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너무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  단편 영화 <격정 소나타>를 끝으로 짧은 생을 마감한 최고은이 남긴 마지막 쪽지글이다. 방문에 쓰여진 쪽지를 보고 이웃이 먹을 거기를 챙겨 찾아왔지만, 그녀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쪽지가 마지막 유서가 되었다. 영화가 아니다. 현실이다. 하지만 현실은 슬픈 영화보다 더 슬퍼 가슴이 아려온다. 

한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에 많은 누리꾼들이 추모의 글을 남기고 있다. 어제 다음 아고라에 올라온 고인의 후배가 쓴 글은 읽었다. < 그 동안 정말 말하고 싶어다. 영화계의 횡포를 >. 영화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척박한 노동 현실은 그동안 여러 차례 제기되었다. 최고은 후배(fines)는 지적한 영화계 현실을 새삼 지적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못다 핀 꿈에 대해서 우리 사회는 책임이 없는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 

"왜 이런 글을 쓴다한들 달라지는건 없겠죠.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못다 핀 꿈을 안고 홀로 생을 마감하신 선배님의 마지막은 얼마나 슬프셨을지, 외로우셨을지, 감히 제가 상상도 할 수가 없습니다. 선배의 죽음이 물론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분명 선배가 속해있던 위와 같은 사회 구조의 문제가 더 컸다고 봅니다.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따지며 책임을 묻고 싶네요. 정말 뭐라 말을 이으며 이 글을 마무리 지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출처: 다음 아고라)

 

문화 컨덴츠(영화 외) 분야는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라고 말한다. 그 바탕은 순수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창작 여건이 가장 중요하다. 한 나라의 질적 척도를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 중에 가장 중요한 분야가 바로 문화다. 문화의 힘이다. 하지만 현실은 인문학이 죽은 사회 아닌가. 최고은의 죽음은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이 아니라 죽은 시인의 사회다. 작고한 박경리 선생은 가난한 작가에게는 조의금을 받지 말라고 유언을 남겼다. 누구보다 잘 대접해 드려야 한다고 유지를 남겼다. 창작하는 사람들은 가난하다. 그렇기에 이제 창작도 가난한 사람들이 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는가. 시인의 아내이기도 한 KBS 고민정 아나운서가 최고은 작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 자신의 트위터에 쓴 글이 가슴에 와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치 결혼 전 옥탑방에 살던, 지금은 내 동반자가 된 이 사람이 눈을 감은 것만 같아 자꾸 가슴이 아파온다.연애시절 보게 된 그의 시에서 그는 몇 백원이 없어 수 시간을 걸어 집에 갔다고 했다. 그걸 보고 한참을 울었던, 잊고 있었던 그 기억이 자꾸만 떠오른다"


가난을 모르는 작가는 현실 세계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 작가 정신은 절대미만 탐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때로는 자신의 아픔처럼 역사와 시대를 껴앉아 약한 자를 대변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실천주의 문학을 강조하고자 드리는 말이 아니다. 한 작가의 죽음을 통해, 한국 예술문화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현실이 개선되기를 바란다. 뛰어난 예술인들이 없는 국가는 단팥 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박고은의 영전에 따뜻한 밥 한 그릇 마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당신의 자녀가 작가나 사상가의 길을 걷게다고 하면?

미하엘 코르트가 쓴 ‘광기에 관한 잡학사전’을 읽으면서, 우리 시대의 ‘작가’(예술가, 사상가 총칭)가 떠올랐습니다. 어렸을 때 시인이 되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는데, 묵묵부답 당황한 표정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작가’라는 것이 뚜렷한 직업도 아니고 부모 입장에서야 난감하셨겠지요. 광기에 관한 잡학사전은 당대에 이름을 떨친 세계적인 작가들의 일화(에피소드)가 담겨있습니다. 잘 알려진 내용이 아니라, 전혀 뜻밖의 이야기들을 전해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유명한 작가가 이렇게 괴팍했단 말인가?

 
미하엘 코르트는 20년에 거쳐 이 책을 완성했지요. 작가들은 괴짜지요.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면서 창작을 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두 개 인 셈이지요. 작가들은 자신들이 살아있을 때 빛을 보지 못했지만 후세에 영광을 누린 경우가 많습니다. 미하엘 코르트가 지적했듯, 작가 한 명의 이루어 낸 문화적 성과는 현재를 사는 사람을 먹여 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죽은 작가 몇 명이 개별 산업에 버금가는 규모의 경제활동을 하고 불러일으키고 있지요. 알렌산드르 푸시킨은 보드카 광고에도 등장할 정도니까요.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제임스 조이스 작가 한 사람을 우려먹어도 평생 교수생활을 영위 할 수 있으니까요.

 

“작가 내지는 사상가가 되려는 사람은 현대 시민 사회에서 물질적인 성공에 기초한 가치 척도로 볼 때(최소한 조금은) 미쳤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어제 전철을 기다리다가 벽면에 걸린 글을 읽었습니다. 정확하게 사람이름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옛날 영국 귀족 가문에 두 아들이 있었다. 한 아들은 정치계 입문하고 경제계에 진출해서 돈을 벌어 그당시에 많은 사람들의 흠모 대상이 되었습니다. 동생은 인도로 떠나 성직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성경을 대표적인 인도어로 소개하기도 했지요. 세월이 지나, 백과사전에는 동생의 이름만 자세히 소개되어있습니다. 형의 이름은 동생의 형이란 것 밖에 소개되어 있을 뿐.


 


  독일어로 된 가장 위대한 찬가들을 쓴 시인 프리드리히 휠덜린은
  생애의 36년을 거의 바보 취급 당하며 배고픈 예술가로 지냈다.

 

작가와 사상가의 천재적 창조행위가 없었다면 우리의 의사소통은 초라해졌을 겁니다. 만약 당신의 자녀가 “작가가 되고 싶어요” 라고 말한 다면 어떻게 답변해야 할까요? 참 어렵지요. 세상에는 참 많은 직업이 있습니다. 하지만 언론에 회자되는 대표적인 직업군은 협소하지요. 작가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인 것은 맞습니다. 물론 선천적인 재능도 있어야겠지만, 재능이라는 것이 어떤 방향으로 인도되는 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진짜 재능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위대한 문호로 불리는 발자크는 수도사 옷을 걸진 채 하루 60잔의 커피를 마시면 집필을 했습니다. 매일 열여섯 시간 동안 글을 썼지요. 괴테는 역작 파우스트를 64년 동안 고치고 다듬어 세상에 내 놓았지요. 영주의 상속자 붓다는 자유를 얻기 위해 거지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위대한 작가나 사상가는 현실과 동떨어진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작가나 사상가가 되고 싶다고? 직업이 아니니까. 그런 일은 다양한 사회 경험을 하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단다. 이렇게 말해야 할까요? 아니면 작가되면 밥 나와?

그래 잘 선택했다 너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모는 과연 열에 몇이나 될까요? 광기에 관한 잡학사전을 읽으면서 갑자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 참고 및 본문 인용 발췌: 광기에 관한 잡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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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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