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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2.20 삼베처럼 나뭇잎처럼 살아가기

 

집안 살림을 해온 지 8년 가까이 된 김희정(38) 씨는 해가 갈수록 살림하는 재미를 느낀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 먼저 발코니의 미니 정원에 물을 주며 어제와 다른 모습에 감탄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이리저리 어질러진 컵과 접시를 치우고 방석도 제자리에 가지런히 놓는다. 아침부터 이것저것 집안일이 시작되는데, 매일 반복되는 일에 짜증이 날 만한데 오히려 재미있다고 하니 살림을 마치 규모가 큰 소꿉장난처럼 여기는 건 아닌지. 그가 추구하는 살림살이 방향은 ‘시골스럽게’다. 시골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진한 추억이 배 있어 그런가보다 하겠지만, 사실 그는 시골에서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다. 결혼하고 나서 시골에 있는 시댁을 드나들었을 뿐이다. 그는 시댁에 갈 때면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며 이것저것 얻어올 것이 없는지 살핀다. 시골 살림이 그에게는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화분 받침으로 쓰고 있는 요강도 시댁에서 얻어왔다. 괜히 정이 가는 시골 살림을 도시에 있는 자기 집으로 옮겨오고 싶었다고 한다.

 

 

집안 정리와 꾸미기에는 대바구니·삼베·천연염색 천이 최고
그의 집에서 눈에 가장 많이 띄는 게 삼베다. 신발장 위 덮개, 거실과 안방 커튼, 부엌 행주, 침대 위에 개켜져 있는 네살배기 여름 이불, 옷장과 벽 사이 가리개. 금방 빨아 툴툴 털어 걸어놓은 커튼은 풀을 먹인 듯 구김 없이 아래로 곧게 내려져 있다.

 

 

김희정 씨는 삼베의 거친 느낌을 좋아한다. 가장자리에 올이 풀려 너덜너덜한 신발장 덮개는 그 나름의 멋이란다. 구겨진 상태로 네 겹으로 접혀 있는 행주는 구김이 주는 불편함보다 소박하고 깨끗한 느낌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먹을거리 담는 데도 삼베를 사용한다. 식탁에 밥그릇과 수저를 놓는 받침대로, 과일 접시로, 떡 찜기 깔개로. 삼베는 시원한 느낌이 좋아 여름에 주로 사용하지만, 집안의 좋지 않은 공기와 기운을 걸러준다고 하여 아이들 방이나 부엌 가까운 거실에 커튼을 만들어 단다.


 

삼베만큼 집안 곳곳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게 대바구니다. 플라스틱을 싫어하는 그는 모든 수납을 바구니에 한다. 쓰레기통, 아이들 장난감 통, 바느질 통, 갈무리 한 마른 먹을거리 통, 시계와 휴대폰을 담은 소품 바구니. 손님이 오면 오목한 바구니에 삼베 천 하나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과일을 담는다. 바구니와 삼베의 어울림이 자연스럽다. 모든 바구니 위에는 천연염색 천으로 만든 나뭇잎 모양의 덮개가 가지런하게 덮여 있다. 나뭇잎 모양은 하나하나 손바느질로 그 느낌을 살렸고, 연잎모양의 덮개 꼭지는 그가 특별히 실력을 발휘한 작품이다. 염색천은 천연염색을 오랫동안 해온 친정어머니가 보내준 자투리 천이다. 쪽·쑥·황토 빛깔의 천이 침대 매트·베갯잇·옷으로 만들어져 생활에 사용되고 있었다. 친정어머니의 실력에 못 미치지만 집안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직접 손바느질로 만든다. 많이 하지는 않고 꼭 필요할 때만 한다. 주로 수젓집·컵받침·옷 주머니·바구니 덮개 정도다.

 

생활의 일부가 된 나무·나뭇잎·돌멩이·솔방울·도토리 껍질
아파트에서는 자연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아파트가 생명을 지탱해나가는 터전으로는 맞지 않는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집에는 집안 곳곳에 싱싱한 자연의 정취가 넘실대고 있다. 흰 벽에 붙어 있는 낙엽을 살짝 들추자 아파트 방송 스피커가 보인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스피커다. 가리자니 꼭 필요한 소식이 들리지 않을 것 같고 드러내자니 보기가 싫다. 지난 가을에 주워온 낙엽 한 장 붙여놓으니 스피커의 기능도 살리고 허전한 흰 벽에 장식의 효과도 낸다. 발코니 창에는 멋진 풍경이 달려있다. 작은 화분에 솔방울을 달아 거꾸로 매달아 놓은 것이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풍경이 ‘댕그랑’하고 울릴 것만 같다. 그의 집에는 솔방울·도토리 껍질·박제곤충·돌멩이·나뭇잎이 이곳저곳에서 시골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거실 삼베 커튼에 달려 있는 나뭇가지 십자가는 그의 독특한 감각을 잘 보여준다.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니고 책에서 본 것도 아닌데 그냥 손에 잡으면 뭔가 만들어지고 꾸며져요. 원래 꾸미고 만들기를 아주 좋아하거든요.”


 

 

손님을 위해 내놓은 음료와 다과상에도 이런 감각이 충분히 묻어난다. 미니 정원에서 가지치기한 나뭇잎 한 장을 접시에 깔고 그 위에 과일과 떡을 얹는다. 오죽으로 만든 집게는 음식의 맛을 더해준다. 그의 집에서는 소나무 껍질도 접시로 사용된다. 나뭇잎 한 장 깔고 그 위에 쑥떡을 얹어 내놓는다. 진한 초록색의 쑥떡과 짙은 고동의 소나무 껍질이 찰떡궁합이다. 두꺼운 껍질은 겉으로 보기에도 견고해보였다. 물이 자주 닿아도 썩지 않는데 천연코팅이 되어 있는지 항상 매끈매끈하다고 한다.


 

그의 집에는 항아리와 돌멩이가 많다. 거실 벽 쪽에 중간 크기의 항아리 3개가 놓여있는데 화분 받침대로 쓰인다. 고추장·된장·장아찌 저장용이 아니라 화분 받침대라니. 항아리의 뛰어난 저장 기능을 생각하면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의 집에서는 초록빛 식물과 견고한 항아리 받침이 어우러져 여유 있는 풍경을 연출한다.

 

“배달음식 그릇 내놓은 모습 싫어하던 친정어머니 닮아가요”
일부러 연출하지 않아도 특별히 바지런을 떨지 않아도 그의 살림살이는 항상 정갈하고 정감 있다. 이 모든 게 알게 모르게 친정어머니의 영향 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의 친정어머니는 50대 초에 시작한 천연염색을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지금은 함께 살고 있지는 않지만 결혼 후에 잠시 친정에 머물면서 어머니를 지켜봤고 어머니가 간간이 일러주시는 것을 귀담아 들은 게 도움이 됐다. 결혼 전에는 슬쩍 지나쳤던 게 살림하면서 어머니의 모습을 따라하게 됐다.


 

손님이 오면 예쁜 컵받침에 음료잔을 놓고 기다란 접시에 가지런히 과일을 담아 내놓는 것도 어머니가 은연중에 일러주신 것이다.
“결혼할 때 그릇을 마련해주시면서 손님이 오면 피자나 중국음식 시켜주지 말고 이 그릇으로 김치와 된장국만이라도 직접 만들어서 대접하라고 하셨어요. 문밖에 내다놓은 음식점 빈 그릇을 아주 보기 싫어하셨어요.”
어머니의 마음을 닮아서인지, 그는 이따금 마을 사람들을 불러 집에서 함께 밥을 먹는다.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밥을 먹어야 그 밥이 맛있다면서 손님 치르는 일을 여간 기꺼워하지 않는다.


 

그의 집 꾸밈에는 친정어머니의 손길이 곳곳에 스며있다. 쪽빛 염색한 삼베, 황토 염색한 자투리 천, 딸이 입으면 예쁠 거라며 만들어주신 360도 돌려 입는 치마와 모자, 토속적인 모양과 색깔의 그릇들과 놋그릇. 뭔가를 옆에서 배운 건 아니지만 그냥 친정어머니의 멋을 따라가게 되고 그 마음을 닮아간 것이다. 어머니가 자신의 딸을 위해 천연염색한 천으로 면생리대를 만들어 준비해두셨듯이 김희정 씨도 9살 딸을 위해 어머니의 자투리 천을 얻어다 손바느질로 하나둘씩 만들어두었다. 어머니로부터 자신에게로 이어지는 살림의 맛과 살아가는 멋을 그는  딸아이에게도 이어주고 싶어 한다.


김희정 씨가 추구하는 시골스러움은 자연을 생활 가까이 끌어들인 소박한 생활을 말한다.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밥을 먹는 것, 아이들과 함께 산에 오르고 강둑을 걸으며 풀 이름 알아맞추기를 하거나 비록 좁은 발코니이지만 튜브에 물 담아 아이들과 물장난 하는 걸 그는 좋아한다. 자연 소재로 만든 살림 도구를 가까이에 두고 즐겨 쓰는 것도 이런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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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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