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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1.25 터미널 풍경
  2. 2010.06.14 영화 터미널, 톰행크스는 어떻게 영어를 배웠나? 4

눈이라도 올 것 같은 잔뜩 흐린 날씨,

구미협의회에서 강의를 끝내고

터미널에 도착하여 동서울 행 차표를 끊었다.

 

 

출발 시간까지는 아직 40분의 여유가 있어

커피 한잔을 사들고 의자에 앉아서

버스를 기다렸다.

 

 

 

대합실 안에는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히터 주변에서 몸을 녹이고 있는 이들도 있긴 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빛바랜 주황색 의자에 앉아서

잔뜩 웅크린 채 TV만 보고 있었다.

 

 

겨울날 터미널 근처는 바람이 더 맵고 을씨년스럽다.

예전 같으면 난로라도 있어서 훈기를 더했을 텐데

넓은 대합실에 난방 기구라고는 작은 히터 한 대뿐,

냉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버스터미널에 가면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이 있다.

특히 계절이 바뀌면 계절병이 도져 서울의 바짝 마른

회색 빌딩 숲을 떠나고픈 욕구를 주체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떠날 때가 많은데

장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곳이 지방의 작은 도시여도 좋고 시골이어도 좋다.

한적한 어촌이면 더욱 좋다. 다만 혼자여야 한다.

남들은 청승맞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가끔씩은 일상의 치열함에서 한 걸음 물러나 생각을 정리하고 오면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요즘 힐링이 대세라는데 바로 이런 것 아닐까?

그러려면 외롭더라도 나 홀로 여행이 제격인데

처음이 어렵지 몇 번 시도하다 보면

혼자만의 여행에서 얻는 매력이 의외로 많다.

 

 

한편 터미널에 가면 꼭 누군가가 나를 찾아서

먼 길을 달려와 방금 도착한 버스에서 내려

나에게 달려올 것만 같은 생각도 든다.

 

 

하여 누가 온다는 약속도 없는데

괜스레 인파에 휩쓸리는 숱한 사람들을 유심히 살피게 된다.

어쩌면 이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원초적인 본능이 아닐까.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되는 그 곳,

거기에는 행복한 여행도 있고

오랜만에 마주한 친지과의 설레는 상봉도 있겠지만

때로는 멀리 떠나는 가족을 배웅하고

뿌옇게 흐려진 눈으로 터미널을 빠져 나가는 사람도 있으리라.

 

 

마침 내 앞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 한 쌍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각자 커다란 가방 하나씩을 갖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지금 떠났다가 바로 되돌아 올 모양새는 아니었다.

 

 

가방의 크기로 봐서는 이박삼일이나 삼박사일은 족히 될 것 같았다.

아님 해외여행?

뭐가 그리 좋은지 여자는 남자의 어깨에 기대어

연신 웃음보를 터트리고

남자는 여자의 긴 머리카락을 계속 쓰다듬고 있었다.

 

 

찰랑찰랑하니 여자의 머릿결이 참 고와 보였다.

같이 있고 싶은 마음, 함께 멀리 둘만의 여행을 떠나고 싶고

그리하여 함께 머물고 싶은 그런 간절함으로 손을 꼭 잡은 젊은 연인들.

 

 

겨울날의 오후, 칙칙한 터미널 분위기 속에서

청춘의 반란은 두드러져 보였다.

나에게도 저렇게 푸르른 시절이 있었나,

아무 근심 없이 해맑게 한껏 웃었을 때가...

 

 

미소를 머금고 젊은이들 사랑의 구경꾼 노릇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할머니 한 분이 나타나 껌을 팔아달란다.

70대 중반쯤 되었을까,

남루한 옷차림에다 깊은 주름살이 패어있는 할머니의 얼굴은

마른 검불처럼 기운이 하나도 없어보였다.

 

 

노란색의 쥬시후레쉬껌 한 통에 천 원이란다.

보아하니 개시도 못한 듯했다.

버스표 끊고 남은 잔돈 이천 원으로 껌 두 통을 샀다.

너무도 고마워하는 할머니,

그런 할머니를 보니 일전에 읽었던

오탁번 시인의 <해피 버스데이>라는 우스운 시가 떠올랐다.

 

 

해피 버스데이

 

시골 버스 정류장에서

할머니와 서양아저씨가

읍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제멋대로인 버스가

한참 후에 왔다

-왔데이!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 말을 영어인 줄 알고

눈이 파란 아저씨가

오늘은 월요일이라고 대꾸했다

- 먼데이?

 

버스를 보고 뭐냐고 묻는 줄 알고

할머니가 친절하게 말했다

- 버스데이!

 

오늘이 할머니 생일이라고 생각한

서양아저씨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해피 버스데이 투유!

 

 

실제 상황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훈훈해졌다.

다소 지루했을 40여 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드디어 탑승! 손님은 나까지 포함해서 고작 여섯 명.

서울 가는 기름 값도 안 될 적은 인원이었다.

승객이 적어서일까 기사는 얼어죽지 않을 만큼만 히터를 틀어주었다.

나는 외투를 단단히 여민 다음 팔장을 끼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위는 그런대로 견딜만했으나 발이 몹시 시려워 잠이 오질 않았다.

털장갑을 벗어서 발에다 꼈다.

구미에서 서울로 오는 세 시간 동안 나는 계속 그 자세로 있었다.

겨울이 점점 깊어가는구나...

버스가 구미 IC를 빠져 나오자

홍시 같은 노을이 천천히 서산마루를 넘어가고 있었다.

 

 

다시 서울이다.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니 다시 일상이고 아파트 숲이다.

머릿속은 빠른 속도로 분주해지고

이제부터 해야 할 일들의 목록도 길게 이어졌다.

하지만 몹시 배가 고파서 당장은 밥 생각뿐이었다.

마중 나온 남편은 뭐라도 먹고 가자고 했지만 나는 그냥 가겠다고 했다.

어딘가 또 들러서 자리를 잡는다는 게 귀찮고 번거로웠다.

시간도 많이 늦었다.

“엄마, 아빠 어서들 오시와요!”

 

집에 도착하니 뜻밖에도 딸이 밥상을 차려놓았다.

메뉴는 뚝배기 불고기 일명 뚝불!

거기에다 막 썰은 포기김치와 구운 김이 전부였다.

아까 남편이 밥 먹고 들어가자고 했을 때

나는 식당 밥이 아닌 가정식 밥이 먹고 싶었다.

아침은 씨리얼, 점심은 수강자들과 스파게티를 먹었으니

쌀밥에 고기반찬이 반가울 수밖에.

 

 

<춘향전>에서 한양에 과거시험 보러 갔다가

상거지 차림으로 돌아온 이몽룡이 월매가 차려준 밥상 앞에서

 “밥아, 너 본지 오래다.” 하며 아귀아귀 먹던 그 장면,

내가 꼭 그 꼴이었다.

 

 

밥 한 공기에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먹고 나니

지친 몸과 마음에 다시 에너지가 차오르고 생기가 돌았다.

날마다 먹는 밥이지만 확실히 밥처럼 신축성이 강한 음식은 없는 것 같다.

 

 

사실 이날은 우리의 결혼기념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낮에 남편한테서 온

문자메시지가 생각났다.

‘결혼기념일 축하해요.

우리 앞으로 더 사랑하고 행복하게 삽시다!’

생전 문자메시지라곤 ‘그래’ ‘알았어’ 같은

단답형이 고작이었는데

글쟁이 마누라를 두시더니

어느 새 이런 수준급(?) 모국어까지 구사할 수 있다니,

역시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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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항공터미널. 단순하게 비행기가 오가는 공간을 넘어 한 국가의 대문(얼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과 물건들이 교차하는 공간. 공항 시설은 이제 헤비급을 넘어 메머드급이 된지 오래되었지요. 한 나라의 첫 관문인 만큼 최첨단 디자인과 명품백화점에 버금가는 시설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공항터미널은 작은 도시에 버금가는 경제공동체.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공항터미널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공항은 매일 크고 작은 '인물 메이커'들과 만나는 공간이기도 하지요. 들어오고 떠나고. 유명인사에서부터 도피인물까지 언론이 주목하는 첫 장소이기도 합니다.

세계화의 첨병기지 역할을 하고 있는 공항터미널. 옛날 같으면 비행기 한번 타면 가문의 영광까지는 아니었어도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닐 정도로 자랑을 했는데. 이제 누구나 안방구경 하듯 세계로 세계로 떠나고 있습니다.

 
영화 터미널(The Terminal, 2004). 스티븐 스필버그가 야심차게 만든 스필버그식 영화중에 대표작. 실화가 너무 흥미로워 영화를 보았습니다. 프랑스 드골공항에서 아직까지 살고 있다는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 1970년대 영국 유학중에 이란 왕정 반데 시위의 대가로 추방당지요. 여러 나라에 망명신청을 했으나 거절당하고, 어렵게 따낸 난민 확인증을 분실, 오도 가도 못하고 드골공항에서 살게 됩니다. 영화 터미널은 나세리의 기구한 운명을 각색해서 만든 영화입니다.

 
영화 터미널에서 주인공 빅토리역을 소화해낸 톰행크스. 빅토리 또한 영화에서 만들어 낸 가상국가 ‘크라코지아’ JFK 공항 도착(뉴욕으로 가는 첫 관문)의 기쁨도 잠시 빅토리의 모국은 쿠데타가 일어나 유령국가가 되어 버립니다. 국적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톰행크스(빅토리). 입국도 되지 않고, 텔레비전에서 방송되는 크라코지아의 쿠데타 소식에 아연 실색하는 빅토리.


                                    공항에서 미국 여행 책자로 영어 열공 중인 톰행크스

공항터미널에서 살아남기’가 시작됩니다. 영어완정정복은 가능할까 죽기 살기로 미국여행소개 책자를 통해 빅토리식 영어 공부는 시작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재미표 조미료’를 꼽으라면 영어공부를 꼽고 싶습니다.

 
영어공부 참 힘들지요. 어학공부가 다 그렇지만, 꾸준하게 반복적으로 해야만 합니다. 중국의 대문호 왕멍도 위그르에서의 유배생활을 끝내고 복권된 뒤 미국 공항 터미널에서 영어 공부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됩니다. 자신을 안내하는 주미 중국 외교관이 영어를 몰랐기 때문에 비행기를 갈아 타야하는데 헤매게 되지요. 이 때 왕멍은 영어공부를 하기로 결심합니다. 그의 나이 마흔 여섯.

 

영어를 배우는데 정답이나 왕도는 없습니다. 영어를 배우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그중에서 하나를 꼽으라면 절박함입니다. 영화 터미널의 톰행크스(빅토리)는 아주 간단한 영어 단어만 알고 있었지요. 하지만 터미널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영어를 배워야 했습니다. 밤마다, 절박함을 안고 여행책자와 직접 현지인과 부딪히면서 영어를 배우게 됩니다. 영어를 배우려면, 어학을 배우려면 용감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부끄러움이 필요 없지요.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기가 쉽지는 않지요. 절박함. 그러면 절박함은 어디에서 나와야 하나요? 성적? 유학? 이민? 아닙니다. 문화의 이해입니다. 톰행크스는 자신의 처지를 제대로 알리고 터미널에서 소통해야지만, 미국문화를 알아야지만 터미널을 빠져 나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영어를 공부한 것입니다.

 

언어는 지식이며 수단이며 교량이다. 교류와 의사전달의 편리성을 넘어 새로운 사물에 대한 흥취, 비교하고 감별하는 사색의 습관을 줍니다. 언어를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배움은 없다고 왕멍은 말했습니다.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고 소통하겠다는 생각, 언어를 배우는 기쁨, 언어를 통해서 새로운 눈을 뜰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저는 그 중에서 하나를 꼽으라면 언어를 배우는 취지를 먼저 이해하고, 절박함을 가지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어를 배우는, 영어와 관련된 책자는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각오만 한다면. 영화 속의 톰행크스 처럼 여행책자 하나로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도 영어에 익숙한 많은 외국인들이 있지 않습니까. 돈 들이지도 않고 용감한 자세만 있다면 영어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아울러 영어공부와 함께 미국 역사를 공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한나라의 문화를 알게 되면 영어 공부도 더 쉬워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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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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