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돌보는 한 대접의 미학

 

 

인류사에 있어서 최초로 탄생한 음식다운 음식은 바로 죽이다. 서기 5천년 경 신석기 후반에 이르러 농경문화가 정착되면서 곡식을 재배하고 그릇을 만들게 된 사람들은 자신이 거둬들인 농작물에 물을 붓고 끓여 먹기 시작했다. 여기에 사냥으로 얻은 고기와 산나물, 열매 등을 함께 넣어 현재의 죽으로 추정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음식이 생겨났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 문헌에 수록되어 있는 죽만도 40여 종으로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보양음식, 별미음식, 병인음식, 구황음식으로 지속적으로 발달해 왔다.


죽의 역사적 배경을 떠나 사람으로 태어나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음식 역시 죽이다. 어미젓을 갓 뗀 아기가 미음으로부터 시작해 단계별로 먹게 되는 이유식이 모두 죽인데, 아기는 죽으로부터 피와 살을 덧붙이고 튼튼한 뼈를 키워낼 뿐만 아니라 세상사는 별난 맛 또한 차근히 익혀나간다.


죽을 쑤는 방법은 어느 곳이나 대개 비슷하다. 곡물의 6, 7배 정도로 넉넉하게 물을 붓고 훌훌하게 끓여내면 되는데, 한국의 경우 녹두나 팥 등 잡곡을 고아서 거른 물에 쌀을 넣어 쑤거나 고기나 생선, 푸성귀를 다져 넣고 쑤는 경우가 예로부터 흔했다.


죽의 종류는 용도나 재료에 따라 나뉘기도 하지만 묽기에 따라 미음·응이·암죽·죽 등으로 나뉘기도 한다. 미음은 곡물을 충분히 고아낸 후에 체에 받아낸 것으로 죽보다 묽은 것이고, 응이는 곡식의 녹말만을 가라앉혀 쑨 것이며 암죽은 곡식의 가루를 밥물에 타서 끓인 것이다.


이처럼 죽은 그 조리법과 재료가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곡물의 전분이 주원료다. 여기에 단백질 식품인 육류와 어류를, 비타민 무기질 식품인 견과류와 채소류를, 약이성 식품과 향채류를 배합하여 끓이는 것인데 언제 어느 때에 먹느냐에 따라 죽의 성격과 조리법이 또다시 사뭇 달라진다. 

 

한 그릇의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할 때

 

1611년 허균이 바닷가로 귀양가서 거친 음식만 먹게 되자 그 전에 맛본 산해진미를 생각나는 대로 써서 도문대작(屠門大嚼)을 남겼다. 제목은 고기를 먹고 싶으나 먹을 수가 없으므로 ‘도문(도살장의 문)’이나 바라보고 ‘대작(질겅질겅 씹다)’하며 자위한다는 것으로, 가당치 않은 것을 부러워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강릉방풍죽
“나의 외가인 강릉에는 방풍이 많이 산출되는데 2월이면
그 고장 사람들이 새벽 이슬을 타고 방풍의 새싹을 따서 햇빛을 쪼이지 않는다.
잘 데낀 쌀로 죽을 쑤어 반열이 되면 방풍을 넣고 한소끔 더 끓인다.
차가운 사기 그릇에 퍼 담아 따뜻할 때 먹으면
입안에 단맛과 향기가 가득하여 3일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다”
허균 <도문대작(屠門大嚼)> 중

 


조선 영·정조 때에 홍양호가 지은 <북새기략(北塞記略)〉에 따르면 “곡물이 매우 귀하여 귀보리(耳麥)로 죽을 쑤어 먹는다”고 하여 구황식으로 죽을 먹던 풍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보리죽도 못 먹으면 나물을 뜯어다가 죽을 쑤어먹었는데 조선 현종때 서유구가 펴낸 농업백과전서,〈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에서도 무죽, 당근죽, 쇠비름죽, 근대죽, 시금치죽, 냉이죽, 아욱죽과 같은 구황식을 확인할 수 있다. 세월을 뛰어넘어 1950년대 한국전쟁을 거쳐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멀건 국에 쌀이나 보리 한줌만 넣고 쑨 죽으로 온가족이 주린 배를 채웠던 기억 역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아리고도 구수한 추억이다.


반면, 죽이 보양식으로 쑤어지면 그 재료와 조리법이 화려해진다. 흰쌀을 기본으로 인삼, 대추, 복령, 갈근, 잣, 깨, 산약, 황기 등 한약재와 약이성 식품이 곁들여 지는데 이는 음식이 곧 약이 되는 우리 고유의 약식동원(藥食同源) 사상이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특히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직접 그 안정성이 확인되어 아픈 자이거나 건강한 자이거나 가릴 것 없이 원기를 돋우는 음식으로 지금까지도 톡톡히 한몫을 해내고 있다.


잃어버린 입맛을 되살릴 때도 빠짐없이 죽이 등장한다. 별미식으로 등장할 때는 대부분 지방색을 띠기 마련인데 그 지역에서 풍부하게 생산되는 작물이나 수산물을 이용하여 맛과 향, 모양까지 갖추는 경우가 많았다. 강원도는 감자, 옥수수 같은 고랭지 작물과 해안의 해산물로 된 소박한 죽들이 많았고, 충청도는 풍부한 곡류, 채소, 해산물을 이용하는 것 외에도 인삼이 들어가는 보양죽이 특징적이다. 경상도는 풍부한 해산물과 밭작물이 어우러진 담백한 죽이 많고, 전라도는 다양한 해산물을 이용한 화려하고 진한 맛이 특색이다. 제주도는 다채로운 해산물 외에도 새끼돼지의 태반으로 죽을 쑤기도 했고, 황해도·평안도·함경도의 경우 잡곡과 산림지역의 나물을 이용해 구수한 죽을 올려 입맛을 돋우고 풍류를 즐겼다.


현대에 들어서면 지친 도시인들의 속풀이용으로도 크게 환영받는 것이 죽이다. 제 때 편안히 끼니 챙겨먹기도 힘든 현실 속에서 늦도록 격무와 술자리까지 이어졌다면 술술 잘도 넘어가는 죽 한그릇이 생각나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사무실이 밀집해 있는 여의도, 광화문, 종로, 강남 등지의 한다하는 죽집들 앞에서 아침부터 긴 행렬을 보게 되는 것은 하나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배고프고, 아프고, 입맛 없고, 속 쓰리고, 소화가 안될 때 찾게 되는 죽. 단순한 음식을 넘어 몸과 마음의 슬픔과 고통까지 달래주는 따뜻한 보살핌이 되어 요란하지 않게 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예전 짧지 않은 시간 세밀한 준비와 지킴을 통해 죽을 쑤던 이는 주로 가가호호 어머니였지만 지금은 프랜차이즈 가게의 규격화된 죽도 있고, 드넓은 마트의 인스턴트 죽이며, 인터넷 쇼핑몰의 맞춤형 죽까지 쉽고 편하게 고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반면 죽이 산업화되면서 이렇게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죽은 그야말로 흥행에 성공한 몇몇 죽일 뿐이다. 그나마도 출처를 알 수 없는 원재료로 유통을 위한 가공처리를 거치는 등 소위 ‘제조현장’에 들어가 있으니 헛헛한 빈 속은 물론 가슴까지 그득하게 채워주던 그 옛적 죽이 더욱 그리울 뿐이다. 


 


서울 광장시장 한 켠의 ‘광장죽집’은 새벽부터 재래식  죽을 쑤기 시작하여 저녁 늦은 시간까지 시장 상인과 장보러 나온 행인의 속을 채워준다.


 

 

재료와 조리법에 따른 죽의 구분

 

재료  죽  미음  응이  암죽
곡물 흰죽, 콩죽, 팥죽, 녹두죽, 보리죽, 쌀미음,메조미음,   양원죽, 오누이죽, 조죽, 청량죽,     흑임자죽 등
 
차조미음,콩미음 율무응이,수수응이 쌀암죽, 떡암죽
 
곡물+채소 근대죽, 김치죽, 박죽, 버섯죽,부추죽, 아욱죽, 콩나물죽, 죽순죽,호박죽,무죽 등 당근미음,시금치미음  연근응이  

곡물 +생선·육류

양육죽, 가자미죽, 낙지죽, 대구죽,비웃죽, 생굴죽, 섭죽, 옥돔죽,우렁죽, 전복죽, 조기죽, 추어죽 등 삼합미음(해삼,홍합,쇠고기)    
곡물 +견과 개암죽, 건율죽, 잣죽, 행인죽,밤죽, 낙화생죽, 호두죽, 진군죽,상자죽 등 송(속)미음 오미자응이, 갈분응이 발암죽

곡물 + 약이성재료

가시연밥죽, 갈분죽, 녹각죽, 변두죽, 강분죽, 송피죽, 복령죽,  문동죽, 산약죽 등 수삼미음, 오미자미음 인삼응이,
구선왕도고응이
 
곡물 +기타재료 인삼죽, 타락죽, 모과죽, 매화죽, 고구마죽, 자소죽, 죽엽죽, 백시죽,  소마죽 등     식혜암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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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오래된 것만 보면 가슴이 벌렁벌렁 대는 사람이 있다. 옛날 게 사라질까봐 마음을 졸이는 사람이 있다. 어머니 할머니가 사용하던 물건을 졸라대며 가져와 살림장만을 하는 사람이 있다. 윤신천(50)씨. 감색·황토색 천연염색 개량한복이 잘 어울리는 그는 유난히 옛것을 찾고 수집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의 집을 한 번이라도 방문한 사람들은 옛날 분위기의 남다른 살림살이에 마음을 빼앗긴다고 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의 생활이 어떤지 궁금하던 차에 그가 살고 있는 상주로 직접 찾아갔다. 상주 시내와 조금 떨어진 조용한 마을, 아담한 3층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는 그를 만났다. 상주는 그가 태어나 자란 곳이지만 결혼한 후 남편의 근무지인 창원에서 줄곧 살아왔다. 상주로 이사 온 지는 한 달 남짓. 7년 전 남편의 귀농으로 창원과 상주 두 집 살림을 해왔다. 올해 큰 아들이 대학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부부와 딸 세 식구가 이곳에서 모여 살기 시작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소문대로 집안 풍경은 현대식 아파트 외관과 다른 세계였다. 거실 초입의 한 섬짜리 뒤주가 가장 먼저 손님을 맞는다. 오래된 나무색의 고가구가 거실 이곳저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흔히 궤짝농이라고 하는 반닫이와 문갑, 통나무를 잘라 만든 좌탁, 자그마한 찻잔과 여러 가지 허브차가 진열되어 있는 선반. 한 쪽 벽 나무 막대에는 말방울과 소방울 대여섯 개가 걸려 있다. 신라의 유적지답게 신라시대 유물 네 가지가 문갑 위에 ‘전시’되어 있다. 수집광이라고 할 정도로 모으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어디를 가든 옛날 것만 눈에 들어오면 얻거나 구입해온다. 그러다보니 자잘한 살림도구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옛날 게 쓰임새도 좋아 가능하면 쓰던 걸 버리지 않은 탓도 있다.


 

옛것들이 살림도구로
집주인은 집안에 멋스럽게 놓여 있는 고가구와 옛날 물건들을 하나씩 안내하며 그 쓰임새를 알려주었다. 뒤주에는 말린 차가 들어 있다. 시할머니가 사용하던 것으로 물고기 장식이 마음에 들어 시어머니께 졸랐더니 필요 없다며 주신 것이다. 뒤주는 습기가 차지 않아 차를 보관하기에 아주 좋다. 어른들이 사용하던 반닫이에는 다듬이 방망이가 보관되어 있었다. 20년 된 반닫이에 방망이도 그 즈음에 받은 것이다.


“나중에 단독 주택에 살게 되면 다듬이질을 할 거예요. 모시나 명주는 다리미보다 방망이로 두드려 줘야 올이 반듯해져요.”거실 선반 꼭대기에서 긴 막대기 2개를 꺼내온다. 떡살과 다식판이었다. 결혼 전 예천에서 구입한 것으로 20년이 훨씬 넘었다. 떡살은 절편 무늬 낼 때 쓰는 건데, 요즘에는 모형 판에 랩을 씌워 떡을 넣고 찍어낸다. 거실 한 편 선반에 놓여있는 올망졸망 갖가지 형태의 작은 찻주전자가 눈에 띈다. 그 옆으로 작은 찻잔들이 놓여 있다. 차를 담는 찻잔도 어느 것 하나 짝을 이루는 게 없다. 모양이 비슷한 것 같아도 태생이 다른 것이었다. 친구가 주기도 하고 지나다니다 구하다보니 구색도 안 맞고 제 짝도 없다.


점심밥이 차려진 좌탁에도 시간과 장소를 달리해 태어난 접시와 국그릇 밥그릇이 조화롭게 놓여 있다. 손님을 위해 특별히 밭에서 캐온 쑥과 머위, 부추로 만든 맛있는 국과 나물반찬이 짝이 맞지 않은 투박한 질그릇과 아주 잘 어울린다. 짝이 맞는 그릇이 하나도 없지만 조화롭다. 오래된 살림도구가 그의 집에선 마냥 골동품이 아니다. 언제든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살림살이였다. 
 




옛것이 사라지는 게 안타까워 시작한 천연염색과 전통 바느질
윤신천 씨는 옛것에 대한 그리움과 애착이 가득하다. 자신의 전공보다 역사 유적지 답사를 따라다니는 것을 더 좋아했고 토속신앙이 더 가깝게 느껴졌고 오랜 시간을 두고 덩치를 키워온 큰 나무를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천연염색을 하고 서양바느질 퀼트 대신 명주 천과 명주실, 감침질로 대표되는 전통 바느질을 더 좋아한다.


옛것이 사라지는 게 안타까웠던 마음이 가장 먼저 쏠렸던 건 천연염색이었다.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사람들과 함께 염색작업을 한다. 그의 실력도 8년이라는 쌓여온 시간을 생각하면 가르치는 위치에 설 만한데 절대로 그 자리에 나서지 않는다. 그저 조수역할을 할 뿐, 항상 실력자 선생을 모시고 모임을 꾸린다. 천연염색은 주로 생활 가까이에 있는 것과 주위 땅에서 나는 것을 이용한다. 양파 껍질이나 밤 껍질, 포도 껍질, 감, 황토… 안방에 걸려있는 개량한복도 거의 직접 염색을 한 것이다. 그는 감과 황토 염색을 가장 좋아한다. 황토염색 옷은 땀이 안 배고 달라붙지 않아 여름에 입으면 편하단다.


“염색은 자연스러운 색감 외에도 몸에 좋은 기능이 많아요. 타닌 성분이 머리를 시원하게 해 잠을 잘 오게 하고 피부 알레르기를 막아줘요. 포백된 흰옷에 염색하면 표백제의 유해성분을 막아주지요.”그는 개량 한복을 자주 입는데, 잘 어울린다. 티셔츠 위에 천연염색 조끼 하나만 걸쳐도 자태가 나온다. 바지도 남자 한복바지 같이 편한 걸 자주 입는다. 요즘 새로 만들고 있는 바지 하나를 보여준다. 마무리가 아직 안 된 한복 바지였다. 옷본이 있어 쉽게 만들었다며 대단한 게 아니라고 하지만 정교한 바느질 솜씨가 돋보였다. 염색과 함께 편하게 입는 몇 가지 옷은 직접 만들어 입는다.


“옛 아낙들은 옷을 모두 지어 입었잖아요. 그 솜씨로 돈벌이도 했으니. 요즘 사람들도 자립을 했으면 하는 생각으로 옷 만들기를 시작했어요.” 그저 옛날 어르신들이 살던 방식이 그리웠고, 뭔가 스스로 만들어 보는 게 좋아 시작한 일이다. 천연염색 모임처럼 한복 조각 천으로 바느질을 하는 규방공예 모임을 한 달에 한 번 하고 있는데, 상보, 걸개, 수저 집, 모시발, 조끼를 만든다.

“바느질엔 특별한 솜씨가 필요 없어요. 엄마나 할머니가 옷을 해 입었던 유전자를 타고난 것 같아요. 누구나 연습하면 잘 해요.” 보통 젊은 아기엄마들이 어느 한 집에 모여 조각보 이불이나 걸개, 가방과 소품을 만들기도 하는데 그의 말을 빌자면 퀼트는 서양 것, 규방공예는 우리 것이다. 퀼트는 인쇄된 무늬 천을 이용해 박음질과 홈질을 이용해 만들지만 규방공예는 명주·모시와 명주실을 주로 이용해 감침질을 하는 게 특징이다. 전통 바느질에 대한 꼼꼼한 설명이 이어진다.


“감침질은 우리 고유의 바느질이에요. 굉장히 단단해요. 감침질을 잘 하면 선 색깔을 내기도 하는데, 바탕천과 대비되는 색을 쓰기도 해요.”상보 가운데에 이어붙인 명주 천 사이에 점점이 나타난 노란 명주실이 또 하나의 선의 표현인 셈이다. “퀼트는 천 안쪽에서 조각을 잇지만, 우리 것은 겉과 겉을 감침질로 이어요. 그게 큰 차이죠.”
조각보 이불 하나쯤은 장롱에 들어 있거나 창문 걸개 정도는 안방에 걸려 있지 않을까 했는데, 큰 작품은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시간도 없지만 모여서 함께 바느질을 하는 게 즐거운 일이라 소품을 많이 만든다. 



 


손수건으로 바느질 운동

바느질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것은 손수건을 만드는 일이었다. 산청의 작은 음악회에 갔을 때 보았던 식탁 위의 손수건이 그의 가슴에 꽂혔다. 휴지 대신 손수건으로 입을 닦고 각자 가져가는 것이었다. 그때 이후 손수건을 만들기 시작했다. 면이나 거즈를 잘라 책 넓이만한 크기로 접어 홈질로 마무리를 한다. 행사를 열 때, 참석한 사람들에게 직접 만들어 하나씩 선물을 하거나, 손수건 만들기 코너를 만들어 5분만 시간을 내 직접 바느질을 해보게 하고 나서 가져가게 한다.


그의 집 부엌 좌탁에도 여러 개 손수건이 놓여 있었다. 각기 다른 색실로 홈질한 것, 규격도 제각각이었다. 모두 다른 사람들이 만든 것이란다. 언제부턴가 휴지를 가볍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입을 닦을 때도, 화장실에서도, 심지어 식탁을 닦을 때도 쉽게 휴지로 훔친다. 옛날 어머니들은 거즈 수건을 가지고 다니면서 다용도로 사용했다. 집에 와서 깨끗이 빨거나 뽀얗게 삶아 그걸 다시 사용했다. 그 마음을 그대로 실천해보자는 게 그의 손수건운동의 뜻이다.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니 바느질 안 한 천을 한가득 안겨주며 집에 가서 바느질을 해 손수건운동을 꼭 해보란다. 시간과 마음을 다잡고 앉아 작은 손수건 사방 홈질을 해야 하는 일을 언제 다 할까 걱정부터 앞선다. 그래도 푸짐한 선물 한가득 안은 듯 뿌듯하고 좋다. 숙제는 다음 일. 직접 만든 감녹차와 산국화차를 예쁜 병에 담아 선물로 건넨다. 새로 디자인해 만든 수저집도 덤으로. 넉넉한 모습만큼 넉넉한 마음으로 자꾸자꾸 퍼주신다. 파김치와 부추절임 반찬까지. 




옛것이 생활 도구로 살림살이로 자리를 잡으면 손으로 해야 할 일도 많고 씻어가며 삶아가며 다시 써야 할 물건이 많아지니 살림하는 사람들에겐 그리 달갑지는 않다. 그래도 윤신천 씨는 어머니 할머니가 쓰던 가구에 옷과 물건을 보관하고, 직접 길러낸 허브차를 마시며, 땅에서 캐낸 풀로 나물을 무치고 국을 끓여 이웃과 나눠먹고, 휴지 대신 손수건을 만들어 삶아 쓰고, 편한 바지를 만들어 입고 갖가지 천연염색을 한 옷을 계절마다 갈아입는 생활을 한다. 주택에 이사하면 다듬이 방망이까지 두드릴 거란다. 어머니, 할머니들이 징글징글하다는 옛날이 그에겐 닮고 싶은 삶이고 희망이다.


“옛날 사람들처럼 살고 싶어요. 생활습관이 옛날로 돌아간다면 세상이 행복해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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