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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19 오드리 헵번, 그 아름다움의 비결

우리 시대의 모든 남녀들에게 요정 워너비로 불렸던 오드리 헵번 전시회에 다녀왔다. 제목은 ‘오드리 헵번 아름다움 그 이상의 아름다움’으로 20세기 가장 뛰어난 미인이자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다 간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의 감동적 생애를 재조명한 전시회였다.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새로 들어선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T)의 총 10관의 전시관에는 그녀의 출생부터 2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후 스타로서의 삶, 그리고 소외받는 어린이들을 위해 살아온 인생까지 많은 기록물들을 설치해 놓았다. 전시장에는 영화 ‘로마의 휴일’ 촬영 때 그녀가 직접 탔던 스쿠터도 있었고 수많은 사진과 자필노트, 패션 디자이너 지방시가 만들어 준 우아한 파티복들, 실제 사용한 식기류 등 볼거리가 꽤나 다양했다. 그리고 8mm 홈비디오 영상에는 모성애 가득한 주부의 삶도 담겨 있었는데 처음엔 13000원의 입장료가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관람을 마친 후에는 그보다 더 비싸다고 해도 충분히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이날 헵번을 젊은 날의 우상으로 추억하는 중장년층 관람객이 유독 많아 보였다.

 

 

 

 

 

 

 

내 기억 속 헵번은 까만 드레스를 입고 뉴욕 5번가에 있는 티파니 상점 앞에서 보석을 쳐다보며 빵과 커피를 먹는 모습, 또한 ‘로마의 휴일’에서 깜찍한 숏커트 머리 스타일로 그레고리 펙과 함께 연애하던 장면이 고작이었다. 헌데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 그간 매스컴에 공개되지 않았던 오드리 헵번의 감추어진 일생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녀는 은퇴 후의 삶이 더 아름다웠다. 굶주리고 고통 받는 전 세계 어린이를 사랑했던 엄마로서의 그의 생애는 극진했다. 마더 테레사의 분신 같다고나 할까. ‘화려한 은막의 스타가 어찌 이런 거룩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전시회 내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의문이었다.

 

 

 

헵번의 꿈은 원래 발레리나였다. 그러나 소녀 시절의 그녀는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살던 집에서 쫓겨나 거리를 헤매게 되고, 사랑하는 외삼촌이 처형당하는 것을 눈앞에서 보게 된다. 거기다가 두 오빠는 레지스탕스가 되었으며 본인은 천식, 황달, 빈혈, 부종 등 온갖 병을 달고 있었다. 먹을 것이 없어 튤립 뿌리를 씹으며 배고픔을 달래야 했던 그 시절에 그녀는 적십자 구호 활동을 받아서 기적처럼 살아날 수 있었다. 어릴 적 유니세프는 헵번 가족에게 수호천사나 다름없었다. 이것이 훗날 그녀가 유니세프 친선대사를 맡게 된 동기였다.

 

 

헵번이 네덜란드에 살 때, 안네프랑크도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동갑내기였다. 둘 다 전쟁이 발발할 당시 열 살이었고 전쟁이 끝났을 때 열다섯 살, 헵번은 그 당시 레지스탕스에게서 배포된 비밀 신문에 실린 ‘안네의 일기’를 접하게 된다. 안네가 창문 밖을 쳐다보며 자전거 타기, 춤추기, 휘파람 불기를 마음속으로 했다는 일기 내용은 같은 나라에서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같은 나이의 헵번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었고, 그래도 자기가 처한 상황이 다락방에 갇혀 있는 안네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됐다. 이때 읽은 ‘안네의 일기’가 나중에 문학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작이 되리라고 헵번은 상상이나 했을까.

1945년 히틀러 자살 후 헵번의 열여섯 번째 생일날, 네덜란드는 독일로부터 해방이 되었다. 어릴 적 구호 받은 경험과 전쟁을 겪은 체험은 향후 그녀가 유니세프를 통해 인류 평화에 이바지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그가 죽기 전까지 펼친 구호활동은 실로 세상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그녀가 수단이나 방글라데시, 베트남, 소말리아 같은 저개발 국가를 돌면서 병에 걸린 아이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만지고 그들의 고통 앞에서 함께 눈물 흘리는 장면은 전 세계인의 가슴을 적셨고 기부 활동에 동참하게 하는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녀는 특히 소말리아 어린이들에게 강한 애착을 가졌다. 1922년 그곳을 방문했을 때 마을 공터 구석에 놓여있는 수많은 자루꾸러미를 보았다. 아이들의 시체였다. “오마이 갓!” 헵번은 하염없이 눈물을 쏟으며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언론을 향해 소말리아 어린이들에게 더 많은 구호의 손길을 달라고 호소했다. 누가 썼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녀가 피골이 상접한 한 아이를 안고 있는 사진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 있었다. ‘우리가 진정 아름다운 오드리 헵번을 만난 것은 은막에서가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였습니다’ 이때 그녀는 대장암 말기 환자의 몸이었다. 강한 통증을 느낄 때마다 진통제를 맞으며 계획했던 모든 일정을 소화했다고 하니 감동을 넘어 경외심이 무럭무럭 솟아올랐다.

 

 

헵번은 자신의 키가 너무 크고(170센티미터) 너무 말랐으며 각이 진 얼굴이라서 본인이 한번도 예쁘다는 생각을 안 했단다. 하긴 이 말은 이쁜 여자들의 단골 멘트라서 믿을 게 못 되지만 영국의 BBC 방송에서 뽑은 세계의 자연 미인 1위로 헵번이 등극한 걸 보면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에 대해선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 같다. 헵번은 젊었을 때도 그랬지만 말년의 모습 또한 여전히 아름답고 우아했다. 비록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고 피부는 늘어졌어도 누가 이 여배우를 늙고 초라한 할머니라고 생각할까? 내면의 성숙과 베푸는 삶! 나이를 먹었어도 그녀가 여전히 아름답고 당당한 비결이리라.

 

 

전시회에 가서 알게 된 재미난 사실 또 하나는 ‘로마의 휴일’이 선풍적 인기 속에서 개봉되었을 때 어느 날 14세 소년이 헵번을 찾아왔다. “난 나중에 당신과 결혼할 거에요.” 헵번보다 여덟 살 연하의 미소년은 나중에 정신과 의사가 되어 진짜로 헵번의 두 번째 남편이 되었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결혼 생활도 10년 만에 파경을 맞게 되는데 이유는 성격차이라고. 이 두 번째 남편과도 헤어지고 스위스의 한 전원주택에서 임종을 맞이할 때 그녀 곁에는 또 다른 연인이 있었다고 하니 그녀의 인생 자체가 모두 영화이고 예술이었다.

 

 

의사가 3개월의 시한부 삶을 선고하자 헵번은 모든 일정을 덮고 은퇴 후 살았던 스위스의 집으로 돌아가 생의 마지막 시간을 가족들과 함께 보냈다. 이때가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노라고 그녀는 회고했다. 마침 크리스마스, 헵번은 유언처럼 시를 읊었고 이로부터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1993년 1월 20일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날 미국은 클린턴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던 날이었지만 현지 언론들은 그녀의 사망 소식을 대통령 취임 기사보다 더 크게 다루었다고 한다. 헵번의 운명 직후 그의 절친이었던 영화배우 리즈 테일러는 한 걸음에 달려와 이렇게 말했다. 하늘은 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사를 너무나도 일찍 거두어갔다고...

 

 

헵번은 진정 위대한 배우이자 사랑을 실천한 박애가였으며 죽어서 더 큰 별이 되었다. 그녀의 두 아들은 자신들의 직업을 접어놓고 현재 ‘오드리 햅번 어린이재단’에서 세계평화와 기아방지 등 어머니의 유언을 착실히 실천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도 재단의 대표이자 그녀의 둘째아들인 루카 도티가 주관하여 헵번의 소장품을 한국으로 옮겨왔는데 수익금은 전액 재단에 귀속된다고 한다.

세계적인 무비스타의 풍모뿐만 아니라 한 명의 여성, 어머니, 인간으로서 아름다운 생을 담은 오드리 헵번 전시회는 관람 시간도 꽤 길었다. 지금 우리가 국제화, 세계화, 다원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게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껴졌다. 두 시간을 훌쩍 넘기고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날씨는 매서웠으나 마음은 더없이 훈훈했다.

 

 

헵번이 유언처럼 남겼다는 시, <아름다움의 비결>은 어쩌면 그녀의 가치를 가장 압축해서 보여준 글이며 이번 전시회의 하이라이트가 아니었나 싶다.

 

 

 

 

 

아름다움의 비결

 

 

 

 

아름다운 입술을 가지려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런 눈을 가지려면 좋은 것을 발견하라

날씬한 몸매를 원하면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어라

 

아름다운 머릿결을 가지려면

하루에 한번 아이로 하여금 그 머릿결을 어루만지게 하라

균형 잡힌 걸음걸이를 유지하려면

당신이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걸으라

 

물건 뿐 아니라 사람도

새로워져야하고, 재발견해야 하며, 활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어떤 사람도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당신이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할 때

당신 역시 팔 끝에 손을 갖고 있음을 기억하라

 

나이를 먹으면서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이 두 개의 손을 갖고 있음을

 

한 손은 당신 자신을 돕기 위해

그리고 나머지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

 

 

 

 


당신의 두 손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값지게 쓰여질수 있습니다.

 

실천하는 지역사회교육운동

www.kac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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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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