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KAIST) 학생 자살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전도유망했던 카이스트 교수 자살 소식은 더 충격적이었다. 서남표 총장 퇴진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대화만 있고 소통이 없다고 비판하는 학생들 목소리도 들린다. 
차별적 등록금제와 100% 영어 수업에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서남표 총잔은 미국 명문 대학 자살률이 높다고 항변했지만, 반응은 쌀쌀하다. 카이스트 문제는 한국 사회의 축소판일까? 조금 넓게 살펴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한국 자살률은 세계 1위다. 한국 과학기술이 자살률과 걸맞게 세계 1위일까? 아니다. 그렇기에 미국 명문대 자살률 비교는 무의미하다. 카이스트 학생과 교수의 자살은 1차적으로는 카이스트의 교육환경에서 찾아야 되지만, 그 다음에는 한국 대학, 더 나아가 한국 교육, 더 나아가 한국 사회 자살률까지 살펴 보는 것이 맞다. 두가지 측면에서 상호보완되어야 한다. 하나는 제도의 개선(학칙, 참여, 소통 등)과 자살예방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


이웃나라 일본이나 유럽은 자살률은 한 때 높았다. 하지만 나라마다 자살예방프로그램을 국가적 차원에(거버넌스 차원)서 운영했다. 대표적인 나라가 핀란드다. 핀란드도 한국처럼 자살률이 높았던 국가였지만, 자살예방프로그램을 장기적으로 실시하면서 자살률을 줄여나갔다. 그런데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또한 경쟁지상주의 패러다임 전환과 리더십에 대한 교육과 안목을 넓힐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지식과 사람, 소셜네크워크가 시나브로 발전하는 사회에서 '나'가 아니라 '우리'로 전환되어야 한다. 한 사람의 천재가 아니라 평범한 10사람의 지혜가 더 빛나는 사회. 한 사람의 베스트가 99명의 보통사람들이 더 중요한 사회로 전환되는 사회에서 베스트 앤 베스트는 의미가 없다. 오픈 소스, 오픈 소셜 사회에서는 정보를 공개해서 지혜를 보태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사용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바뀌고 있다. 


카이스트만 문제가 있고 서울대는 문제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 교육문화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 밖에 모른는 꽉 막힌 천재는 필요없는 시대다. 그런 천재가 지배하는 사회는 불행해질 것이다. 학교교육 뿐만 아니라, 평생 교육 시대에 걸맞게 평생학습시스템 구축(재정비) 또한 중요하다. 이제 한 때의 공부와 지식 습득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카이스트 사태를 통해, 한국 교육 현실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급하게 서두를 일은 아니다. 기계적 해법이나 임시방편책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보다 광법위한 참여가 있는 민간차원의 논의구조도 꾸려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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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하왕십리 방화사건을 알리는 기사 제목을 보고 애써 외면했습니다. 아침에 기사를 찾아 읽어보니 암담해집니다. 요즘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 때문인가요? 사건이 일어나면 요란하게 언론에서 떠들어대지만, 다시 무감각해집니다.

 

방화사건을 저지른 사람은 고입 진학을 앞 둔 중학생. 언론보도에 따르면, 학교 진학문제로 아버지와 다툰 것 같습니다. 학생은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어했고, 반대하는 아버지와 화가 났겠지요. 말다툼 끝에 아버지에게 몇 대 맞은 아들. 그 울분에 중학생은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불을 저지른 거지요. 찰나의 순간. 자신의 부모님과 형제 일가족 4명이 불에 타 숨져버렸습니다.

 

학생은 CCTV에 녹화된 영상자료를 근거로 경찰이 추궁하자, 자백을 했다고 합니다. 인륜을 파괴할 범죄라고 손가락질 할 수 있지만. 이 중학생은 얼마나 괴로울까요. 순간의 화가 한 가족의 인생을 화염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살아있는 학생의 정신도 타 버린 거지요. 그 상처가 얼마나 오래 가겠습니까. 잊혀 지지 않겠지요.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학생의 범죄행위는 지탄 받고 처벌받아야겠지만, 과연 이 사건을 방화를 저지른 중학생 개인의 탓으로 다 돌려야 하는 걸까요?

 

하왕십리 방화사건을 지켜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대화의 부족과 비폭력 대화법. 다른 하나는 학생들이 선택해야 할 협소한 인생행로. 최근 한 방송국 프로그램(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 오늘을 즐겨라)에서 공개된 초등학교 2년생이 쓴 시가 대한민국 아버지들에게 작은 파문을 일으켰지요.

 

아빠는 왜?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이뻐해주어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아버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무뚝뚝하고, 가족을 꾸려 나가기 위해 여유 없는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가족들과 대화시간이 부족 하겠지요. 맞벌이 부부의 경우에는 말할 나위 없지요. 가족들이 함께 있는 시간에도 다들 바빠 보입니다. 휴식을 취해야 하고, 공부를 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대화 시간은 부족하지요. 그렇다 보니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게 되고, 서로에게 작은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대화에 서툰 사람들이 되어 버린 거지요. 그렇다 보니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말을 전해 주게 되고, 오해가 생기고, 대화는 끊겨버립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지요. 그렇다 보니 자녀들은 다른 세계에서 대화 상대를 찾게 됩니다. 조용한 가족, 침묵의 가족. 서로가 대화할 때마다 애민해지고, 말이 거칠어지게 됩니다. 부모는 위계를 따지게 되고, 권위 아닌 권위를 내세우게 되지요. 그런 측면에서 대화의 복원이야 말로 가정교육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부모님들 중에 자녀가 잘 성장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출세라는 말을 대놓고 하지는 않지만, 성공하기를 바라지요. 좋은 분야, 좋은 대학, 좋은 직업을 가지길 바랍니다. 한국처럼 교육열이 놓은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자신은 희생하더라도 자식만큼은 잘 되기를 여전히 바라고 있지요. 그렇다 보니 자녀의 적성보다는 성적을 더 중요시 하게 됩니다. 결국 학업성적이 대학, 직장으로 연결되는 첫 고리라고 생각하니까요. 참 많은 공부분야가 있고 직업이 있는 것 같지만, 협소해 보입니다. 예술분야도 예전처럼 가정형편에 관계없이 공부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지요. 개인의 선호도와 능력에 관계없이 경제 여건이 따라 주어야 되니까요. 예술분야를 선택한다고 해서 다 예술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학창시절에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공부한 사람 중에 세계적인 경제학자가 되거나 법률가가 된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결국 청소년기에 공부는 자신의 인생행로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과정이 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 하왕십리 방화사건은 한국 사회가 빚어낸 문제점이 응축된 결과라고 보고 싶습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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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교육지표와 교육 개혁을 이야기 할 때 빠짐없이 나오는 나라 핀란드. 핀란드 교육과 관련된 자료가 많이 소개되었지요. 전문서적도 마찬가지. 특히 한국에서도 핀란드 교육탐방을 많이 갔지요. 한 달 전 일본 교육학자 후쿠타 세이지 쓴 ‘핀란드 교실혁명’을 읽어 보았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핀란드를 다녀와서 쓴 책도 있는데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나름 균형적인 시각을 갖기 위해서 입니다. 이 책을 번역한 사람도 말했듯이, 핀란드 교육은 한국 교육현실에서 볼 때 ‘뜨거운 감자’이기 때문이지요.

 

교육문제에는 좌우, 보수와 진보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핀란드 교육 개혁을 이야기 할 때 어떤 이는 한국의 현실하고 맞지 않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이는 핀란드 교육이야 말로 한국이 채택할 교육시스템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런 구분은 참 무의미 합니다. 왜냐면 핀란드 교육 개혁에서 배울 것이 있고 받아들일 것이 있다면 한국 현실에 맞게 들여오면 되는 것 아닌가요. 한국 교육개혁의 문제점은 냄비근성입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지속성이 없습니다. 기다릴 줄 모르지요. 끊어 올랐다가 금방 식어버립니다. 제도가 자주 바뀌다 보니, 교육철학은 빠져있고, 교육공학만 판치니, 학부모나 교사, 학생들만 힘들지요.

 

핀란드가 교육개혁이 성공한 이유는 교육철학에 기반 해서, 교육시스템을 바꾸고 지속성을 유지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지속성이 없으면 뿌리내리기 힘듭니다. 한국의 현실과는 아주 대조적이지요. 핀란드 교육의 요체는 경쟁이 없다는 것입니다. 경쟁을 가르치지 않지만, 가장 경쟁력 있는 교육 국가가 된 것이지요. 사람의 능력을 경쟁이라는 잣대로 판단하고 구분해 버리면, 능력이 없는 학생은 도태되어 버립니다. 능력이라는 것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가르칠 때 시나브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기회균등의 힘이 깔려 있는 핀란드 교육. 한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시험 성적순으로 사람의 능력을 갈라 버리니까요. 잠재 능력이라는 것을 보지 않습니다.

 

학창시절에는 기회를 자주 주어야합니다. 알려지다시피 핀란드는 교육격차가 거의 없습니다. 교육에 대한 기회균등 철학이 만들어 낸 결과입니다. 오늘은 핀란드 교육 제도나 시스템의 세부 구조를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것 보다는 큰 가치공유가 더 중요하니까요. 핀란드 교육을 이야기 할 때 이 표현이 가장 와 닿습니다. “교사는 학생을 돕고 정부는 지원하고 부모는 협력했다. 그 결과 시험으로 몰아 붙이지 않는 교육시스템이 만들어져 있었다” 핀란드 교육 개혁은 이렇게 협치(교육 거버넌스)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참고 기다리면 지식을 우물 안에 넣고, 우물 안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지식도 변화하고 능력도 변화한다고 본 것이지요. 학교시설이 좋거나 번듯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육 주체(학생, 교사, 학부모)가 주도적으로 교육개혁을 이루어 나갔습니다.

 
또한 교사는 핀란드 교육방법에 대해서는 전권을 가졌습니다. 교사가 아이들의 상태를 파악하면 맞춤형 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방법이라고 판단한 것이지요.

 
핀란드 교육위원회가 핀란드 학생들이 각 종 교육 지표에 1위를 달리고 상위에 랭킹 된 이유를 소개하면서 글을 마칠까 합니다.

 

1. 가정, 성, 경제력, 모국어 관계없이 교육 기회가 평등하다.

2. 어떤 지역에서도 교육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다.

3. 성별에 따른 분리를 부정한다.

4. 모든 교육을 무상으로 실시한다.

5.종합제(교과목이나 학생 등을 수준별로 가르치는 대신 통합해서 가르치는 형식)로 선별하지 않는 기초교육.

6.전체는 중앙에서 조정하지만 실행은 지역에서 맡을 수 있도록 교육행정이 유연하게 지원한다.

7. 모든 교육 단계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협력하는 점, 동료의식.

8. 학생의 학습과 복지에 대해 개인별로 맟춤 지원을 한다.

9. 시험과 서열을 없애고 발달의 관점으로 학생을 평가한다.

10. 자신의 생각에 따라 행동하는, 전문성이 높은 교사

11. 사회구성주의적인 학습 개념.

 

핀란드 교육개혁은 번역자의 소개 글대로 무척 단순한 경제적 필요성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적은 인구에 척박한 자연환경, 단 한 명도 버릴 수 없는 절박한 처지에서 나온 생각들을 실천한 결과지요.

한국은 핀란드와 환경이 많이 다릅니다. 그렇지만 한국 교육은 그 어느 나라보다 절박하지요. 그렇다면 그런 절박함을 이제 지혜로 만들어 실천할 때입니다.


* 앞으로 세 차례에 거쳐서 핀라드 교육개혁 중에 한국의 교육환경에 적용 시킬 수 있는 아이템을 소개시켜 드릴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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