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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2.09 나에게 컴퓨터는 필요없어요. 진짜 연애를 하려면

 

 
사람이건 물건이건 무언가에 전적으로 의지한 삶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컴퓨터에는 그리도 너그러운가?

 


회사원 강씨의 하루


AM 8:00 자명종 소리에 눈을 뜨면 대충 빈속에 생식을 부어 넣고 전철을 탄다.
AM 9:00 출근. 사무실 의자에 앉자마자 컴퓨터를 켠다. 메신저 프로그램도 자동으로 실행된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눈길을 끄는 뉴스를 읽어본다. 오전 업무의 대부분은 이번 주 금요일에 있을 프레젠테이션 준비. 웹서핑과 사내 전산망을 오락가락하며 자료를 채워 넣는다. 추가로 필요한 것들이 있으면 협력 업체에게 웹하드에 올려달라고 한다.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자판을 두드린다.     
PM 12:50 점심을 먹고 한숨 돌리는 시간. HTS (주식 홈트레이딩 시스템)프로그램으로 주식 시세를 훑어본다. 간혹 거래도 한다.
PM 6:30 컴퓨터 전원을 끄는 것은 그날 하루 업무가 종료되었음을 뜻한다. 업무시간에 컴퓨터 끄는 일은 결코 없다.
PM 9:00 집에서 저녁을 먹고 가족들과 조금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는 각자 방으로 흩어진다. 가입한 카페와 클럽들에 올라온 새 글을 읽어보고, 개인 블로그도 업데이트하는 등 개인적인 컴퓨터 용무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때로는 새벽 한 두시를 훌쩍 넘기기도 한다.

 

주부 박씨의 하루


AM 9:00 남편 출근시키고 나면 컴퓨터를 켜고 그날 뉴스와 날씨 등을 인터넷으로 확인. 신문을 구독하지 않은지는 벌써 3년이 넘었다.
AM 11:40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좀처럼 밖에 자유로이 나다닐 수가 없다. 최근에는 마트나 백화점들이 거의 다 인터넷 식품관을 운영하므로 인터넷으로 장을 본다. 내친 김에 화장품과 집에서 입을 옷 두어 벌도 산다.
PM 3:30 월말이 가까워오면 하루 날을 잡아서 모든 고지서와 은행 업무를 본다. 인터넷뱅킹으로 공과금과 카드요금 납부, 부모님들 용돈까지 모두 보내드린다.  
PM 6:00 저녁에 오이냉국을 먹고 싶다는 남편의 문자가 왔다. 인터넷 요리 사이트에서 인기 좋은 조리법을 찾아내 출력한다.  
PM 10:00 만 네 살이 채 되지 않은 둘째도 마우스를 능숙하게 다룬다. 포털사이트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한글공부와 동요노래방 같은 콘텐츠는 비교적 자유롭게 보게 해준다. 남편과 함께 모니터로 빨려들어 가는 아이들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개점 휴업의 순간


가상이기는 하지만 이 여성들의 하루는 우리와 그리 동떨어져 있지 않다. 직업이 달라도 컴퓨터를 빼놓고 두 사람의 일상을 설명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런 장면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겠다.
지금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무실을 둘러보라. 거기서 컴퓨터, 모니터, 프린터기가 몽땅 사라진다고 치자. 휑한 사막, 아니 개점휴업이 따로 없을 것이다. 주부라면 상황이 좀 덜 극적이긴 하겠지만, 컴퓨터가 집에서 사라지면 아이들이 못 견뎌 할 게 틀림없다.


 인터넷 없이 살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도 눈을 휘둥그레 뜨는 이들에게 ‘컴퓨터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이 세상에 컴퓨터가 나타난 것은 70년 전. 한국에 컴퓨터라는 게 최초로 도입된지는 겨우 40년, 개인용 컴퓨터가 등장한지는 27년밖에 흐르지 않았다. 혹시 우리는 너무 빨리 컴퓨터에게 모든 자리를 내어준 게 아닐까?

 

편리하니까 괜찮아, 괜찮아


컴퓨터가 세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 가장 주목받은 점은 빠른 연산능력이다. 주판을 만지거나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셈을 하던 시절, 컴퓨터가 보여준 속도는 입을 떡 벌리게 했다. 그 능력이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 잘 모르는 사람들조차 눈앞의 사실에 압도된 것이다.


컴퓨터가 도입되면서 일어난 모든 일은 ‘편리하니까’ 라는 한마디로 면죄부를 받았다. 수많은 전화교환수들과 타이피스트들이 무더기로 해고되고, 땀 흘려 따놓은 수많은 자격증들이 휴지조각으로 변했으며, 사람들이 얼굴을 맞대고 일하던 사무실은 컴퓨터와 서버들이 차지했다. 1초에 수십억 단위를 처리한다는 컴퓨터의 편리함을 맛보기도 전에, 평범한 사람들은 이미 고통부터 안은 셈이다.
반면 산업 현장과 경영자들은 컴퓨터의 이득을 톡톡히 보았다. 경비 절감과 인력 감소 효과를 한번 맛 본 이들은 점점 더 조급하게 컴퓨터의 발전을 채근했다.

 

세계를 한 방에 보내는 방법


컴퓨터가 지배하는 현대의 문제는, 사람들이 편리함과 효율만 맹목적으로 쫓느라 지뢰처럼 웅크리고 있는 위험을 모른 체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병행하지 않고 디지털만으로 꾸려가는 시스템이 대표적인 사례다.


공공기관과 기업들의 대부분은 전적으로 전산화된 시스템에 의존한다. 프로그램 개발자들 자신도 100퍼센트 찾아낼 수는 없다는 ‘버그’(프로그램이나 시스템의 착오, 오작동), 날마다 정교하게 생겨나는 바이러스, 해킹에 의한 피해를 언제든 각오해야 한다. 설사 피해가 일어난들 비교할 아날로그 자료가 없는 이상 속수무책이다.


한국의 경우 세계에서 유례없이 마이크로소프트사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리눅스와 애플 사용자는 한국에서 그야말로 외로운 늑대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일방적으로 시스템 일부를 바꾸거나 하면, 공공기관이나 기업도 우왕좌왕 할 상황이다. 기술 예찬론자들은 네트워크를 통해서 세계가 하나 된다며 감격스러워하지만, 이런 의문은 애써 외면하는 듯하다. 하나로 모인 그 네트워크가 설령 잘못 돌아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갈수록 강력해지는 유혹의 문구들


환경적인 면도 무시할 수 없다. 1년이 멀세라 더 높은 사양을 ‘기본’이라고 광고하는 컴퓨터 시장은 쓰레기를 양산한다.
사람들은 지금 가진 컴퓨터의 기능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지 않은 채 새 제품을 산다. 하드디스크가 보석 같은 업무 결과로 차 있건, 포르노 동영상으로 차 있건 모두 더 빠르고 더 대용량 컴퓨터를 원하는 것이다.


새로 개발되는 프로그램들은 가볍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들보다 ‘최소 사양이 이 정도는 되어야 돌아갑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더 많다. 단언하건대 컴퓨터는 이제 도를 넘었다. 기술을 위한 기술, 그리고 끊임없는 소비를 창출해내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물질적인 유감이 전부는 아니다. 정신적인 유감도 만만치 않다.


컴퓨터의 정신적 폐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보라면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컴퓨터는 모든 것을 지나치게 쉬워보이게 한다. 사람을 처음 만나 느끼는 어색함과 쑥스러운 기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점차 풀리는 분위기.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가능하던 일을 컴퓨터는 얼핏 쉽게 이루어주는 것처럼 보인다.

 

진짜 연애를 하려거들랑


한 줄의 댓글로 친근함을 표현하고, 이메일로 상대를 감동시킬 수 있다. 주식 거래 프로그램으로 큰돈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자산가의 기분도 맛본다. 그러나 1년간의 온라인 연애도 오프라인에서의 한 번 만남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 또한 상식이다. 홈트레이딩으로 하루에 몇 천만 원 어치 주식을 샀다 파는 사람도 그만한 현금을 손에 들고 세어본 적은 없을 것이다. 블로그에 최고의 탕수육 조리법 수백 개를 모아놓은 사람이 직접 만든 탕수육이 정말 맛있을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컴퓨터와 나 자신의 능력을 동일하게 생각하면 할 수록 우리는 길을 잃는다는 점이다. 냉정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가늠해 보고 컴퓨터에게는 연장 하나로서의 자리만 내어주는 게 마땅하다.


그 과정을 외면하면서 내 능력과 결과물에 대해 분통을 터뜨릴 때 ‘더 빠르고 많은 최신기능을 갖춘 컴퓨터가 모든 걸 해결해주리라’는 생각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건 끝없는 경주일 뿐이다.

 

나에게 컴퓨터는 필요없다
웬델 베리





한 때는 영문학 교수로 대학 강단에 서기도 했으나 이제는 농부이자 작가인 미국의 웬델 베리. 현대문명의 비판자이기도 한 그이는 1990년에 자신이 ‘컴퓨터를 평생 사지 않을 생각’임을 밝히며 그 이유에 대해 조목조목 밝혔다.


종이에 연필로 글을 쓰면 1950년대의 수동 타자기로 아내가 원고를 정리해주는 게 베리의 작업 방식이다. 빠른 시간 안에 편하게 많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이유로 지인들이 컴퓨터를 권하지만 단호히 거부한다. 컴퓨터로 쓴 글이 손으로 쓴 글보다 더 쉽게 잘 쓸 수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연장은 가볍고 작으면서 에너지를 절약해주어야 하는데, 컴퓨터는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물건이라는 지적이 매우 명쾌하다.


그러나 이 수필은 독자들의 격렬한 반감을 불러 일으켜서 글이 실린 잡지사에는 수많은 반박 편지가 도착했다. ‘텔레비전 안보기 운동’이 대체로 사람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만큼 사람들은 컴퓨터의 대안을 알지 못하며, 컴퓨터 없는 세상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말 아닐까?
웬델 베리가 말하는 컴퓨터는 복잡하게 맞물린 네트워크로서의 측면보다는 작가의 작업도구로서의 측면만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컴퓨터 뒤집어보기를 시작한 사람들이라면 참고가 될 말들이 가득하다. 녹색평론사의 <녹색평론선집1>, 양문출판사의 <나에게 컴퓨터는 필요 없다>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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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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