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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꿈, 꿈

|함수연| 만남 2014. 5. 22. 10:17

따사롭던 작년 가을 어느 날,

조간신문을 펴놓고 나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휴대폰 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나는 무심코 “여보세요!” 하고 받았는데

저쪽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

남편이 지금 119구급차를 타고 아산병원 응급실로 가는 중이란다.

순간 세상이 멈춘 듯했다.

무슨 말이 더 이어졌지만 심장소리가 너무 커서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 불현 듯 간밤의 꿈이 생각났다.

꿈에서 남편은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넓은 잔디밭을 빠져나올 수 없다고 울부짖고 있었다.

사방이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있었고,

손에 든 지팡이 역시 뾰족한 가시철망으로 칭칭 매어져 있었다.

 

 

그런 남편 곁에서 나도 울다가 잠이 깼는데 기분이 영 안 좋았다.

가슴을 옥죄는 불길한 예감!

집을 나서는 남편에게 조심하라는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만 두었다.

사실 나도 그날 언니와 점심약속이 있었는데

뒤숭숭한 꿈자리 때문에 약속을 취소한 터였다.

 

 

나는 비교적 숙면을 취하는 지라 꿈을 잘 꾸지는 않지만

무슨 걱정거리가 있다거나 집안에 중요한 일이 있으면

신기하게도 꼭 꿈을 꾼다.

그리고 그 꿈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고 내지는 점지 역할을 하면서

신통방통하게도 현실세계와 잘 맞아 떨어졌다.

이런 나를 두고 아이들은

“우리 엄마는 아무래도 신기(神氣)가 있는 것 같애!” 라는 말을 자주 했다.

 

 

딸의 회사에서 승진발표가 있던 날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전날 꿈에서 깊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딸의 손을 잡고

나는 홀로 안간힘을 썼으나 종내는 딸의 손목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오후 힘없는 딸의 전화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나 떨어졌어!”

“그래, 그까짓 승진 일 년 늦게 하면 어때.

 저녁에 집에 와서 술이나 한 잔 하게 일찍 들어오렴.”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끊었지만

솔직히 이때도 딸의 승진 누락이 꼭 내 꿈 탓인 양 괴롭고 미안했다.

 

 

석 달 전 작은 딸의 태몽도 내가 꾸었다.

소치 동계올림픽이 한창일 때 나는 손녀 지우와 함께

김연아 선수가 출전하는 피겨스케이트장을 찾았다.

매혹적인 연아의 경기가 끝난 후, 그녀는 관중석을 향해 야구공을 던져주었는데

그 중 한 개를 내가 받은 것이다.

공을 재빨리 손녀 손에 쥐어주고는 둘이서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깬 꿈 속 장면이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았다.

 

 

태몽 같았다. 일어나자마자 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너, 혹시 무슨 좋은 소식 없니?’ 내 물음의 요지를 간파한 딸은 즉각 답을 보내왔다.

‘생리 끝난 지도 얼마 안 됐는데 무슨 좋은 소식?’

근데 내 예감이 적중했다.

2주일 쯤 지났을까, 산부인과에서 임신 판정을 받았단다.

기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식구들이 또 한번 놀랐다.

 

 

“역시 엄마 꿈은 영험해! 이 기회에 아예 자리 깔고 나서면 어떨까?”

기실 이번에는 나도 놀랐다.

그런데 꿈의 빈도로 볼 때 태몽 같이 좋은 쪽 보다는

뭔가 걱정스럽고 불길한 꿈자리가 훨씬 더 잘 맞는 것 같다.

 

 

한편 아산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던 남편은 머리와 이마, 귀 등을

60여 바늘이나 꿰매고 닷새 동안 입원했다

퇴원했는데 걱정했던 뇌진탕 증세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는 집에 갔다가 2층집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다는데

이처럼 인생 갈피갈피에 느닷없고 예상할 수 없는 복병이 숨어 있다가

나타날 때는 그야말로 속수무책!

 

 

병원 문을 나서면서 남편이 말했다.

“이만하길 천만다행이지?”

“그 말은 당신이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게 맞지...”

 

 

내 말에 남편은 착한 소년처럼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고 이후 시름이 깊게 고여 있던 얼굴만 보다가

오랜만에 그의 웃는 얼굴을 보니 안도감과 고단함이 나른한 잠처럼 밀려왔다.

 치료는 남편이 했지만 나는 마음이 흠씬 얻어맞은 것처럼 지난 일주일 간 몹시 지쳐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그것은 고마움의 눈물이다.

아마 이 눈물의 의미를, 이 감사의 깊이를 아무도 모를 것이다.

 

 

7년 전의 지옥 같던 병원 생활에 비하면 이날의 사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조금 과장하여 말하자면 로빈손 크루소가 무인도에서 벗어나

런던의 일상생활로 돌아온 것이라고나 할까.

 

 

다시 집으로의 귀환(?)이 정말 감사했다.

삶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아주 먼 길을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반면에 간혹 지나간 삶에서의 가혹한 고통을 반추하는 일은

새로운 고통을 이기게 해주는 힘이 된다는 사실도 뒤늦게 깨달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모든 일들이 홀로 꿈을 꾼 것만 같았다.

마치 아는 사람 병문안 다녀온 것처럼

지금까지도 아슴프레한 게 비몽사몽이 이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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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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