.

이 세상에 한 가지 색깔의 꽃만 있다면 얼마나 밋밋하고 재미없겠는가...

 

 

거의 한 시간에 걸쳐 산책과 토론(?)을 동시에 마쳤다. 처음엔 단순한 질문으로 시작했는데 제법 진지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들 초등학교 때 배운 토론의 본능이 아직도 살아있네! 그 사이에도 아이들은 이곳저곳 사진을 찍어 엄마에게 전송하기 바빴다.

 

 

저녁에는 바비큐 파티를 했다.

농장 주인이자 체험학습 강사이신 김 선생님이

고기와 와인을 준비해주셨고

곁들일 채소는 아이들이 밭에서 직접 따오게 했다.

 

 

감자, 고추, 상추, 오이, 가지 등등 신선한 채소를 한 소쿠리 가득 담아왔다.

이번에도 먹기 전에 인증 샷! 먹다 남은 건 각자 집으로 싸가라고 하니 더 좋아했다.

건강한 아이들의 수다와 웃음이 고기 맛을 한층 드높였다.

게다가 모기를 쫓으려고 피운 화로 안에 은은한 쑥 향기까지 조화를 이루니

행복감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홧팅2

 

 

이튿날 아침에는 마석의 5일장 구경에 나섰다.

장터에는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환희가 넘쳐났다.

살아있는 닭과 오리, 강아지, 토끼들을 구경하며

마냥 신기해하는 아이들 감성이 어린이집 다니는 우리 손녀와 다를 바 없었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나왔는데도 녀석들은 팥빙수에 떡볶이에 튀김을 사먹고

뒤이어 옥수수도 한 자루씩 뚝딱 해치웠다.

그야말로 폭풍흡입! 하긴 그 나이에 무엇인들 맛이 없겠는가.

길게 내리쬐는 맑고 풍성한 햇빛조차도 시럽처럼 달콤했다.

흥정하는 시골 아낙네들 틈에서 나도 오천 원짜리 몸빼 바지 하나 샀다.

 

 

문득 삶은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나 함께 책 읽고 토론하고 일기 쓰고 하면서

정들었던 아이들, 어린 시절의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그걸 다시 꺼내어 나눌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충만한 기쁨인지,

나는 아이들에게 일박이일 동안 그런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너희들 뒤에는 항상 기도하고 응원하는 선생님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라!”

돌아오면서 내가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말이었고

우리는 연말에 학기말 고사 끝나고 다시 만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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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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