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탈행복론

|함수연| 만남 2014. 1. 13. 12:16

아침부터 기분이 엉망이다.

안방 침대를 바꾸느라고 침대 밑에 들어있던 가방과 앨범 등

 잡동사니들이 정리가 안 된 채 방에 나뒹굴고 있고,

전날 딸네 식구가 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먹고 가는 바람에

평소 쓰지 않던 그릇들이 대거 등장하여 부엌 살림살이도 매우 어수선한 상태였다.

 

 

설상가상, 아침밥을 먹던 남편이 생선찌개에 쑥갓이 안 들어갔다면서

느닷없이 쑥갓 타령을 하는 거였다. ‘아무리 남자지만 이렇게 상황 파악이 안 되나?’

가뜩이나 심란하던 차에 열이 오른 나는

급기야 먹던 밥숟갈을 식탁에 던져놓고 먼저 일어섰다.

 

 

 

 

덕분에(?) 일찌감치 집안일에 돌입, 먼저 분리수거부터 하였다.

그런데 모아둔 신문지와 빈병을 들고 나가다가 아파트 현관 앞에서

그만 소주병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진 유리병은 산산조각이 났고

내 마음도 마찬가지!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지고 가 청소를 하고

 혹여 작은 조각이라도 남아있을까 싶어 물휴지로 마무리했다.

 

 

평소 분리수거는 남편 담당이었는데 홧김에 안 하던 일을 하려니까

이런 불상사가 일어난 것이다.

 

 

그 사이 남편과 딸은 출근을 했고 널브러진 집안일을 뒤로 미룬 채

나는 누웠던 이불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왠지 더 이상 무슨 일을 했다가는

또 예기치 못한 사태가 벌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커피 한잔 들고 신문 보는 푸성귀같이 상큼한 아침 시간도 포기했다.

그냥 시간이 좀 지나면 평온이 유지될 거라고 생각했다.

 

 

머리맡 라듸오에서는 올드송이 흘러나왔다.

팻분, 냇킹콜, 패티페이지의 노래로 방금 전까지 아프고 괴로웠던 마음이

조금은 위로를 받는 듯했다. 꽤 긴 시간을 그렇게 누워 있었는데 전화가 왔다.

암사동 사는 내 친구였는데 이런저런 얘기 끝에 저녁에 남편과 함께 우리 집에 오겠단다.

 다시 집안일을 시작했다.

 

 

전날 딸네가 와서 먹고 남은 음식이 있어 따로 장보기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손님이 온다고 하니 갑자기 분주해졌다.

 

 

친구네가 오면서 생선회와 과메기, 막걸리 등을 사가지고 왔다.

거기에다 내가 속성으로 빚은 만두와 메밀묵까지 더하니 근사한 상차림이 되었다.

갑작스런 친구의 방문에, 그것도 내 친구 부부인데 나보다도 남편이 더 좋아했다.

더구나 남편이 좋아하는 생선회까지 사 왔으니...

술잔을 주고받으며 번지는 은은한 웃음 한 자락은 이내 기쁨의 불꽃이 되어

아침에 각진 마음들이 어느 새 눈 녹듯 사라졌다.

불편했던 남편과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해결된 셈이다.

 

 

 

 

긍정심리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돈이나 일보다

더 중요한 행복의 요소는 끈끈한 인간관계에서 오는 행복감이라고 했다.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라는 글에서처럼

특별히 꾸미지 않고 입던 옷에 슬리퍼 끌고 찾아갈 수 있는 벗이 가까이 살아서 참 좋다.

 

 

내가 힘들 때마다 지치지 않고 챙겨주는 보배로운 친구,

갈 때 얼린 만두와 시레기 삶은 것을 선물로 싸 주었다.

맛있는 사과를 혼자 먹으면 단순히 사과일 뿐이지만

나누어 먹으면 사과가 사랑으로 변신하듯이 역시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사는 것인가 보다.

 

 

살다보면 비 내리는 아침, 바람 부는 낮, 눈 내리는 저녁이 있다.

그런 아침과 낮과 저녁의 나날이 반복되는 게 우리네 삶이 아니던가.

이날 나의 하루는 오전 시간은 불행, 저녁 시간은 행복이었다.

그러고 보니 추상명사인 행복과 불행은 쌍둥이처럼 늘 붙어 다니는 것 같다.

 

 

요즘 내가 깨달은 가장 큰 행복은 무탈의 일상,

특별한 일이 없는 하루이다.

건강하게 일어나 나는 아침밥을 짓고 남편과 딸은 출근을 하고...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이 선물이라고 하는데,

무엇보다도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없는 게 가장 고맙고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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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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